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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첫 날 카잔 크렘린을 서성이다가 어떤 여자애를 만났다고 했다.

이름은 알리나, 당시 국제 나이로 17살이었나 그랬던 걸로 기억난다. 아무튼 정말 어렸다.

타타르인 여자애였는데, 형제 자매가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4명이었나 5명이었나.

아무튼,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정말 많은 친구였고, 시간을 맞춘 끝에 모스크바 가기 전에 한 번 보기로 했다.

우선 카잔역으로 가서 캐리어를 맡긴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정말 간만에 올려 보는 음식 사진. 

아주 예전 같았으면 음식을 시키는 족족 사진을 찍어대곤 했겠지만, 저 땐 그냥 무작정 먹느라 바빠 사진 찍는 걸 종종 깜빡한 듯 했다.

어찌 되었든 알리나와 만나기 전 고향의 맛 비스무리한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 바우만 거리에서 눈에 띄는 롤스시집으로 향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최대한 싼 걸로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한 500~600루블 나온 듯?

맛은 그냥 뭐 나쁘진 않았다.

 

아무튼, 배때기를 대강 채운 뒤 크레믈 쪽에서 만났다. 

"카잔 어디 어디 갔어?"

"음... 어지간한 곳은 다 간 것 같은데... 크렘린, 바우만 거리, 농민 궁전에서 강변 좀 타다가 카잔연방대 쪽으로 쭉 걸어가면서

검은 호수, 카반 호수쪽, 그 뭐 인형 극장같은 데 까지 쭉 걸어갔어."

"뭐 갈 덴 다 가봤네... ㅎㅎ. 흠 그럼 어디 가보지..?"

"그 강 건너편에 컵 같이 생긴 건축물 있잖아, 거기 쪽은 안 가봤어."

"앟하, 그럼 함가볼까?"

"ㅇㅋ"

 

그리고 진짜 원없이 걸었다. 걸으면서 이것 저것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다.

카잔에 한국인 많지 않냐, 장래희망이 뭐냐, 타타르어 할 줄 아냐 등등...

2년 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지금 당장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로 저어어어어기! 카잔 패밀리 센터 (Центр семьи Казани)

저기 위에 전망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알리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약간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누구는 있다고 하고 누구는 없다고 하고... 전망대 가면 표를 사야 될 건데, 아직 미성년자였던 알리나에게 큰 부담이 될 것 같아 있든 없든 근방에서 사진 찍었다.

저 건축물이 카잔 도시와 관련된 신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크세니아가 설명해 줬었다.

 

크렘린 측면도.

 

강을 건너고 나면 이런 진귀한 모습이 보인다. 크렘린 속에 있는 건축물들이 한 눈에 다 보인다고나 할까..?

 

건너편 강변에서 보이는 크렘린 쪽. 썬텐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다.
표정 왜 저렇지?

카잔이라는 도시는 뭔가 용이랑 많은 관련성이 있는 도시인 듯 하다. 크렘린 앞에도 용 동상이 있었고, 저 카잔 패밀리 센터에서도 용조각이 컵을 휘감고 있으니...

이 와중에 뒷편에 보면 용동상이 하나 더 있다. 용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 도시냐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왜 안 물어봤는지 참 후회스럽다.

 

패밀리 센터까지 도착하고 나니 딱히 갈 데가 없다고 하니 반대편에 가면 밀레니움 다리가 있다며 가자고 했다. 

그렇게 햇볓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 나와 알리나는 강변 따라 쭈우우우욱 걸어갔다.

머리카락... 완전 절정이었지.
이런 아파트 단지의 연속이었다. 여기는 이스탄불 광장.

 

이스탄불 광장. 분수대에 비둘기가... 어우...
밀레니엄 대교 가는 길. 패밀리센터랑 크렘린이 동시에 보이는 스팟에서 한 컷.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진 않았다. 알리나랑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느라 사진찍는 건 늘 뒷전이었다.

동행이 있으면 뭐 늘 그랬듯.. ㅎㅎ 아파트 숲을 지나고 지나 선탠을 즐길 수 있는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모래사장이 펼쳐진 대로 쭉 가다보니 전람차랑 아쿠아리움이 보이고, 거기서 보이는 다리가 바로 밀레니엄 다리라고 한다.

