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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고 기사 번역이고 여행기고 자시고, 애드센스도 두어번 떨어지고 조회수도 안 나오고 하니 솔직히 의욕이 좀 떨어졌다.

알바 구하기도 힘들고, 일자리는 더더욱 힘들고 하다 보니, 소일거리 겸 포트폴리오 겸 해서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수익 창출보다는 포트폴리오에 더 큰 목적을 두고 포스팅에 임하는 것 같다.

어차피 사람들 들어오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글주변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ㅎㅎ

 

될 때 까지 애드센스 한 번 넣어보지만, 애스센스 달기 전에 이미 취업해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랬으면 좋겠네... ^^

 

어찌 되었든, 제목에 적힌 바와 같이, 2019년 1월 우크라이나 여행 사진이 다 날아갔다.

다행히 구글 포토에 쟁여놓은 게 좀 있어서 다행이지만, 화질은 원본에 비해 많이 손상되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키이브와 오데사 첫째날까지의 사진은 저화질로나마 남아 있고, 오데사 2일차부터는 그냥 쌍그리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웹하드에 옮기면서 손을 삐끗하면서 휴지통에 쑤셔박았나, 뭐 아무튼 생각할수록 마음아프다.

굉장히 사진 많이 찍곤 했는데, 정말 정말 아쉽고 또 아쉽다. (물론 사진은 예나 지금이나 잘 못 찍음...)

 

다행히 인스타하면서 보정해놓은 사진이 좀 남아있긴 한데, 지금 보면 너무 과하게 보정해서 그렇게 썩 보기 좋진 않다.

 

어찌되었든, 겨울 우크라이나 사진은 날라갔소이다. 사실 날라갔다는 걸 인지하게 된 건 꽤나 오래전이다. 그럼 이 글을 왜 이제서야 쓰냐고?

 

그냥.

 

뭔가 쓰기는 귀찮고 하니 일기라도 하나 쓰려고 한다. '일상'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 아니겠는가.

뱅쇼마시고 싶다. 새해 시즌에 먹은 우크라이나 뱅쇼가 그으으으렇게 맛있었는데. 마줌마라는 밭간 여성분이 뱅쇼 만드는 거 보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우크라이나 밤거리에서 따뜻한 글린트베인(뱅쇼) 한 잔 딱 마시면서 콘트락트 광장 돌아다녔던 그 때가 떠올랐다.

영하 30도 넘게 떨어지는 아스타나(현재 누르술탄)을 막 벗어난 시점이라 키이브의 매서운 겨울 날씨도 애교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춥긴 추웠으니 뱅쇼의 과일향과 계피향이 포근하게 온몸을 감쌀 때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아기자기한 컵에 담아주곤 했다. 가격은 기억이 안 남. 20~30 흐리브냐 정도 했었던가?

 

정말 좋은 추억만 가득했던 2019년 1월의 우크라이나였지만, 사진이 몽땅 날라가서 많이 아쉽다.

아쉬움 중 다행이라 함은 흑해 해안선 따라 여행했던 그 때까지의 사진은 구글포토에 남아있다는 거.

리비우랑 하르키우 사진은 과하게 보정된 사진들 외엔 없다고 보면 된다. 하,... 눈물 맺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내 우크라이나 사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면, 우크라이나 겨울 사진을 실수로 삭제하고 비워버렸다는 사실을 정말 나중이 되서야 알게 되었다.

백업시기도 이미 놓친 셈이다. 뭐, 그냥 가슴 속에 기억해둬라는 거지 뭐.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겠지.

여러분, 백업 단디 합시다! 휴지통 비우기 전에 다시 한 번 체크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진짜 여행사진 날아가면 가슴아프잖아요!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나날들인데. ㅠㅠ

 

저 어색한 웃음 짓는 보라돌이의 사진은 지나가는 20대 후반 쯤 되어보이는 남성분이 삼각대 가지고 끙끙대며 사진 찍던 나를 보고 측은지심에 찍어주신 것이다.


"포토 헬프?"

"다 빠좔스따 예슬리 스모줴쉬! (네 부탁드릴게요!)"

"오오, 러시아어 잘하시네엽! 저기 서 보세요!"

(사진 몇방 찍음)

"한 번 보고 맘에 드는 거 골라보슈!"

"고마워요!"

"님 어디서 왔음? 한국?"

"엏, 바로 알아맞추시네요."

"이유가 뭔지 앎? 한국 사람들이 옷을 겁나게 잘 입어! 네 옷차림 보고 알았지! (윙크)"

'읭????????'


칭찬으로 먹고사는 나는 그 날 하루종일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의식의 흐름 끝.

 

 

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첫 날 카잔 크렘린을 서성이다가 어떤 여자애를 만났다고 했다.

이름은 알리나, 당시 국제 나이로 17살이었나 그랬던 걸로 기억난다. 아무튼 정말 어렸다.

타타르인 여자애였는데, 형제 자매가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4명이었나 5명이었나.

아무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은 친구였고, 시간을 맞춘 끝에 모스크바 가기 전에 한 번 보기로 했다.

우선 카잔역으로 가서 캐리어를 맡긴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정말 간만에 올려 보는 음식 사진. 

아주 예전 같았으면 음식을 시키는 족족 사진을 찍어대곤 했겠지만, 저 땐 그냥 무작정 먹느라 바빠 사진 찍는 걸 종종 깜빡한 듯 했다.

어찌 되었든 알리나와 만나기 전 고향의 맛 비스무리한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 바우만 거리에서 눈에 띄는 롤스시집으로 향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최대한 싼 걸로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한 500~600루블 나온 듯?

맛은 그냥 뭐 나쁘진 않았다.

 

아무튼, 배때기를 대강 채운 뒤 크레믈 쪽에서 만났다. 

"카잔 어디 어디 갔어?"

"음... 어지간한 곳은 다 간 것 같은데... 크렘린, 바우만 거리, 농민 궁전에서 강변 좀 타다가 카잔연방대 쪽으로 쭉 걸어가면서

검은 호수, 카반 호수쪽, 그 뭐 인형 극장같은 데 까지 쭉 걸어갔어."

"뭐 갈 덴 다 가봤네... ㅎㅎ. 흠 그럼 어디 가보지..?"

"그 강 건너편에 컵 같이 생긴 건축물 있잖아, 거기 쪽은 안 가봤어."

"앟하, 그럼 함가볼까?"

"ㅇㅋ"

 

그리고 진짜 원없이 걸었다. 걸으면서 이것 저것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다.

카잔에 한국인 많지 않냐, 장래희망이 뭐냐, 타타르어 할 줄 아냐 등등...

2년 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금 당장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로 저어어어어기! 카잔 패밀리 센터 (Центр семьи Казани)

저기 위에 전망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알리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약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누구는 있다고 하고 누구는 없다고 하고... 전망대 가면 표를 사야 될 건데, 아직 미성년자였던 알리나에게 큰 부담이 될 것 같아 있든 없든 근방에서 사진 찍었다.

저 건축물이 카잔 도시와 관련된 신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크세니아가 설명해 줬었다.

 

크렘린 측면도.

 

강을 건너고 나면 이런 진귀한 모습이 보인다. 크렘린 속에 있는 건축물들이 한 눈에 다 보인다고나 할까..?

 

건너편 강변에서 보이는 크렘린 쪽. 썬텐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다.
표정 왜 저렇지?

