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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 사이의 구간에 비하면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기차에서 보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말동무가 되어준 드미트리, 정말 비슷한 눈높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거리 열차를 탄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정말 역대급으로 기억에 남는 친구였다.

 

차창풍경. 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
간이매점에서 산 탄산수. 너무 목이 말랐던 터라 그랬는 지는 몰라도 너무 달콤했다.
시골마을, 어딘지도 모르는.

"저기, 나랑 자리 좀 바꿔도 괜찮을까? 네 맞은 편에 자네랑 비슷한 나잇대 총각이 있으니 늙은이랑 합석하는 것 보단 나을테야."

 

기차에 타자마자 내 좌석 뒤편에 있는 할머니분이랑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예매를 하는 과정에서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없어서 띄엄띄엄 앉게 되었나보다.

좌석에 짐을 놓으려 하자마자 들은 말이다. 다행히 짐 정리를 다 안 끝내서 다행이지.

나도 나랑 비슷한 나잇대 사람이랑 소통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 흔쾌히 자리를 바꿔줬다.

잠시 담배를 피러 나갔던 건지 뭔지는 몰라도,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보이지 않았다.

 

(대본은 약간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좀 된 일이라, 대충 대화 테마만 기억나거든요.)

출발할 시간이 거의 다 돼 갈 때 쯤 돼서야 엄청 젊어보이는 남자애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어, 거기 님 자리 아닌디..."

"저 할머니 분이랑 자리 바꿨어"

"앟하...!" (편의상 반말로 쓰겠음.)

그러더니 윗층으로 기어 올라가버렸다.

나도 하루종일 걸어 피곤해서 좌석을 펼치고 누워 있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 날에 엄청난 토크쇼가 벌어질 줄 모르고...

 

"어디서 왔어?"

"한국. 남한에서 왔어."

"오, 한국? 뭐야, 너 여행하는 중인 거야?"

"응,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출발했어. 알혼 섬에 5일 정도 있었고, 이르쿠츠크에 하루 정도 있었어."

"앟하... 어땠어?"

"엄청 좋았어. 특히 사람들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

몇 초 정도 정적이 지나고 이젠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근데 넌 어디 가?"

"노보시비르스크."

"어! 나도 노보시비르스크 가는데!"

"엥? 정말? 얼마나 있을 거야?"

"음.. 반나절 정도? 넌 노보시비르스크 왜 가는 거야?"

"학교에 할 일이 있어서."

"아아..."

"너 근데 노보시비르스크 가면 어디 갈거야?"

"몰라? 추천해줄 곳 있어?"

"솔직히 시내는 그렇게 볼 게 많지 않아. 아카뎀고로독 한 번 가봐. 거긴 좀 갈만해."

"음? 거기는 뭐하는 곳이야?"

"학교 캠퍼스야,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대학교(НГУ). 내가 다니는 학교이기도 해."

"오... 너 공부 잘했나 보네. 거기 명문대잖아!"

"뭐... 그렇지. 참, 너 근데 이름이 뭐야?"

"OO야. 발음하기 불편하면 이고르라고 불러도 돼."

"OO? 나 똑바로 발음하고 있어?"

"아니, 00이 아니라 OO."

"O0."

"뭐, 그럴싸하네."

"난 디마야."

"드미트리?"

"ㅇㅇ"

"만나서 반가워."

"나도."

 

중간 정거장에 있었던 흉상.

생각보다 대화가 처음부터 꽤나 순조롭게 잘 이어졌다.

노보시비르스크대 학생이라, 우리나라로 치면 성균관대 학생이랑 만난 셈이다.

사실 니나도 이 학교에 다닌다. 노보시비르스크가 건축물이 예쁘다니 뭐니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도시를 찬양하곤 했다. 한국 같았으면 "니나라는 애 알아"하고 물었을 건데

니나의 부칭과 성도 모르는 판인데다 겨우 반나절 만난 사람을 거론하긴 그래서 물어보진 않았다.

알리가 없지, 지질학 쪽 전공한다고 했나, 아무튼 인문계 쪽은 아니였으니까.

 

"너 근데 몇살이야?"

디마가 내 나이를 물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초면에 나이를 물어보는 문화가 있는 듯 하다.

여때까지 내가 거친 사람들은 다 한 번 씩 나이를 묻곤 했으니.

외국인들 나이 안 묻는다고 하는 사람 어디갔어? 미국인 한정이겠지.

"몇 살 같아?"

"음... 음...... 19? 20?"

"ㅋ."

"아니야?"

"그거 보다 조금 많아."

"21?"

"흠... 미리 고맙다고 해두지. 10월에 24살 돼." - 국제 나이 기준.

"엥?! 말도 안돼! 나랑 나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넌 몇 살인디?"

"18살이야."

"엥? 너 새내기였어?"

"응. 야, 너 근데 24살인 거 안 믿긴다."

