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Grey Outline Pointer

 

 

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첫 날 카잔 크렘린을 서성이다가 어떤 여자애를 만났다고 했다.

이름은 알리나, 당시 국제 나이로 17살이었나 그랬던 걸로 기억난다. 아무튼 정말 어렸다.

타타르인 여자애였는데, 형제 자매가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4명이었나 5명이었나.

아무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은 친구였고, 시간을 맞춘 끝에 모스크바 가기 전에 한 번 보기로 했다.

우선 카잔역으로 가서 캐리어를 맡긴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정말 간만에 올려 보는 음식 사진. 

아주 예전 같았으면 음식을 시키는 족족 사진을 찍어대곤 했겠지만, 저 땐 그냥 무작정 먹느라 바빠 사진 찍는 걸 종종 깜빡한 듯 했다.

어찌 되었든 알리나와 만나기 전 고향의 맛 비스무리한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 바우만 거리에서 눈에 띄는 롤스시집으로 향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최대한 싼 걸로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한 500~600루블 나온 듯?

맛은 그냥 뭐 나쁘진 않았다.

 

아무튼, 배때기를 대강 채운 뒤 크레믈 쪽에서 만났다. 

"카잔 어디 어디 갔어?"

"음... 어지간한 곳은 다 간 것 같은데... 크렘린, 바우만 거리, 농민 궁전에서 강변 좀 타다가 카잔연방대 쪽으로 쭉 걸어가면서

검은 호수, 카반 호수쪽, 그 뭐 인형 극장같은 데 까지 쭉 걸어갔어."

"뭐 갈 덴 다 가봤네... ㅎㅎ. 흠 그럼 어디 가보지..?"

"그 강 건너편에 컵 같이 생긴 건축물 있잖아, 거기 쪽은 안 가봤어."

"앟하, 그럼 함가볼까?"

"ㅇㅋ"

 

그리고 진짜 원없이 걸었다. 걸으면서 이것 저것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다.

카잔에 한국인 많지 않냐, 장래희망이 뭐냐, 타타르어 할 줄 아냐 등등...

2년 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금 당장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로 저어어어어기! 카잔 패밀리 센터 (Центр семьи Казани)

저기 위에 전망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알리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약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누구는 있다고 하고 누구는 없다고 하고... 전망대 가면 표를 사야 될 건데, 아직 미성년자였던 알리나에게 큰 부담이 될 것 같아 있든 없든 근방에서 사진 찍었다.

저 건축물이 카잔 도시와 관련된 신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크세니아가 설명해 줬었다.

 

크렘린 측면도.

 

강을 건너고 나면 이런 진귀한 모습이 보인다. 크렘린 속에 있는 건축물들이 한 눈에 다 보인다고나 할까..?

 

건너편 강변에서 보이는 크렘린 쪽. 썬텐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다.
표정 왜 저렇지?

카잔이라는 도시는 뭔가 용이랑 많은 관련성이 있는 도시인 듯 하다. 크렘린 앞에도 용 동상이 있었고, 저 카잔 패밀리 센터에서도 용조각이 컵을 휘감고 있으니...

이 와중에 뒷편에 보면 용동상이 하나 더 있다. 용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 도시냐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왜 안 물어봤는지 참 후회스럽다.

 

패밀리 센터까지 도착하고 나니 딱히 갈 데가 없다고 하니 반대편에 가면 밀레니움 다리가 있다며 가자고 했다. 

그렇게 햇볓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 나와 알리나는 강변 따라 쭈우우우욱 걸어갔다.

머리카락... 완전 절정이었지.
이런 아파트 단지의 연속이었다. 여기는 이스탄불 광장.

 

이스탄불 광장. 분수대에 비둘기가... 어우...
밀레니엄 대교 가는 길. 패밀리센터랑 크렘린이 동시에 보이는 스팟에서 한 컷.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진 않았다. 알리나랑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느라 사진찍는 건 늘 뒷전이었다.

동행이 있으면 뭐 늘 그랬듯.. ㅎㅎ 아파트 숲을 지나고 지나 선탠을 즐길 수 있는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모래사장이 펼쳐진 대로 쭉 가다보니 전람차랑 아쿠아리움이 보이고, 거기서 보이는 다리가 바로 밀레니엄 다리라고 한다.

 

전람차. 조금만 더 가면 밀레니엄 다리.
밀레니엄 다리. 카잔 주민들 사이에서는 '맥도날드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유는... 독자 각자가 잘 아시시라 믿음.
들개인지 떠돌이개인지...

 

햇볓이 강하게 내려쬐는 날에 진짜 무작정 걸었다. 다행히 우리나라 여름처럼 그렇게 습하진 않아 그늘로 가면 좀 버틸만 했다.

알리나가 나한테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카잔은 왜 왔냐, 러시아 친구는 있냐, 어디 어디 갔다 왔냐.

한국으로 유학 갈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아몰랑 ㅋㅋㅋ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 이야기해주고, 음식같은 거 이야기 해주고.

다소 기존에 만났던 러시아 여자들과 달리 쑥스러움이 많은 친구였지만,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걔가 쑥스러움을 타니까 오히려 내 입이 바빠진달까.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봤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냥 그렇게 체감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얘가 질문을 하면, 거기서 살을 붙여서 더 이야기하곤 했던 것 같다.

나름 소녀소녀한 풋풋함이 정말 좋았다. 물론 이성적으로 끌린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

 

이 다리 쯤 오니 알리나가 갑자기 목이 마르댄다. 일단 밀레니엄 다리를 건넌 뒤 슈퍼마켓을 막 찾아 헤맸다.

나도 다리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해서 조금 쉬려고 필사적으로 슈퍼마켓을 찾는 데 동조하기도 했다.

 

월드컵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지라 월드컵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 남아있었다.

근처 슈퍼에서 알리나가 물을 사고, 약간의 휴식을 좀 취했다가 버스를 타고 시내 부근으로 갔다.

버스에 어떤 여성분이 기절해서 쓰러졌다. 알리나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턱 하고 쓰러진 것이다.

놀래서 얼타고 있을 즈음에 우락부락한 러시아 아저씨 두 분이 물 뿌려주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알리나와 나는 둘 다 겁먹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응급처치를 마친 아저씨들을 보고, 나 자신이 한심했다. 쓰러질 즈음에 내가 잡아줄 수도 있는데 지레 겁 먹어서 멍이나 때리고 앉았으니...

뭐 아무튼 바우만 거리 쯤에서 내렸다. 마침 저녁시간대여서 알리나가 물었다.

 

"배 안 고파?"

"음, 약간 고프긴 해. ㅎㅎ"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아무거나 잘 먹어서 하나 딱 선택하기가 어렵네."

"아, 내가 괜찮은 스탈로바야 아는데, 거기 한 번 가볼래?"

"한 번 믿어보갔어. ㅋㅋㅋ 가보자."

 

하누마(Ханума). 러시아에서 가 본 스탈로바야 중 상위권이었음.

 

저 때 플롭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고, 처음 먹어봤다. - 아마 그럴 듯. ㅎㅎ

콤포트랑 타타르식 삼사, 샤슬릭이라 불렸던 고기 꼬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정말 버릴 것 없이 맛있었지만 당시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았기에 많이 시키진 않았다.

사진을 보면 맞은 편에 알리나의 몸이 보이는데, 저렇게 음료수만 홀짝댔다.

그래, 질리도록 먹곤 하겠지. 아니면 외식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아마 후자가 가능성이 더 클 듯하다.

 

야외 테라스도 있고 내부에도 좌석이 있는데, 분위기도 목조 건물 느낌나게 지어서 되게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주로 파는 음식들도 주로 타타르 음식이랑 러시아 음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부를 안 찍어놔서 아쉬운데,

구글이나 얀덱스 지도에 Ханума나 Khanuma 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호스텔이랑 카페도 겸하는 것 같으니 관심있으면 찾아보시길.

 

저 멀리 서커스 극장이 보인다. 이 길을 쭉 따라 갔다.
나룻배. 갬성 있네.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분수가 한창이다.

아무튼 밥을 다 먹고,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따라갔다. 

불락 강을 따라 쭉 걷다보니 나를 놀라게 한 게 있었으니 바로

 

 

"쏜-힁-민!"

불락 강의 끝자락에 손흥민 선수랑 황희찬 선수가 있었다. 

사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지만, 이역만리 타국에 한국 선수가 무려 두 명이나 이렇게 있으니 의아하긴 했다.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보고 사진도 좀 찍어보고 그랬다. 그리고 얘한테 물어봤다.

 

"너 손흥민 누군지 알아?"

"ㅇㅇ 알지! 엄청 유명하잖아!"

"오오... 야 진짜 놀랍다 이거. ㅋㅋㅋㅋㅋ"

 

역시 진가를 알아보긴 하는구나. 

 

"황희찬 이 사람은 누군지 알아?"

"응... 뭐, 알지."

 

솔직히 황희찬 선수는 잘 몰라서 아는 척 연기하느라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

거의 기차 시간도 다 와가고 하니 마지막으로 크렘린 주변을 보기로 했다.

둘다 오랜 산보로 지쳐있어 말 수는 이전보다 좀 줄어들었다. 카잔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의식이 흐르는 대로 막 말한 것 같다.

"여기 3박 4일 있었던거 절대 후회 안 돼. 처음엔 인터넷에서 본 하얀 크렘린을 보고 반해서 여기로 왔는데,

크렘린은 둘째치고, 도시가 너무 깔끔하기도 하고, 사람들도 정말 좋고 뭐 그랬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가 좋구만."

 

골든타임의 크렘린. 전봇대가 좀 아쉽네.
골든 타임의 타타르스탄 국립 박물관.
프로프사유즈(Профсоюзная) 길에서.
레스토랑 주차장.

알리나가 한국어를 조금은 할 줄 알아서 그런가 의사 소통은 어느 정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아직 그 때는 그렇게 유창하게 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좀 많이 늘었을라나?

내 인스타 언팔로우 해놔서 나도 언팔을... 했긴 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안부 물어보면 답을 해 줄라나.

아, 얘는 내 카톡 아이디가 있구나. 그 때의 추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그러는데 한 번 말 걸어봐야 겠다.

 

잰말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간장공장공장장...이랑 안촉촉한초코칩...을 하니까 애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녹음을 다짜고짜 했다.

처음에 Скороговорка라는 말을 까먹어서, Мы же на ты, мы женаты 이런 말장난으로 착각했다.

 

"너 러시아어 스코로고보르카(잰말놀이) 알아?"

"말장난 같은거야?"

"그런 셈이지."

"응, 기차에서 배웠어. 우리 결혼한 사이잖아(Мы женаты)"

"...응?"

"아니, 아니, 우리 말 놓은 사이잖아(Мы же на ты).. 이런 말장난 말하는 거 아니였어?"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말고 이런 거 있잖아 @ㅃ$^@%$^@# 이런거!"

"아아아아! 슐라사샤빠쇼셰사살라수쉬쿠 이런거?"

"응!! 더 아는 거 있어?"

"음... 지금 기억나는 건 없네."

....

 

이런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좀 떼우다가, 나도 기차시간이 다 되어가고, 알리나도 집 들어갈 시간이 돼서

인스타 계정 교환을 한 뒤 작별했다.

 


아직도 한국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그 때 한 번 보자고.

앞으로도 그 열정 잊지 않은 채 열심히 공부해서, 한러간 견고한 교각이 되길.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에 한국이나 카잔에서 또 보자고!


한 밤중에 기차를 타고 잠시 자고 일어나보니 어떤 여성 분이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은 없었지만, 도착하기 몇 분 전에 여성분 뿐만 아니라 주변 좌석에 있던 몇 분이 내게로 몰려와

모스크바 명소를 하나 하나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굼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맛있다나 뭐라나.

숨은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보태닉 정원(Ботанический сад)을 추천하더라. -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괜찮았는데!

 

정말 여러모로 러시아는 정이 넘치는 나라다. 누가 '아직까지' 스킨헤드가 득실대고, 인종차별 개 심하다 했던가!

적어도 여행객 입장에서 두 번 사기를 당했음 당했지(사기꾼은 어딜 가든 넘치니까), 인종차별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3주에 걸쳐 블라디보스톡부터 모스크바까지 갔다.

모스크바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 황홀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옛날에 '상경을 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기도 했다.

옛날에는 고향에서 서울까지가 그렇게 천릿길이라 그러던데 (참고로 나는 거제사람...)

그 천릿길보다 더 되는 길을 거쳐 모스크바로 도착한 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설렘이 가득했다.

 

붉은 광장! 볼쇼이 극장! 굼! 쭘! 모스크바 시티! 기다려라, 내가 간다!

 

드디어 모스크바.

크세니아, 세르게이와 헤어진 뒤 스탈로바야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뭘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사진도 찍어놓지 않아 조금 아쉽긴 했지만, 뭐 크게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다.

바우만 거리 동상에서 사진찍는 관광객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해질녘의 크렘린.
카잔 크렘린, 야간.
크렘린 뒤편.

 

해가 질 때 까지 바우만 거리를 좀 걷다가, 크렘린으로 가서 또 산책을 했다.

해가 조금씩 져가고, 가로등에 불이 붙었고, 쿨 샤리프에 조명이 빛났다.

그냥 가만히 걸었다. 그래 크렘린이라도 원없이 보자고!

흠이라 함은 삼각대가 없어서 많이 아쉽긴 했다...;

ios를 낮추고 찍었는데도 흔들리곤 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진 못했다.

 

농민 궁전, 야간.

농민 궁전도 퍽 이뻤다. 가운데 나무는 언제 봐도 인상적이었다.

더 걸어볼까 하다가 하루종일 걸은 탓에 몸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진 정리를 좀 하다가 푹 뻗었다. 원래 그 다음 날 모든 종교 사원을 가려고 했으나

늦잠 + 정보 부적 + 늑장으로 인해 그냥 오후까지 집구석에서 쉬었다.

 

소시지가 많이 싸길래 라면에 넣어 먹었다.

라면과 소세지로 배를 잔뜩 채우고, 3시 쯤에 다시 시내로 향했다.

알차게 하루를 채우고 싶었지만, 천성적으로 게으른 성격과 오랜 여행으로(당시로서는 최장기간 최장거리 여행이니...) 지친 탓에

모든종교사원(혹은 통합종교사원)은 포기하기로 하고, 크렘린 내부 구경과 소련 생활 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크렘린 내부.
쿨 샤리프. 짙은 에메랄드 빛을 가진 돔이 인상적인 모스크.
삼각대 또 놔두고 왔어... ^^;

시계탑 밑에 있는 문을 통과해보니 (기억 상 무료였던 걸로 기억...) 크렘린 내 여러 건축물이 펼쳐졌다.

하얗고 파랗고... 뭐 그랬다. 그 청량감이 정말 좋았다. 여태까지 그 어떤 러시아 도시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느낌.

