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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 아레나. 월드컵이 끝난 뒤라 조용하다.

카잔에 사는 친구의 친구들과 12시였나 1시쯤에 크렘린 입구에서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숙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카잔 아레나로 향했다.

축제가 끝난 경기장은 그냥 조용할 뿐이었다. 커다란 전광판이 비추는 광고는 뭔가 공허하기까지 했다.

한때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여기서 독일을 2:0으로 이겼고, 거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향했다. - 안 타본 대중교통은 이제 전차만 남았다.

소음이 적어 일반 버스보다는 아늑한 느낌이었다.

 

창 밖에 비춰진 정교회 성당
iso조절 못했다 또 ^^;

카잔 지하철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서 그런가 오히려 우리나라 지하철과 비슷한 감이 있었다.

줴톤을 넣고 들어간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다른 도시에 비해 그렇게 깊진 않았고,

새 것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곤 했다.

 

성당 이름은 잘 모르겠다. 바우만 거리 가는 길목에 있긴 한데...

크렘린스카야 역에 내린 뒤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좀 남아서 살짝 구경했다가 카페로 들어가 여유라는 것을 부려봤다.

 

코코넛 슬래시. 330루블... 현지인한테는 다소 창렬한 가격이겠지?

아무 데나 보이는 데 들어가서 코코넛 슬래시를 하나 시키고 카잔이라는 도시에 대해 검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도 좀 보면서 나중에 만날 일행들의 가이드에 대비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이해한 척을 해야 되니...)

 

크렘린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았다.
크렘린 시계탑, 주위에 있는 잘릴(М.Джалиль) 동상.
다시 찍어본 시계탑 반대편으로 난 길.
여기도 꽃바구니!

그렇게 정시보다 10분 일찍 왔지만, 친구의 친구 일행 2명은 다행히 10분 정도밖에 늦지 않았다.

한 명은 크세니아, 한 명은 세르게이였던 걸로 기억난다.

나잇대는 노보시비르스크 가는 길에 만난 디마랑 비슷한 나잇대였다.

당시 나이가 국제 나이로 18-19 언저리였다.

 

첫 만남은 늘 그렇다. 너무 어색했다. 급작스러운 건 둘째 치고,

얘내들을 소개해준 그 여자애도 사실 그렇게 막 친한 아이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통성명을 하고, 처음엔 영어 러시아어 좀 섞더니 나중에는 그냥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어디 어디 가봤어?"

"크렘린이랑 바우만 거리 살짝 구경하고 끝났어."

"아아, 그럼 강변 쪽으로 가보자. 가는 길에 볼거리가 좀 있을 거야."

 

그리하여, 걔내들이 향하는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농민 궁전 (Дворец земледелец)

처음으로 간 곳은 농민 궁전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나?)

크세니아가 뭔가 설명을 해줬긴 했는데, 맙소사, 기억이 안 난다.

다음에 카잔이라는 도시에 대해 포스팅할 일 있으면, 그때 다시 알아보던가 해야겠다.

관공서 같은 걸로 쓰이겠지. 

 

"이 건물의 포인트는 제일 가운데에 있는 나무얌."

 

정면으로 보면 이런 나무모양이 뙇.

"강변에 안 가봤지?"

"응, 안 가봤어."

"어 그럼 가보자. 거기 새로 신축해서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

 

가라는 대로 가야지, 뭐 어쩌겠어. 

강변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걔(두 친구를 소개해준 애)랑 어떤 사이냐느니,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느니...

크세니아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케이팝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남자 애는 그런 것에 완전히 관심 없고, 그냥 외국인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둘 다 러시아 계 친구들이라 타타르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카잔 내에 살면 쓸 일이 잘 없다고 한다.

 

"아델리나(주선자) 걔는 순도 100% 타타르 인이라 러시아어랑 타타르어 둘 다 원어민 급으로 해."

 

저 건너편이 신도시. 내가 있는 쪽은 구도심이었다.
카잔 패밀리 센터. 

"저 동그란 건축물은 뭐야?"

"아 저거, !#$%@야. 지어진 지 얼마 안 됐어."

"아아..."

"혹시 카잔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

"음... 몰라. 어떻게 생겨났어?"

