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경지를 여행했던 것만 같았던 알혼섬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투어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7시 반쯤(이었던 것 같다) 온다 했던 것 같은데
하도 안 와서 똥줄 타던 중 20분 정도 초과된 시간에야 차가 도착했다.
어제 이르쿠츠크 시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승객을 픽업했던 밴처럼
이 차도 여러 숙소를 돌아다니며 투어객을 하나 둘 태웠다.
그렇게 인원을 다 채우고 어딘가에서 좀 오래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투어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 8명(?)과 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아주머니, 이렇게 약 10명이었다.
너무 주요 목적지만 달리면 촉박한 느낌이 드니 전망 좋은 곳 잠시 구경시켜준 듯하다.
확실히 호안선이 시원하게 뻗어 있고, 중간중간 삐져나온 절벽들로 인해 경치는 정말 좋았다.
투어 차량이 우리 차뿐만 아니라 다른 차들도 엄청 많아서, 확실히 스토리가 있는 곳임에는 분명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머만치에 보이는 섬이 각각 동물의 명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왼쪽이 사자, 오른쪽이 악어.)
저 건너편에 육지가 보였다. 이르쿠츠크 방향의 육지인데, 마치 동양화에서 원거리에 있는 산봉우리를 묘사한 듯했다.
경치 감상을 좀 하다가 다음 장소로 넘어갔다. 이미 차는 흔들흔들 댔지만, 아직까진 견딜만했었다.
앞 좌석에서 보는 경치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측면에는 호수가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면,
정면에는 드넓은 들판이 평화로이 펼쳐져 있었다.
같이 투어 했던 사람 중에 고프로랑 드론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다.
앞자리를 정말 원하셨던 것 같은데, 앞자리에는 하필 한국 아주머니...
아주머니께서 건강상의 이유로 웃돈을 조금 더 주셔서 앞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두 번째 장소쯤 도착했을 때 아주머니께서 드론 주인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을 해달라고 말씀을 하시더라.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아메리칸인 줄, 쿨한 척하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하긴, 측면보다는 정면이 더 스릴 있지.
그 외에도 주행하는 동안 드론 띄울 거라고 차를 몇 번 세우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아주머니께서 "참 드론도 은근히 민폐네"하면서 볼멘소리를 하셨다.
아주머니 말씀도 맞지만, 드론을 띄워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는 분의 마음도 이해가 가긴 한다.
드론 좀 띄운다고 잠시 정차하는 시간이 일정에 큰 영향을 주진 않으니까.
요 주변에 슈퍼랑 기념품 샵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게 없었다. 물만 하나 샀다.
철로의 흔적을 멍하니 보면서 사진 찍고 하다 보니... 40분이 안 지나있음... 시간은 정말 넉넉히 줬던 것 같다.
이 부근이 2차 세계대전 중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알혼섬은 포로수용소로 사용하기 적합한 위치에 있다 생각은 든다.
튀어봤자 시베리아니까. 애초에 바다 같은 호수가 사방을 감싸고 있는 판에 도망치는 건 꿈도 못 꾸지.
오랜 기간 동안은 부랴트인의 생활터전, 몇몇 기간 동안엔 포로수용소로, 이제는 중국인이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니,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을 것 같긴 하다.
정보를 사전에 제대로 수집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되곤 하는데,
그게 어찌 보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장점이라면 상상력을 자극시키거나, 장소의 역사와는 별개로 생각지도 못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단점이라면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똥 싸다 끊는 느낌이 든다는 것.
그래서 적당한 상상력을 자극시키고자 관광지에 관한 지식은 딱 필요할 것 같은 만큼만 수집하는 편이다.
하보이까지는 꽤나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1시간 정도 달린 듯하다.
바깥 풍경을 보다가 솔직히 좀 피곤해서 잠시 졸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차가 흔들린다 그러더만 잠은 잘 오나 보네? 하고 묻는다면
잠은 오지만 잘 오지 않고, 노오오력을 해서 잠시 잠들 수 있었다고 대답할지어다.
정말 이쁘긴 이쁘지만, 내 컨디션이 먼저인 만큼 체력 보충을 해놓았다.
솔직히 좀 힘들긴 했다. 잠에 좀 든다 싶으면 덜컹해버리니.
곶으로 오니까 갑자기 물이 더 새파래진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 사진 보면서 기억이 왜곡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물 색이 진해지기도 하고,... 뭐 그래 물 색깔이 더 진해졌다.
뭔가 깊은 심연의 무언가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로 치면 심해?
그래도 물가라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는데, 바이칼이랑은 이렇게 안 맞는 옷일 줄은 몰랐다.
바이칼은 뭔가 장엄하여 네스호 괴물과 같이 어떤 괴물이나 신성한 존재가 안갯속에서 나타날 것만 같지만,
하와이안 셔츠는 성격이 좀 반대되기 때문.
독수리 삼 형제 바위를 살짝 둘러본 뒤.. 30분이 살짝은 아닌 것 같다만;;
진짜 하보이로 향했다. 거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하보이 곶에 관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어떤 한 부랴트 여자가 남편에게 불만이 생겨 궁전을 지어달라고 신(텡그리)에게 빌었으나, 신은 오히려 "그 어딜 가든 증오와 질투가 가득한 사람이구나. 돌이나 되어라!"하고 그 여자를 돌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점심을 만들 동안 곶 부근을 산책하도록 여유롭게 시간을 준다.