바우만 거리나 그 일대를 돌아다녀 보면, 과연 이 곳이 이슬람 교를 믿는 사람들의 도시가 맞나 싶겠지만,

타타르인의 종교이자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쿨 샤리프가 아닌가 싶다.

크렘린 안에 모스크? 크렘린 하면 모스크바의 크렘린을 주로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낮선 조합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대로 정말 조화로웠다 생각이 든다.

 

모스크 내부. 저 때 촬영 실력이 너무 아쉽다.
아랍어를 몰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음.

코란을 읽고 있는 성직자가 나긋나긋하면서도 이국적인 선법으로 알라의 말을 읊조리고 있었고,

관광객들과 예배객들이 섞여 약간은 정신사나운 느낌이 좀 들었지만,

사소한 동선의 엇갈림과 약간의 소음은 그 건물 자체에서 풍기는 고유의 경건함, 근엄함을 뒤엎을 순 없었다.

저 날 모스크라는 곳에 처음 들어가봤는데,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쿨 샤리프 앞 전경

대강 둘러보고 나왔다. 그리고 길이 나 있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항상 어딜 가든 거의 무계획으로 다니기 때문에, 그만큼 타국으로 떠날 때 큰 정보 없이 무작정 떠난다.

비슷한 모습의 도시를 계속해서 다니다 보면 질리는 감이 있지 않냐고 물으면, 내 답은 이러하다.

 

"마술의 비밀을 알고 나서 마술 공연을 보면 재미가 반감이 된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에는 오로지 불완벽한 내 감각으로 새롭거나 진부한 것에 감탄하고 지겨워하고 싶다.

대략적인 카탈로그를 짜는 것도 괜찮지만, 카탈로그에 명시되지 않은 루트에서 종종 경이함을 느끼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냥 핑계다. 게을러서 그렇다.

 

성모 수태고지 성당(благовещенский собор), 그 뒤에 초록색 건물은 타타르스탄 대통령궁.
슈윰비케 탑, 저 멀리 볼가강과 신시가지.
크렘린 전망대

슈윰비케 탑을 본 방향에서 오른쪽 길로 새면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강 규모만 봤을 땐 거의 한강 수준이지만, 사실 저 멀리 보이는 강은 볼가강으로 흐르는 한 강줄기라는 것.

실제로 볼가강은... 어마어마하게 폭이 넓다. (지도상으로 봤을 땐 그랬다.)

 

강 너머로는 아파트 단지가 많이 보인다.

월드컵의 영향으로 꾸준히 새건물을 올리곤 한다고 다음 포스팅에 언급할 동행이 설명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구도심이든 신도심이든 도시가 되게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깔끔한 빈티지, 잘 복원된(?)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잔은 분명히 맘에 들지도 모른다.

월드컵의 최대 수혜 도시...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색한 포즈 어쩔...

인생샷은 틀렸다. 풍경이 안 이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속에 잘 안 어우러지는 느낌이 심하게 든다.

뭐 아무튼, 강 보면서 멍 때리다가 크렘린에서 나갔다.

 

나가는 길. 왼쪽 건물은 공사중이었다.
여객 마차라고나 할까. 안 그래도 하양하양한 도신데, 말까지 백마다. 급하게 찍어서 초점이고 자시고...

바우만 거리 끝자락 쯤에 있는 소련 생활 박물관으로 향했는데,

마침 주현절 성당 종탑이 보여서, 엄청난 전망을 기대하고 올라갔다.

아마 입장료를 낸 것 같은데 얼마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어찌 되었든 올라가봤다.

 

종탑에 있는 종. 어쩐지 가끔씩 뜬금없이 땡 하고 울렸나 싶었다. 관광객의 짓이었어!
다들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길래 나도... ㅎㅎ
전망은 쏘-쏘. 추락 방지 쇠창살이 있어 전경을 온전히 감상하긴 힘들었다.

높다란 종탑을 오르내리면서 개고생 좀 하다가 (종 사진 하나 건지긴 했지만...)

이제 진짜 나의 덕력을 만족시켜줄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

 

이름하야:

사회주의 생활 박물관, 소련 생활 박물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지?

원래 여행 갈 때 박물관은 잘 안 가는 편이지만, 바우만 거리와 크렘린 외에 어느 정도의 루트 변화를 두고 싶었다.

마침 70~80년대 소비에트 문화 덕후인 만큼 이 박물관은(!!)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 가격은 국제학생증 있으면 150루블, 없으면 250루블! (사실 표 가격 까먹어서 구글링했음...;)

이름 그대로 소련 시절의 물건을 이것 저것 전시해 놓았다. 너무 이것 저것이라 행복했다. (?!)

그만큼 볼 것도 많고, 특히 해빙기 시절 소련 문화에 관심이 많다면 정말 추천하는 장소다.

 

 

1977년 카잔에서 공연했을 때 받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싸인.
소련에서 최초로 생산된 청바지 "트베리(Тверь)"
ВЕСНА-202, 70~80년대 소련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카세트 플레이어.
"아디다스 신발을 신는 사람은 내일 조국을 팔아넘길 지어니!" 1980년대 아디다스를 향한 소련인의 시선.
유리 가가린이 카잔에서 찍은 사진. 수용소 <볼가>에서, 1967.
뱃지나 선전포스터 마그넷 같은 기념품도 살 수 있다.

사진은 더 있고, 사진으로 담기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있어서 카잔에서의 일정이 널널하면 한 번 방문해보는 걸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돈을 조금은 아낄 필요가 있어 기념품을 사진 못했다. 소련 구제(?) 옷도 몇 개 팔았었는데,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덕심을 충족시킨 뒤 나가서 전날 갔던 카반호수 근방과 바우만 거리를 돌아다녀 보았다. 사진을 많이 찍진 않았다. 

그냥 거리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어서 잠시 촬영은 접어두기로 했다. 

 

아예 안 찍진 않았고, 그냥 몇 컷만 찍었는데, 괜찮은 사진이 영... 없네.

 

저 멀리 보이는 갈리아스카르 카말 극장.
카반 호수.
바우만 거리, 해가 뉘엿뉘엿 지는 중.
해가 져가면서 제법 선선해지니 길거리 악사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카잔도 슬슬 끝이 보인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을 것 같으면서도 나름 특별했던 하루였다.

모스크라는 곳을 처음으로 들어가 봤고, 종탑에도 처음 올라가 보고, 소련시절 물건들과 영접도 해보았다.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긴 했지만, 모스크바에 대한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조금씩 피로가 희석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날 밤은 카잔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완전히 다 싼 뒤,

그 다음 날 만날 '알리나'와 약속시간을 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카잔역 물품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기고 바우만 거리로 가 점심을 먹고난 뒤 카페에서 기다렸다.

'알리나'가 누구냐 함은... 숙소 체크인 전에 카잔 크렘린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만난 여자 아이였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였고, 나한테 먼저 다가가 다짜고짜 카톡 번호를 땄다.

그 다음날에는 선약이 있어 약속을 잡지 못했고, 그 다음 다음날에는 알리나가 시간이 안 돼서,

카잔에서의 마지막 날에,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에 보기로 했다.

 

지금은 알리나와 연락이 되진 않는다. 하도 연락을 안해서 먼저 인스타를 언팔한 모양...

뭐 그래도 알리나 덕분에 카잔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알차게 보냈고, 잊지 못할 추억을 또 선사해줬다.

뭐 알아서 잘 살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음 포스팅을 언제 쓸 지 모르겠다. 여행기 쓰는 게 슬슬 귀찮아졌다.

무려 2년 전 일이라 살짝 가물가물해졌으니 추억을 끄집어내는 데 은근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기억이 많이 바래진 경우, 약간의 소설도 써야 하고... 

이래서 여행기는 그 때 그 때 작성했어야 했어. 제길할.

카잔 아레나. 월드컵이 끝난 뒤라 조용하다.

카잔에 사는 친구의 친구들과 12시였나 1시쯤에 크렘린 입구에서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숙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카잔 아레나로 향했다.

축제가 끝난 경기장은 그냥 조용할 뿐이었다. 커다란 전광판이 비추는 광고는 뭔가 공허하기까지 했다.

한때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여기서 독일을 2:0으로 이겼고, 거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향했다. - 안 타본 대중교통은 이제 전차만 남았다.

소음이 적어 일반 버스보다는 아늑한 느낌이었다.

 

창 밖에 비춰진 정교회 성당
iso조절 못했다 또 ^^;

카잔 지하철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서 그런가 오히려 우리나라 지하철과 비슷한 감이 있었다.

줴톤을 넣고 들어간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다른 도시에 비해 그렇게 깊진 않았고,

새 것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곤 했다.

 

성당 이름은 잘 모르겠다. 바우만 거리 가는 길목에 있긴 한데...

크렘린스카야 역에 내린 뒤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좀 남아서 살짝 구경했다가 카페로 들어가 여유라는 것을 부려봤다.

 

코코넛 슬래시. 330루블... 현지인한테는 다소 창렬한 가격이겠지?

아무 데나 보이는 데 들어가서 코코넛 슬래시를 하나 시키고 카잔이라는 도시에 대해 검색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북도 좀 보면서 나중에 만날 일행들의 가이드에 대비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이해한 척을 해야 되니...)

 

크렘린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았다.
크렘린 시계탑, 주위에 있는 잘릴(М.Джалиль) 동상.
다시 찍어본 시계탑 반대편으로 난 길.
여기도 꽃바구니!

그렇게 정시보다 10분 일찍 왔지만, 친구의 친구 일행 2명은 다행히 10분 정도밖에 늦지 않았다.

한 명은 크세니아, 한 명은 세르게이였던 걸로 기억난다.

나잇대는 노보시비르스크 가는 길에 만난 디마랑 비슷한 나잇대였다.

당시 나이가 국제 나이로 18-19 언저리였다.

 

첫 만남은 늘 그렇다. 너무 어색했다. 급작스러운 건 둘째 치고,

얘내들을 소개해준 그 여자애도 사실 그렇게 막 친한 아이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통성명을 하고, 처음엔 영어 러시아어 좀 섞더니 나중에는 그냥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어디 어디 가봤어?"

"크렘린이랑 바우만 거리 살짝 구경하고 끝났어."

"아아, 그럼 강변 쪽으로 가보자. 가는 길에 볼거리가 좀 있을 거야."

 

그리하여, 걔내들이 향하는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농민 궁전 (Дворец земледелец)

처음으로 간 곳은 농민 궁전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나?)

크세니아가 뭔가 설명을 해줬긴 했는데, 맙소사, 기억이 안 난다.

다음에 카잔이라는 도시에 대해 포스팅할 일 있으면, 그때 다시 알아보던가 해야겠다.

관공서 같은 걸로 쓰이겠지. 

 

"이 건물의 포인트는 제일 가운데에 있는 나무얌."

 

정면으로 보면 이런 나무모양이 뙇.

"강변에 안 가봤지?"

"응, 안 가봤어."

"어 그럼 가보자. 거기 새로 신축해서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

 

가라는 대로 가야지, 뭐 어쩌겠어. 

강변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걔(두 친구를 소개해준 애)랑 어떤 사이냐느니,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느니...

크세니아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케이팝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남자 애는 그런 것에 완전히 관심 없고, 그냥 외국인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둘 다 러시아 계 친구들이라 타타르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카잔 내에 살면 쓸 일이 잘 없다고 한다.

 

"아델리나(주선자) 걔는 순도 100% 타타르 인이라 러시아어랑 타타르어 둘 다 원어민 급으로 해."

 

저 건너편이 신도시. 내가 있는 쪽은 구도심이었다.
카잔 패밀리 센터. 

"저 동그란 건축물은 뭐야?"

"아 저거, !#$%@야. 지어진 지 얼마 안 됐어."

"아아..."

"혹시 카잔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

"음... 몰라. 어떻게 생겨났어?"

"이런 전설이 있어. 큰 그릇(Казан)으로 강물을 퍼서 뿌린 방향에 도시가 생겨난 거야. (이야기가 결코 짧진 않았다. 대충 이렇게 이해했다.) 저 위에 그릇 같은 게 바로 그걸 나타낸 거야."

"호오. 이런 건 학교에서 따로 배운 거야? 아니면..."

"뭐 어쩌다 보니까. ㅎㅎ"

 

크세니아가 주로 가이드 역할을 담당했고, 세르게이는 잡담 역할을 맡은 듯했다.

조금씩 조금씩 말을 조금씩 트면서 어디 끝자락까지 걸은 뒤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

 

뭔가 스토리가 있었는데...

세르게이가 '1000주년 기념 카잔 박물관' 위에 있는 자그만 쇳조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었다.

... 진짜 이래서 여행기는 하루 일과 끝나자마자 제시간에 딱딱 썼어야 했어. 

농담 비스무리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구도심 내 신도심(??!!)

저 알록달록한 건물들 이쁘다고 하니까 크세니아가 현실적인 이야기로 뼈를 때렸다.

"저 집들... 엄청 비싸."

그리고 세르게이가 이 건물단지들 지어진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연한 거지, 어딜 가든 강변 부근 땅값은 비싼 법이니.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의회

"어, 국회는 좀 소련 느낌 나게 생겼네."

"중심지 빼면 거진 소련식이야. 도시를 이렇게 꽃단장한 것도 비교적 최근이야."

"월드컵 때문에?"

"아마?"

월드컵을 맞아 도시를 재단장한다는 뉴스는 몇 번이고 봤기에 어느 정도 예감은 했다.

 

레닌 동상과 카잔 시청.

 

"자, 여기 레닌 동상이야. 옆에 있는 건물은 카잔 시청이고."

"레닌은 뭐 어딜 가나 다 있네? ㅋㅋㅋ"

"그렇긴 하지. 근데 너 레닌이 카잔 연방대 다녔던 거 알아?

"아 그래? 난 톨스토이만 알았지... ㅎㅎㅎ"

"엉! !@#@$^%$#^%$#@%^*&%$."

 

카잔 오페라 극장.

 

투카이 상. (타타르 시인)
이런 길을 계속 걸었다. 전체적으로 파스텔 계열의 건물이 많았다.
검은 호수(Чёрное озеро)가는 길목에 본 분수
검은 호수.
사진이나 우선 찍어보자귱.
산책로..?
발 담구는 성님들. 당신들 이제 X됐어.
이 작은 호수에 깃든 전설을 몰랐다면 그냥 저수지.

크세니아가 검은 호수에 빠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럼 저기 발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뭐야?" - 발 담그면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어봤다.

"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몰라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 - 크세니아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더우니까 인정사정없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 세르게이가 겨우 모면해줬다 (?!)

 

카잔 연방 대학교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거의 다 옴.
중간에 보수중인 건물도 좀 보이고. 뭐 그래도 화사하고 이쁘긴 하다.
카잔 연방대.

정갈하면서도 고전미 넘치는 모습의 건물이 있었다. 