"이런 전설이 있어. 큰 그릇(Казан)으로 강물을 퍼서 뿌린 방향에 도시가 생겨난 거야. (이야기가 결코 짧진 않았다. 대충 이렇게 이해했다.) 저 위에 그릇 같은 게 바로 그걸 나타낸 거야."

"호오. 이런 건 학교에서 따로 배운 거야? 아니면..."

"뭐 어쩌다 보니까. ㅎㅎ"

 

크세니아가 주로 가이드 역할을 담당했고, 세르게이는 잡담 역할을 맡은 듯했다.

조금씩 조금씩 말을 조금씩 트면서 어디 끝자락까지 걸은 뒤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

 

뭔가 스토리가 있었는데...

세르게이가 '1000주년 기념 카잔 박물관' 위에 있는 자그만 쇳조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었다.

... 진짜 이래서 여행기는 하루 일과 끝나자마자 제시간에 딱딱 썼어야 했어. 

농담 비스무리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구도심 내 신도심(??!!)

저 알록달록한 건물들 이쁘다고 하니까 크세니아가 현실적인 이야기로 뼈를 때렸다.

"저 집들... 엄청 비싸."

그리고 세르게이가 이 건물단지들 지어진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연한 거지, 어딜 가든 강변 부근 땅값은 비싼 법이니.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의회

"어, 국회는 좀 소련 느낌 나게 생겼네."

"중심지 빼면 거진 소련식이야. 도시를 이렇게 꽃단장한 것도 비교적 최근이야."

"월드컵 때문에?"

"아마?"

월드컵을 맞아 도시를 재단장한다는 뉴스는 몇 번이고 봤기에 어느 정도 예감은 했다.

 

레닌 동상과 카잔 시청.

 

"자, 여기 레닌 동상이야. 옆에 있는 건물은 카잔 시청이고."

"레닌은 뭐 어딜 가나 다 있네? ㅋㅋㅋ"

"그렇긴 하지. 근데 너 레닌이 카잔 연방대 다녔던 거 알아?

"아 그래? 난 톨스토이만 알았지... ㅎㅎㅎ"

"엉! !@#@$^%$#^%$#@%^*&%$."

 

카잔 오페라 극장.

 

투카이 상. (타타르 시인)
이런 길을 계속 걸었다. 전체적으로 파스텔 계열의 건물이 많았다.
검은 호수(Чёрное озеро)가는 길목에 본 분수
검은 호수.
사진이나 우선 찍어보자귱.
산책로..?
발 담구는 성님들. 당신들 이제 X됐어.
이 작은 호수에 깃든 전설을 몰랐다면 그냥 저수지.

크세니아가 검은 호수에 빠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럼 저기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뭐야?" - 발 담그면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어봤다.

"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몰라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 - 크세니아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더우니까 인정사정없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 세르게이가 겨우 모면해줬다 (?!)

 

카잔 연방 대학교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거의 다 옴.
중간에 보수중인 건물도 좀 보이고. 뭐 그래도 화사하고 이쁘긴 하다.
카잔 연방대.

정갈하면서도 고전미 넘치는 모습의 건물이 있었다. 

"자, 여기가 톨스토이랑 레닌이 거쳐간 카잔 연방대야." - 크세니아

"오오. 되게 뭔가 깔끔하네. 이런 데서 공부하면 공부할 맛 나겠다." - 나

"그치. ㅎㅎ" - 크세니아

"이 건물뿐만 아니라 분관이 몇 개 더 있긴 한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 세르게이

크세니아랑 세르게이가 이것저것 더 설명해줬지만,... 하... 리뱌따, 쁘라스찌 ㅠㅠ

 

조금 감상하다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랴노프 (Владимир Ильич Ульянов.)

"저 사람은 누구야?"

"젊은 레닌이야."

 

내리막길은 정말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카잔 거리 정말 이쁜 것 같다. 정갈한 느낌이 너무 좋다.

 

아니 여기는... 바우만?

걔내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바우만 거리 끝자락에 도달했다.

하지만, 바우만 거리는 가봤으니 가볍게 패스했다.