카잔이라는 도시는 뭔가 용이랑 많은 관련성이 있는 도시인 듯 하다. 크렘린 앞에도 용 동상이 있었고, 저 카잔 패밀리 센터에서도 용조각이 컵을 휘감고 있으니...

이 와중에 뒷편에 보면 용동상이 하나 더 있다. 용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 도시냐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왜 안 물어봤는지 참 후회스럽다.

 

패밀리 센터까지 도착하고 나니 딱히 갈 데가 없다고 하니 반대편에 가면 밀레니움 다리가 있다며 가자고 했다. 

그렇게 햇볓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 나와 알리나는 강변 따라 쭈우우우욱 걸어갔다.

머리카락... 완전 절정이었지.
이런 아파트 단지의 연속이었다. 여기는 이스탄불 광장.

 

이스탄불 광장. 분수대에 비둘기가... 어우...
밀레니엄 대교 가는 길. 패밀리센터랑 크렘린이 동시에 보이는 스팟에서 한 컷.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진 않았다. 알리나랑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느라 사진찍는 건 늘 뒷전이었다.

동행이 있으면 뭐 늘 그랬듯.. ㅎㅎ 아파트 숲을 지나고 지나 선탠을 즐길 수 있는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모래사장이 펼쳐진 대로 쭉 가다보니 전람차랑 아쿠아리움이 보이고, 거기서 보이는 다리가 바로 밀레니엄 다리라고 한다.

 

전람차. 조금만 더 가면 밀레니엄 다리.
밀레니엄 다리. 카잔 주민들 사이에서는 '맥도날드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유는... 독자 각자가 잘 아시시라 믿음.
들개인지 떠돌이개인지...

 

햇볓이 강하게 내려쬐는 날에 진짜 무작정 걸었다. 다행히 우리나라 여름처럼 그렇게 습하진 않아 그늘로 가면 좀 버틸만 했다.

알리나가 나한테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카잔은 왜 왔냐, 러시아 친구는 있냐, 어디 어디 갔다 왔냐.

한국으로 유학 갈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아몰랑 ㅋㅋㅋ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 이야기해주고, 음식같은 거 이야기 해주고.

다소 기존에 만났던 러시아 여자들과 달리 쑥스러움이 많은 친구였지만,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걔가 쑥스러움을 타니까 오히려 내 입이 바빠진달까.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봤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냥 그렇게 체감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얘가 질문을 하면, 거기서 살을 붙여서 더 이야기하곤 했던 것 같다.

나름 소녀소녀한 풋풋함이 정말 좋았다. 물론 이성적으로 끌린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

 

이 다리 쯤 오니 알리나가 갑자기 목이 마르댄다. 일단 밀레니엄 다리를 건넌 뒤 슈퍼마켓을 막 찾아 헤맸다.

나도 다리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해서 조금 쉬려고 필사적으로 슈퍼마켓을 찾는 데 동조하기도 했다.

 

월드컵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지라 월드컵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 남아있었다.

근처 슈퍼에서 알리나가 물을 사고, 약간의 휴식을 좀 취했다가 버스를 타고 시내 부근으로 갔다.

버스에 어떤 여성분이 기절해서 쓰러졌다. 알리나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턱 하고 쓰러진 것이다.

놀래서 얼타고 있을 즈음에 우락부락한 러시아 아저씨 두 분이 물 뿌려주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알리나와 나는 둘 다 겁먹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응급처치를 마친 아저씨들을 보고, 나 자신이 한심했다. 쓰러질 즈음에 내가 잡아줄 수도 있는데 지레 겁 먹어서 멍이나 때리고 앉았으니...

뭐 아무튼 바우만 거리 쯤에서 내렸다. 마침 저녁시간대여서 알리나가 물었다.

 

"배 안 고파?"

"음, 약간 고프긴 해. ㅎㅎ"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아무거나 잘 먹어서 하나 딱 선택하기가 어렵네."

"아, 내가 괜찮은 스탈로바야 아는데, 거기 한 번 가볼래?"

"한 번 믿어보갔어. ㅋㅋㅋ 가보자."

 

하누마(Ханума). 러시아에서 가 본 스탈로바야 중 상위권이었음.

 

저 때 플롭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고, 처음 먹어봤다. - 아마 그럴 듯. ㅎㅎ

콤포트랑 타타르식 삼사, 샤슬릭이라 불렸던 고기 꼬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정말 버릴 것 없이 맛있었지만 당시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았기에 많이 시키진 않았다.

사진을 보면 맞은 편에 알리나의 몸이 보이는데, 저렇게 음료수만 홀짝댔다.

그래, 질리도록 먹곤 하겠지. 아니면 외식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아마 후자가 가능성이 더 클 듯하다.

 

야외 테라스도 있고 내부에도 좌석이 있는데, 분위기도 목조 건물 느낌나게 지어서 되게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주로 파는 음식들도 주로 타타르 음식이랑 러시아 음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부를 안 찍어놔서 아쉬운데,

구글이나 얀덱스 지도에 Ханума나 Khanuma 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호스텔이랑 카페도 겸하는 것 같으니 관심있으면 찾아보시길.

 

저 멀리 서커스 극장이 보인다. 이 길을 쭉 따라 갔다.
나룻배. 갬성 있네.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분수가 한창이다.

아무튼 밥을 다 먹고,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따라갔다. 

불락 강을 따라 쭉 걷다보니 나를 놀라게 한 게 있었으니 바로

 

 

"쏜-힁-민!"

불락 강의 끝자락에 손흥민 선수랑 황희찬 선수가 있었다. 

사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지만, 이역만리 타국에 한국 선수가 무려 두 명이나 이렇게 있으니 의아하긴 했다.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보고 사진도 좀 찍어보고 그랬다. 그리고 얘한테 물어봤다.

 

"너 손흥민 누군지 알아?"

"ㅇㅇ 알지! 엄청 유명하잖아!"

"오오... 야 진짜 놀랍다 이거. ㅋㅋㅋㅋㅋ"

 

역시 진가를 알아보긴 하는구나. 

 

"황희찬 이 사람은 누군지 알아?"

"응... 뭐, 알지."

 

솔직히 황희찬 선수는 잘 몰라서 아는 척 연기하느라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

거의 기차 시간도 다 와가고 하니 마지막으로 크렘린 주변을 보기로 했다.

둘다 오랜 산보로 지쳐있어 말 수는 이전보다 좀 줄어들었다. 카잔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의식이 흐르는 대로 막 말한 것 같다.

"여기 3박 4일 있었던거 절대 후회 안 돼. 처음엔 인터넷에서 본 하얀 크렘린을 보고 반해서 여기로 왔는데,

크렘린은 둘째치고, 도시가 너무 깔끔하기도 하고, 사람들도 정말 좋고 뭐 그랬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가 좋구만."

 

골든타임의 크렘린. 전봇대가 좀 아쉽네.
골든 타임의 타타르스탄 국립 박물관.
프로프사유즈(Профсоюзная) 길에서.
레스토랑 주차장.

알리나가 한국어를 조금은 할 줄 알아서 그런가 의사 소통은 어느 정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아직 그 때는 그렇게 유창하게 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좀 많이 늘었을라나?

내 인스타 언팔로우 해놔서 나도 언팔을... 했긴 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안부 물어보면 답을 해 줄라나.

아, 얘는 내 카톡 아이디가 있구나. 그 때의 추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그러는데 한 번 말 걸어봐야 겠다.