"자, 여기가 톨스토이랑 레닌이 거쳐간 카잔 연방대야." - 크세니아

"오오. 되게 뭔가 깔끔하네. 이런 데서 공부하면 공부할 맛 나겠다." - 나

"그치. ㅎㅎ" - 크세니아

"이 건물뿐만 아니라 분관이 몇 개 더 있긴 한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 세르게이

크세니아랑 세르게이가 이것저것 더 설명해줬지만,... 하... 리뱌따, 쁘라스찌 ㅠㅠ

 

조금 감상하다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랴노프 (Владимир Ильич Ульянов.)

"저 사람은 누구야?"

"젊은 레닌이야."

 

내리막길은 정말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카잔 거리 정말 이쁜 것 같다. 정갈한 느낌이 너무 좋다.

 

아니 여기는... 바우만?

걔내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바우만 거리 끝자락에 도달했다.

하지만, 바우만 거리는 가봤으니 가볍게 패스했다.

 

왜 찍었는지 모를 사진.
콤포트. 호기심에 사 먹었는데 나쁘진 않았다.
카말 극장. 융단 보양의 지붕(?)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카반 호수였다. 카잔 시민들이 산책하러 많이들 온다고 했다.

"저 건물은 카말 극장인데, 저 위에 있는 건... 음... 뭐라고 해야 되지?"

"융단?"

"어어어어ㅓㅇ 융단이야! 민속적인 공연을 하는 곳이야."

"그리고 이 옆에 있는 곳은 카반 호수야. 도시 내에서 가장 큰 호수야."

 

카반 호수.
가운데 있는 애가 크세니아, 그 옆에 남자애가 세르게이. 워터마크... 하... 이러니까 범죄자같잖아 ㅠㅠ
저 멀리 컬러풀한 곳이 타타르 구 거주지.
공원 어딜 가든 닭둘기가 넘친다.

"이번 여행 때 갈 나라 외 가고 싶은 나라 있어?" - 크세니아

"음... 우크라이나도 한 번 가보고 싶긴 해." - 나

"너 구소련 지역 되게 좋아하는구나. ㅋㅋㅋㅋㅋ" - 세르게이

"내 전공이 전공인지라. ㅋㅋㅋ 너네들은 어디 가고 싶어?" - 나

"체코? 도시도 되게 이쁘고, 언어도 비슷하잖아. 한 번 가 봤는데, 정말 괜찮더라." - 크세니아

"난 그냥 어디든 가보고 싶어. 한국도 가보고 싶고, 유럽도 가보고 싶고." - 세르게이

(대화 내용은 딱 핵심만...)

 

그 외에도, 나한테 여러 가지에 대해 물어봤다. 취미가 뭐냐느니, 어느 나라 가봤냐느니... 등등.

호수변을 걸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실히 덜 어색해진 것 같다.

 

"여기는 타타르 구 거주지야. 옛날에 타타르 인들이 여기에 근거지를 잡고 살았어." - 크세니아

"되게 알록달록하구만. 동화 같은 느낌이야." - 나

 

타타르 구 거주지 근접.
교회같아 보여도 이슬람 예배당입니다. 호홓

"여긴 모스크야." - 크세니아

"엥? 교회가 아니고?" - 나

"지붕 끝에 달 있잖아." - 세르게이

 

타타르 지구 길목.

 

너무 알록달록해서 눈뽕이 날 지경이야.
다시 카반호수로 돌아왔다.
갑자기 단독샷도 찍고 싶어서, 찍어달라고 부탁함.
Алтын /알튼/ - (명사)황금
작은 공원.

카반 호수쯤 가니까 현대적인 건축물이 많이 보였다.

"너 책 읽는 거 좋아해?" - 세르게이

"좋아하긴 한데, 시간이 없어서 많이 읽진 못하고 있어. 너는?" - 나

"나 완전 책벌레야. ㅎㅎ" - 세르게이

"오오, 어떤 책 주로 읽어?" - 나

"소설 되게 좋아해. 판타지 정말 좋아하고. 판타지 좋아해?" - 세르게이

"아아, 판타지 좋지. 근데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읽어야 될지 모르겠어. 한번 읽으면 엄청 읽긴 하지." - 나

"글쿠나. 한국사람들도 판타지 많이 읽어?" - 세르게이

"보는 사람은 많이 봐. 읽기보단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야. 해리포터, 그.. 반지...왕..." - 나

"반지의 제왕?" - 세르게이

"어어 반지의 제왕 맞아! 그리고 나니아... 나닌스키 례떠삐스...(?)" - 나

"아아. 너 재밌게 본 판타지 있어? ......" -세르게이

"옛날에 재밌게 읽었던 게 있는데, 국산 판타지라... 아마 러시아어로 번역은 안 됐을 거야. 러시아어로 제목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리뱌따 루나(룬의 아이들), 아로마...아로마트.. 뭐 아무튼 [묵향]이라고 있어. 해리포터는 마법사의 돌만 봤고,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 다 봤어." - 나

 

미안해, 세르게이. 난 인문학 쪽을 선호해서 말이야.

그래도 러시아 판타지 소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긴 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은 몇 안 되었다.

참, 어릴 때 영화든 소설이든 많이 읽어놔야 했는데. ㅠㅠ

 

여기도 그 '그릇'이 있네.
가톨릭 성당

"이 건물은 가톨릭 성당이야. 카잔에는 모스크도 있고 정교회 성당도 있고 가톨릭 성당도 있어." - 크세니아

"호오, 흥미롭네. 여긴 종교 때문에 싸우고 그러는 건 없어?" - 나

"딱히... ㅎㅎ" - 크세니아

 

저 멀리 보이는 인형 극장.
인형 극장 <Экиат>
어딜가나 있는 아이 러브 시리즈. 인형 극장 가는 길에 테마파크 같은 곳이 있어서 들렀다.
어린 왕자?

 

어지간히도 폼 안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회기역에 내리면 펼쳐지는 아라비안 나이트 짝퉁 같은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조품인 건 아니고... ㅎㅎ 인형 극장이 되게 컸다. 이쁘게 잘 만든 것 같았다.

"아힝 기여웡 >_< 너네들 어릴 때 여기 자주 오고 그랬어?" - 나

"글쎄, 가끔씩은 갔던 것 같아." - 크세니아

"아.. 되게 신기하네. 한국에는 인형극장이라는 곳이 잘 없거든." - 나

 

인형극장 건너편에는 꽃 축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한 번 구경하러 가보라고 애들이 권유했지만, 가진 않았다.
2018 꽃 페스티벌. 그렇게 큰 규모로 진행되는 건 아닌 듯 했다.

"다음에 갈 곳은, 고리키 공원이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공원이야." - 크세니아

"엥? 여기도 고리키 공원이 있어? 모스크바에도 있잖아." - 나

"뭐... 어딜 가나 다 있어. ㅋㅋㅋㅋ" - 세르게이

"레닌 동상만큼이나 ㅋㅋㅋㅋㅋ" - 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지나다 보면
어딜가나 있는 꺼지지 않는 불.
애절한 몸짓. 경건히 지나쳐본다.
영원의 불.
고리키 공원 도착.

"항상 공원 같은 사람 많은 곳 가면 사진 찍기가 두려워." - 나

"왜?" - 크세니아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들 있을까 봐." - 나

"뭐 어때, 그냥 찍어. 러시아에선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 - 세르게이

"한국에서는 좀 문제 돼?" - 크세니아

"응.. 그.. 뭐랄까.. 그래, 불법이야. (초상권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 나

"여긴 러시아야. ㅎㅎ 아무도 신경 안 써." - 세르게이

 

역광 땜에 하늘이 쌔하얗다.
iso조절 실패. 소리가 신비로웠다.
입구이자 출구.

그렇게 고리키 공원까지 좀 둘러보다가, 잠깐 벤치에 앉아서 좀 쉬고, 목을 좀 축인 뒤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세르게이랑 크세니아 둘 다 선약이 있었기 때문. 

 

러시아를 전반적으로 여행하면서 느낀 건, 공원을 산책하거나 공원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살아오면서 공원이라는 곳을 얼마나 자주 갔을까?

가끔이라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가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큰 대도시에서도 조차 공원이라는 곳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서울에야 아마 좀 있을 거다, 하천을 중심으로 산책로나 트랙을 조성해놓긴 했지.

그래도 보통은 아파트에 둘러싸여 '싱그럽다'는 느낌보다는 '잘 조성된' 느낌이 강했다.

가끔은 도시의 이미지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을진대,

너무 좁아터진 영토에 끼여 살고 있으니, 그런 공간을 지을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고, 그런 공간을 찾으려고 하니

그게 피시방이 된 거고, 노래방이 된 거고, 카페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내용을 같이 있었던 친구한테 말을 하진 않았다.

그냥 이런 공원이 군데군데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다는 말은 혼잣말 식으로 했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거니... 대신 겨울엔 무지막지하게 추워서 밖에 못 나오니.

 

바우만 거리 방면으로 가는 길.
그냥 말 그대로 쭈우우욱 걸었다.

세르게이가 갑자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네 나라 사람들 군대 가?" - 세르게이

"당연하지. 의무야, 바로 위에 김정은이 있어서 ㅋㅋㅋㅋ" - 나

"얼마나 복무했어?" - 크세니아

"1년 9개월 정도 복무하는 게 원칙이지만, 난 6개월 더 했어." - 나

"우와..." - 둘 다

"러시아에서는 징병 1년이지?" - 나

"응. 근데 대학교 졸업하면 면제돼." - 세르게이

"그럼 세르게이 넌 어쩔 거야?" - 나

"으으음... 최대한 안 가야지. 근데 너 뭘로 복무했어? 포병? 소총병?" - 세르게이

"군악대였어. ~~~" - 나

 

군대 얘기하다가 러시아 군대에 대한 얘기도 좀 듣고,

보이는 건축물마다 크세니아한테 이거 뭐냐 저거 뭐냐 5살 배기처럼 물어보기도 했고,

또 기억이 안 난다, 침묵과 수다가 번갈아 일어났던 것은 확실하다. - 셋 다 좀 지친 거지.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느라.

"학교... 같은데? 학교일거야 아마." - 크세니아
저 원인 모를 오른쪽에 뿌연 상...
조금씩 원점과 가까워져 오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 투카이 반대 편에는 푸쉬킨이 있었다.
바우만 부근.

중간에 세르게이가 선약 때문에 먼저 갔다. SNS를 안 해서 그렇게 작별하고,

크세니아와 둘이서 바우만까지 간 뒤 기념품 상점에 들렀다.

그냥 차근차근 둘러봤다. 마그넷을 살지 고민만 하다가 말았다.

그때, 갑자기 크세니아가 양말이랑 타타르식 꿀타래를 계산하더니 선물로 줬다.

아...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랄 것도 다 떨어지고 없는데. ㅠㅠㅠ

뭔가 보답을 해 주고 싶었지만, 보답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크세니아와도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한국 올 때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고독한 여행자에게 즐거운 시간 안겨줘서 정말 고마워.

낯을 많이 가려 그렇게 재밌는 외국인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덕분에 카잔 여행이 더욱더 뜻깊어진 것 같아.

 

앞으로 행복한 일, 원만한 인간관계가 함께하길.

이루고자 하는 거 다 이루길...

 

한국 오면 꼭 연락해.

세르게이는 인스타 없으니까, 크세니아 통해 연락하고.


 

 

기념품 중간결산

탈크쉬 켈레베(타타르식 꿀타래)

МАТУР(멋쟁이) 양말

 

드미트리가 졸업한 학교 뱃지

알료나 아주머니께서 주신 네르파

예카테린부르크 마그넷.

 

탈크쉬 켈레베는 현지에서 홍차와 함께 먹었다. 

아직 여행일이 1달가량이나 남은 시점이라

계속 들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사줬을 건데...

마투르(타타르 말로 멋쟁이라는 뜻이다.) 양말은 옷장에 잘 모셔놓고 있다.

마치 명품 신발을 신지 않고 쟁여놓는 것과 같은 이치.

 

우선 아델리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 좋은 친구들 소개시켜서 고마웠다고.

아델리나가 아니었으면, 이 두 친구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테니까.

담에 카잔 갈 일 있으면 꼭 한 번 다 같이 보고 싶은데,

최근에 인스타 들어와서 보니 나를 언팔했더라...

뭐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이 든다,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원래 규칙상 나를 언팔하면 언팔하긴 하지만, 이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팔로우를 했다.

 

뭐 아무튼, 아델리나도 맘에 들었다니 기쁘다는 말과 함께,

크세니아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줬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휴, 끝났어. 오빠분 정말 사교적이고 활발하셔서 정말 좋았어.

세르게이 이 녀석, 푸틴이랑 군대에 대한 질문 엄청 해댔어.

탈크스 켈레베랑 마투르 양말 선물도 해줬어. 

미친 듯이 걸었어. 카잔 시내 거의 전체를 돌았고, 고리키 공원까지 가버렸지 뭐야!"

 

정말 미친 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행여 지루한 사람이 될까봐 많이 조마조마했는데

이렇게 좋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아무튼 그렇게 헤어지고, 두 친구가 추천해준 스탈로바야로 향했다.

 

카잔 이야기 2 끝.

 

3편에서 계속.

 

 

카잔이라는 도시에 3박 4일이나 머물게 된 이유는 

문화적 제3의 도시라는 현지인들의 말과, 새하얀 크렘린이 이뻐서였다.

정말 막무가내였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간 것이다.

 

그래도 운 좋게도, 현지인과 2차례나 동행함으로써 특별한 기억을 남긴 도시이기도 하다.

월드컵으로 인해서 카잔이라는 도시가 더 애정이 가기도 했고.

- 바로 이 도시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무찔렀다.

 

서막은 이렇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러시아 여행 사진을 올리니,

꽤 오래전에 잠시 연락을 주고받았던 여자애한테 DM이 왔다.

"러시아 여행 중이야?"

"응."

"어디 어디 갈 거야?"

"음, 블라디,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렇게 계획 중이야."

"카잔? 오! 나 거기 사는데! 카잔엔 언제 올 계획이야?"

"7월 23일에 아마 갈 듯?"

"아... 아쉽네. 그때쯤이면 아마 고향 집에 있을 땐데 ㅠㅠㅠ"

"아... 다음에 만나던가 해야지..."

"아니면 내 친구들 소개해줄까? 외국 문화에 관심 많은 친구들이야."

"나 낯 많이 가리는데 괜찮을까?"

"뭐 나쁠 건 없어. ㅎㅎ"

 

그리 하여 무료 가이드를 예약(?)하게 되었다.

우선 카잔에 온 첫날엔 몸도 꾀죄죄하고 하니 그렇고 둘째 날에 만나기로 했다.

도착을 하고 나서 체크인 타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크렘린이라도 좀 둘러보기로 했다.

걸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 거리라 쭉 걸어갔다.

