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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한러간 상호무비자 협정을 맺은 이후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떠오른 러시아 극동의 도시,

한때는 연해주로도 불렸고, 강제이주 전까지만 해도 무수한 독립운동가들과 

무기력한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조선을 벗어나고자 했던 농민들이 이주를 하곤 했었던 도시,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차고 넘치는 도시,

그렇게 첫 해외여행을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에서 시작했다.

 

마침 러시아어를 전공하기도 해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선택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첫 관문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블라디보스톡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떠올리자니 해풍이 서늘하게 부는 이른 아침의 항만만이 떠오른다.

러시아로 떠나기전 인터넷을 통해, 주윗사람을 통해 신빙성 없는 스테레오타입을 들어왔기에,

행여 누군가 내 물건을 훔쳐가진 않을까, 행여 누군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나를 기분나쁘게 하지는 않을까

크로스백을 부둥켜안다 시피 하며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난다.

더군다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아파트방이라, 외곽에 군데군데 지어진 흐루쇼프카는 

여행초심자이자 러시아초심자인 나를 두렵게 하기엔 충분했었다.

 

그러다가 기차를 기다리면서 낮선이와 대화를 하고

노숙자랑 자그마한 공원에서 노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뒤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어느 정도 소화해낼 수 있었던 러시아어의 덕이 가장 큰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톡 해양공원

블라디보스톡에는 약 3일정도 체류했었고, 극동에 있는 중소도시라 그런지 그렇게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처음 가보거나, 바이칼이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러시아라는 나라를 단순히 경험하기엔 나름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르하트나야(Бархатная) 흑맥주. 맛은 그저 그랬다.

불켜진 흐루쇼프카를 바라보며 러시아 맥주와 슈퍼표 웨하스도 먹을 수 있고 

밀키스 포도맛, 메론맛, 바나나맛. 그리고 흑빵(хлеб)

흑빵과 곁들여 우리나라에서 팔지 않는 과일맛 밀키스도 맛볼 수 있었다.

참고로 주식이 빵이다 보니 저 정도 덩치의 흑빵도 굉장히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다.

특히나 모스크바도 상트도 아닌 블라디보스톡이라면... 10루블 이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해양공원 유료화장실 관리인

화장실 지키는 뚱뚱이 아줌마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화장실이 유료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0루블이면 허름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수도권에 비하면 매우 싸다. (모스크바 기준 50~60루블)

 

해양공원에서 바얀(Баян)키는 아저씨.

바얀 연주하는 어르신도 볼 수 있다. 

러시아 어딜가든 바얀을 키면서 구걸하는 아저씨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스탈로바야(Столовая)에서 먹은 점심. 가격은 가물가물하지만 약 100-150정도 나온 듯 하다.

스탈로바야에서 러시아 현지인들이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

스탈로바야라 함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고르되 계산은 각 음식마다 치뤄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고 주로 가정식이 나오기 때문에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나는 킹크랩을 먹지 않았다. 주로 킹크랩이랑 곰새우 먹으러 많이들 가지만

당시 내 여행의 취지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온전히 느끼는 데에 있어서...

킹크랩이랑 곰새우가 그렇게 저렴하고 맛있는데 후회 안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뭐... 조금"

중국계 노숙자

재수 좋으면 노숙자의 춤사위도 볼 수 있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춤 출 줄 안다고 막 추는데, 실컷 다 추게 해놓고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뻘줌해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면 노숙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정말 재밌긴 하지만, 위생상 안전상 그렇게 추천할 것은 못된다.

 

드미트리 아저씨

다행히 사연 많은 드미트리 아저씨가 도와주신 덕에 노숙자들이랑 맘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잘 살고 계시려나. 연락한다 해놓고서 이때까지 연락을 안했는데... 

드미트리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숙자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와서 말을 막 걺.

나랑 드미트리 아저씨한테 맥주 한 병씩 사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나, 

노숙자들이 술에 절어 있기도 하고,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러시아어를 못했기 때문에

많은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에서 왜 노숙자를 БИЧ(Бывший интелигентный человек)이라 칭하는지 알법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했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곤 했다.

그 때 만난 노숙자도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혁명광장에서 소련느낌 물씬 나는 광장을 볼 수도 있고, 정교회 사원도 볼 수 있다.