 

왜 찍었는지 모를 사진.
콤포트. 호기심에 사 먹었는데 나쁘진 않았다.
카말 극장. 융단 보양의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카반 호수였다. 카잔 시민들이 산책하러 많이들 온다고 했다.

"저 건물은 카말 극장인데, 저 위에 있는 건... 음... 뭐라고 해야 되지?"

"융단?"

"어어어어ㅓㅇ 융단이야! 민속적인 공연을 하는 곳이야."

"그리고 이 옆에 있는 곳은 카반 호수야. 도시 내에서 가장 큰 호수야."

 

카반 호수.
가운데 있는 애가 크세니아, 그 옆에 남자애가 세르게이. 워터마크... 하... 이러니까 범죄자같잖아 ㅠㅠ
저 멀리 컬러풀한 곳이 타타르 구 거주지.
공원 어딜 가든 닭둘기가 넘친다.

"이번 여행 때 갈 나라 외 가고 싶은 나라 있어?" - 크세니아

"음... 우크라이나도 한 번 가보고 싶긴 해." - 나

"너 구소련 지역 되게 좋아하는구나. ㅋㅋㅋㅋㅋ" - 세르게이

"내 전공이 전공인지라. ㅋㅋㅋ 너네들은 어디 가고 싶어?" - 나

"체코? 도시도 되게 이쁘고, 언어도 비슷하잖아. 한 번 가 봤는데, 정말 괜찮더라." - 크세니아

"난 그냥 어디든 가보고 싶어. 한국도 가보고 싶고, 유럽도 가보고 싶고." - 세르게이

(대화 내용은 딱 핵심만...)

 

그 외에도, 나한테 여러 가지에 대해 물어봤다. 취미가 뭐냐느니, 어느 나라 가봤냐느니... 등등.

호수변을 걸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실히 덜 어색해진 것 같다.

 

"여기는 타타르 구 거주지야. 옛날에 타타르 인들이 여기에 근거지를 잡고 살았어." - 크세니아

"되게 알록달록하구만. 동화 같은 느낌이야." - 나

 

타타르 구 거주지 근접.
교회같아 보여도 이슬람 예배당입니다. 호홓

"여긴 모스크야." - 크세니아

"엥? 교회가 아니고?" - 나

"지붕 끝에 달 있잖아." - 세르게이

 

타타르 지구 길목.

 

너무 알록달록해서 눈뽕이 날 지경이야.
다시 카반호수로 돌아왔다.
갑자기 단독샷도 찍고 싶어서, 찍어달라고 부탁함.
Алтын /알튼/ - (명사)황금
작은 공원.

카반 호수쯤 가니까 현대적인 건축물이 많이 보였다.

"너 책 읽는 거 좋아해?" - 세르게이

"좋아하긴 한데, 시간이 없어서 많이 읽진 못하고 있어. 너는?" - 나

"나 완전 책벌레야. ㅎㅎ" - 세르게이

"오오, 어떤 책 주로 읽어?" - 나

"소설 되게 좋아해. 판타지 정말 좋아하고. 판타지 좋아해?" - 세르게이

"아아, 판타지 좋지. 근데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읽어야 될지 모르겠어. 한번 읽으면 엄청 읽긴 하지." - 나

"글쿠나. 한국사람들도 판타지 많이 읽어?" - 세르게이

"보는 사람은 많이 봐. 읽기보단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야. 해리포터, 그.. 반지...왕..." - 나

"반지의 제왕?" - 세르게이

"어어 반지의 제왕 맞아! 그리고 나니아... 나닌스키 례떠삐스...(?)" - 나

"아아. 너 재밌게 본 판타지 있어? ......" -세르게이

"옛날에 재밌게 읽었던 게 있는데, 국산 판타지라... 아마 러시아어로 번역은 안 됐을 거야. 러시아어로 제목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리뱌따 루나(룬의 아이들), 아로마...아로마트.. 뭐 아무튼 [묵향]이라고 있어. 해리포터는 마법사의 돌만 봤고,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 다 봤어." - 나

 

미안해, 세르게이. 난 인문학 쪽을 선호해서 말이야.

그래도 러시아 판타지 소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긴 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몇 안 되었다.