 

구 역사(왼쪽), 신 역사(오른쪽)
구 역사. 타타르적 느낌과 러시아적 느낌이 절묘하게 섞여있는 게 흥미롭다.
크렘린으로 가는 길에 본 ЦУМ. 블라디의 그것과 사뭇 다른 느낌의 카잔 쭘 백화점이었다.
카잔 크렘린, 쿨 샤리프 모스크. 하얀색 외벽과, 에메랄드 빛이 가미된 푸른 돔, 목재로 만들어진 외벽 지붕의 색체가 너무 좋았다.

내가 카잔으로 온 주된 이유. 무려 3박 4일이나 머물게 된 이유. 

막대한 기대를 품으며 여행을 하면 늘 실망한다고는 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실망감이라기보다는, 마치 자격증을 딴 뒤에 늘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기쁨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것. 다만 기쁨에 초점을 더 두면 그건 황홀함이 될 것이고,

공허함에 초점을 두면 실망감으로 변질될 뿐. 내 기분은 '기쁨'에 더 초점이 주어졌다. 

내겐 다소 낯선 이슬람 문화(그게 익숙해지다 못해 지긋지긋한 날이 올 줄이야 상상이냐 했겠는가...)

낯선 언어로 병기된 간판들, 우즈벡어로 '도프'라 불리는 모자를 쓴 나이 지긋한 타타르인들

단지 크렘린의 정갈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낯섦 속 낯섦'의 아름다움에서 온 기쁨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멍하니 봤다. 수많은 관광객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감상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마냥 혼자만 즐길 순 없는 거잖아. '많은 인파'의 요소조차 즐기기로 했다.

 

러시아 월드컵의 흔적이 있는 곳. 바로 여기서!! 독일을!! 뙇!!

가로등의 디테일함이 눈에 띄기도 한다. 달팽이 집 모양으로 돌돌 말린 데 걸린 등불.

고풍스러우면서도, 이슬람 사원과도 어울리는 그런 디자인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아무리 관광지 관리를 더럽게 못한다고는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도시로서, 아니면 월드컵 개최지라 그런지 싹 보수를 한 건가...

-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

 

조금 더 가까이.
산책로는 이렇다.
지하철 역 입구 즘에 세워진 용 동상. Zilant동상이라고 한다. Zilant가 뭐지?
바우만 거리의 시작점. 보수 공사의 느낌이 확 든다.

서쪽으로 갈수록 대체로 건물이 정갈해지는 느낌이었다. 좀 더 정돈되고, 색감도 선명하고.

물론 옥에 티는 어디든 있는 법이지만.

 

크렘린 입구.

입구 쪽에는 시계탑 겸 종탑이 있었다. 바로 저 앞에서 티켓팅을 했던 걸로 기억.

다음에 들어가야지 하고 체크인 시간까지 외부만 차근차근 구경했다.

 

크렘린 입구 맞은 편 거리.

편견이라는 게 이래서 무섭다. 나는 '타타르스탄'이라고 해서 이슬람적인 풍경이 뿜뿜 풍기거나 그럴 줄 알았다.

몇몇 모스크를 빼놓고 보면, 카잔이라는 도시 자체에는 러시아인이 많이 살아서, 자연스럽게 융화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유럽풍의 느낌이 더 강했다고나 할까.

 

타타르스탄 국립 박물관

 

모둥이에는 이런 귀여운 첨탑이 뙇.

 

삼각대는 기차역 물품보관소에... ㅠㅠ
앉아도 보고.
크렘린 산책로 쪽에서 바라본 반대편. 동그란 건축물은 서커스장.
날씨가 흐려진다 갑자기. 금방 전만 해도 날씨가 엄청 좋았는데;;;

내친김에 바우만 거리도 좀 구경해볼까 하고 크렘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갔다.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이라 그런지 굉장히 산뜻한 느낌을 풍겼다.
학살당하는(?) 개구리들.
보줴 모이! 뭔가 타타르 민담과 관련있는 여성인 듯 하다.
크렘린과 짜맞추기라도 한 듯 하얀색 내지는 상아색 계열의 색상이 많이 쓰였다.
에치포치막(эчпочмак; 좌), 박벨리쉬(Вак-Бэлиш; 중), 가게 이름. 
카잔 오면 꼭 맛 본다는 착-착(Чак-чак). 꽤 달콤스키했음.
러시아에서 패스트푸드를 한번도 안 먹어봐서 KFC에 들어갔다. 쉐프버거였나 아무튼 콤보할인 들어가길래 냅다 샀지.
바우만 거리 끝자락.

배를 대강 채운 후, 체크인 시간이 다 되어 슬슬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역으로 가 캐리어를 찾고 택시를 타고 갔다.

에어비앤비가 늘 그렇듯, 조금 외곽에 있었다. 외곽에 있는 아파트 단지여서 길 찾는 데 좀 헤매었던 것 같다.

몇 동 몇 호라 주소는 적어놨지만 그게 어딨는지... 열쇠를 우편함에 넣어놨다는데 그 우편함이라는 게 어딨는지... 

계속 남에게 재촉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지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찾고 또 찾았다.

주민들의 눈초리는 덤. - 뭐야, 저 얼빠진 여행객은?

 

어찌어찌해서 결국 찾았다. 우편함 속 짤랑대는 이물감이 느껴져 너무 기뻤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쳤고, 사진 정리 좀 하고 휴지기의 시간을 가졌다.

디비 누워서 내일 만날 친구들과의 약속 계획을 잡고, 

 

여행 초기에는 1분 1초가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애를 썼지만,

2주 정도가 지나고 나니 되게 여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해야 하나...

굳이 하나하나 다 보려고 애를 써야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나라도 더 보면 좋기야 하지, 허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의 느낌'을 받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와 이쁘다, 멋지다, 웅장하다, 유럽같다(?!)라는 말을 넘어서서,

현지인처럼 섞여도 보고, 다른 길로 새어 보기도 하고, 일정 취소도 한 번 해보고,

말 그대로, 도시가 주는 느낌, 나라가 주는 느낌이라는 것에 좀 더 초점을 주다 보니,

마음이 한층 여유로워진 것 같다.

 

랜드마크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그 도시를 느끼는 것이다.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사진으로도 충분히 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만,

사람 구경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다른 것이고, 도시의 향기, 도시의 분위기란 오직 여행으로만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내 게으름을 변명해 보았다. 일부는 동감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남은 일정 동안 늑장을 좀 부린 건 후회가 되긴 한다.

그랬기 때문에 조금 외곽에 있는 '만종교 사원'을 가보진 못했으니.

 

어쨌든, 카잔 여행기에는 사진이 그렇게 많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동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같이 이야기하는데 시간을 더 할애했으니.

- iso조절이 계속 엇나가서 그런가 제대로 찍힌 사진이 많이 없다. ㅎㅎ;

거기에다가 3번째 날은 완전히 한 나절을 통째로 날려버렸으니.

 

아쉬웠지만 아쉬웠으므로 또 가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3박 4일간 추억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동안의 나태함이 아쉬운 도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폭넓게 도시를 느낄 수 있었음에도,

- 물론 숙소가 아늑하니 괜찮은 것도 있고, 중심지와 거리가 먼 것도 잇지만 -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을 뿐. 시간 분배를 잘 못했다는 것이지.

 

그래도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크렘린은 원 없이 봤다. 그걸로 충분히 만족하는 걸로.

 

???????!!!!!!!! 모자 쓰고 나가는 걸 깜빡했다. 여행 내내 모자를 썼던 이유.

2편에서 계속

 

ps.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카테린부르크를 계획에 굳이 넣은 이유는 심미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피의 사원'에서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총살당하면서 제정 러시아가 끝이 났고,

유럽이랑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대도시라는 것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좋은 시설에서 정말 편안하게 쉬고난 뒤 (숙소 사진을 또 안 찍었네...)

아침으로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은 뒤 나가려고 할 참에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저녁에 갈 것 같으면 짐은 잠시 두고 가라고 말씀하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도시를 구경하러 갔다.

호스트가 알려준대로 숙소를 나간 뒤 조금 걸어가 마르쉬루트카를 타고 역으로 갔다.

가장 만만한 곳이 역이지, 뭐.

 

구 예카테린부르크 역.

택시바리를 피해 급하게 얀덱스 택시를 잡느라 역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기도 하고,

역 주변에 마침 또 지하철역이 있어서, 예카테린부르크 지하철도 타보자는 의의로 갔다.

내가 내린 곳 주변에 뭔가 옛스러운 건축물이 있어서 가봤더니, 구 역사라고 한다.

지금은 철도 역사 박물관으로 쓰이는 듯 했고, 주위에 동상이 몇 개 세워져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
철도 노동자
주변에 있는 건축물... 뭔지는 까먹었다. 부속 건물이긴 했는데.

대강 둘러본 뒤 바로 지하철로 향했다.

역시나 꽤 깊은 곳 까지 내려갔고, 리드미컬한 소음은 여전했다.

 

ISO 조절 실패.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은 많이 없었다. 별 특징없는 전형적인 지하철 플랫폼.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한식당 '씨울(서울)'
예고르 크리드와 빅토르 최, 2010년대 팝스타와 1980년대 락스타.

바이네르 거리가 번화가라고 해서 지하철 역에서 내려 그쪽으로 무작정 향했다.

1905 광장 역(Площадь 1905 года)에서 내린 듯하다. 가물가물하구만.

노보시비르스크보다는 현대식 건물이 꽤 많이 지어진 듯했다.

- 사실 그렇게 단정 짓기 뭣한 게, 노보시비르스크 시내는 거의 못 둘러봤으니...

 

발쇼이 즐라토우스트 사원.
스탈린 동상은 없어도 레닌 동상은 러시아 전역에서 꽤 자주 보인다.
이제 얼추 다 온 듯 하다.

이젠 트램이나 트롤리부스를 봐도 그러려니 하다.

이르쿠츠크에서 처음 '전차'라는 것을 봤을 땐 꽤 설레고 그랬는데...

그래도 지금 다시 돌아보면, 뭔가 부럽긴 하다.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다는 게.

한국에서 도로교통이라 함은 버스랑 택시가 전부인데...

물론 전기선 따라 움직이는 교통수단이 있으면 전깃줄 때문에 미관을 해친다고는 하지만,

그 전깃줄조차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낭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네르 거리 초입부. 빨간선 따라 쭉 가면 주요 관광지 다 둘러볼 수 있음.

이르쿠츠크와 노보시비르스크에 비하면 정돈되고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노보시비르스크도 이런 공간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내가 본 것만으로 치면,

지방 중도시에서 광역시로 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도 정말 많았고, 거리도 널찍했다.

 

꼬치만타.

러시아는 한국에 비해 담배라는 것에 관대했다.

온통 '금연구역' 마크가 붙여져 있는 한국(특히 서울)과는 달리,

이런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흡연자인 나로서는 그런 면에선 정말 편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뭔가 익숙지 않아 복잡 미묘했다.

 

다 이루어 질거야. 뭐 그랬으면 하다.
행상인 동상. 왼손에 있는 물건을 만지면 행운을 깃든다...는 관광지의 흔한 클리셰.
반대편에서 찰칵.

 

사진 너무 많이 찍어주시는 거 아닌가요 하하핳;;;

행상인 사진 찍고 있었는데, 현지인 아저씨가 가는 길에 안쓰러우셨는지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주셨다.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왔어요. 남쪽...ㅎ" "말라졪(멋진걸)!"

다양한 각도로 찍어주신 뒤 출신성분(????)을 묻곤 즐거운 여행돼라는 말과 함께 쿨하게 사라지셨다.

 

활기차다.
거의 끝자락인듯? 번화가에서 유유히 책을 읽는 모습보고 "와 역시 독서의 나라"다 싶었다.

꽃도 많았고, 벤치도 많았고, 동상도 정말 많았다. 그 많은 동상을 미처 다 찍지는 못했다.

... 감상하느라. 이 거리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 타냐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바죠프 선집도 샀다.

산업도시라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이 강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오래된 거리라고는 하는데, 한 번 제대로 정비를 한 듯하다.

 

바이네르 거리를 벗어나면 이러하다.

골목골목 더 살펴보면서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피의 사원이 보고 싶기도 했고, 시간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고 관광객 라인을 살짝 따라가 보기로 했다. 

- 살짝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몇 번 이탈을 했기 때문.

조금 더 있으면 강변이 하나 있는 것 같아 한 번 가봤다.

 

힙하면서 올드하면서, 어찌 달리 표현을 해볼꼬.
거진 도착한 듯. 저 뒤로 비소츠키 타워가 보인다.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어딜가든 있는 사랑의 자물쇠.
다리 건너편. 어딜 가든 공사가 한창이었다.
날씨가 덥고 하니 아이스크림을... 솜사탕 맛이라고 하는데, 나쁘진 않은 맛이었다.

대강 둘러본 뒤 발 가는 대로 우선 걸어 다녔다. - 사실 길을 헤맸다. 

비틀즈 기념상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지도가 거짓말을 친건지, 내가 멍청한 건지...

아마 후자인 듯. ^^

 

낡은 건물 뒤에 지어진(지어지는) 현대식 건물.
길 나는 대로 걸었다.

 

큰 연못 건너편에 작은 공원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저어 멀리 교회 종탑이 보이네.
보수중인 상인 추빌딘의 건물, 신축 중인 새 건물. 지금 보면 약간 아스타나의 건축물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작은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아마 상류층 거주지... 아니면 비싼 호텔...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19세기 맨션 판매. 530제곱미터.
고골아저앀ㅋㅋㅋ 고급스러운 자태 속 힙함.
19세기 후반 건축물. 용도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반대쪽 공원에서 다시 나가 피의 사원으로 향했다.

내가 간 곳 주변으로는 이런 붉은 계열의 19세기 말 양식의 건물이 많았다.

그때쯤 지어져 번성한 도시니... 노보시비르스크에도 많을 거라 생각이 든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가장 높다는 비소츠키 빌딩. 닉값 하네.
그 주변엔 이렇게 비소츠키랑 그의 연인(?) 쯤 되어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다. 
저 멀리 있는 소련식 건물과 뭔가 일치한다. 오페라 발레 하우스.
스베르들로프 상과 오페라 발레 하우스. 그 뒤편에는 우랄 연방 국립 대학교.
이게 바로 우랄 연방 국립 대학교. 칙칙하면서도 고풍적이다.

조금씩 피의 사원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카테린부르크에 온 주목적!

하지만 그전에 이미 나는 이 도시에 빠져 있었다.

사소한 볼거리와 사람 구경이 재밌었던 도시.

 

붉은 선 따라 쭉 가보자! 비눗방울 보소.
거의 도착했음을 알리는 쿼텟. 공원이 곳곳에 있었다.
성지의 느낌이 나기 시작.