 

잰말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간장공장공장장...이랑 안촉촉한초코칩...을 하니까 애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녹음을 다짜고짜 했다.

처음에 Скороговорка라는 말을 까먹어서, Мы же на ты, мы женаты 이런 말장난으로 착각했다.

 

"너 러시아어 스코로고보르카(잰말놀이) 알아?"

"말장난 같은거야?"

"그런 셈이지."

"응, 기차에서 배웠어. 우리 결혼한 사이잖아(Мы женаты)"

"...응?"

"아니, 아니, 우리 말 놓은 사이잖아(Мы же на ты).. 이런 말장난 말하는 거 아니였어?"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말고 이런 거 있잖아 @ㅃ$^@%$^@# 이런거!"

"아아아아! 슐라사샤빠쇼셰사살라수쉬쿠 이런거?"

"응!! 더 아는 거 있어?"

"음... 지금 기억나는 건 없네."

....

 

이런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좀 떼우다가, 나도 기차시간이 다 되어가고, 알리나도 집 들어갈 시간이 돼서

인스타 계정 교환을 한 뒤 작별했다.

 


아직도 한국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그 때 한 번 보자고.

앞으로도 그 열정 잊지 않은 채 열심히 공부해서, 한러간 견고한 교각이 되길.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에 한국이나 카잔에서 또 보자고!


한 밤중에 기차를 타고 잠시 자고 일어나보니 어떤 여성 분이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은 없었지만, 도착하기 몇 분 전에 여성분 뿐만 아니라 주변 좌석에 있던 몇 분이 내게로 몰려와

모스크바 명소를 하나 하나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굼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맛있다나 뭐라나.

숨은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보태닉 정원(Ботанический сад)을 추천하더라. -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괜찮았는데!

 

정말 여러모로 러시아는 정이 넘치는 나라다. 누가 '아직까지' 스킨헤드가 득실대고, 인종차별 개 심하다 했던가!

적어도 여행객 입장에서 두 번 사기를 당했음 당했지(사기꾼은 어딜 가든 넘치니까), 인종차별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3주에 걸쳐 블라디보스톡부터 모스크바까지 갔다.

모스크바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 황홀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옛날에 '상경을 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기도 했다.

옛날에는 고향에서 서울까지가 그렇게 천릿길이라 그러던데 (참고로 나는 거제사람...)

그 천릿길보다 더 되는 길을 거쳐 모스크바로 도착한 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설렘이 가득했다.

 

붉은 광장! 볼쇼이 극장! 굼! 쭘! 모스크바 시티! 기다려라, 내가 간다!

 

드디어 모스크바.

공상은 엄청 단순한 것에서 시작된다. 

무심결에 피터팬 콤플렉스의 로케트라는 곡이 머릿속에 맴돌면 2013년 갓 새내기가 되었던 그 시절의 추억을 왜곡하고,

지나가다 우연히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를 보면, 나를 정말 못살게 굴었던 우즈벡 공연단원(특히 남자 아재들!)들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좋은 추억이 왜곡된다.

 

'볼쇼이 쿠날레이'라는 곳을 내가 알게된 것도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드미트리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그가 부랴티아 출신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갑자기 부랴티아라는 곳에 호기심이 생겨 검색을 해봤다.

처음에는 완전히 티벳정교스러운 건축물로 조성된 어느 작은 마을을 떠올렸지만,

그런 곳은 많이 없었던 것 같고(다짠도 그렇게 많진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대체로 자연 관광지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찾게 된 곳이 '타르바가타이 시'였다.

타르바가타이 시의 사진을 어느 정도 보고 인터넷 서핑도 좀 하다 보니, 이 주위에 가장 아름다운 시골로 선정된 곳이 있다고 해서 알아본 게 볼쇼이 쿠날레이(Большой куналей)다.

 

17세기 중엽 정교회가 신구파로 나뉘었고, 고의식파(старообрядчество)들이 국가의 차별과 탄압을 피해

구교도의 박해를 피해 현 벨라루스의 베트키(Ветки; 호멜 주)로 이주하곤 했다. 

당시 베트키를 통치하고 있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이 쇠약해지자, 러시아가 이 곳을 점령했고, 그 후

예카테리나 2세의 칙령에 따라 1765년에 거기에 있던 약 40,000명의 구교도 신자들이 부랴티아로 쫓겨나 바이칼 인근의 다양한 곳으로 흩어져 살았다고 한다.

대체로 대가족 단위로 이주를 해왔기 때문에(혹은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이들을 세메이스니예(Семейные)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교도인의 전통 의복(혹은 짬뽕)을 입은 사람들. 출처 : http://wiki.starover.net/

예카테리나가 구교도 신자를 세금 감면 혜택까지 줘가면서 멀고 먼 땅으로 이주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러시아 민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부랴티아가 러시아령이라는 것을 정당화하고, 국경을 수호하는 코사크에게 식량을 공급해줄 농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머나먼 낯선 땅으로 이주당해 부랴티아의 서남부 지방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대표적으로 타르바가타이(Тарбагатай), 비추르(Бечурский), 무호르시비리(Мухоршибирь) 등이 있다. - 대체로 러시아-청나라 국경지대.

볼쇼이 쿠날레이도 이주민의 마을 중 하나로, 구교도적 생활 양식에 따라 살고 있다. 

출처 : https://newbur.ru/n/44641/
출처 : https://zen.yandex.ru/media/id/5c40615ef2b20900a9599b2c/bolshoi-kunalei-i-malyi-kunalei-5d9e8a630ce57b00af047c27
출처 : https://visit-rzn.ru/strany-evropy/krasivye-nazvaniya-russkih-dereven-pyat-samyh-privlekatelnyh-sel-rossii/

지금까지 구교도의 생활방식을 잘 보존해왔다는 공로로 타르바가타이 일대의 문화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전통복장은 채도 높은 색의 옷감을 사용한 것과, 구슬을 이용한 장식이 가장 큰 특징이고,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적 요소가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그 외에도 부랴트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의 의복 양식에도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오두막 집도 알록달록하게 채색되어 있어 세메이스니예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만의 유서있는 합창단을 갖추고 있는데, 프랑스,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팻말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러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시골&소도시 - 볼쇼이 쿠날레이. 어서오십시오!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지만, 인구의 고령화가 가장 큰 쟁점이다.

이를 계승해야할 젊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버리고, 그러다 보니 마을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이러한 기조는 러시아 시골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이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러시아 시골 마을'을 엄선해 인프라를 구축하려 하는 듯 하다.

 

사실 구교도들이 모여 살았던 곳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타르바가타이(Тарбагатай)가 있다.

거기도 선명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꽤 많이 있다.

원색 계통을 많이 이용하고, 그런 계통을 좋아하는 것은 구교도 신자의 공통적인 취향인 것 같고,

오히려 과감한 색상을 이용하면서 '원초적인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드는 것 같다.

'구'라는 말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영상에 의하면) FM적인 요소는 더이상 없다고 한다.

즉, 민족 의상은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이상 잘 안 입게 되고, 결혼식같은 경우도 전통 방식으로 잘 진행되진 않는다고 한다.

-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다, 이미 현대 문명을 맛보았으니...

그래도 드문드문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전통 방식으로 환대를 하면서 구교도 문화의 많은 부분을 최대한 보려주고는 하고 있다.