비록 러시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트램이나 트롤리버스는 구경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스타렉스 사이즈의 미니밴 버스를 탈 수 있고, 

러시아 백화점도 구경할 수 있고, 러시아어를 들을 수도 있고, 서점에서 러시아어로 된 책을 살 수도 있으니

그러한 면에서 간단하게 러시아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광장. 여기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쭉 걷다가 나온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동상. - 닫혀 있던 항구 블라디보스톡이 열렸다. -
니콜라이 개선문.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커서 나름 놀랬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정작 여행에 유익한 정보를 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미안할 따름이다.

어떤 관광지가 언제 지어지고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알아보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그러한 정보까지 알고 가면 조금 더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내가 관광가이드로 일하지 않는 한 디테일한 것 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포스팅을 통해서 제공해줄 수 있는 정보는

대강 이러이러한 장소가 있었네, 이 도시는 이러한 느낌이 들었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네 하는 개인정인 감상 뿐이기에,

정말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들은 다른 포스팅을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정보는 내가 정말 원할 때 직접 자료를 찾아낸 뒤 따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블라디보스톡 굼(ГУМ). 본점은 모스크바 크렘린 부근에 있다.
굼 뒤편에는 플리마켓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 디저트류를 주로 팔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크지는 않은 도시고, 관광할 거리가 그렇게 넘쳐나는 곳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톡이 근래 뜬 것도

"유럽 느낌이 나는 가장 가까운 도시", "저렴한 킹크랩", "관광 무비자 체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 및 종착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정말 많았다. 특히 관광지 쪽으로 가면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혼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시각에 모든 것을 맞추지는 말자"는 것이다.

식당에서 쩝쩝대며 음식을 먹는다거나(러시아에서는 굉장히 예의없는 행동임)

돈을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에서 불쾌감을 느낀다거나

영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 

특히 첫번째. 식당에서 너무 쩝쩝대서 깜짝 놀랬다.

개인적으로 쩝쩝소리를 굉장히 싫어하지만, 한국에 있을 땐 참았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쩝쩝소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핀잔을 주다간 오히려 인간관계가 확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쩝쩝대는 것을 굉장히 '무례'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이 아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다루는 러시아인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한국인의 쩝쩝소리(Чавканье)에 대해 자주 언급이 될 정도니...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더욱이 웃긴 건 그렇게 쩝쩝대는 것이 '만족의 신호', '먹음직스러움'을 나타낸다고 설명하니... 실드를 칠 걸 실드쳐야지.

자국에서의 사소한 행동이 타국에서는 굉장한 불쾌감을 자아내는 경우가 무의식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도시의 역사, 건축물의 역사, 상징물에 담긴 전설 등에 관한 내용을 알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는 관습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가는 것이 여행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이 든다.

 

뭐 어찌 되었든, 블라디보스톡은 내게 안겨진 러시아의 첫인상을 품고 있는 도시이다.

나같은 러시아학도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첫인상이 어땠는가 물어보면 쉽게 답이 나오진 않는다.

 

"사람 사는 동네. 생각보단 잘 웃는 사람들."

 

인형탈 알바생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
제복 입은 할아버지

 

러시아인들이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은

수업시간을 통해서나 랜선으로 사귄 친구들을 통해 많이 들어와 별로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중심가를 돌아다니면서 그닥 위험하지 않았고,

인종차별과 폭언을 통해 상처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어딜가든 미친놈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때, 걱정해주면서 몇 번이고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아주머니,

노숙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준 우연히 마주친 드미트리 아저씨, 무심하게 음식 담아주는 스탈로바야 직원분들 등등...

얼타면서 다른 곳에 싸인하려 하니 손가락으로 밑으로 세게 쿵 내려치며 "즈졔시(Здесь)!"하고 소리친 물품 보관소 아주머니

그 외에도 루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시크하게 동전 세는 것을 도와주는 슈퍼 아주머니,

아이들한테 굉장히 차가운 표정으로 훈육하는 어머님들,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땐 웃음꽃이 피어나는 젊은 사람들,

옛 소비에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제복 입은 할아버지 등등...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초면에 무뚝뚝한건 매한가지니 큰 이질감은 없었다.

다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서비스 정신(미소가 덜한 서비스), 다른 시스템(유료 화장실, 미니밴 버스, 신호 카운터, 러시아어, 역 입구 보안검색대 등등)에서 신기함을 느끼긴 했지만, 사람 개개인으로 놓고 보았을 땐 역시 사람 사는 데는 그 방식이 다 똑같다고 '벌써부터' 느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