 

피의 사원(Храм-на-крови)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황제의 은신처였던 건물을 허문 뒤

그 위에 세워진 성당이다. 니콜라이 2세 일가족의 피 위에 세워졌다고 해서

'피 위의 사원'이라 불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유사품과 헷갈리지 않도록! (피의 '구원' 사원)

 

삼각대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이렇게라도.

잠시 역사적 상상 속에 잠겼다가, 길을 나섰다.

실내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안 들어갔다.

- 그래서 후회된다. 내부 구경은 다음에 하는 걸로.

 

여기 관광객 하나 추가요.
우랄지역 작가 박물관 외부. 저기 바죠프에 대한 설명이 있겠지...
 피의 사원 방향을 그리고 있는 화가.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동영상.

피의 사원에서 나와 다시 빨간 라인을 따라 걷자 정각을 알리는 종탑 소리가 울렸다.

여태까지 종탑만 봐왔지, 이렇게 종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러시아'에 와있는 느낌이 확 들었다.

뭔가 황홀하다고 해야 하나, 현대적인 도시 속 옛스런 종소리.

 

정교회 성당의 종소리는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 1악장 도입부,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

그 외에도 더 있을 거라 확신한다. 뭐 아무튼,

그만큼 이 종소리는 러시아의 '시그니쳐 사운드'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종소리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 도입부를 떠올리며,

어떻게 표현이 되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럴싸하게 잘 표현했네.'

처음엔 댕-댕-댕- 하고 단음으로 울렸다가,

아르페지오를 연상시키는 세분화된 리듬으로 크고 작은 종소리가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음악이 되는 것.

한동안 음악적 감상에 취하면서 우두커니 서서 종소리를 들었다.

종소리가 끝난 뒤, 다시 걸었다.

 

마침 푸쉬킨이...

 

그래피티. 루블루블달러달러.

 

도시 연못.

원점까지는 아니고, 이전에 갔던 작은 강보다 더 위에 있는 넓은 연못에 다 달았다.

현대적인 빌딩이 연못을 에워싸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카약을 즐기고 있었다.

뭔가를 새로이 짓느라 분주한 도시.
쾌속선도 종종 연못을 질주한다.

 

저멀리 시청탑.
현대에 지어진 건물이 가득하다.
처음으로 산 마그네틱.

강변에 있는 보부상에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그네틱을 사봤다. 흥정해서 100루블 정도에 산 것 같다.

이때만 해도 각 도시별로 마그네틱을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도지사 거주지. 아르누보 양식이 꽤 인상적이다. (아르누보 맞나?)

 

산책하러 나온 현지인들이 많이들 있다.
우리는 누군가,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옆에 피의 사원!
빅토르 초이!
고마워 부패경찰아... 그 옆에는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와 관련된 시.

반대편으로 가면 처음 내가 갔던 곳이 있다.

그곳으로 건너갈 수 있는 지하도에 빅토르 초이를 추모하는 그라피티로 가득 찼다.

그렇게 또 왔다. 낮 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쒐솨탕이 먼줘돠! 솜사탕한테 초점 뺏김.

 

이렇게 러시아 월드컵의 흔적도 돋보인다.
타티셰프(В. Н. Татищеву)와 겐닌(Г. В. де Геннину). 예카테린부르크 설립자, 1723년 건립.
예배당 - 분수 - 비소츠키
슬슬 산책할 시간이긴 하지.
난 슬슬 갈 준비를 해야 되고.

 

그렇게 시내 산책을 한 뒤, 짐을 가지러 숙소로 갔다.

비소츠키 타워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조금 서둘러야 했기에,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탄 뒤,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슬슬 예카테린부르크도 끝에 치달아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뭐 여행이라는 게 그렇지.

늘 아쉬운 법이지, 이런 짧은 순간과 순간이 끝난다는 것은, '나'로 돌아갈 시간이 임박해 간다는 거니까.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시각에서 봐보고 한다고 한 들 아쉬운 건 매 한 가지다.

 

아파트 방에 가보니 호스트가 딱 있었다.

잠시 베란다 쪽으로 가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숙소 어땠느냐니, 예카테린부르크는 어땠느냐니, 이제 어디로 가냐니...

택시 잡는 걸 두려워하자, 택시 잡는 것도 도와줬다. (듣기가 워낙 안 돼서....)

근데 문제가 있었다. 나한테 1000루블짜리 밖에 없어서, 택시들이 다 취소를 하는 것이다...

호스트한테도 잔돈이 없었고, 나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얀덱스 카드에 내 카드가 등록이 안 된 건 덤.

 

러시아는 어딜 가나 '잔돈을 남겨주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츄파츕스 하나 사면서 5만원을 낼 수 있는 우리나라랑은 천지차이인 것이다.

75루블 짜리의 물건을 살 때 꼭 5루블 있냐고 물어보고, 

돈 단위가 200, 500 이상으로 넘어가면,

어지간한 곳에서는 잘 거슬러주지 않거나, 썩은 표정을 지으며 거슬러 준다.

"우리 잔돈 없어."

 

참... 여러모로 불편하기도 하지. ^^;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천사 같은(?) 택시기사가 날 데리고 간다고 해서

호스트 개 좀 쓰다듬어 주다가 호스트 배웅 아래 떠났다,

다음에 예카테린부르크 올 일 있으면 반드시 거기서 묵겠다 약속하면서.

 

택시 때문에 시간이 꽤 지체되어 역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맡겨두고 바로 지하철 타고

1905역에 다시 내려 반 경보 반 뜀걸음 식으로 비소츠키 타워까지 뛰어갔다.

- 이 와중에 돈은 아끼겠다고 대중교통을 탔다. 

 

해질녘의 예카테린부르크 전경을 보기 위해서 참 별 지랄을 다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느 정도 땀이 찬 상태로 표를 구입하고 (국제학생증 할인해서 150인가 200루블 줬을 것이다.) 올라갔다.

 

현대판 흐루쇼프카. 서울보단 낫네. 그렇게 막 획일화되어있지 않아서.
유리에 비친 잔상이 좀 거슬리긴 한다. 육안으로 보면 나름 운치있다.
저 드넓은 평원 아래로 뉘엿뉘엿 져간다.
야경을 못 봐 아쉽지만, 아경은 뭐 다음에 보는 걸로.
이렇게 보면 또 삭막-하긴 하네.
나름 괜찮네.

전망대를 막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서 '니하오!'하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니하오!'라는 말을 들을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예카테린부르크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내가 있을 동안엔 아예 못 봤다.

"하하... 저 한국인입니다만..."

"오오~ 한국에서 왔구나! 난 하바롭스크에서 왔어! 오호호홓~ 반가워~! 사진 찍어줄까?"

사진이라도 괜찮게 찍어 줘서 봐줬다;;;

 

지금은 "니하오!"라고 인사한다고 무조건 기분 나쁘고 그런 건 없다.

어차피 우리도 한국 내에서 서양 사람들 보면 영어 잘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미국 사람이라 주로 생각하듯이.

2019년 겨울 우크라이나 여행 초기까지는 '니하오!' 거리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아했지만,

(보통은 무시하고 가거나, 상황에 따라 '한국인'이라는 말을 하면서 무안한 미소를 짓곤 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질수록 무뎌지기 시작했다.

 

'뭐 차피 나도 슬라브 인들 보면 러시아인이라고들 생각하잖아.'

'나도 서울에서 편의점 알바 했을때, 프랑스 사람한테 러시아어로 말 걸었잖아. (물론 정중히 사과하고 프랑스어 조금 써줬다. 빠른 용서.)'

 

여러모로 생각해 보니, '나를 중국인으로 본다는 게 기분 나쁘긴 하지만, 뭐 어쩌겠냐'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후에 칼리닌그라드에서 "중국인이랑 한국인이랑 뭔 차이가 있다고 그래?"라는 말을 듣고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래, 엄청 무식한 사람이거나, 조금 더 친근감을 주고자 했지만 그게 서투른 것일 뿐이지.

행여 외국인이 '니하오!'거리면 눈 찢고 '칭챙총!' 거리지 않는 이상은 한국인이라고 일러둔다.

한국인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같은 흔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으로 가본 적은 없지만,

딱히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못 느꼈던 것 같다. 

굳이 세려 든다면,

라트비아에서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나를 보고 눈 살짝 찢는 제스처 취한 여자(나한테 직접적으로 보란 듯이 한 건 아니라 그러려니 했다.),

카자흐스탄에서 같이 교환학생 간 애들이랑 고기뷔페 가는 길에 "니하오!" 하면서 대놓고 비웃은 카작애들... (누가 누굴 비웃어? ^^)

딱 그 정도네.

 

슬슬 내려가보자. 좀 늦었구만.

 

역전호텔.
신 예카테린부르크역. 

도저히 지하철을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겨를이 되지 않자, 어찌어찌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중에, 나는 똥줄 타 죽겠는데, 취객이 나한테 호기심을 보이곤 했다.

나한테 해코지할 것 같지는 않아 적당히 받아쳤다. 동행한 여자들이 얘 술 좀 많이 마셨다며 미안하다고 한 건 덤. 

가끔씩 있는 일이다. 만약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으면 엄청 무서웠겠지.

어찌 되었든 택시를 타고 역으로 도착해, 역 앞에 있는 상점에서 먹을거리를 좀 사고,

캐리어를 찾고 기차 타러 갈 참이었다.

 

그. 런. 데.

 

짐꾼 새끼들이 나한테 사기를 쳤다.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교묘하게 이용해, 자기네들이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난 처음에 그냥 기차 시간도 얼마 안 남고 했으니 자원봉사자거나 무료로 급히 짐을 옮겨주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내 표를 그냥 탁 보여주고, 짐 올려라고 한 뒤 무작정 달렸다. (돈 든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승합장에 도착하니, 태도 돌변하면서, "어허이! 돈 줘야지!" 이러는 거 아닌가.

어안이 벙벙했지만, 뭐 팁 같은 걸 바라는 건가 싶어 200루블을 줬다.

그러니까, 가격표를 탁탁 두드리면서 "이봐! 2000루블이야!"

가격표에는 250루블인가 그렇게 적혀있던 것 같았다.

"250루블이라고 적혀있잖아! 왜 말을 바꾸는 건데?"

"아니, 너 기차 시간 촉박했잖아. 원래 촉박한 시기에는 10배로 내야 돼. 특별히 500루블 깎아준 게 어디야?"

일단 말싸움할 시간조차 없어서 2000루블을 냅다 주고 캐리어를 채간 뒤 

출발 3분 전에 기차 칸에 도착했다.

 

속았구나... 나한텐 이런 일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사람들은 꼭 그렇게들 말하지. 조심은 하면서도...

너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살짝 사람이 풀어지게 되고, 그때 속절없이 사기를 당하든 도둑질을 맞곤 한다.

나도 그런 사례가 아닌가 싶다. 너무 괘씸하지만, 쿠페에 타자마자(처음으로 쿠페에 타본다!)

건너편에 있는 할머님께 여쭤봤다.

 

"할머님... 혹시 역에서 플랫폼까지 짐 나르는 비용 혹시 얼마 정도 하죠?"

"음... 그거 사용 안 해봐서 모르겄는디? 한 200-300하지 않을까?"

"2,000은 아니죠?"

"어이고, 말도 안되지!"

"아... 사기꾼들이었구나. 어쩐지!"

"어이고, 그걸로 2,000루블이나 낸 거야?"

"네... 전 무료 서비스인 줄 알고 믿고 캐리어를 얹히고 플랫폼까지 갔더니만, 2000루블을 내라는 거예요!"

"허허... 조심했어야지. 안됐네."

손녀로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테마에 아예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내 위칸에는 아저씨 한 명이 곤히 잘 자고 있었다.

아침에 도시락 하나 먹고 아이스크림, 솜사탕 빼고 아무것도 안 먹었다 보니 배가 고파서,

일단 착잡한 와중에도 도시락을 폭풍흡입(!)했다.

 

애초에 비소츠키 타워 갈 때도 택시를 타고 갔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었을 거고, 속절없이 멍청하게 사기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예카테린부르크는 좋다가 마지막에 빅엿을 날려준 도시였다.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네, 좋은 교육받았다고 생각하려고요."

 

나긋나긋한 노래와 함께 손녀를 간지럽히며 놀아주는 할머니,

잠에 들다 못해 곯아떨어진 아저씨,

사기당해서 멘붕 당한 한국인,

그렇게 쿠페 속은 평화롭기만 했다.

라면 다 먹고, 잠에 겨우 들었다.

할머님이랑 손녀분이 내릴 때쯤 잠에 깼고, 할머님 짐 옮겨 드린 다음에 (좀 무거웠다.)

다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같은 방 안에 나와 어떤 남자분 한 명이 옷매무새를 갖추고 있었다.

어제 잠에 곯아떨어진 아저씨 분도 자는 동안에 내린 듯하다.

 

사샤와 그의 아내, 따님에게 행복한 가정을 기원합니다.

 

"혹시, 러시아 사람이세요?"

"아뇨, 한국인인디유."

"우와! 개신기... 기차 타다가 외국인은 또 처음 보네!"

"엥? 외국인을 한 번도 못 보셨다고요?"

"넼ㅋㅋ... 와 개신기해! 아니, 한국인인데 러시아어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학교에서 전공 중이에요! ㅎㅎ"

"와, 멋있다. 어디로 가세요?"

"카잔이요. 님은요?"

"전 #$^@%로 가요. (확실한 건 카잔은 아니었다.) 가족들 보러 가는 길이에요."

2-3시간 대화 좀 나누다가, 남자분 먼저 내리시고 (그 와중에 인스타 주고받음)

혼자서 카잔까지 갔다. 종착역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모처럼 쿠페 탔더니 이렇게 텅 비네..

타냐 아주머니께서 주신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차창 풍경 감상하며 나머지 1시간 반 정도 동안 홀로 카잔으로 향했다.

 

2018년 여행 사상 가장 조용히 간 구간이다.

사기당한 거 반성하라는 거지, 뭐.

 

>_<

 

자 그럼, 가자, 타타르스탄으로.

모스크바가 머지않았네.

러시아 여행의 반절이 지나갔네. 

전체 여행의 1/4이 지나갔네.

기껏 포스팅 쓴 거 다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거의 다 썼는데... ㅠㅠㅠ

아무튼, 언젠가는 써야 될 여행기기도 하니 다시 마음을 잡고 써본다.

 

열차에서 맞이한 노보시비르스크의 노을. 다음에는 오비강에서 보노라.
점점 멀어져간다...

거의 어두워질 시간이 다 된 듯 해서 노을 지는 풍경을 가만히... 보진 않았고 사진도 좀 찍어가면서 봤다.

빨갛게 물든 하늘 아래 서서히 멀어져가는 노보시비르스크의 풍경을 그저 넋놓고 바라봤을 뿐이다.

맞은 편에 앉은 아주머니도 나처럼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이 참 아름답네요..."

"그렇네요..."

