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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역

한국의 지하철과 러시아의 지하철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인구 100만명 넘는 대도시로 왔으니 지하철은 타 봐야 되지 않겠는가.

오비 강으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iso 조절 깜빡함.

일단 소문대로 에스컬레이터는 깊었고, 문은 쾅 닫히고, 속도는 빨랐고, 소음은 정말 리드미컬했다.

지하철 소음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쓸데없이 신났다.

(실제로 지하철 소리에 맞춰 덩실대는 여자 봤음.)

 

 

다리가 하나 둘.

 

모닝 발랄라이카 한곡 때려주시고!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로. 시골 마을에 철로가 놓이면서 러시아 제 3의 도시가 되어버린 운빨 오지게 받은 도시. 

 

기차가 지나간다.

 

짹.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용해서 좋기도 했다.

확실히 대도시는 대도시인게, 강변의 규모가 확실히 남달랐다. 넓직넓직하고, 다리도 많이 놓이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바로 디마가 추천해 준 아카뎀고로독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 어딘가에서 내려서 조금 해맸던 것 같다. 

마르쉬루트카 타고 조금 낑겨서 갔다.

 

사람들이 많이 내린 곳에 일단 내렸더니 이런 광경이.

 

이런 자작나무 숲 속에 산책로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날파리는 덤.
밑에서 위로 찰칵.

 

이렇게 표지판도 있다.
엔게우(НГУ: Новосибир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본관인 듯 하다.
자작나무가 엄청 많다. 날파리도 엄청 많았다.
학생 기숙사거나 연구원 숙소. 색감이 맘에 든다.
무궁화는 삼천리 강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뱃지, 조각상, 동전, 컵받침 삽니다.

 

컬러풀한 아파트.

숲길을 걷다보면 주택가가 나오고, 주택가에서 조금맛 샛길로 나서면 또 숲이 우거져 있었다.

시베리아 한복판 특성상 날파리가 미친듯이 나와서 눈을 뜨기조차 힘든 정도였다.

흐루쇼프카에 컬러를 입혀서 그런가 건물들이 뭔가 정갈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이쁜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가 대로변과 마주쳤다. 어디쯤인가 싶어서 지도를 켜서 보았다.

길 따라 쭉 가서 숲을 한 번 해쳐가면 강변이 있는 것 같아 그 방면으로 쭉 가봤다.

 

야생화. 이름은 모름.
야생화.

 

기차가 지나간드아.

기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철로를 건너보니 조그만 승강장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철로에서 조금 더 들어가보니 강변을 향한 내리막길이 있었다. 

 

햇볓, 바다, 그리고 허세(?), 이 모든 게 강가에!
썬텐하는 사람, 물놀이 하는 사람. 다들 비키니를 입고 있어서 사진 찍기 두려웠다.

조금 둘러보다가 다시 돌아갔다. 뭔가 내가 있어선 안 될 곳만 같았다.

사진을 좀 많이 찍고 싶긴 했지만, 비키니 입은 사람들한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도 참 웃긴 짓 아닌가?

강물이긴 했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그냥 바다같았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만은 않으니,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술은 사랑입니다. 24시간.

 

다시 숲길을 걷는다.
또 다시 대로변은 개뿔.... 1차선이었네.

햇볓도 쨍쨍한데 그늘도 아닌 곳을 쭉 걸어갔다.

계획된 구간인만큼 길이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어 아카뎀고로독의 주택만큼이나 직관적이었다.

들꽃, 차, 흐루숍카.
진주(眞珠)로.

지상 낙원을 재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조성한 과학연구단지라는데,

알록달록한 색감과 쭉쭉 뻗은 길을 보고 "애썼네"하고 생각은 들었다.

숲과 소련식 건물, 조금만 나가면 물장구치고 썬텐 할 수 있는 강변까지.

공부하기엔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긴 했지만, 한국 대학생들이 여기서 공부한다면?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심심하다며 징징댈 게 뻔했다. 

학교 앞에 카페도 있고 마트도 있고 식당도 있고... 뭐 있을 건 다 있지만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조금 아쉬운 위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칙칙한 흐루숍카도 있다.
채도의 상하.

 

숲길을 걷다가 주택가를 걷다가 도로변을 걷다가... 다채로운 캠퍼스구만.
소비에트 바이올렛.
한국말하는 레나.

사실 아카뎀고로독 도로변을 걷다가 중간에 목도 마르고 배터리도 충전할 겸 카페에 들렸다.