참, 어릴 때 영화든 소설이든 많이 읽어놔야 했는데. ㅠㅠ

 

여기도 그 '그릇'이 있네.
가톨릭 성당

"이 건물은 가톨릭 성당이야. 카잔에는 모스크도 있고 정교회 성당도 있고 가톨릭 성당도 있어." - 크세니아

"호오, 흥미롭네. 여긴 종교 때문에 싸우고 그러는 건 없어?" - 나

"딱히... ㅎㅎ" - 크세니아

 

저 멀리 보이는 인형 극장.
인형 극장 <Экиат>
어딜가나 있는 아이 러브 시리즈. 인형 극장 가는 길에 테마파크 같은 곳이 있어서 들렀다.
어린 왕자?

 

어지간히도 폼 안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회기역에 내리면 펼쳐지는 아라비안 나이트 짝퉁 같은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조품인 건 아니고... ㅎㅎ 인형 극장이 되게 컸다. 이쁘게 잘 만든 것 같았다.

"아힝 기여웡 >_< 너네들 어릴 때 여기 자주 오고 그랬어?" - 나

"글쎄, 가끔씩은 갔던 것 같아." - 크세니아

"아.. 되게 신기하네. 한국에는 인형극장이라는 곳이 잘 없거든." - 나

 

인형극장 건너편에는 꽃 축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한 번 구경하러 가보라고 애들이 권유했지만, 가진 않았다.
2018 꽃 페스티벌. 그렇게 큰 규모로 진행되는 건 아닌 듯 했다.

"다음에 갈 곳은, 고리키 공원이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공원이야." - 크세니아

"엥? 여기도 고리키 공원이 있어? 모스크바에도 있잖아." - 나

"뭐... 어딜 가나 다 있어. ㅋㅋㅋㅋ" - 세르게이

"레닌 동상만큼이나 ㅋㅋㅋㅋㅋ" - 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지나다 보면
어딜가나 있는 꺼지지 않는 불.
애절한 몸짓. 경건히 지나쳐본다.
영원의 불.
고리키 공원 도착.

"항상 공원 같은 사람 많은 곳 가면 사진 찍기가 두려워." - 나

"왜?" - 크세니아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들 있을까 봐." - 나

"뭐 어때, 그냥 찍어. 러시아에선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 - 세르게이

"한국에서는 좀 문제 돼?" - 크세니아

"응.. 그.. 뭐랄까.. 그래, 불법이야. (초상권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 나

"여긴 러시아야. ㅎㅎ 아무도 신경 안 써." - 세르게이

 

역광 땜에 하늘이 쌔하얗다.
iso조절 실패. 소리가 신비로웠다.
입구이자 출구.

그렇게 고리키 공원까지 좀 둘러보다가, 잠깐 벤치에 앉아서 좀 쉬고, 목을 좀 축인 뒤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세르게이랑 크세니아 둘 다 선약이 있었기 때문. 

 

러시아를 전반적으로 여행하면서 느낀 건, 공원을 산책하거나 공원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아오면서 공원이라는 곳을 얼마나 자주 갔을까?

가끔이라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가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큰 대도시에서도 조차 공원이라는 곳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서울에야 아마 좀 있을 거다, 하천을 중심으로 산책로나 트랙을 조성해놓긴 했지.

그래도 보통은 아파트에 둘러싸여 '싱그럽다'는 느낌보다는 '잘 조성된' 느낌이 강했다.

가끔은 도시의 이미지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을진대,

너무 좁아터진 영토에 끼여 살고 있으니, 그런 공간을 지을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고, 그런 공간을 찾으려고 하니

그게 피시방이 된 거고, 노래방이 된 거고, 카페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용을 같이 있었던 친구한테 말을 하진 않았다.

그냥 이런 공원이 군데군데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다는 말은 혼잣말 식으로 했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거니... 대신 겨울엔 무지막지하게 추워서 밖에 못 나오니.

 

바우만 거리 방면으로 가는 길.
그냥 말 그대로 쭈우우욱 걸었다.