 

노을이 다 지고 나서야 침구류를 깔고 잘 채비를 했다.

하루종일 걸은 탓에 몸이 꽤나 많이 피로해졌으니.

이틀 연속 기차에서 숙박을 할 줄이야... 

노보시비르스크를 돌아다니면서 땀도 꽤 흘렸는데, 

어찌 되었든 찝찝한 몸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다행히 노보시비르스크역에서 잠옷차림으로 갈아입은 지라

마냥 찝찝하진 않았다.

 

하루만 참자, 하루만 참자.

기차에서 사흘도 있었는데, 하루 반도 있었는데,

그거 하나 못 참으랴...

 

처음으로 2층칸을 써봤다. 그래서 그런가 깊게 잠에 들지는 못했다.

열차칸이 계속 흔들거려서 잠에 좀 든다 싶으면 깨고 그랬던 것 같다.

여태까지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2층이라 흔들리는 게 더 잘 느껴졌나 보다.

 

옴스크 역.

그렇게 3-4시간 정도 잠든 것 같다. 열차가 꽤 오래 정차하는 듯 해서 시간표를 한 번 봐봤다.

옴스크 역이었고, 정차시간이 꽤 길었기 때문에, 나름 큰 도시긴 하니까 역 주변만 둘러보기로 했다.

옴스크역 주변.
옴스크역 주변 2.

역사가 생각보다 크기도 했고, 옥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그런가 노보시비르스크역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물론 왕관모양 시계탑은 없었지만....

시간이 얼추 되어 가자, 열차에 탑승하러 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2층에 올라가 누웠다.

기차가 멈춰있는 지라, 잠은 생각보다 잘 왔다. 피곤함이 누적되어 있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

 

튜멘 역.

또 다시 잠에서 깨어보니 튜멘역에 멈춰져 있었다.

여기서도 꽤 오랫동안 정차해서, 잠시 나와 내 슈퍼에서 해바라기 씨랑 마실 것을 좀 샀다.

역 자체는 굉장히 최근에 지어진 듯 했다. 그냥 밋밋한 사각형이었다.

그렇게 열차로 돌아와 보니 아주머니께서 좌석을 세워두고 앉아계셨다.

기차가 출발하고 가만히 밖을 응시했다.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편이라,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볼까 고민을 좀 했다.

아주머니께서 제일 처음으로 꺼낸 말은 "이반 차이가 온 만신에 다 있네!"

이반 차이? 이반 차茶?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말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반 차이가 뭐예요?"

"저어기 봐봐, @#^@%@"

"아아..."

"보여?"

"아뇨... 하핳..."

"저어어기 봐봐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하게 생긴 거."

"아아... 저게 이반 차이인 거예요?"

"응... 저기도 있네~"

차창 풍경.
작은 교각.

뭔가 '차' 종류인 것 같아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마실 사람은 마시고, 옛날에는 꽤 즐겨 마셨다나 뭐라나.

꽤나 흔한 풀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예카테린부르크 숙소에 도착해서 궁금해 찾아봤더니 "아!"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차창 너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런 풀이었다.

불 떼는 데 쓰기도 하고 옛날에는 직물 만들 때 쓰이기도 했었고 차로 우려먹기도 하고...

여러모로 용도가 많은 풀이었다.

 

"이반 차이 맛은 어때요?"

"읭? 너 이반 차이 안 마셔봤어?"

"네... 저 방금 전에 처음으로 들었습니다만..."

"한 번 마셔봐, 러시아에 있을 때. 너네 나라에는 이런 게 없나 보지?"

"네, 없어요. 한국에서는 차를 잘 안 마셔요."

 

이반 차이 밭이 펼쳐질 때 마다 일러두시곤 했다. "여기도 이반 차이네~"

 

아주머니께서 주신 해바라기씨(왼쪽)과 튜멘에서 산 보급형 해씨.

 

내가 보급형 해씨를 까먹고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바라기 씨 많이 까먹냐고 여쭤보셨다.

"아뇨, 노보시비르스크 가는 길에 만난 이웃이 입문시켜 줬어요."

"이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 러시아 마약이라고 해."

격하게 공감하면서 웃었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아주머니께서 자신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셨다.

"이게 진짜 맛있는 해바라기씨야. 속도 꽉 차고 맛도 더 진하고... 소금처리까지 되어 있어서 짭쪼름하기도 하지."

"아아..."

"근데 먹을 때 조심해, 껍질이 꽤나 튼튼해서 혀 다칠 수도 있어."

당부의 말씀이 끝남과 함께 한 봉지 전체를 통째로 주셨다. 

"먹어봐. 나 한 봉지 더 있어."

"아... 앟ㅎㅎ 감사합니다! ㅠㅠ"

아주머니 말마따나 껍질이 단단했고, 알맹이가 더 컸다.

그래서 그런가 잘 부스러지는 보급형 해바라기씨보다는 껍질 까는게 더 쉬웠다.

 

해바라기씨의 잔해. 그 뒤에 라하트 초콜렛.
초콜렛 꾸러미. 봉지에 덜어서 나한테 나눠주셨다 ㅠㅠ.
뭔가 체리잼 같은 게 들어있었던 초콜릿.
사과까지! 너무 아낌없이 퍼주시는 거 아닙니까 ㅠㅠㅠㅠㅠㅠㅠ

아주머니의 성함은 타냐, 카자흐스탄에서 친지들을 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사라토프로 돌아오시는 길이셨다.

여행이 끝나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 신분으로 간다고 하니까 걱정의 말씀을 하셨다.

"거기 엄청 추울 건데... 옷 단디 챙겨 가도록 해. 겨울엔 영하 40도까지 떨어져."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아하하핳."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셨다. 초콜릿 봉지였다. 

"초콜릿 먹어. 카자흐스탄 초콜릿이야."

"어! 이거 저 편의점에서 일했을 때 카작사람이 저한테 준 거랑 똑같네요! 되게 맛있던데. ㅎㅎ"

여행 경비 모으느라 편의점에서 일했을 때, 카작에서 온 외노자 친구가 나한테 해바라기씨나 자기네 나라 초콜릿을 먹어봐라고 주곤 했다.

(당시엔 해씨 맛을 몰라서 큰 감흥은 없었다.)

그 친구가 줬던 초콜릿이랑 똑같아서 왠지 반가운 마음이 좀 들었다.

"아 그래? 이 브랜드가 '라하트'라는 브랜든데, 카자흐스탄에서 되게 유명한 브랜드야."

"카작 브랜드예요?"

"응."

당시 카작 친구(단골이다 보니 손님 없을 때 이야기 많이 나누곤 했음. 그러면서 친해짐)가 준 사탕 외에도 되게 다양하게 있었다.

안에 과일맛 잼이 들어있는 것도 있고, 다크초콜릿도 있었고 되게 다양한 질감, 다양한 맛이 있었던 것 같았다.

맛 없었던 초콜릿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초콜릿까지 있으니 홍차가 숙숙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다시 채우러 간 사이에 뭔가를 또 꺼내 놓으셨다. 사과였다.

"사과 먹을래? 카자흐스탄 사과가 그렇게 맛있단다."

"옿! 한 번 먹어봐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지! 자."

"감사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더 하긴 했는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선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유추해보건대, 아마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가 '사과산'이라는 것을 설명하신 듯 하다.

사과는 솔직히 한국 사과가 훨씬 맛있었다. 뭔가 사과가 푸석푸석해서 씹는 맛이 많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반질거리는 사과의 겉모습, 물렁물렁한 질감, 한국 사과의 1/3정도 크기는 이국적인 느낌을 내기엔 충분했다.

"사과가 뭔가 부드럽네요. 한국 사과랑 좀 다른 것 같아요."

"아 그래? ㅎㅎ"

 

첨엔 저 하얀 색 꽃이 이반 차이인 줄 알았다.
보라색 꽃이 이반 차이.

어쩌다 문학 쪽으로 이야기가 빠졌다.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했다.

고전도 좋아하시고 현대 소설도 좋아하시고, 가리는 게 없다고 하셨다. - 현대 소설에 대한 깨알 디스도...

"너 바죠프라는 작가 알아?"

"바죠프요? 음... 처음 들어 보네요."

"네가 지금 가는 곳이랑 관련 있는 사람이야. 우랄 지역의 전래 동화를 수집하고 연구한 사람이야."

"오오... 정말요? 재밌겠다."

"예카테린부르크 가면 서점 들려서 이 사람 책 기념품으로 사. 러시아 웬만한 서점에는 다 팔지만,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사면 더 의미가 있을 거야."

"그렇게 해야 겠네요. 유명한 작가예요?"

"그럼, 유명하지. 우랄 지방 원주민들의 전래 동화는 다 이 사람을 거쳐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보면 돼."

"아아... 되게 궁금해지네요. 난이도는 어때요? 현재 제 수준에서..."

"음... 아마 가능하지 싶은데? 그렇게 어렵게 쓰여진 책은 아니라서."

는 개뿔! 아주머니...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하신 것 아닙니까 ㅠㅠㅠ

일단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사긴 했다. 카잔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한 번 읽어봤는데, 한 바닥도 못 넘기고 그냥 덮어버렸다.

현재 고향 집에 기념품 식으로 꽃아 놓고, 가끔씩 꺼내 읽긴 하는데, 여전히 어렵다.

하긴, 한국의 전래 동화를 외국인이 읽으면 그게 쉽겠소 ㅠㅠ 한국인 한테야 술술 읽힌다지만...

옆 좌석 아저씨들이 자는 사이 찍어본 차창풍경. 차창 너머에 작은 시골마을이 보인다.
숨은 이반차이 찾기. 자작나무가 되게 운치 있게 서있다.

한 번은 소련 시절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옛날에 내 옆집에 타타르 계열의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살았어. 인종이고 종교고 할 것 없이 그냥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살았어 그 땐. 내 주변 뿐만 아니라, 소련 시절에는 민족이나 종교로 다툴 일은 없었던 거지. 내가 사는 곳에는 없었지만, 고려인들도 차별받지 않고 별 탈 없이 잘 섞여 살았어. 오히려 일 열심히 하는 걸로 악명 높아서 좋은 대우를 받기도 했지. 빅토르 최 누군지 알지? 이 사람 고려인이잖아. 쪼이(최), 이거 너네 나라 성 맞지?"

"네 ㅎㅎ"

강제 이주라는 아픈 역사가 있지만, 스탈린 이후 사람이라 그러려니 했다.

"종교차이나 인종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길 일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 러시아 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종교 때문에 전쟁 일으키고, 인종 다르다고 차별하고 그러잖아. 옛날에는 그런 일 상상도 못했는데. 참... 안타까워 생각하면..."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옛날부터 소련 시대를 살아온 분들께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는데, 그 질문이 갑자기 팍 떠올랐다.

"혹시, 그럴 때 있나요, 소련 시절이 그립다거나 그런...?"

"당연히 있지. 음, 뭐, 그래, 그렇다고 보면 될 것 같아. 돈 때문에 싸우고 할 일도 없었고, 사람들 교육 수준들이 높아서 범죄도 많이 없었고. !@$#%#$@(그 외 여러가지 장점.)"

 

과거는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다름으로 인한 차별이 없다는 것만 해도 평화의 반 이상을 차지하지 않을까?" - 평화라는 것을 수치로 매기는 게 참 이상하긴 하지만.

물론 소련이 아프간 전쟁, 소수민족 강제이주와 같은 몹쓸 짓을 하기도 했지만,

조금 미시적으로 보면, 개개인 간에는 외형으로 인한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 삶이 더 다채롭지 않았을까.

타냐 아주머니는 이런 다채로움을 그리워하시는 게 큰 것 같다.

 

타냐 아주머니. 덕분에 기차에서의 시간이 훅훅 갔던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장이 내게 다가와 20분 뒤에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한다고 일러두었다.

이반 차이 구경하랴, 이야기 나누랴,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칭기즈나 드미트리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타냐 아주머니를 통해 정말 따뜻한 정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카자흐스탄 생활 예습(?)도 해보고... 여러모로 정말 뜻깊었던 기억이 난다.

 

예카테린부르크로 향하는 동안에는 '한 명의 이방인'이라기 보다는 '말 서툰 현지인'이 된 느낌을 받았다.

아주머니께서 그리워하는 '평등함'과 '조화', 그것이 일상생활에 묻어난 것이다.

마치 현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색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라토프에서 항상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재미있는 대화, 의미있는 대화를 함께 나누어 주시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주머니 덕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뜻깊은 시간, 뜻깊은 기념품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고 가르쳐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PS. 모스크바에서 이반 차이 마셔봤습니다. 가격도 괜찮았고 향도 맛도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예카테린부르크 입성!

 

그렇게 타냐 아주머니랑 작별인사를 나눈 뒤, 열차를 나가 역으로 들어오자마자

택시기사들이 외국인 한 놈 속여가지고 오지게 돈 좀 벌겠다고 미친듯이 나한테 달라붙었다.

그 중 끝까지 집요하게 나한테 들러붙는 택시기사랑 흥정을 했는데,

처음에는 500루블 불렀다가, 겨우 350루블까지 내렸다.

그래도 뭔가 아 이거 너무 비싼데 싶어서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한 뒤

승객 대기실로 들어가 얀덱스 택시 급하게 다운 받고 주소 찍고 요금을 확인해 보았다.

(서쪽으로 갈 수록 얀덱스를 많이 쓴다 그래서... 블라디랑 이르쿠츠크에선 막심 썼어용)

167루블... 택시아재요 장난하십니까? 바로 호출한 뒤 다른 택시기사 구했다고 하고 

호출한 택시 기다리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에어비앤비 숙소 위치까지 갔다.

 

아파트 정문 쪽에서 호스트를 만나 방 안내를 받았다.

뭔가 젊고 호쾌한 비즈니스맨같은 인상을 풍겼던 호스트는

사업 차 서울 가본 적 있다면서 뭔가 친근감을 표현하시곤 했다.

베란다에서 담배 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고는 (예카테린부르크 뭐 볼 거 있냐 이런 류.)

방 안내를 받고 호스트가 나가자, 급한 대로 빨래를 돌린 뒤 샤워를 했다.

(마침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한국산(!!) 폼클렌징을 산 덕에 얼굴까지 깨끗이 씻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니 몸이 엄청 나른해졌다.

시간도 애매하고 하니 시내 관광은 하지 않기로 하고,

아파트에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신축된 아파트 호 하나를 반나절 동안 숙소로 사용하는 터라,

되게 넓직하기도 하고 깔끔하기도 하니, 휴식을 취하기엔 정말 좋았다.

창 밖의 전망도 나쁘지 않았고, 다만 흠이 있다면, 내가 왔을 때 수도 공사로 인해서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는 거...

그래도 여름이고 하니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카메라에 있는 사진들 좀 옮기고, 앞으로의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예카테린부르크와 카잔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름 꿀을 빨았던 것 같다.

