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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브카, 숲의 노래 일러스트.

 

2021년에 3D 애니메이션 영화 "마브카, 숲의 노래(Мавка, лісова пісня)"가 개봉될 예정이다.

레샤 우크라인카(Леся Українка)의 희곡 작품 '숲의 노래(Лісова Пісня)'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제작사 측에서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에서 쓰여진 바에 의하면, 이 작품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우크라이나 생태계 문제에 관한 관심을 끌 수 있음.

2. 전 세계로 우크라이나 문화를 수출할 수 있음.

 

카르파티(Карпати), 폴레시아(Полісся), 빌코베(Вилкове) 지방의 숲과 카먀네 셀로의 풍경 등 실제 우크라이나에 있는 장소를 기반으로 배경을 설정했고, 영화 음악같은 경우도 우크라이나의 음악적 요소에 현대적인 기법을 접목시킨, 이른바 퓨전 애스닉 음악으로 가득채워 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에스닉 밴드 다하브라하(ДахаБраха), 막심 베레쥐냐크(Максим Бережняк)와 같은 민속음악에 박식한 뮤지션이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고 한다.

 

Даха Браха - Пливе човен

본인도 이 글을 쓸 때 까지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구 여친과 함께 서점에 들렀을 때 어떤 책을 보고는 구 여친이 어떤 한 동화책 일러스트를 보여주면서 일러스트가 이쁘지 않냐며 보여줬었다. 우크라이나 신화 속 인물이고, 곧 애니메이션화 된다는 말까지 들었던 것 같다. 그땐 그냥 그렇구나 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어떤 애니메이션의 티저를 봤다. 여자 일러스트가 어딘가 익숙한 부분이 좀 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하르키우에서 전 여친이 이야기한 그 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티저를 보고 오, 투자 좀 많이 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는 꽤 기간을 길게 둔 듯 하다. 1차 티저 영상이 나온게 무려 3년 전이니... 

 

한국에서 개봉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티저를 보고 대략적인 프로젝트 정보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상영했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은 생겼다. 이렇게나 자국의 문화를 홍보하려고 애를 쓰고 기를 쓰는데, 기회는 줘야 되지 않겠는가.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우크라이나 문화, 우크라이나 신화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데, 색다른 영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애니메이션이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1차 공식 티저 영상.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원작은 레샤 우크라인카(Леся Українка)의 '숲의 노래(Лісова Пісня)'이다. 

숲의 정령이자 수호자인 '마브카'가 인간 '루카쉬'를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과 정령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 줄거리를 대강 보았을 때, 정령이 인간 남자를 사랑하다가 통수 맞고 지 혼자 가슴앓이 하다가 죽는 이야기다.

 

조금 더 자세한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니메이션 버전 (1976)

1.

루카쉬는 자신의 삼촌 레프와 함께 집을 지으러 숲으로 들어갔다.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자, 숲의 정령 마브카는 그 소리에 이끌렸다.

마브카는 결국 루카쉬를 만나게 되었고, 나무를 베려는 그를 보고는

"자매들을 해치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몸으로 지켜냈다.

마브카의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와 여린 마음씨를 보고

루카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정체를 물었다.

"저는 마브카예요, 숲의 정령 마브카."

인간이 사랑을 하고 나면 결혼이라는 것을 한다고 루카쉬는 정령에게 설명하고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둘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

 

2.

집은 다 지어졌고, 집 주위에 밭도 일구었다.

루카쉬의 어머니는 마브카와 연애를 하는 자신의 아들을 못마땅하게 보았다.

그러면서 마브카보고 '그 누구도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불결한 년'이라 하면서

옷차림을 지적하고, 밭일을 하라고 낫을 쥐어줬다.

- 마브카는 숲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정령인지라 낫으로 곡식을 벨 수 없는 처지였다.

루카쉬는 어머니는 집안일 잘 하는 여자를 원한다며 마브카에게 말했고,

마브카는 이러한 인지상정을 이해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정령에게 치욕스러운 감정은 굉장히 낯선 법.

그 때 과부 '킬리나'가 루카쉬을 방문했고,

마브카에게 있었던 낫을 가져가 풀을 맸다.

루카쉬와 킬리나는 서로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해졌고,

루카쉬의 어머니도 킬리나를 맘에 들어 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루카쉬를 보면서 상처받고 있는 마브카를 보며,

한 루살카는 마브카를 달래면서 "사랑은 자유로운 영혼을 해친다"며 주의를 줬고

숲의 정령 레쉬(Леший)는 이렇게 충고했다.

"자신의 의지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인간의 사랑 속 굴레에서 벗어나라"

 

그렇게 인큐버스의 호위를 받으며 정령으로서의 생활로 돌아가는 듯 했으나,

죽음으로 인도하는 귀신 마라(Мара/Марище)가 마브카를 데려가려고 했다.

마브카는 죽지 않았다고 외치며 마라의 손을 뿌리쳤다.