 

전람차. 조금만 더 가면 밀레니엄 다리.
밀레니엄 다리. 카잔 주민들 사이에서는 '맥도날드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유는... 독자 각자가 잘 아시시라 믿음.
들개인지 떠돌이개인지...

 

햇볓이 강하게 내려쬐는 날에 진짜 무작정 걸었다. 다행히 우리나라 여름처럼 그렇게 습하진 않아 그늘로 가면 좀 버틸만 했다.

알리나가 나한테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카잔은 왜 왔냐, 러시아 친구는 있냐, 어디 어디 갔다 왔냐.

한국으로 유학 갈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 아몰랑 ㅋㅋㅋ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 이야기해주고, 음식같은 거 이야기 해주고.

다소 기존에 만났던 러시아 여자들과 달리 쑥스러움이 많은 친구였지만,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걔가 쑥스러움을 타니까 오히려 내 입이 바빠진달까.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봤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냥 그렇게 체감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얘가 질문을 하면, 거기서 살을 붙여서 더 이야기하곤 했던 것 같다.

나름 소녀소녀한 풋풋함이 정말 좋았다. 물론 이성적으로 끌린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

 

이 다리 쯤 오니 알리나가 갑자기 목이 마르댄다. 일단 밀레니엄 다리를 건넌 뒤 슈퍼마켓을 막 찾아 헤맸다.

나도 다리가 조금 아파오기 시작해서 조금 쉬려고 필사적으로 슈퍼마켓을 찾는 데 동조하기도 했다.

 

월드컵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지라 월드컵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 남아있었다.

근처 슈퍼에서 알리나가 물을 사고, 약간의 휴식을 좀 취했다가 버스를 타고 시내 부근으로 갔다.

버스에 어떤 여성분이 기절해서 쓰러졌다. 알리나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턱 하고 쓰러진 것이다.

놀래서 얼타고 있을 즈음에 우락부락한 러시아 아저씨 두 분이 물 뿌려주면서 응급처치를 했다.

알리나와 나는 둘 다 겁먹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응급처치를 마친 아저씨들을 보고, 나 자신이 한심했다. 쓰러질 즈음에 내가 잡아줄 수도 있는데 지레 겁 먹어서 멍이나 때리고 앉았으니...

뭐 아무튼 바우만 거리 쯤에서 내렸다. 마침 저녁시간대여서 알리나가 물었다.

 

"배 안 고파?"

"음, 약간 고프긴 해. ㅎㅎ"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아무거나 잘 먹어서 하나 딱 선택하기가 어렵네."

"아, 내가 괜찮은 스탈로바야 아는데, 거기 한 번 가볼래?"

"한 번 믿어보갔어. ㅋㅋㅋ 가보자."

 

하누마(Ханума). 러시아에서 가 본 스탈로바야 중 상위권이었음.

 

저 때 플롭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고, 처음 먹어봤다. - 아마 그럴 듯. ㅎㅎ

콤포트랑 타타르식 삼사, 샤슬릭이라 불렸던 고기 꼬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정말 버릴 것 없이 맛있었지만 당시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았기에 많이 시키진 않았다.

사진을 보면 맞은 편에 알리나의 몸이 보이는데, 저렇게 음료수만 홀짝댔다.

그래, 질리도록 먹곤 하겠지. 아니면 외식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아마 후자가 가능성이 더 클 듯하다.

 

야외 테라스도 있고 내부에도 좌석이 있는데, 분위기도 목조 건물 느낌나게 지어서 되게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주로 파는 음식들도 주로 타타르 음식이랑 러시아 음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부를 안 찍어놔서 아쉬운데,

구글이나 얀덱스 지도에 Ханума나 Khanuma 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호스텔이랑 카페도 겸하는 것 같으니 관심있으면 찾아보시길.

 

저 멀리 서커스 극장이 보인다. 이 길을 쭉 따라 갔다.
나룻배. 갬성 있네.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분수가 한창이다.

아무튼 밥을 다 먹고,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따라갔다. 

불락 강을 따라 쭉 걷다보니 나를 놀라게 한 게 있었으니 바로

 

 

"쏜-힁-민!"

불락 강의 끝자락에 손흥민 선수랑 황희찬 선수가 있었다. 

사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지만, 이역만리 타국에 한국 선수가 무려 두 명이나 이렇게 있으니 의아하긴 했다.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보고 사진도 좀 찍어보고 그랬다. 그리고 얘한테 물어봤다.