들어오는데, 보통 러시아에서는 퉁명스럽게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하거나 쌩 까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 카페 들어오자 마자 미소 지으면서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잠시 한국 온 것만 같은 기억이 들었고, 이러한 예감은 뭔가를 암시하고 있었는데...

 

음료수 계산을 마치고 잔돈을 받는데, 거기 알바생이 나를 보고는 어디 사람이냐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한국 사람?"하고 한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한국어 공부한다고, 한국 문화에 관심 있다면서 엄청 좋아한 것이다.

나도 오랫만에 한국어로 대화하겠다 싶어 신이나서, 이야기 하던 도중 음료수를 매장 바닥에 쏟고 말았다.

고놈의 방정.... 어휴... 한국에서 그랬듯이 휴지 어딨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자기네들이 치우겠다 그랬다.

목이 마르니 음료수 한 컵 정도는 마셔야겠다 싶어서 다시 사려고 했지만, 계산 안해도 된다면서 그냥 하나 다시 만들어주더라.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여기 한국인이 올 곳은 아닌데 이렇게 봐서 너무 놀랍다는 말이었다.

노보시비르스크 자체에서 한국인을 많이 못보기도 한 데다가, 아카뎀고로독까지 손수 찾아오는 사람은 더욱이 없다는 말.

아이돌 누구누구 좋아하고 드라마도 정말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되게 달콤했던 걸로 기억난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맛. 호불호는 갈릴 수도 있음.

아무튼, 카카오톡 아이디 교환하고 매장을 나섰다.

잠시 좀 연락하다가 , 열차 안에서 인터넷도 잘 안잡히기도 했고, 여행에 집중하느라

연락이 길게 가진 않았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저 분이 일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kuzina 아카뎀고로독에 혹시 들릴 일 있으면 한국어 세례 받을 준비 하시길. 


음료수 쏟아서 미안하고, 리필해줘서 고마워.

아무튼, 한국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항상 밝은 미소 잃지 말고 잘 살렴.


 

새.
어느덧 중심부로 진입한 것 같다. 
더우니 체 게바라도 탐해 보고.
체 게바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인의 두상을 판다.

 

평범한 중소도시의 느낌. 학생들이랑 연구진이 몇 명인데 기본적인 인프라는 갖춰져야지.
작은 장터.
이젠 시내로 갈 시간.
삼촌 '됴네르'. 됴네르, 샤우르마, 도네르 다 '케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시내로.

 

버스정거장까지 걸어갔더니 너무 화장실이 급했는데, 주위에 화장실이 없다고 하더라. 

원래 남의 매장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지라, 고민을 꽤 했지만,

우선 내 속이 중요하니까, 주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어서 따뜻하게 마셨다 이 더운 날에...

 

그렇게 겨우 겨우 해결하고 커피를 좀 마시다 보니, 버스가 왔다.

노보시비르스크 쪽으로 간다고 해서 냅다 탔다.

그렇게 앉아서 아카뎀고로독에서 본 것들을 하나 둘 회상을 하자

어떤 여성분이 뭔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안해서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했다.

여자도 맞받아쳤다, "즈드라시쩨!"

인사를 해도 계속 빤히 쳐다보길래 무서워서 눈을 밑으로 내렸더니

손을 딱 내밀고 있었고, 허리 춤에는 표랑 잔돈이 든 허리가방을 매고 있었다.

 

"아, 차장한테 돈을 내는 시스템이였지 러시아는!"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뻘줌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돈을 쥐어 줬다.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여태까지 마르쉬루트카를 탄지라,

항상 내릴 때 돈을 지불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 잔돈과 표를 거슬러주고 유유히 다른 승객한데로 다가갔다.

 

시내 가는 길.

그렇게 러시아 시내버스라는 것을 처음 타보았다.

그리고 약 40분 정도에 걸쳐 시내로 나갔다.

잘못 착각해 조금 외곽에 내려가 레치노이 복잘(Речной вокзал)까지 걸어간 기억이 난다.

크바스! 저렴하고 맛도 좋은! (사실 마시다 보니 정 들어버림.)
인도풍의 공연이 마침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 때 보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뭔가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제서야 노보시비르스크가 광역시 규모의 도시라는 걸 깨달았다.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고, 길거리에 차도 더 많아졌다. 

시계를 보니 딱 '러시아워'였다. (Russia war 아니다.)