Я в серці маю те, що не вмирає.

제 마음 속에 죽지 않는 것이 있어요.


3.

레쉬가 루카쉬를 오보로텐(Оборотень)으로 변신시켰지만,

마브카는 사랑의 힘으로 루카쉬를 다시 인간으로 돌려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결국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루카쉬는 마브카를 보고 놀라며 달아났다.

루츠(Руц/악마류)에게서 루카쉬의 가족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마브카는 루카쉬의 집 주변에서 바짝 마른 버드나무로 변했고,

킬리나의 아들이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자, 마브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달콤하게 속삭이는 피리 소리 / 가슴 속 깊이 깊이 파고 드네

가슴을 스치며 칼집 내어 / 내 심장을 그렇게 도려 가네

 

킬리나가 나무를 베려고 했으나, 인큐버스가 도끼를 든 킬리나를 저지한 뒤 집을 불태웠다.

마브카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타들어갔고,

그렇게 마브카가 사라진 세상에는 눈이 내리고 루카쉬는 미소를 지으며 얼어 들어갔다.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 영화 버전(1980).

 

소련시절에도 영화화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결말이 아주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일단 위키에 적혀있는 줄거리를 대강 요약하여 번역하긴 했는데, 이해가 되련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원작에서는 마브카라는 신화적 요소를 통해 이렇게 낭만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원작의 줄거리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영상미에 크게 중점을 둘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럼 마브카는 원래 어떤 존재인 것일까?


 

마브카를 설명하기에 앞서 루살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야할 것 같다.

루살카란 흔히 동유럽판 인어라고들 하지만, 원래부터 인어의 모습이 아니라 정령 혹은 망령의 형태였다.

- 19세기에 서방세계의 Mermaid에 영향을 받아 러시아 작가들이 루살카에 그런 이미지를 씌우곤 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루살카를 서식지에 따라 '강의 루살카', '들판의 루살카', '숲의 루살카'로 나누곤 했다.

이 중 마브카는 '숲의 루살카'에 해당되고, 숲의 정령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실상 숲의 루살카를 넘어서 모든 루살카를 우크라이나에서는 20세기 초 까지는 '마브카'라 불렀다고 한다.

 

마브카를 비롯한 루살카는 원래 정령과 같은 존재였으며,

아주 먼 옛날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미지의 자연을 두려워하면서

루살카라는 존재는 요정이나 자연의 파수꾼로 치부되었던 루살카는 악한의 대상으로 변모되었다.

미지의 자연을 두려워했던 인간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수호자의 역할에서 남자를 유혹하여 물에 빠뜨리거나 간지럽혀 죽이는 존재가 되었다.

마브카도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는데, 

숲의 정령에서 '유산되거나 세례받지 못한 채 죽은 7살 이하의 어린아이',

'결혼을 앞두고 죽은 예비신부나 익사한 여성'의 망령이 된 것이다. 

등가죽이 없어 뒤에서 보면 초록색 폐, 썩어 버린 창자, 뛰지 않는 심장 등이 적나라하게 보이지만,

등을 빼놓고 보면 초록색 머리칼에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서 흔들거리면서 휴식을 취하곤 한다.

 

동유럽에서는 '루살카의 주(Русальная неделя)'라는 게 따로 있는데, 

루살카가 활기를 치는 주로 치부되어 그 기간에는 물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반 쿠팔라 시기에도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특히 그 주 목요일을 '마브카 부활절'이라 부르면서 특히나 주의를 요했다고 한다.

목요일에는 사람이 사는 집까지 찾아가 사람들을 괴롭히려 들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고자 나무에 하얀 천을 걸어 놓고, 창틀에 뜨거운 빵을 두어 식혀놓는다고 한다.

나무에 걸린 천으로 옷을 지어입고, 빵의 김을 먹는다는 마브카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마브카는 '숲의 정령'이자 여타 동유럽 국가의 '루살카'의 우크라이나식 표기다.

원래는 '숲의 노래'에서 나오는 마브카처럼 숲의 정령이자 수호자로서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망령의 형태로 변화했다. (거진 동유럽판 좀비...)

자신의 출중한 미모를 이용해 남성을 꼬신 뒤 간지럽혀 죽이거나 익사시켜 죽이곤 한다.


<마브카: 숲의 노래>에서는 숲의 정령으로서의 마브카를 다루게 된다.

원작자 레샤 우크라인카도 그런 마브카를 그렸고,  한 나라의 문화를 홍보하는데 물에 사람 빠뜨려 죽이고, 간지럽혀 죽이면...

솔직히 보기 좀 그러니까...ㅋㅋㅋ;

 

보아하니 아직 영화가 상영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캐릭터 상품이 나오는 듯 한다.

이렇게 김칫국을 잔뜩 먹여놓고서는 졸작이 나오진 않을 거라 믿는다.

공들여 잘 만들어서 북유럽 갬성에 이어 '동유럽 갬성'의 선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