 

"너 손흥민 누군지 알아?"

"ㅇㅇ 알지! 엄청 유명하잖아!"

"오오... 야 진짜 놀랍다 이거. ㅋㅋㅋㅋㅋ"

 

역시 진가를 알아보긴 하는구나. 

 

"황희찬 이 사람은 누군지 알아?"

"응... 뭐, 알지."

 

솔직히 황희찬 선수는 잘 몰라서 아는 척 연기하느라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

거의 기차 시간도 다 와가고 하니 마지막으로 크렘린 주변을 보기로 했다.

둘다 오랜 산보로 지쳐있어 말 수는 이전보다 좀 줄어들었다. 카잔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의식이 흐르는 대로 막 말한 것 같다.

"여기 3박 4일 있었던거 절대 후회 안 돼. 처음엔 인터넷에서 본 하얀 크렘린을 보고 반해서 여기로 왔는데,

크렘린은 둘째치고, 도시가 너무 깔끔하기도 하고, 사람들도 정말 좋고 뭐 그랬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가 좋구만."

 

골든타임의 크렘린. 전봇대가 좀 아쉽네.
골든 타임의 타타르스탄 국립 박물관.
프로프사유즈(Профсоюзная) 길에서.
레스토랑 주차장.

알리나가 한국어를 조금은 할 줄 알아서 그런가 의사 소통은 어느 정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아직 그 때는 그렇게 유창하게 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좀 많이 늘었을라나?

내 인스타 언팔로우 해놔서 나도 언팔을... 했긴 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안부 물어보면 답을 해 줄라나.

아, 얘는 내 카톡 아이디가 있구나. 그 때의 추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그러는데 한 번 말 걸어봐야 겠다.

 

잰말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간장공장공장장...이랑 안촉촉한초코칩...을 하니까 애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녹음을 다짜고짜 했다.

처음에 Скороговорка라는 말을 까먹어서, Мы же на ты, мы женаты 이런 말장난으로 착각했다.

 

"너 러시아어 스코로고보르카(잰말놀이) 알아?"

"말장난 같은거야?"

"그런 셈이지."

"응, 기차에서 배웠어. 우리 결혼한 사이잖아(Мы женаты)"

"...응?"

"아니, 아니, 우리 말 놓은 사이잖아(Мы же на ты).. 이런 말장난 말하는 거 아니였어?"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말고 이런 거 있잖아 @ㅃ$^@%$^@# 이런거!"

"아아아아! 슐라사샤빠쇼셰사살라수쉬쿠 이런거?"

"응!! 더 아는 거 있어?"

"음... 지금 기억나는 건 없네."

....

 

이런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좀 떼우다가, 나도 기차시간이 다 되어가고, 알리나도 집 들어갈 시간이 돼서

인스타 계정 교환을 한 뒤 작별했다.

 


아직도 한국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그 때 한 번 보자고.

앞으로도 그 열정 잊지 않은 채 열심히 공부해서, 한러간 견고한 교각이 되길.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에 한국이나 카잔에서 또 보자고!


한 밤중에 기차를 타고 잠시 자고 일어나보니 어떤 여성 분이 맞은 편에 앉아있었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은 없었지만, 도착하기 몇 분 전에 여성분 뿐만 아니라 주변 좌석에 있던 몇 분이 내게로 몰려와

모스크바 명소를 하나 하나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굼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맛있다나 뭐라나.

숨은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보태닉 정원(Ботанический сад)을 추천하더라. -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괜찮았는데!

 

정말 여러모로 러시아는 정이 넘치는 나라다. 누가 '아직까지' 스킨헤드가 득실대고, 인종차별 개 심하다 했던가!

적어도 여행객 입장에서 두 번 사기를 당했음 당했지(사기꾼은 어딜 가든 넘치니까), 인종차별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3주에 걸쳐 블라디보스톡부터 모스크바까지 갔다.

모스크바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 황홀한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옛날에 '상경을 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기도 했다.

옛날에는 고향에서 서울까지가 그렇게 천릿길이라 그러던데 (참고로 나는 거제사람...)

그 천릿길보다 더 되는 길을 거쳐 모스크바로 도착한 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설렘이 가득했다.

 

붉은 광장! 볼쇼이 극장! 굼! 쭘! 모스크바 시티! 기다려라, 내가 간다!

 

드디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