지하철 내부. iso 조절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도시의 활기를 조금 느낀 뒤, 지하철의 리듬을 느끼러 지하로 내려갔다.

 

노보시비르스크 향토 박물관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박물관.

 

오페라 극장, 그 앞에 놓여진 레닌 광장.
필하모니 공연 홀.
우연히 지나친 시계꽃밭.
니콜라이 예배당.
오페라 극장 맞은 편 5월 1일 광장 초입부 분수.
여유로움.
활기참.
음악.
결혼

시내에서의 동선은 오페라 극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퇴근 시간 후의 강변을 또 와야 돼 시간이 애매해서,

가장 핵심 중심부만 좀 둘러보기로 했다.

 

도시 자체의 느낌은 한국으로 치면 대전, 확실히 관광을 위한 도시는 아닌 듯.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살기에는... 잘 모르겠다, 겨울엔 안 가봐서. 

 

상인 З. Г. 크류코프의 집.
토니모리. CIS권과 우크라이나에서 꽤 본 것 같다.
저 끝에 분수.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자발적으로 공원으로 갔을까.

솔직히 거제에 있을 때는 시골이어서 굳이 공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서 패스.

진주에 있었을 때는? 요즘에야 강변을 많이 다니지만, (지금은 또 코로나 때문에 안 가긴 하지만...)

2018년에 떠난 여행 이전에는 1년에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내 사례로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특히 도시 사람들은 공원이라는 공간과 그리 친숙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노는 패턴을 보면 피씨방-노래방-당구장-술집-카페 이런 루트니까.

실내에서 노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으로서 실외생활은 그냥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다.

 

산책하기 좋은 시기엔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라오고,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나도 걸어다니는 것은 좋아하지만, 공원을 굳이 찾아가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공원이라는 공간이 선호되는 게 당연한 건 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여행했을 때는 공원이란 말 그대로 쉬어가는 곳이었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사람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고...

다음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카페는 안 들리냐고?

 

날씨도 좋은데 굳이?

특히 해 질 부렵에는 선선하고 습하지도 않아 밖에 나가기 정말 좋은 계절인걸.

 

분수와 접선.
여기도 꽃 바구니 하나 둘 데롱데롱. 그 뒤에는 흐루숍카.
흔한 길거리.

 

적당히 사람 구경하고 또 다시 강변으로 향했다.

해 질 무렵의 오비강을 보고 싶어서.

물론 기차시간이 기차시간이라 완전히 노을이 지진 않겠지만...

 

지하철 승합장.

 

내 예상대로 아직 노을은 생기지 않았다.

보통 9시 쯤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그 시간 쯤이면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대신 골든 타임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기.

햇빛이 적당히 땅을 금빛으로 물 들일 때.

 

담소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전거 타는 아이
난간에 초점을 맞추어.
골든 타임.
지하철로는 아침보다 더 금빛을 띤다.
쨍!
노상콜라, 옆에는 낚시 준비 중.
아침보다 사람 수가 월등히 많다.
다리를 도대체 몇 개나 찍는 거야?!!
다리에 맺힌 해.
깨알 디에세랄 셀카.
오늘만 몇 번 온거지 여기. 3번?
Ой, мороз, мороз... Не морозь меня... 여름에 흘러나오는 '추위'의 노래.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노보시비르스크에서의 하루도 저물어 갔다. 

드미트리와 니나의 모교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가 위치한 아카뎀고로독도 갔다 왔고,

오페라하우스도 구경하고, 공원도 좀 보고, 오비 강도 좀 걸었다.

비록 니나가 말한 '건축이 정말 이쁘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는 못한 한나절이었지만, 

결국 의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명문대 캠퍼스를 누려봤다는 것, 시베리아 제 1도시를 들렸다는 것 아니겠는가.

지하철도 처음 타보고... 러시아 카페 매장에서 음료수도 쏟아봤고! 물품 보관소에서 짐을 찾아 기차를 타러 갔다.

노보시비르스크역. 조금씩 노을이 져가고 있었다.
'현재 시간 약 저녁 9시 10분.'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자 이제 어디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우랄연방관구 최대 도시로.

러시아 월드컵 개최지 중 한 곳으로. 바로 예카테린부르크로 가보자고.

조금씩 지정학적 유럽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지만, 실감의 속도가 둔했던 건 왜일까.

 

Погнали!
예카테린부르크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