(물론 카잔에서는 여행계획이 엄청 흐트러졌다.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변수로 인해.)

 

역시 이 맛에 에어비앤비 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방은 숙박용 보다는 파티용으로 많이 쓸 것 같았던 느낌이 든다.

어찌 되었든 덕분에 편안하게 잘 쉬었다.

 

창밖 풍경. 이것 저것 하다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공사가 한창이다. 내가 있을 동안엔 소음이 딱히 없었다.
평원이 노을 질 때는 정말 이쁜듯 하다.
실루엣.
조금 더 광각으로.
서서히 건물에 불이 켜진다.
사진 찍을 때 저 왼쪽 끝에 있는 건물 모서리가 좀 거슬렸다.
멋있구만.

그렇게 노을을 감상하고, 갑자기 출출해져 마트로 갔다. 

근방에 있는 슈퍼가 문을 다 닫은 바람에 조금 거리가 있는 24시간 마트로 갔다.

냉동 펠메니(러시아식 만두)랑 냉동 체부레키(삼사 비스무리한 것), 컵라면, 쥬스 등 이것 저것 걍 샀던 것 같다.

결국엔 다 못 먹었다고 한다... 너무 쓸데 없이 많이 샀다. 

그렇게 많이 사도 가격은 그리 많이 안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Трубочка вафельная с начинкой. 달달하니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먹은 샤우르마. 170루블 정도 했던 걸로 기억난다. 샤우르마가 뭔가 했더니만 케밥이었네... 도네르, 됴네르, 샤우르마... 다양하게 불림.
체부레키 나부랭이와 펠메니, 라면. 펠메니 한 봉지에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결국 다 못 쪄 먹음. 냉동실에 박아놓음... 호스트가 고맙댄다 다행히 ㅠㅠ

그렇게, 하루가 또 저물어갔다. 타냐 아주머니와의 수다로 시작해, 냉동 나부랭이 먹방으로 끝난 하루...

그 다음 날에 또 기차를 탔다. 카잔으로 가는 기차. 모스크바가 머지 않았다. 

예카테린부르크로 가는 이유는 딱 하나, 피의 사원을 보기 위해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족이 볼셰비키 군에게 살해당한 사원...

그 전 포스팅에서, 이번 포스팅에 예카테린부르크 여행한 것 까지 다룰 것 처럼 마지막 사진을 올렸었는데,

사실 그러려고 했다가 포스팅 한 번 다 날아가는 바람에 이렇게 끝내는 걸로...

이제 여행기를 반 정도 쓴 것 같다.

 

방문자 수 팡팡 늘었으면 좋겠다 ㅠㅠ

 

모두다 이루어질거야. 그랬으면... 다음 포스팅에서 봐요, 빠까찌까!

 

 

노보시비르스크역

한국의 지하철과 러시아의 지하철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인구 100만명 넘는 대도시로 왔으니 지하철은 타 봐야 되지 않겠는가.

오비 강으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iso 조절 깜빡함.

일단 소문대로 에스컬레이터는 깊었고, 문은 쾅 닫히고, 속도는 빨랐고, 소음은 정말 리드미컬했다.

지하철 소음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쓸데없이 신났다.

(실제로 지하철 소리에 맞춰 덩실대는 여자 봤음.)

 

 

다리가 하나 둘.

 

모닝 발랄라이카 한곡 때려주시고!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로. 시골 마을에 철로가 놓이면서 러시아 제 3의 도시가 되어버린 운빨 오지게 받은 도시. 

 

기차가 지나간다.

 

짹.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용해서 좋기도 했다.

확실히 대도시는 대도시인게, 강변의 규모가 확실히 남달랐다. 넓직넓직하고, 다리도 많이 놓이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바로 디마가 추천해 준 아카뎀고로독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 어딘가에서 내려서 조금 해맸던 것 같다. 

마르쉬루트카 타고 조금 낑겨서 갔다.

 

사람들이 많이 내린 곳에 일단 내렸더니 이런 광경이.

 

이런 자작나무 숲 속에 산책로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날파리는 덤.
밑에서 위로 찰칵.

 

이렇게 표지판도 있다.
엔게우(НГУ: Новосибир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본관인 듯 하다.
자작나무가 엄청 많다. 날파리도 엄청 많았다.
학생 기숙사거나 연구원 숙소. 색감이 맘에 든다.
무궁화는 삼천리 강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뱃지, 조각상, 동전, 컵받침 삽니다.

 

컬러풀한 아파트.

숲길을 걷다보면 주택가가 나오고, 주택가에서 조금맛 샛길로 나서면 또 숲이 우거져 있었다.

시베리아 한복판 특성상 날파리가 미친듯이 나와서 눈을 뜨기조차 힘든 정도였다.

흐루쇼프카에 컬러를 입혀서 그런가 건물들이 뭔가 정갈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이쁜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가 대로변과 마주쳤다. 어디쯤인가 싶어서 지도를 켜서 보았다.

길 따라 쭉 가서 숲을 한 번 해쳐가면 강변이 있는 것 같아 그 방면으로 쭉 가봤다.

 

야생화. 이름은 모름.
야생화.

 

기차가 지나간드아.

기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철로를 건너보니 조그만 승강장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철로에서 조금 더 들어가보니 강변을 향한 내리막길이 있었다. 

 

햇볓, 바다, 그리고 허세(?), 이 모든 게 강가에!
썬텐하는 사람, 물놀이 하는 사람. 다들 비키니를 입고 있어서 사진 찍기 두려웠다.

조금 둘러보다가 다시 돌아갔다. 뭔가 내가 있어선 안 될 곳만 같았다.

사진을 좀 많이 찍고 싶긴 했지만, 비키니 입은 사람들한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도 참 웃긴 짓 아닌가?

강물이긴 했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그냥 바다같았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만은 않으니,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술은 사랑입니다. 24시간.

 

다시 숲길을 걷는다.
또 다시 대로변은 개뿔.... 1차선이었네.

햇볓도 쨍쨍한데 그늘도 아닌 곳을 쭉 걸어갔다.

계획된 구간인만큼 길이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어 아카뎀고로독의 주택만큼이나 직관적이었다.

들꽃, 차, 흐루숍카.
진주(眞珠)로.

지상 낙원을 재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조성한 과학연구단지라는데,

알록달록한 색감과 쭉쭉 뻗은 길을 보고 "애썼네"하고 생각은 들었다.

숲과 소련식 건물, 조금만 나가면 물장구치고 썬텐 할 수 있는 강변까지.

공부하기엔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긴 했지만, 한국 대학생들이 여기서 공부한다면?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심심하다며 징징댈 게 뻔했다. 

학교 앞에 카페도 있고 마트도 있고 식당도 있고... 뭐 있을 건 다 있지만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조금 아쉬운 위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칙칙한 흐루숍카도 있다.
채도의 상하.

 

숲길을 걷다가 주택가를 걷다가 도로변을 걷다가... 다채로운 캠퍼스구만.
소비에트 바이올렛.
한국말하는 레나.

사실 아카뎀고로독 도로변을 걷다가 중간에 목도 마르고 배터리도 충전할 겸 카페에 들렸다.

들어오는데, 보통 러시아에서는 퉁명스럽게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하거나 쌩 까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 카페 들어오자 마자 미소 지으면서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잠시 한국 온 것만 같은 기억이 들었고, 이러한 예감은 뭔가를 암시하고 있었는데...

 

음료수 계산을 마치고 잔돈을 받는데, 거기 알바생이 나를 보고는 어디 사람이냐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한국 사람?"하고 한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한국어 공부한다고, 한국 문화에 관심 있다면서 엄청 좋아한 것이다.

나도 오랫만에 한국어로 대화하겠다 싶어 신이나서, 이야기 하던 도중 음료수를 매장 바닥에 쏟고 말았다.

고놈의 방정.... 어휴... 한국에서 그랬듯이 휴지 어딨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자기네들이 치우겠다 그랬다.

목이 마르니 음료수 한 컵 정도는 마셔야겠다 싶어서 다시 사려고 했지만, 계산 안해도 된다면서 그냥 하나 다시 만들어주더라.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여기 한국인이 올 곳은 아닌데 이렇게 봐서 너무 놀랍다는 말이었다.

노보시비르스크 자체에서 한국인을 많이 못보기도 한 데다가, 아카뎀고로독까지 손수 찾아오는 사람은 더욱이 없다는 말.

아이돌 누구누구 좋아하고 드라마도 정말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되게 달콤했던 걸로 기억난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맛. 호불호는 갈릴 수도 있음.

아무튼, 카카오톡 아이디 교환하고 매장을 나섰다.

잠시 좀 연락하다가 , 열차 안에서 인터넷도 잘 안잡히기도 했고, 여행에 집중하느라

연락이 길게 가진 않았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저 분이 일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kuzina 아카뎀고로독에 혹시 들릴 일 있으면 한국어 세례 받을 준비 하시길. 


음료수 쏟아서 미안하고, 리필해줘서 고마워.

아무튼, 한국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항상 밝은 미소 잃지 말고 잘 살렴.


 

새.
어느덧 중심부로 진입한 것 같다. 
더우니 체 게바라도 탐해 보고.
체 게바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인의 두상을 판다.

 

평범한 중소도시의 느낌. 학생들이랑 연구진이 몇 명인데 기본적인 인프라는 갖춰져야지.
작은 장터.
이젠 시내로 갈 시간.
삼촌 '됴네르'. 됴네르, 샤우르마, 도네르 다 '케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시내로.

 

버스정거장까지 걸어갔더니 너무 화장실이 급했는데, 주위에 화장실이 없다고 하더라. 

원래 남의 매장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지라, 고민을 꽤 했지만,

우선 내 속이 중요하니까, 주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어서 따뜻하게 마셨다 이 더운 날에...

 

그렇게 겨우 겨우 해결하고 커피를 좀 마시다 보니, 버스가 왔다.

노보시비르스크 쪽으로 간다고 해서 냅다 탔다.

그렇게 앉아서 아카뎀고로독에서 본 것들을 하나 둘 회상을 하자

어떤 여성분이 뭔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안해서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했다.

여자도 맞받아쳤다, "즈드라시쩨!"

인사를 해도 계속 빤히 쳐다보길래 무서워서 눈을 밑으로 내렸더니

손을 딱 내밀고 있었고, 허리 춤에는 표랑 잔돈이 든 허리가방을 매고 있었다.

 

"아, 차장한테 돈을 내는 시스템이였지 러시아는!"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뻘줌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돈을 쥐어 줬다.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여태까지 마르쉬루트카를 탄지라,

항상 내릴 때 돈을 지불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 잔돈과 표를 거슬러주고 유유히 다른 승객한데로 다가갔다.

 

시내 가는 길.

그렇게 러시아 시내버스라는 것을 처음 타보았다.

그리고 약 40분 정도에 걸쳐 시내로 나갔다.

잘못 착각해 조금 외곽에 내려가 레치노이 복잘(Речной вокзал)까지 걸어간 기억이 난다.

크바스! 저렴하고 맛도 좋은! (사실 마시다 보니 정 들어버림.)
인도풍의 공연이 마침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 때 보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뭔가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제서야 노보시비르스크가 광역시 규모의 도시라는 걸 깨달았다.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고, 길거리에 차도 더 많아졌다. 

시계를 보니 딱 '러시아워'였다. (Russia war 아니다.)

지하철 내부. iso 조절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도시의 활기를 조금 느낀 뒤, 지하철의 리듬을 느끼러 지하로 내려갔다.

 

노보시비르스크 향토 박물관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박물관.

 

오페라 극장, 그 앞에 놓여진 레닌 광장.
필하모니 공연 홀.
우연히 지나친 시계꽃밭.
니콜라이 예배당.
오페라 극장 맞은 편 5월 1일 광장 초입부 분수.
여유로움.
활기참.
음악.
결혼

시내에서의 동선은 오페라 극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퇴근 시간 후의 강변을 또 와야 돼 시간이 애매해서,

가장 핵심 중심부만 좀 둘러보기로 했다.

 

도시 자체의 느낌은 한국으로 치면 대전, 확실히 관광을 위한 도시는 아닌 듯.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살기에는... 잘 모르겠다, 겨울엔 안 가봐서. 

 

상인 З. Г. 크류코프의 집.
토니모리. CIS권과 우크라이나에서 꽤 본 것 같다.
저 끝에 분수.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자발적으로 공원으로 갔을까.

솔직히 거제에 있을 때는 시골이어서 굳이 공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서 패스.

진주에 있었을 때는? 요즘에야 강변을 많이 다니지만, (지금은 또 코로나 때문에 안 가긴 하지만...)

2018년에 떠난 여행 이전에는 1년에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내 사례로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특히 도시 사람들은 공원이라는 공간과 그리 친숙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노는 패턴을 보면 피씨방-노래방-당구장-술집-카페 이런 루트니까.

실내에서 노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으로서 실외생활은 그냥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다.

 

산책하기 좋은 시기엔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라오고,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나도 걸어다니는 것은 좋아하지만, 공원을 굳이 찾아가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공원이라는 공간이 선호되는 게 당연한 건 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여행했을 때는 공원이란 말 그대로 쉬어가는 곳이었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사람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고...

다음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카페는 안 들리냐고?

 

날씨도 좋은데 굳이?

특히 해 질 부렵에는 선선하고 습하지도 않아 밖에 나가기 정말 좋은 계절인걸.

 

분수와 접선.
여기도 꽃 바구니 하나 둘 데롱데롱. 그 뒤에는 흐루숍카.
흔한 길거리.

 

적당히 사람 구경하고 또 다시 강변으로 향했다.

해 질 무렵의 오비강을 보고 싶어서.

물론 기차시간이 기차시간이라 완전히 노을이 지진 않겠지만...

 

지하철 승합장.

 

내 예상대로 아직 노을은 생기지 않았다.

보통 9시 쯤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그 시간 쯤이면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대신 골든 타임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기.

햇빛이 적당히 땅을 금빛으로 물 들일 때.

 

담소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전거 타는 아이
난간에 초점을 맞추어.
골든 타임.
지하철로는 아침보다 더 금빛을 띤다.
쨍!
노상콜라, 옆에는 낚시 준비 중.
아침보다 사람 수가 월등히 많다.
다리를 도대체 몇 개나 찍는 거야?!!
다리에 맺힌 해.
깨알 디에세랄 셀카.
오늘만 몇 번 온거지 여기. 3번?
Ой, мороз, мороз... Не морозь меня... 여름에 흘러나오는 '추위'의 노래.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노보시비르스크에서의 하루도 저물어 갔다. 

드미트리와 니나의 모교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가 위치한 아카뎀고로독도 갔다 왔고,

오페라하우스도 구경하고, 공원도 좀 보고, 오비 강도 좀 걸었다.

비록 니나가 말한 '건축이 정말 이쁘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는 못한 한나절이었지만, 

결국 의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명문대 캠퍼스를 누려봤다는 것, 시베리아 제 1도시를 들렸다는 것 아니겠는가.