세르게이가 갑자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네 나라 사람들 군대 가?" - 세르게이

"당연하지. 의무야, 바로 위에 김정은이 있어서 ㅋㅋㅋㅋ" - 나

"얼마나 복무했어?" - 크세니아

"1년 9개월 정도 복무하는 게 원칙이지만, 난 6개월 더 했어." - 나

"우와..." - 둘 다

"러시아에서는 징병 1년이지?" - 나

"응. 근데 대학교 졸업하면 면제돼." - 세르게이

"그럼 세르게이 넌 어쩔 거야?" - 나

"으으음... 최대한 안 가야지. 근데 너 뭘로 복무했어? 포병? 소총병?" - 세르게이

"군악대였어. ~~~" - 나

 

군대 얘기하다가 러시아 군대에 대한 얘기도 좀 듣고,

보이는 건축물마다 크세니아한테 이거 뭐냐 저거 뭐냐 5살 배기처럼 물어보기도 했고,

또 기억이 안 난다, 침묵과 수다가 번갈아 일어났던 것은 확실하다. - 셋 다 좀 지친 거지.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느라.

"학교... 같은데? 학교일거야 아마." - 크세니아
저 원인 모를 오른쪽에 뿌연 상...
조금씩 원점과 가까워져 오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 투카이 반대 편에는 푸쉬킨이 있었다.
바우만 부근.

중간에 세르게이가 선약 때문에 먼저 갔다. SNS를 안 해서 그렇게 작별하고,

크세니아와 둘이서 바우만까지 간 뒤 기념품 상점에 들렀다.

그냥 차근차근 둘러봤다. 마그넷을 살지 고민만 하다가 말았다.

그때, 갑자기 크세니아가 양말이랑 타타르식 꿀타래를 계산하더니 선물로 줬다.

아...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랄 것도 다 떨어지고 없는데. ㅠㅠㅠ

뭔가 보답을 해 주고 싶었지만, 보답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크세니아와도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한국 올 때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고독한 여행자에게 즐거운 시간 안겨줘서 정말 고마워.

낯을 많이 가려 그렇게 재밌는 외국인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덕분에 카잔 여행이 더욱더 뜻깊어진 것 같아.

 

앞으로 행복한 일, 원만한 인간관계가 함께하길.

이루고자 하는 거 다 이루길...

 

한국 오면 꼭 연락해.

세르게이는 인스타 없으니까, 크세니아 통해 연락하고.


 

 

기념품 중간결산

탈크쉬 켈레베(타타르식 꿀타래)

МАТУР(멋쟁이) 양말

 

드미트리가 졸업한 학교 뱃지

알료나 아주머니께서 주신 네르파

예카테린부르크 마그넷.

 

탈크쉬 켈레베는 현지에서 홍차와 함께 먹었다. 

아직 여행일이 1달가량이나 남은 시점이라

계속 들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사줬을 건데...

마투르(타타르 말로 멋쟁이라는 뜻이다.) 양말은 옷장에 잘 모셔놓고 있다.

마치 명품 신발을 신지 않고 쟁여놓는 것과 같은 이치.

 

우선 아델리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 좋은 친구들 소개시켜서 고마웠다고.

아델리나가 아니었으면, 이 두 친구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테니까.

담에 카잔 갈 일 있으면 꼭 한 번 다 같이 보고 싶은데,

최근에 인스타 들어와서 보니 나를 언팔했더라...

뭐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이 든다,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원래 규칙상 나를 언팔하면 언팔하긴 하지만, 이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팔로우를 했다.

 

뭐 아무튼, 아델리나도 맘에 들었다니 기쁘다는 말과 함께,

크세니아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줬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휴, 끝났어. 오빠분 정말 사교적이고 활발하셔서 정말 좋았어.

세르게이 이 녀석, 푸틴이랑 군대에 대한 질문 엄청 해댔어.

탈크스 켈레베랑 마투르 양말 선물도 해줬어. 

미친 듯이 걸었어. 카잔 시내 거의 전체를 돌았고, 고리키 공원까지 가버렸지 뭐야!"

 

정말 미친 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행여 지루한 사람이 될까봐 많이 조마조마했는데

이렇게 좋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아무튼 그렇게 헤어지고, 두 친구가 추천해준 스탈로바야로 향했다.

 

카잔 이야기 2 끝.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