"ㅋㅋㅋㅋㅋ. 러시아에선 다 그렇다고들 하더라."

디마 뿐만이 아니다. 니나도, 유람선 친구들도, 칭기즈도 나를 거의 저 나잇대로 봤다.

동양인들 나이를 잘 못 맞춘다고들 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국에서는 항상 내 나이보다 높게들 부르는데...

"근데 한국에서는 나 27-29 정도로 보고, 심지어 30대라는 말 까지 들어봤어."

"말도 안돼!"

어이없는 웃음을 짓더라.

 

"너 근데 어디서 왔어?"

"울란우데, 거기가 내 고향이야."

"아아. 블라디에서 이르쿠츠크 갈 때 역만 잠시 들렀었어."

"아 그래?"

"거기 나 같이 생긴 사람들 되게 많더라."

"ㅋㅋㅋ. 뭐 그렇지, 너 같이 생긴 애들 민족들 부랴트 족이야."

"ㅇㅇ..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정도로 비슷할 줄은 몰랐어. 너는 슬라브 족이야?"

"아니 혼혈이야. 아빠는 러시아 쪽이고 엄마는 부랴트 쪽이야. (혹은 반대일 수도...)"

"우와. 너 그럼 부랴트 어도 할 줄 알아?"

"음... 잘 못해. 부랴트어를 쓸 일이 거의 없거든. 집에서도 러시아어 써."

"아-하."

 

크라스노야르스크 역.  역전 광장에는 공사중이었다. 

"너는 그럼 순수 한국인이야?"

"응, 한국에는 혼혈이 잘 없어."

"아 그래? 그럼 거기 거의 한국인 밖에 없는거야?"

"거의 그렇지. 혼혈이 있긴 한데,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아아."

 

더 이상 대화방식으로만 서술하지 않겠다.

분량이 엄청 많아질 수도 있으니.

 

한국어로 이름도 써주고, 한국어 표현도 조금 가르쳐 줬다.

걔도 부랴트어 표현 몇 개 가르쳐주고(물론 기억은 못함...) 그랬다.

 

그 말을 어떻게 또 엿들었는지 옆좌석에 있는 가족 승객들이 우리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타르계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카잔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어! 타타르어랑 부랴트어랑 되게 비슷하네??"

여자애가 특히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카잔에도 갈 참이었으니 타타르어도 좀 알아갔다.

여자애가 타타르어를 잘 못하니,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랑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타타르사람이 타타르어도 못한다고 엄청 나무랐던 기억이 있다.

 

언어학(?) 쪽으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여자애가 내 국적을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오오! 나 일본 문화에 관심 있어. 애니메이션 되게 좋아해!"

미안하다... 난 애니에 관심이 없어. 니나가 중국 이웃나라 사람에게 흥미를 가지듯 얘도 그런 것 같다.

"한국에 잘 생긴 사람 되게 많다, 그치?" - 내 얼굴 보면 모르니? 아이의 환상을 깨트리면 안될 것 같아서 맞다고는 했다.

뭐 아이돌은 잘 생겼긴 했지. 갑자기 개 먹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당연히 나는 안 먹는다고 말했다.

일본어랑 한국어랑 비슷하냐길래, 글로 써주고 발음까지 해가면서 다르다는 걸 입증해줬다.

"문법은 비슷해도, 언어는 완전히 달라. 한국어로 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하세요)는 '안녕하세요'고,

일본어로 안녕하세요는 '곤니치와'야. 거봐, 완전 다르지?"

타타르 여자애는 물론 디마도 굉장히 신기해했다. 가까이 있는 나라의 언어가 이렇게 많이 다르다니!

"그래도 일본도 한국도 한자어는 발음이 비슷한 경우도 있어. 한국어로 просто(간단하다)는 '간단하다'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칸딴다'라고 하지."

 

이 쯤 되면, 한국産 고프닉 ㅇㅈ?. Pictured by Dmitry

부랴트어에서 시작된 언어학적 테마는 결국 "젠말놀이"까지 이어졌다.

"야, 한국어 젠말(скороговорка) 좀 보여줘."

"스코로고보르카? 그게 뭐야?"

"이런 거 있잖아 왜, Везет Сенька Саньку с Сонькой на санках. Санки скок, Сеньку с ног, Соньку в лоб, все — в сугроб."

"아... 나 많이는 모르는데...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그렇게 또 서로의 젠말놀이를 교환했다. 나는 젠말놀이를 배우지 못해 인터넷이 될 때 젠말놀이를 찾아서 들려줬다가

내가 오히려 엄청 버벅대서 엄청 쪽 팔았다. (경찰청 쇠창살 쇠철창살... 이거 하다가 식겁했다..)