지하철도 처음 타보고... 러시아 카페 매장에서 음료수도 쏟아봤고! 물품 보관소에서 짐을 찾아 기차를 타러 갔다.

노보시비르스크역. 조금씩 노을이 져가고 있었다.
'현재 시간 약 저녁 9시 10분.'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자 이제 어디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우랄연방관구 최대 도시로.

러시아 월드컵 개최지 중 한 곳으로. 바로 예카테린부르크로 가보자고.

조금씩 지정학적 유럽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지만, 실감의 속도가 둔했던 건 왜일까.

 

Погнали!
예카테린부르크로 가자.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 사이의 구간에 비하면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기차에서 보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말동무가 되어준 드미트리, 정말 비슷한 눈높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거리 열차를 탄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정말 역대급으로 기억에 남는 친구였다.

 

차창풍경. 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
간이매점에서 산 탄산수. 너무 목이 말랐던 터라 그랬는 지는 몰라도 너무 달콤했다.
시골마을, 어딘지도 모르는.

"저기, 나랑 자리 좀 바꿔도 괜찮을까? 네 맞은 편에 자네랑 비슷한 나잇대 총각이 있으니 늙은이랑 합석하는 것 보단 나을테야."

 

기차에 타자마자 내 좌석 뒤편에 있는 할머니분이랑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예매를 하는 과정에서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없어서 띄엄띄엄 앉게 되었나보다.

좌석에 짐을 놓으려 하자마자 들은 말이다. 다행히 짐 정리를 다 안 끝내서 다행이지.

나도 나랑 비슷한 나잇대 사람이랑 소통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 흔쾌히 자리를 바꿔줬다.

잠시 담배를 피러 나갔던 건지 뭔지는 몰라도,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보이지 않았다.

 

(대본은 약간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좀 된 일이라, 대충 대화 테마만 기억나거든요.)

출발할 시간이 거의 다 돼 갈 때 쯤 돼서야 엄청 젊어보이는 남자애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어, 거기 님 자리 아닌디..."

"저 할머니 분이랑 자리 바꿨어"

"앟하...!" (편의상 반말로 쓰겠음.)

그러더니 윗층으로 기어 올라가버렸다.

나도 하루종일 걸어 피곤해서 좌석을 펼치고 누워 있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 날에 엄청난 토크쇼가 벌어질 줄 모르고...

 

"어디서 왔어?"

"한국. 남한에서 왔어."

"오, 한국? 뭐야, 너 여행하는 중인 거야?"

"응,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출발했어. 알혼 섬에 5일 정도 있었고, 이르쿠츠크에 하루 정도 있었어."

"앟하... 어땠어?"

"엄청 좋았어. 특히 사람들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

몇 초 정도 정적이 지나고 이젠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근데 넌 어디 가?"

"노보시비르스크."

"어! 나도 노보시비르스크 가는데!"

"엥? 정말? 얼마나 있을 거야?"

"음.. 반나절 정도? 넌 노보시비르스크 왜 가는 거야?"

"학교에 할 일이 있어서."

"아아..."

"너 근데 노보시비르스크 가면 어디 갈거야?"

"몰라? 추천해줄 곳 있어?"

"솔직히 시내는 그렇게 볼 게 많지 않아. 아카뎀고로독 한 번 가봐. 거긴 좀 갈만해."

"음? 거기는 뭐하는 곳이야?"

"학교 캠퍼스야,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대학교(НГУ). 내가 다니는 학교이기도 해."

"오... 너 공부 잘했나 보네. 거기 명문대잖아!"

"뭐... 그렇지. 참, 너 근데 이름이 뭐야?"

"OO야. 발음하기 불편하면 이고르라고 불러도 돼."

"OO? 나 똑바로 발음하고 있어?"

"아니, 00이 아니라 OO."

"O0."

"뭐, 그럴싸하네."

"난 디마야."

"드미트리?"

"ㅇㅇ"

"만나서 반가워."

"나도."

 

중간 정거장에 있었던 흉상.

생각보다 대화가 처음부터 꽤나 순조롭게 잘 이어졌다.

노보시비르스크대 학생이라, 우리나라로 치면 성균관대 학생이랑 만난 셈이다.

사실 니나도 이 학교에 다닌다. 노보시비르스크가 건축물이 예쁘다니 뭐니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도시를 찬양하곤 했다. 한국 같았으면 "니나라는 애 알아"하고 물었을 건데

니나의 부칭과 성도 모르는 판인데다 겨우 반나절 만난 사람을 거론하긴 그래서 물어보진 않았다.

알리가 없지, 지질학 쪽 전공한다고 했나, 아무튼 인문계 쪽은 아니였으니까.

 

"너 근데 몇살이야?"

디마가 내 나이를 물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초면에 나이를 물어보는 문화가 있는 듯 하다.

여때까지 내가 거친 사람들은 다 한 번 씩 나이를 묻곤 했으니.

외국인들 나이 안 묻는다고 하는 사람 어디갔어? 미국인 한정이겠지.

"몇 살 같아?"

"음... 음...... 19? 20?"

"ㅋ."

"아니야?"

"그거 보다 조금 많아."

"21?"

"흠... 미리 고맙다고 해두지. 10월에 24살 돼." - 국제 나이 기준.

"엥?! 말도 안돼! 나랑 나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넌 몇 살인디?"

"18살이야."

"엥? 너 새내기였어?"

"응. 야, 너 근데 24살인 거 안 믿긴다."

"ㅋㅋㅋㅋㅋ. 러시아에선 다 그렇다고들 하더라."

디마 뿐만이 아니다. 니나도, 유람선 친구들도, 칭기즈도 나를 거의 저 나잇대로 봤다.

동양인들 나이를 잘 못 맞춘다고들 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국에서는 항상 내 나이보다 높게들 부르는데...

"근데 한국에서는 나 27-29 정도로 보고, 심지어 30대라는 말 까지 들어봤어."

"말도 안돼!"

어이없는 웃음을 짓더라.

 

"너 근데 어디서 왔어?"

"울란우데, 거기가 내 고향이야."

"아아. 블라디에서 이르쿠츠크 갈 때 역만 잠시 들렀었어."

"아 그래?"

"거기 나 같이 생긴 사람들 되게 많더라."

"ㅋㅋㅋ. 뭐 그렇지, 너 같이 생긴 애들 민족들 부랴트 족이야."

"ㅇㅇ..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정도로 비슷할 줄은 몰랐어. 너는 슬라브 족이야?"

"아니 혼혈이야. 아빠는 러시아 쪽이고 엄마는 부랴트 쪽이야. (혹은 반대일 수도...)"

"우와. 너 그럼 부랴트 어도 할 줄 알아?"

"음... 잘 못해. 부랴트어를 쓸 일이 거의 없거든. 집에서도 러시아어 써."

"아-하."

 

크라스노야르스크 역.  역전 광장에는 공사중이었다. 

"너는 그럼 순수 한국인이야?"

"응, 한국에는 혼혈이 잘 없어."

"아 그래? 그럼 거기 거의 한국인 밖에 없는거야?"

"거의 그렇지. 혼혈이 있긴 한데,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아아."

 

더 이상 대화방식으로만 서술하지 않겠다.

분량이 엄청 많아질 수도 있으니.

 

한국어로 이름도 써주고, 한국어 표현도 조금 가르쳐 줬다.

걔도 부랴트어 표현 몇 개 가르쳐주고(물론 기억은 못함...) 그랬다.

 

그 말을 어떻게 또 엿들었는지 옆좌석에 있는 가족 승객들이 우리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타르계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카잔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어! 타타르어랑 부랴트어랑 되게 비슷하네??"

여자애가 특히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카잔에도 갈 참이었으니 타타르어도 좀 알아갔다.

여자애가 타타르어를 잘 못하니,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랑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타타르사람이 타타르어도 못한다고 엄청 나무랐던 기억이 있다.

 

언어학(?) 쪽으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여자애가 내 국적을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오오! 나 일본 문화에 관심 있어. 애니메이션 되게 좋아해!"

미안하다... 난 애니에 관심이 없어. 니나가 중국 이웃나라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듯 얘도 그런 것 같다.

"한국에 잘 생긴 사람 되게 많다, 그치?" - 내 얼굴 보면 모르니? 아이의 환상을 깨트리면 안될 것 같아서 맞다고는 했다.

뭐 아이돌은 잘 생겼긴 했지. 갑자기 개 먹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당연히 나는 안 먹는다고 말했다.

일본어랑 한국어랑 비슷하냐길래, 글로 써주고 발음까지 해가면서 다르다는 걸 입증해줬다.

"문법은 비슷해도, 언어는 완전히 달라. 한국어로 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하세요)는 '안녕하세요'고,

일본어로 안녕하세요는 '곤니치와'야. 거봐, 완전 다르지?"

타타르 여자애는 물론 디마도 굉장히 신기해했다. 가까이 있는 나라의 언어가 이렇게 많이 다르다니!

"그래도 일본도 한국도 한자어는 발음이 비슷한 경우도 있어. 한국어로 просто(간단하다)는 '간단하다'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칸딴다'라고 하지."

 

이 쯤 되면, 한국産 고프닉 ㅇㅈ?. Pictured by Dmitry

부랴트어에서 시작된 언어학적 테마는 결국 "젠말놀이"까지 이어졌다.

"야, 한국어 젠말(скороговорка) 좀 보여줘."

"스코로고보르카? 그게 뭐야?"

"이런 거 있잖아 왜, Везет Сенька Саньку с Сонькой на санках. Санки скок, Сеньку с ног, Соньку в лоб, все — в сугроб."

"아... 나 많이는 모르는데...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그렇게 또 서로의 젠말놀이를 교환했다. 나는 젠말놀이를 배우지 못해 인터넷이 될 때 젠말놀이를 찾아서 들려줬다가

내가 오히려 엄청 버벅대서 엄청 쪽 팔았다. (경찰청 쇠창살 쇠철창살... 이거 하다가 식겁했다..)

젠말 놀이 이야기하다가 문자 마방진 이야기까지 나오고, 그게 또 힙합으로 이어져서 서로 노래도 교환하고

아무튼 계속 꼬리에 꼬리를 트고 대화가 이어갔다. 울란우데 레닌 두상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정차시간이 1시간 정도로 길었던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서 내게 해바라기 씨를 전파시켜줘서 나를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게 뭔지 알아? 이게 바로 러시아 정부에서 유일하게 허용하는 마약이야."

처음에 해바라기씨를 왜 먹지 싶었는데, 10개 정도 먹어보니 나도 이 러시아 마약에 빠지기 시작했다.

잠시 환각 증세가 와서 고프닉 자세로 씨 까먹는 시늉 하면서 카메라를 걔한테 넘겼다. 

"와-시, 이거 완전 카레이스키 고프닉이구만!"

대화를 하다가 점점 소재가 고갈되어 가니까, 서로 해바라기씨를 미친듯이 까먹기 시작했다.

해바라기 씨를 손으로 일일이 까서 먹으니까, 먹는 방법까지 나한테 가르쳐 줬다.

 

-내가 축구만 좋아했다면, 더 재밌는 대화를 나눴을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하다, 나는 스포츠에 관심이 1도 없어 ㅠㅠ...

 

드미트리가 산 해바라기씨 한 봉지로는 간에 기별도 안 찼다.
할바와 초코파이. 칼은 차장이 빌려줬다. 초코파이는 드미트리가 준거. 중간에 정차할 때 한 박스 사더니 계속 까먹더라.

해바라기 씨 하니까 생각난건데, 이르쿠츠크 마트에서 산 할바를 무작정 뜯어버렸다.

나는 또 사탕같은 건 줄 알았는데, 먹어 보니까 그냥 구수한 설탕 덩어리였다.

대담하게 한 덩어리 잘라서 먹었더니, 죽는 줄 알았다.

드미트리가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이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지만,...

쌩까고 무작정 입에 넣은 죄였다.

못 먹을 것 같으니 드미트리에게 좀 먹어라고 건내줬다. 단호하고 정중하게 거절하더라.

옆 좌석의 타타르 가족분들에게도 줬더니 씩 웃으면서 해맑게 거절했다.

하도 먹을 사람이 없으니 지나가는 차장한테도 좀 먹어라고 했더니 살 찐다고 안 먹더라.

(이미 살 엄청 쪄 있더만... 좀 먹어주지 ㅠㅠ)

결국 미친듯이 홍차를 마셔가며 반 정도 먹고 반은 버렸다. 흐하하핳;

 

이걸 또 맞춰주고 앉았다 얘는.ㅋㅋㅋㅋㅋㅋ

어찌 되었든 수다 떨다가, 누워서 좀 쉬었다가 하다 보니 밤이 찾아왔다.

"기념으로 셀피나 찍자." - 병맛스런 표정을 지을 때 병맛스럽게 받아주는 러시아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어;;ㅋㅋㅋㅋ 맘에 들어 아주.

샤워 걱정을 하자, 아마 샤워실이 있을 거라는 답을 해줘서 살짝 희망이 생겼다.

3일을 씻지도 않고 달린 적도 있었긴 했는데, 그렇다 한들 더러운 몸상태를 하루 이상 지속하고 싶진 않은 건 여전했다.

"너 근데 짐은 어떻게 하려고?" - "물품 보관소에 맡겨야지!"

"그럼 내일 물품 보관소까진 같이 가자. 그리고 난 선약이 있어서 빠이빠이 쳐야될 것 같아."

"아 정말? 고마워! ㅋㅋㅋ 굿밤해."

어제 그 시간대에 했던 것 처럼 윗층에 기어올라갔고, 나도 좌석을 펼쳐서 잠을 청했다.

뭔가 아쉬웠다. 뭔가 드미트리같은 놈은 안 나올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사람마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덜컹거리는 기차 속에서 꽤 힘겹게 잠에 들...기는 개뿔 잘만 잤다.

 

노보시비르스크역.
잘 가거라.

노보시비르스크 역에 내리고, 인스타그램 계정 교환...은 진작에 했고

물품 보관소까지 데려다 주고, 작별포옹하고 서로 갈 길 갔다.

 

다행히 노보시비르스크역에 샤워실이 있었고,

150루블이었나 200루블이었나 그 정도 주고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로 향했다.

니나가 추천해준 바디워시, 되게 괜찮았었다. 한국 바디워시에 뒤지지 않았다.


남은 학교생활 재밌게 하고, 앞길에 항상 재밌는 일,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이루고 싶은 것 다 이루고, 한국 오면 꼭 연락하길.

정말 고마웠고, 죽을 때 까지 이 좋은 추억 꼭 간직하도록 할게.

Ведь мы же на ты!

 

타타르 가족 여러분들도, 가정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여러모로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 디마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인연 닿은 사람들 모두 한국 오면 연락하길!

 

 

노보시비르스크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