국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골 중 하나로 선정한 걸 보니 이 마을을 말미암아 관광 수입을 어느정도 노리는 것 같긴 하다.

 

만약 이 곳이 관광객을 많이 끌어 들이고자 한다면, 마을을 어느 정도 재정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나같은 놈은 정말 이런 원초적인 게 맘에 들지만, 대개 관광객들은 도시나 촌락을 여행할 때 어느 정도 정돈된 모습을 바란다.

여행객들의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하여 러시아 당국이 이 마을을 잘 다듬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진과 영상을 보고, 무형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만큼, 이러한 문화를 계승하는 사람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길을 잘 만들고, 양철 지붕을 기왓장으로 대체시키고 하면 정말 이쁜 곳이 될 것 같다.

깔끔하게, 마을이 가진 매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프라를 잘 구축해내면,

아마 전 세계에서 오려고 난리 칠 거고, 한국 사람들 인생샷 찍으러 많이들 올 것 같다.

 

잘리시치키 포스팅할 때 말했듯, 이 시설 저 시설 아무거나 막 넣고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유적지나 자연관광지는 그 경관을 해치는 요소를 인프라랍시고 너무 많이 잡아넣어서 문제다 하여간에...

이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미를 인프라라는 빌미로 훼손시키지 않길...

 

 

 

 

혹시 갈 사람이 있나 싶어서 가는 방법을 살짝 적어놓긴 하겠다.

 

http://www.visitburyatia.ru/company/raspisanie/

 

(Ulitsa Sovetskaya 1, Ulan-Ude, Buryatia)

여기서 441번 버스 타고 출발하면 된다. 아침 7시 부터 저녁 7시 까지 30분 간격으로 출발함.

다르가브스 겨울 풍경. 출처 : StarsInsider

치토 그브리토를 포스팅할 때, 카프카스와 사랑에 빠졌다고 언급을 했었다.

이 포스팅을 빌어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은 가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구미가 당기진 않는 나라라 이 나라 가보고 싶다고 선뜻 말하긴 그렇지만,

조지아랑 아르메니아 같은 경우 정말로 매력 있었고, 심지어 신비하기까지 한 인상을 내게 주어 몇 번이고 또 갈 수 있을 것 같다.

 

북 카프카스도 내심 궁금하긴 하지만, 막상 가기엔 조금은 두려움이 앞서는 게 좀 있다.

크고 작은 내전이 있었던 곳인 건 둘째치고, 북캅카스 계열 사람들이 굉장히 전투적(!!)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모스크바에서 체첸이나 다게스탄 쪽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좀 나눠보았는데 사람들이 나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가장 먼저 묻는 건 "내가 복싱을 좀 하는데... 너네 나라에서 복싱 선생님 안 구해?" 허허...

 

뭐 아무튼, 호기심은 많지만 두려움이 앞서서 감히 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로써는 가고싶은 마음이 크니, 한 번 랜선으로나마 여행을 해보려고 한다.

 

가자.

 

 

[소련 영화음악] Вахтанг Кикабидзе - Чито Гврито (Мимино OST)

원어 : ვახტანგ კიკაბიძე - ჩიტო გვრიტო 영화 미미노(Мимино; Mimino) 중. 'Песня Года(1978)' 중 Trio Mandili(무려 약 40만명의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유튜버) 커버. მ..

gyongski.tistory.com

이번에 랜선으로 떠나볼 곳은 바로 북 오세티야에 있는 '다르가브스'라는 곳이다.

- '다르가우스'가 더 입에 착 감기긴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기로 했다. -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굉장히 이국적이고 원시적인 매력이 있는 마을로 보이겠지만,

사실 마을이라기 보다는 묘지 단지라고 한다.

즉, 한 건물 안에 여러 명의 시체가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고, 지금도 건물에 난 네모난 창을 통해 죽은 자의 뼈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영상에서 여성분이 굉장히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키질 돈 강이 흐르는 다르가브스 협곡을 따라 쭉 가다 보면 나오고,

'키질 돈'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타타르어로 '붉은 강'이라는 말이고,

14세기에 이 곳에 살고 있었던 알란족이 타타르족과 전쟁을 벌이면서, 시체에서 나오는 피로 인해 강이 붉어진 것을 보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패배한 알란족은 산악지역으로 쫓겨났고, 좁고 거친 땅은 이들에게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경작지와 목축지로도 안 쓰일만한 땅에 묘지를 지어 묻곤 했다고 한다.

물이 고이지 않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자연적 특성을 고려하여 짓다 보니, 지금까지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곳과 관련하여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마을에 나타났다.

마을의 남성들이 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가정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격투를 벌이곤 했다.

그 와중에 남자들이 죽기도 하고, 가정이 와해되기도 하다 보니 여성을 쫓아내고자 했지만, 

남자들이 다른 마을 남자에게 이 아름다운 여성을 넘겨 주기 싫어했다.

혼란이 계속 되자 오랜 시간 끝에 처자를 죽이기로 했다.

오직 신만이 그의 아름다움을 탐닉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여성이 죽고 나서 마을에 흑사병이 퍼졌고,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을 땅에 묻으려 했으나,

죽은 사람의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땅은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그 자리에 이 무덤 터가 생겼다.


 

총 97개의 무덤이 있고, 지상형, 반지하형, 지하형으로 지어졌다.

지붕은 계단 형태로 지어졌는데, 빗물이 경사를 타고 흘러내려가면서 무덤 안에 건조함을 유지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정말 작은 창이 네모나게 나 있는데, 성인이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지만 안을 충분히 다 내다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는 된다.

주위에 바다가 없지만, 배의 모양으로 관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는 약간의 미스테리로 남아있긴 하다.

알란족 사이에서 '사람이 죽고 나면 죽음의 왕국으로 배를 타고 가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이 있긴 하다.

 

무덤에 있는 옷과 물건을 통해 이 곳에 묻힌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고, 이 곳에서 저승의 배를 탄 사람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18세기 다르가브스 지역에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더 큰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된 사람들은 약간의 식량과 물을 가지고 와 남은 여생을 이 곳에서 보냈다고도 한다.

어떤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빨간색으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우리를 사랑으로 대해주세요. 우린 한 때 당신과 같았고, 당신은 우리처럼 될 테니까요."

 

유적 복구 작업 중에 한 노동자가 어떤 미친 사람의 낙서인 줄 알고 석회로 덮어버리는 바람에 현재는 그 글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현재 UNESCO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고 있다.

입장료는 100 루블이라고 하고, 블라디카프카스에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3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는 듯하다.

가는 데 까지 소요시간은 약 1시간 반, 버스 기사한테 다르가브스 죽은 도시 가나요 물어보고 타는 걸 추천.

다르가브스 정류장에 내리고 나서 좀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입구에 내려줄 수 있냐고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는 걸 추천.

 

다르가브스 유령 도시 가나요? - Едете ли вы к городу мёртвых в Даргавсе?

입구쯤에 내려도 괜찮을까요? - Можете ли меня высадить у входа даргавского некрополи?

 

블라디카프카스 마르쉬루트카 №115 노선. "Кобан"이라 적힌 부분에서 밑으로 좀 내려가면 호수 3개가 보이는 데, 젤 밑에 있는 호수 부근에 위치함.
시장 공원(Базарный сквер). 저 봉고차 같은 것 중 115번으로 타면 됨. (얀덱스 지도)

 

번거롭거나 불안하다면 택시를 타고 가거나, 투어를 신청해야 할 듯.