젠말 놀이 이야기하다가 문자 마방진 이야기까지 나오고, 그게 또 힙합으로 이어져서 서로 노래도 교환하고

아무튼 계속 꼬리에 꼬리를 트고 대화가 이어갔다. 울란우데 레닌 두상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정차시간이 1시간 정도로 길었던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서 내게 해바라기 씨를 전파시켜줘서 나를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게 뭔지 알아? 이게 바로 러시아 정부에서 유일하게 허용하는 마약이야."

처음에 해바라기씨를 왜 먹지 싶었는데, 10개 정도 먹어보니 나도 이 러시아 마약에 빠지기 시작했다.

잠시 환각 증세가 와서 고프닉 자세로 씨 까먹는 시늉 하면서 카메라를 걔한테 넘겼다. 

"와-시, 이거 완전 카레이스키 고프닉이구만!"

대화를 하다가 점점 소재가 고갈되어 가니까, 서로 해바라기씨를 미친듯이 까먹기 시작했다.

해바라기 씨를 손으로 일일이 까서 먹으니까, 먹는 방법까지 나한테 가르쳐 줬다.

 

-내가 축구만 좋아했다면, 더 재밌는 대화를 나눴을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하다, 나는 스포츠에 관심이 1도 없어 ㅠㅠ...

 

드미트리가 산 해바라기씨 한 봉지로는 간에 기별도 안 찼다.
할바와 초코파이. 칼은 차장이 빌려줬다. 초코파이는 드미트리가 준거. 중간에 정차할 때 한 박스 사더니 계속 까먹더라.

해바라기 씨 하니까 생각난건데, 이르쿠츠크 마트에서 산 할바를 무작정 뜯어버렸다.

나는 또 사탕같은 건 줄 알았는데, 먹어 보니까 그냥 구수한 설탕 덩어리였다.

대담하게 한 덩어리 잘라서 먹었더니, 죽는 줄 알았다.

드미트리가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이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지만,...

쌩까고 무작정 입에 넣은 죄였다.

못 먹을 것 같으니 드미트리에게 좀 먹어라고 건내줬다. 단호하고 정중하게 거절하더라.

옆 좌석의 타타르 가족분들에게도 줬더니 씩 웃으면서 해맑게 거절했다.

하도 먹을 사람이 없으니 지나가는 차장한테도 좀 먹어라고 했더니 살 찐다고 안 먹더라.

(이미 살 엄청 쪄 있더만... 좀 먹어주지 ㅠㅠ)

결국 미친듯이 홍차를 마셔가며 반 정도 먹고 반은 버렸다. 흐하하핳;

 

이걸 또 맞춰주고 앉았다 얘는.ㅋㅋㅋㅋㅋㅋ

어찌 되었든 수다 떨다가, 누워서 좀 쉬었다가 하다 보니 밤이 찾아왔다.

"기념으로 셀피나 찍자." - 병맛스런 표정을 지을 때 병맛스럽게 받아주는 러시아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어;;ㅋㅋㅋㅋ 맘에 들어 아주.

샤워 걱정을 하자, 아마 샤워실이 있을 거라는 답을 해줘서 살짝 희망이 생겼다.

3일을 씻지도 않고 달린 적도 있었긴 했는데, 그렇다 한들 더러운 몸상태를 하루 이상 지속하고 싶진 않은 건 여전했다.

"너 근데 짐은 어떻게 하려고?" - "물품 보관소에 맡겨야지!"

"그럼 내일 물품 보관소까진 같이 가자. 그리고 난 선약이 있어서 빠이빠이 쳐야될 것 같아."

"아 정말? 고마워! ㅋㅋㅋ 굿밤해."

어제 그 시간대에 했던 것 처럼 윗층에 기어올라갔고, 나도 좌석을 펼쳐서 잠을 청했다.

뭔가 아쉬웠다. 뭔가 드미트리같은 놈은 안 나올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사람마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덜컹거리는 기차 속에서 꽤 힘겹게 잠에 들...기는 개뿔 잘만 잤다.

 

노보시비르스크역.
잘 가거라.

노보시비르스크 역에 내리고, 인스타그램 계정 교환...은 진작에 했고

물품 보관소까지 데려다 주고, 작별포옹하고 서로 갈 길 갔다.

 

다행히 노보시비르스크역에 샤워실이 있었고,

150루블이었나 200루블이었나 그 정도 주고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로 향했다.

니나가 추천해준 바디워시, 되게 괜찮았었다. 한국 바디워시에 뒤지지 않았다.


남은 학교생활 재밌게 하고, 앞길에 항상 재밌는 일,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이루고 싶은 것 다 이루고, 한국 오면 꼭 연락하길.

정말 고마웠고, 죽을 때 까지 이 좋은 추억 꼭 간직하도록 할게.

Ведь мы же на ты!

 

타타르 가족 여러분들도, 가정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여러모로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 디마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인연 닿은 사람들 모두 한국 오면 연락하길!

 

 

노보시비르스크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