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공모전 본선에 진출하면서 구직생활은 조금 더 미루어지다 보니
오후에는 토익, 컴활, OPICs공부를 하고
매일 저녁에 모델하우스 수행 알바를 하고 있다.
음악 공부는 머만치로 미루어진 듯 하다.
일단 당장에 먹고 살기 바빠서 음악이라는 것을 고려할 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뭐 나름대로 바쁘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비전공자에 연줄 하나 없는 나같은 놈이 음악을 주업으로 삼기에는
한반도 바닥에는 재능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나도 백수가 되었다. 백수 까지는 아니네, 돈은 버니까.
사실 전공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경력자들이 넘쳐나고, 날고 기는 사람들이 파도치는 판국에
과연 나는 파도를 거스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블로그에 노래 가사나 인터넷 기사를 번역하면서 나름대로의 포트폴리오는 만들어보려고는 하지만
그럴 수록 여기 저기 산재한 부족한 부분이 더욱더 가시적으로 드러난 다는게 문제다.
카자흐스탄에서의 1년 살이는 무기를 갈고 닦기에는 턱없이 짧았던 것일까.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있던 일자리도 없어지고,
폭등한 최저시급에 알바생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대한민국 바닥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알바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일까.
아니면 수많은 리스크를 감내하며 사업을 거행하는 것일까.
앞으로는 더 고달퍼지겠지.
마치 하얀 솜 안에 갖혀 있듯 뿌연 안개를 헤치면서 나를 조금씩 해치겠지.
옛날 같았으면 아 자살하고 싶다 입에 달고 살았겠지만,
지금은 하소연할 여유조차 없다.
35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사먹는 아메리카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 표현 방식이 누구한테는 정말로 오그라드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정말 이 표현이 지금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문구라 생각이 든다.
돈을 최대한 아끼고자 신림 전역을 뒤지며 가성비 괜찮은 식당을 찾거나
예전에 자취했던 곳에 살면서 남은 참치 통조림이나 훈제굴을 맨밥에 얹어 먹거나
43만원이나 하는 월세를 부모님 손 안 벌리고 마련하려니
3500원이라는 돈도 한없이 크고,
그러기에 뽕이라도 뽑겠다는 심정으로 한 번 마실 때 최대한 그 맛을 음미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익숙했던 쓴 맛도, 평소와 다름 없던 커피의 그윽한 향기도
더욱 더 그 모습을 부풀리며 나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돈의 소중함을 아예 모르고 살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기 변명을 하자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 정도로 내 사고방식은 어리진 않다.
전문하사 생활을 하며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정말 억척같이 살았고,
비록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레슨 비용과 방세를 내가 벌어 내면서
돈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엔 충분했다 생각이 든다.
그 뒤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때 마다 나보다 더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향한 걱정이 밀려오고, 힘들게 밤택시를 몰면서, 증기에 휩싸인 부엌에서 일하며
힘들게 돈을 한 푼 두 푼 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죄책감이 물씬 밀려온 것이다.
결국, 스스로 다짐했다. 서울 올라가면 나는 완전히 독립이라고.
근데 독립이라는 것도 준비라는 것이 필요하더라.
어찌 보면 이 시국에 아무런 기본 자금도 없이 상경한 것은
한없이 미친짓이더라. 정말 27살 처먹고 철없는 선택을 한 셈이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한동안은 따사롭게 데워지는 배를 움켜쥐며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야지
어쩌겠어.
궁지에 몰려 뭐라도 해야 되는 이런 상황에서 내 몸이 성하고, 내 멘탈이 상하는 게 뭔 대수람.
찢겨진 마음을 모자이크처럼 하나 하나 맞추며 나를 고치고 고치고 해야지.
힘든 걸 어쩌라는 변명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시기인 만큼.
애초에 일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자기 PR 좀 할게요.
한-러, 러-한 번역이나 통역이 필요하신 분
gyong1994@icloud.com 으로 이메일 보내주세요.
카자흐스탄 1년 어학연수 경험 있고,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 8월 말에 졸업 예정이고,
통역 봉사 경험 있습니다.
견적 보내주시면 검토 후 가능여부를 양심적으로 밝히겠습니다.
못할 것 같은데 일 부여잡는 그런 무책임한 짓은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