택시 타고 갈 경우 택시 기사랑 잘 협의해야 한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경우가 꽤(!) 많다.

투어 같은 경우는 블라디카프카스의 게스트하우스에 문의해 보시는게...

 

18시 이후로는 입장이 불가하니 시간 계획을 잘 짜시길 바랍니다.

 

아니 이렇게 정보를 제공하면 뭐해, 코로나 때문에 하늘길 다 막혔는데 ㅠㅠㅠ

 

아무튼 이렇게 또 한 곳 다녀왔습니다.

언젠가 저도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북카프카즈 지역(체첸, 다게스탄, 세베로오세티야(북오세티아), 카바르디노발카르(카바르티노-발카리야 공화국), 잉귀쉬(잉구세티아), 카라차예보체르케스카야(까라차이-체르케스), 아디게이(아디게야))은 현재 철수권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가시게 될 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원래 북카프카스 쪽이 내전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는 곳이라 철수권고를 내린듯...)

 

html의 h도 모르고, css의 c자도 몰랐던 내가 어찌 어찌 구글링에 구글링을 거쳐 블로그 공사를 해냈다.

정말 언뜻 보면 별 거 아닌 것 처럼 보여도, 하나의 인터넷 사이트가 디자인되기 위해서 엄청난 공이 들어가는 구나 하고 깨달으며,

그 과정에서 흥미를 조금 느껴 차츰씩 웹디자인을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 마음만 먹어서 늘 문제.

 

그냥 티스토리 블로그 하나 꾸밀 수 있을 정도로만 공부를 해보고 싶긴 하다.

미적 감각이 그렇게 좋지 않아 이걸로 돈 벌어 먹고 살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뭐 아무튼, 태풍이 한바탕 반도를 휩쓸어 간 뒤에 하늘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이뻐서

한 번 랜선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지금 어디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1~2년 전 여행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곱씹는데도 한계가 있기도 하고,

언젠가 코로나가 풀리고, 돈이 어느 정도 생겨 여행갈 시간을 벌 수 있을 때

참고라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마치 내가 어디 여행이라도 간 양 포스팅하기로 했다.

 

물론, 써야하는 여행기가 산더미같이 남았긴 했지만, 흠...

 

뭐 아무튼, 그럼 떠나볼까?

 

1. 잘리시치키(Заліщики)

 

위 영상에 의하면,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온난한 기후를 지니게 되어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미는 특산품으로 토마토가 있고, 터키산 토미토를 들이면서 윤작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 외에도 포도도 있다고 한다. 매년 포도 축제가 열리곤 했다고 하지만, 소련 시기에 없어졌다고 하는 것 같다.

 

그 다음에 잘리시치키 시장이 나오는데, 도시를 관광의 도시로 발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의욕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곤 했는데 (강변에 벤치나 스포츠 기구나 캠핑장을 세운다거나, 공원에 무료 와이파이를 설치한다거나)

우크라이나 내전 중 전사한 아들이 그녀를 이렇게 바꿨다고 했다.

 

전쟁에 나가기 전,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잘레시치키에 왔을 때, 친구와 함께 전망대로 올라가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 참나무 하나 심어놓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심어 놓으면 나중에 우리가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면 커다란 나무가 되어 좋은 쉼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아들의 친구에게 전해 들은 시장은 아들을 기리고자, 아들의 소망 에 부응하고자 전망대에 참나무를 심어놨다고 한다.

 

폴란드 치하의 잘리시치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휴양지로 나름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그 이후 잃어버린 명성을 조금씩 찾고자 시장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듯 하다.

아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도시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다.

 

대략적인 역사도 설명을 했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 이 도시는 루마니아와 폴란드의 접경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폴란드 영토 중 가장 남단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흔치 않은 기후와 빼어난 경치로 폴란드 휴양객들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심지어 바르샤바-잘레시치키를 왕복하는 열차가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게 넘어갔는데, 당시 소련에는 관광과 관련해 큰 투자를 하지 않아 많이 침체되기도 했다.

오늘날에야 조금씩 관광객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관광을 넘어서 자연을 이용한 액티비티도 개발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바로 환경과 관련한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잘리시치키의 강변에 수력발전소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잘리시치키 시장을 비롯하여 지질학자, 환경전문가 등 다수의 전문가가 반대의 의사를 표명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어떻게는 강행하려는 것 같다.

댐을 짓고 나서 물이 고이면서 수질이 나빠진 사례가 있다. 근방 지역인지 아예 다른 지역을 예로 든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시장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단합하여 수력발전소 공사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수력발전소 설치를 무력화하고자 한 일은 바로 태양광 전지 설치다.

소규모의 태양광 전지를 설치해 국가에 에너지를 판매하는 사람도 있고,

넓은 면적에 태양광 발전소를 형성하기도 했다.

 

뭐 어찌 되었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언젠가 유명한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면서 영상이 끝이 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roWpBt4YRo

 

이 영상은 개인이 만든 영상인데, 이 지역으로 여행가기 위해 특별히 계획을 짜는 건 그닥 추천하진 않는다.

"여행은 가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해외 여행은 못 가서 국내 여행으로 어떻게 대리 만족을 하고 싶다면 한 번 쯤 와보는 것을 추천해요.

딱히 뭐 그렇게 볼 게 있진 않아요. 몇몇 오스트리아-헝가리 시절, 폴란드 시절 건축물이랑 소련식 건물, 뭐 거의 이 정도?

근데 물가가 엄청 싸서 가성비 좋게 가정식이나 과일을 먹기는 되게 좋아요.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캐년 따라 레프팅하는 거, 전망대 올라와서 도시 전경을 내려다 보는 거, 이 정도예요."

 

우크라이나 국영 방송에서 촬영한 도시 소개 영상이다.

위의 두 영상에 비해 조금 더 도시에 대한 설명에 더 충실한 듯 하다.

두 영상에서 설명했던 것들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건설된 건축물과, 폴란드인이 세운 펜션들, 유대인들의 건물(유대인이 많이 살았다고 함) 등...

근데 영상에 보여진 바에 의하면, 건물들이 방치된 느낌이 없잖아 있는 듯 하다. 길도 비포장 도로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첫번째 영상에서 언급되었듯, 아직 구축해야 할 인프라가 많아 보인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의 도시 정비가 되기 '전에' 가보고 싶다.

난 허름한 것에서 매력을 느끼는 변태니까.

 

초록색 마킹... 지난해 여행의 흔적 보소... ㅎㅎ 빨간색 마킹이 잘리시치키 위치. 

 

테르노필 주에 속하지만, 테르노필보다 체르니우치와 더 가깝다.

1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와 루마니아 접경지역이라고 한 게 지도를 보니 더 실감이 난다.

키이브(키예프)에서 가기엔 많이 멀고, 리비우에서 가면 나쁘지 않은 거리인 듯 하다.

만약에 들릴 의향이 있으면 '리비우 - 잘리시치키 - 체르니우치' 루트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

 

버스시간표 참고(영,러,우 지원) : https://ticket.bus.com.ua/order/

리비우 - 잘리시치키

리비우 - 잘리시치키 노선은 하루에 한 번 14:55분에 출발한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격은 212 흐리브냐, 166번 버스. 스트리스카 109에 있는 리비우 버스터미널로 가면 된다.

구글맵에는 'lviv-1 stryiskyi Bs'라고 검색하면 좌표가 나올 것이다. 소요 시간은 6시간(..)

 

잘리시치키 - 체르니우치

잘리시치키 - 체르니우치 노선은 화, 목, 토요일 14:50분에 출발한다.

가격은 50 흐리브냐, 리브네에서 체르니우치가는 버스가 경유하면서 사람을 태우는 듯 하다.

소요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체르니우치 중앙버스터미널에 내려준다.

Vasylia Stefanyka Street 13이라고 검색하면 어디서 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근데 버스정류소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걸 보니 간이매표소처럼 운영하는 듯 하다.

현지인과의 소통이 요구될 지도 모른다. (버스 어디서 타나염?)

 

체르니우치 - 잘리시치키

체르니우치에서 잘리시치키 가는 버스는 꽤 자주 있다.

매일 7회 운행하고 있고,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아침 6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50 흐리브냐로 가장 싸고, 그 다음에 출발하는 8시에 출발하는 차가 61.6 흐리브냐로 가장 비싸다.

중간 경유지에서 내리는 셈이니, 버스기사에게 잘리시치키에 내릴 거라고 잘 말해두는 게 좋을 듯 하다. (현지인들도 잘 도와줌)

타는 곳은 체르니우치 중앙터미널로, Central Bus Station Chernivtsi라고 검색하면 구글 지도에 나온다.

 

잘리시치키에서 리비우로 가는 버스는 없지만 리우네(리브네)로 가는 262 흐리브냐짜리 버스가 하루에 한 대 있기 때문에

그거 타고 리우네 가서 사랑의 터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음.

 

sns에서 핫한 장소잖니? ^^

 

- 아침 8시 반에 출발해 16시 15분에 도착한다는 즉슨 8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한다는 건 함정! -

 

아니면 리비우에서 체르니우치까지 내려간 뒤(잘리시치키 좀 들리고) 루마니아로 넘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체르니우치가 옛 부코비나 수도이기도 하니 루마니아랑 되게 가깝기 때문이다.


https://gidtravels.com/rus/chudesa-ukrainy-chernovcy-i-zaleshhiki

서유럽이나 남유럽 소도시처럼 아기자기하고 이쁜 소도시를 기대했다면 이게 뭔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곳도 이런 곳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방치되다시피한 오래된 건물들로 인해 조금은 을씨년스러울수도 있는 분위기가 연출이 되긴 하겠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았을 땐 찰리 채플린의 말이 뭔가 조금 더 와 닿을 것 같긴 할 것 같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내가 잘리시치키로 갔다 온 뒤에는

가까이서 봐도 비극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잘 꾸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관광도시로서의 잠재력을 잘 갖추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도시를 잘 꾸미고 인프라를 잘 구축한다면

소련 치하 동안 잃어버렸던 휴양지로서의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제발 우리나라처럼 멋 없는 잡건물로 도배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면...

드라마 초반부에 독창, 후반부에 합창. 스토리와 연관되어 있음. 

 

볼쇼이 어린이 합창단 버전. 작곡가의 밤 예브게니 크릴라토프 편(1987) 중.

 

 

보이스 키즈 우크라이나(Голос країни) 참가자 마르크 코발렌코 버전. 12남매 가족의 자식 중 한명이라고 한다...

 

Vendetta - Этот дым(2011). 피아노 반주음을 샘플로 사용했다.

В юном месяце апреле
В старом парке тает снег,
И веселые качели
Начинают свой разбег.

싱그런 4월이 오면,

공원엔 눈이 녹죠.

그네는 신이 나서,

흔들흔들 대지요.

 

Позабыто все на свете,
Сердце замерло в груди:
Только небо, только ветер,
Только радость впереди!
Только небо, только ветер,
Только радость впереди.

모든 것이 잊혀지고,

가슴 속은 조용해요.

하늘만이, 바람만이

기쁨만이 우리 앞에!

하늘만이, 바람만이

기쁨만이 있어요!

 

Взмывая выше ели,
Не ведая преград
Крылатые качели
Летят, летят, летят!

Крылатые качели
Летят, летят, летят.

날개가 달린 그네

전나무보다 높이

날아 올라 힘차게

훨훨 날아 멀리!

날아 올라 힘차게

훨훨 날아 멀리!

 

Детство кончится когда-то,
Ведь оно не навсегда,
Станут взрослыми ребята,
Разлетятся кто-куда.

언젠가 끝날 어린 시절

영원하지 않은 시절

여기저기 흩어지죠,

어른이 된 아이들.

 

А пока мы только дети,
Нам расти еще, расти:
Только небо, только ветер,
Только радость впереди!
Только небо, только ветер,
Только радость впереди.

우린 아직 어린이죠

자라고 또 자라요.

하늘만이, 바람만이

기쁨만이 우리 앞에!

하늘만이, 바람만이

기쁨만이 있어요!

 

Взмывая выше ели,
Не ведая преград
Крылатые качели
Летят, летят, летят!
Крылатые качели
Летят, летят, летят.

날개가 달린 그네

전나무보다 높이

날아 올라 힘차게

훨훨 날아 멀리!

날아 올라 힘차게

훨훨 날아 멀리!

 

Шар земной быстрей кружится
От весенней кутерьмы,
И поют над нами птицы,
И поем как птицы мы.

생기있는 봄이 오자

지구는 엄청 바빠요.

새의 노랫소리 맞춰

우리도 함께 노래해요.

 

Позабыто все на свете,
Сердце замерло в груди:
Только небо, только ветер,
Только радость впереди!
Только небо, только ветер,
Только радость впереди.

모든 것이 잊혀지고,

가슴 속은 조용해요.

하늘만이, 바람만이

기쁨만이 우리 앞에!

하늘만이, 바람만이

기쁨만이 있어요!

 

Взмывая выше ели,
Не ведая преград
Крылатые качели
Летят, летят, летят!
Крылатые качели
Летят, летят, летят.

날개가 달린 그네

전나무보다 높이

날아 올라 힘차게

훨훨 날아 멀리!

날아 올라 힘차게

훨훨 날아 멀리!

 


소련 영화음악이라고 제목에 언급을 했지만

사실 어그로를 위한 거짓말일 뿐... (죄송합니다.)

소련 영화음악이 아니라 드라마 음악이다.

미래에서 온 손님과 같은 어린이 드라마의 OST다.

 

이때가지 소련에서 만들어진 어린이 드라마를 2개정도 보고 느낀 건,

주인공은 꼭 사기캐라는 것이다. 2020년 메이플로 치자면 아델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알리사는 미래에서 온 사기캐, 일렉트로닉은 인간이 만든 사기캐

뭐 못하는 게 없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이른바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사기캐는 항상 평범한 아이들의 세상에 똥을 푸질나게 싸주는데,

평범한 피오네르들이 머리를 맞대어 똥을 같이 치워주는 그런 클리셰가 나름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두 작품 다 사상을 뛰어넘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그런 드라마라 생각이 든다.

재미도 보장되고, 음악도 내용도 굉장히 서정적이어서

요즘같이 차가운 세상속에 온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성인이 내가 봤을 때, 물론 장르 특성상 유치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나름 아빠미소 지으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들이 보는 드라마라 어휘도 크게 어렵지 않고,

소련만의 갬수성을 물씬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샤와 곰이나 동요같은 거 들으면서 언어를 배우기엔 연령적 수준을 콘텐츠에 맞춰주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

차라리 이런 어린이드라마가 나아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요정 컴미'라던가 '매직키드 마수리'처럼 항마력이 딸려서 못 볼 정도는 아니다.

 

다시 음악으로 넘어가자면,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 미래에서 온 손님 OST보다 더 좋다 생각이 든다.

둘다 서정성으로는 엄청난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둘 중에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두 곡 다 동요 가사인데도 수준이 정말... 정말 높다.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정갈한 문체를 차마 고스란히 담을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Детство кончится когда-то,
Ведь оно не навсегда,
Станут взрослыми ребята,
Разлетятся кто-куда.

언젠가 끝날 어린 시절,

영원하지 않은 시절.

여기저기 흩어지죠,

어른이 된 아이들.


특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구절이다.

과연 내가 유년기에 누군가와 같이 이 노래를 불렀더라면

이 가사를 내뱉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그냥 불러 넘길 가사는 아니라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에게는 쓰디쓴 어른 생활의 시작을 암시해주고,

어른이 된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 친구를 상기시켜줄 수 있는 구절인 듯 하다.

 

그런 내용을 담았으니

'동요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인 만큼 밝은 곡조를 지녀야 된다'는 흔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단조성의 아르페지오로 우수를 자아해냈나 생각이 든다.

- 물론 후렴구에는 전조와 분위기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희망찬 가사와 함께 신나게 진행된다.

 

그래, 애들한테 새콤달콤한 것만 먹여서 좋을 건 없지.

 

일렉트로닉의 모험 (1979)

원어 : ვახტანგ კიკაბიძე - ჩიტო გვრიტო

 

영화 미미노(Мимино; Mimino) 중.

 

'Песня Года(1978)' 중

 

Trio Mandili(무려 약 40만명의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유튜버) 커버. 

მე რა მამღერებს უძირო ზეცა, ზამბახის ფერი
თუ მილხინს ვმღერი, თუ ვსევდიანობ, მაინცა ვმღერი
მე რა მამღერებს, ვარდების სუნთქვა, ყაყაჩოს ფერი
ალბათ სიმღერა თუ დამანათლეს, ჰოდა მეც ვმღერი

공활한 하늘, 영롱한 꽃을 난 노래하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저 난 노래하네

장미의 숨결과, 자라나는 양귀비 난 노래하네

노래로 나는 빛나기에, 그 빛으로 난 노래하네

 

ჩიტო, გვრიტო, ჩიტო-მარგალიტო, და
ჩიტო, გვრიტო, ჩიტო-მარგალიტო, და

아기새, 아기새, 진주 같은 아기새

아기새, 아기새, 진주 같은 아기새

 

ჩემი სიმღერა, ამ მზემ ამ ხალხმა ამ ზეცამ შობა
როცა ვმღერივარ, შორიდან მათბობს ჩემი ბავშვობა
როცა ვმღერივარ, მე ჩემს მომავალს სიბერის ვხედავ
და უკითხავად სულში შემოდის ფარული სევდა

천국의 해가 사람을 비추듯 내 노래도 그렇게,

머나먼 내 어린 시절 따스함을 노래할 때면.

멜로디에 비친 황혼을 맞은 내 모습을 보면,

느닷없이 찾아드는 알 수 없는 쓸쓸함에...

 

ჩიტო, გვრიტო, ჩიტო-მარგალიტო, და
ჩიტო, გვრიტო, ჩიტო-მარგალიტო, და

아기새, 아기새, 진주 같은 아기새

아기새, 아기새, 진주 같은 아기새

 

ჩემი სიმღერა მთებმა მასწავლეს, ჩიტების სტვენა
ასე მგონია ამ სიმღერებით ავიდგი ენა
როგორც ამბობენ სიცოცხლის ბოლოს თუ მღერის გედი
სიმღერით მოვკვდე, რაღა ვინატრო ამაზე მეტი

이 노래는 흔들리는 산과 휘파람 부는 새

이 노래로 난 이야기하지, 그렇게 생각해

하얀 백조가 삶의 끝자락에서 부르는 노래

그 노랠 들으면, 아무 방도가 없어, 그저 죽음 뿐이네

 


어쩌다가 카프카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필수적으로 들어야하는 교양 시간에서 캅카스 3국에 대해 짤막하게 공부를 했고,

호기심이 생겨서 검색을 했더니

저렴한 스위스라는 둥,

와인의 최초 발상지라는 둥,

한국인이 많이 없는 여행지라는 둥,

푸쉬킨이나 파스테르나크가 반한 고장이었다는 둥,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보물같은 여행지... 등과 같은 말들이 꽤 많았다.

(솔직히 저렴한 스위스라는 말은 심히 맘에 들지 않는다.)

 

산 중턱에 세워진 낡은 석재 교회라던가

 

말이나 소와 같은 가축이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풍경

 

개성있는 문자를 사용하는 모습

 

온기가 넘쳐나는 인심,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분위기

 

카프카스로 여행을 방문 전, 방문 후 한동안 카프카스 앓이를 하고 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도 엄청 친절했고, 먹거리도 엄청 맛있었고, 자연 풍광은 경외할 수준이었다.

GDP가 얼마고 PPP가 얼마고를 다 떠나서, 이정도면 고향에 충분히 자부심 가질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씩 카프카스가 그리울 때가 있다.

도시 바닥에서 쉴새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는 걸 느낄 때

끊임없는 경쟁의 급류 속 경계를 하고 경계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걸 느낄 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고 치여 상처를 받곤 할 때

따뜻한 햇살과 장엄한 만년설, 웅장하고 푸른 산이 그리워지고

여유 가득한 사람들, 내게 크나큰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캅카스에서 받은 긍정적인 인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친구를 카자흐스탄에서 만났다.

기숙사 한 층 아래에 살다가 두 번째 학기에 내 룸메가 된 친구였다.

방구석 힙스터의 전형이었고, 특히 영화를 정말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내가 그렇게 카프카스를 찬양하니, 미미노라는 영화를 추천해줬다.

 

이번에 포스팅하는 곡이 바로 이 영화의 오프닝곡이고, 조지아어로 된 노래 중에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 생각이 든다.

캅카스적인 리듬과, 소련적인 감성, 낯설다 못해 신비한 가사의 언어

영화에서 다뤄지는 블랙코미디와 잘 어우러지는 곡조가 아마 CIS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원리인가 싶었다.

나도 한동안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고, 지금도 가끔씩 멜로디만 흥얼거리곤 한다.

 

다소 익살스럽게 들릴 수는 있지만,

알고 보면 이 노래는 나이가 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허무함과 쓸쓸함을 다루고 있다.


ჩემი სიმღერა მთებმა მასწავლეს, ჩიტების სტვენა
ასე მგონია ამ სიმღერებით ავიდგი ენა
როგორც ამბობენ სიცოცხლის ბოლოს თუ მღერის გედი
სიმღერით მოვკვდე, რაღა ვინატრო ამაზე მეტი

 

이 노래는 흔들리는 산과 휘파람 부는 새

이 노래로 난 이야기하지, 그렇게 생각해

하얀 백조가 삶의 끝자락에서 부르는 노래

이 노랠 들으면, 아무런 방도가 없어, 그저 죽음 뿐이네


 

자연이 가르쳐 준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다가도

백조가 노래의 결말을 장식하면 기쁨도 슬픔도 느낄 새 없이 공기가 되어버린다는 내용으로 이 노래는 끝이 난다.

백조의 노래 또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인 만큼, 죽음 또한 신의 섭리, 자연의 섭리라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사람도 어느 동물과 다름 없이 살아있을 때 노래하고 죽을 땐 침묵을 한다.

죽은 개가 더이상 낯선이를 보고 짖지 않듯, 죽은 뱀이 먹잇감을 보고 쒹쒹대지 않듯.

노래를 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고,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여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늘어가는 주름살을 보며 노래할 수 있는 것도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미미노를 추천해 준 친구가, 여러 러시아인이 치또 그브리또 하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것도

이 노래가 나의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고, 이 노래로 말미암아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른 키카비제가 올해의 곡(Песня Года)에서 라이브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을 남기지 않았을까.

 


Почему мне поется, говорится песня...

왜 제가 노래를 부를까요, 왜 노래를 할까요...

 

Потому что я очень люблю синее небо в Тбилиси,

Его горы, солнце.

트빌리시의 푸른 하늘, 산, 태양을 정말 사랑하니까요.

 

Когда мне на душе хорошо, я пою.

Когда плохо... все равно, я пою.

기분이 좋다, 그러면 노래를 불러요.

기분이 영 아니다, 그래도 노래를 불러요.

 

Моя песня родилась от этой земли, этого солнца,

От моего народа.

제 노래는 고향 땅에서, 고향의 햇살에서

고향 사람들에서 나왔어요.

 

Я пою и чувствую, что по себе подкладываются старости.

Вспоминаю свое детство - становится очень грустно.

노래하면서 느껴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간다는 사실을요.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울적해지죠.

 

Но, все равно, пою.

뭐 어때요, 그래도 노래해요.


 

 

Wasted
Wasted in a cyber dimension
Pour my heart into simulation
Digital in reciprocation
I'm staring at the screen that you live in

 

I'm trying to remember your name then
The memory before I awaken
Is coded to a million fragments
But all I had was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Shadows follow me and I let them
I wanna leave the world I was left in
Unstable online interconnection
I'm trying to remember your name then

 

The memory before I awaken
Is coded to a million fragments
Consuming all the bones I have broken
But all I had was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Pixel affection

 

Wasted
Wasted in a cyber dimension
Pour my heart into simulation
Digital in reciprocation
I'm staring at the screen that you live in


I'm trying to remember your name then
The memory before I awaken
Is coded to a million fragments
But all I had was pixel affection

 


글리치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신스팝이다.

Yeule이라 해서 교포 가수인가 싶어서 유튜브 알고리즘 따라 들어가봤는데,

80년대 일본 시티팝 무대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나와서 아 일본인인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싱가포르 태생 영국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더라.

 

보컬 멜로디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멜로디의 형태가 A와, A'로만 되어있다.

변하는 건 보컬을 감싸는 음악적 요소다.

어떤 음악이 늘 그렇듯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요소가 추가되고, 좀 더 색채가 있는 비트가 나오고 그렇긴 하다.

스퀘어 계열의 파형으로 만들어진 몽글몽글한 사운드로 화음을 연주하고

보컬에 글리치를 입히면서 80~90년대 빈티지함을 살려냈고,

뮤직비디오에서 쇼와 시대 가요 무대를 통해 그 빈티지함의 타당성을 확고히 했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봤을 땐, 시티팝이라는 요소는 옛스러움과 모던함 사이에 있는 애매한 느낌을 가진 시대고,

이러한 시대적 특징은 많은 예술가에게 색다른 영감을 불어 넣어주곤 한다.

8090년대, 세기말이라 불리는 이 시기에 일본은 최대의 경제적인 호황을 겪었고,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의 나라도 당시 호황의 급류에 휩쓸려 갈 때였다.

아시아적인 것을 상쇄한 뒤 그 자리에 '모던함'으로 상징되는 고층건물과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네온사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도시인'으로서의 자부심에 절어 살 때,

전통적인 가치관과 새로이 유입되는 다양한 요소가 시소를 타고 있었다.

 

베이퍼웨이브가 유행했었고, 레트로가 유행하곡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혼란스러운 가치관이 난무했던 이 시기를 이제는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도 대만도 한국도 불경기를 겪고 있고, 그 이유를 세기말에서 찾는 게 아닐까.

그 이유를 세기말에서 찾는다는 명목으로 사실 그 황금기 속에 자신을 가두려는 것은 아닐지.

 


Wasted in a cyber dimension
Pour my heart into simulation
Digital in reciprocation
I'm staring at the screen that you live in

사이버 공간 속 낭비되는 시간

가짜 공간 속 흘러드는 내 맘

모든 게 연결된 디지털 세상

스크린 속에서 살아가는 널 보아.


사이버 공간, 시뮬레이션, 디지털, 스크린

세기 말에 구축된 이 요소들은 21세기의 첫 날과 멀어져 갈수록 더욱 더 확장되고

그러다 보니 사이버 공간 속에서 사랑을 찾고 자신의 가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외모적 결함, 신체적 결함, 성격적 결함을 어느 정도 가려줄 수 있으니, 그런 공간이 더 편하긴 할 것이다.

스크린 상으로 보여주는 건 실재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고민 끝에 만들어진 '이상적인 모습'이니 말이다.

브라운관에 비춰지는 유토피아의 시뮬레이션을 보면서

세상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더욱이 부끄러워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히키코모리가 되어가고, 넷상의 관심종자가 된다.

현실과 가상 간 대립, 현실과 이상 간 괴리

그렇게 Pixel Affection에 빠진 사람이 하나 둘 생기는 것이다.

 

황금기를 좇고, 지난 날을 후회하기도 하고, 지금보다 덜 '모던'한 세계를 보며 위안 삼고.

그게 마냥 부정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픽셀로 점철된 것과 망막에 직접적으로 맺히는 실재적 존재는 구분하자 이거다.

 

노래 자체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리뷰 아닌 리뷰를 쓸 땐 가사적 의미까지 고려해서 적긴 하지만

보통 음악을 들을 때 가사는 그렇게 중요치 않다.

얼마나 참신하고 멋있는 사운드, 멜로디로 곡이 구성되었는지

전체적으로 곡이 주는 분위기를 음미하기도 바빠서

가사를 들으려 하면 나머지 음악적 요소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내 음악적 취향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서 올릴 테지만, 대강은 그렇다.

장르고 뭐고 할 것 없이 곡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분위기를 구성하는 사운드와 멜로디, 화음, 대위적 요소가 중요하지,

가사는 선율로 엮은 수수께끼같은 암호의 단서일 뿐이다.

 

아니 그래서 이 곡이 어떻냐고?

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고.

곡도 괜찮지만, 뮤직비디오가 곡을 완전히 살렸다 생각이 든다.

조금은 빈티지한 사이버펑크와 아날로그적인 신디 사운드, 사운드의 글리치로 표현된 가상 세계 속에 빠진 인물상을

파란 조명과 노이즈, 시티팝적인 요소를 통해 잘 녹여냈다 생각이 든다.

 

<Serotonin II> 2019

1. Your Shadow

2. Poison Arrow

3. Eva

4. See You Space Cowboy

5. Pixel Affection

6. Nuclear War Post IV

7. Pocky Boy

8. Pretty Bones

9. Reverie

10. Blue Butterfly

11. An Angel Held Me Like a Child

12. Veil of Dark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