완전히 새파래진 호수를 보면서, 가파르게 깎아 내려진 절벽을 보며 트래킹을 했다.
절벽이 너무 가팔라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호수에 자갈 비치는 거 실화인가 싶었다.
한국 편의점에서 한때 바이칼 물을 팔았었는데, 왜 비쌌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바이칼이라는 공간은 샤머니즘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뭐? 무슨 말이냐고?
나무마다 묶인 이런 천들이 알혼섬의 절경과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자라나면서 끈이 꼭 묶여야 하는 양.
부랴트인들의 종교는 샤머니즘+티베트 불교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저 부적 천 같은 데 티벳어로 뭐라고 적혀 있었다.
신성시되는 공간이라 그런가 샤머니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다소 밋밋해질 수도 있는 공간에 이렇게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어 더욱더 조화로웠다.
여기서 피는 초목들도 우리나라의 초목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땅이 다른 만큼 식생도 다른 법.
물이 너무 푸르러 수평선이 안 보일 정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찰 같은 데 가면, 소원을 빌면서 돌탑을 쌓듯, 여기에서도 그런 풍습이 있나 보다.
수많은 돌탑이 보였다.
하보이는 알혼섬 최북단에 위치하는데, 문명과 거리가 있는 곳이라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후지르에 도착하면 보내주기로 했는데, 왓츠앱 번호의 문제인지 뭔지는 몰라도, 결국 못 보냈다.
돌아오는 길 까지 같이 동행했었는데, 상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휴가 내서 여행 왔다고...
그래서 처음엔 영어로 소통했다가, 나중엔 그냥 러시아어로 소통했다.
흔한 외국인의 레퍼토리 : 어 러시아어 할 줄 아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와~ 러시아어 잘하시네요! 얼마나 배우셨어요?
피부를 보니, 바이칼 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신 것 같다. 아니면 썬텐만 했으려나?
둘 다 길을 몰라 이상한 길로 새서 그런 지는 몰라도, 꽤 산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산길을 뚫고 나오니 이런 절경이.
다 둘러보고 도착해보니, 다른 일행들은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오니 내 꺼도 이렇게 퍼줬다.
토마토에 고수 뿌린 러시아식 샐러드(따로 이름이 있을 건데...)와 빵이 공용으로 있었고,
각 사람마다 이렇게 국이 한 그릇씩 나갔다. 나중엔 좀 남아서 더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맑은탕 같은 느낌이었다. 얼큰했다. 비린내도 많이 없었고, 정말 해장하기 딱 좋은 그런 맛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더니 허허하고 웃더라.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오물'이란다.
쓰레기 '오물'이 아니라, 바이칼 청정지역에서 사는 고기.
내가 아~ 이게 오물이에요? 이러니까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오물'스'란다. 일단 수긍하는 척했다.
아무리 내가 입수한 정보가 많이 없다지만... 이래 봐도 저 러시아학도예요 아주머니 ㅠㅠ
생선 머리 부분 살만 살짝 발라먹고 버리려고 하니 일행 중 어떤 아저씨가 아니 이 맛있는 걸 왜 버리냐고 놀라시더라.
주위 사람들도 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얘, 너 멀리서 왔다고 일부러 맛있는 부위 줬는데 그걸 버리는 거야?"
어두육미라는 말, 한국에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 말에 공감을 못해요. 하하핳;
그렇게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어디론가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는 하트 바위였다. 왜? 심장같이 생겼으니까. 하트같이 생겼으니까.
수용소 설명할 때는 잘 못 알아듣더니, 이번 설명은 아주 잘 이해했다.
내가 못 알아 들었을까봐 어떤 일행 분이 부연 설명해줬는데,
이 바위의 오른쪽으로 가면 딸을 낳고, 왼쪽으로 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나 뭐라나... 아주 잘 이해한 건 개뿔.
물 색깔 보소... 빠지면 최소 사망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멋있는 절벽도 볼 수 있다.
측면에서 보니 심장이 유방이 되는 마술이 벌어졌다
낙타 봉우리 같기도 하고, 아, 그래, 낙타 봉우리에 가깝다.
음란마귀가 이래서 무섭다.
저 밑에 사람이 내려가 있길래 나도 내려가 봤다.
아니, 그냥 풀떼기나 찍기로 했다.
절벽 깎여진 모습이 정말 이뻤다.
그렇게 투어는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포스팅하다 보니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 나눠서 쓸까 생각했지만... 걍 한 번에 다 쓸란다.
다음 목적지에는
수많은 높다란 절벽은 이제 없고, 이런 신비한 놋쇠그릇만 남아있었다.
놋쇠그릇과 기념품샵... 뭐 이렇게.
또잉 띠용 하는 악기도 팔았고, 여러 부랴트스러운 것들을 팔았는데 가격이 너무 세서 안 사기로 했다.
투어의 마지막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소였다.
나도 스트레스 해소가 눈에 띄어 흔들어보기로 했다.
몸이 릴랙스 되어 있지 않으면 물이 통통 튀지 않는다.
손에 물을 살짝 묻히고 양 손잡이를 부드럽게 비비면 온 몸에 진동이 오면서 물이 발악을 하는 걸 볼 수가 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 저 모자 쓴 아이가 도와준 건 안 비밀.
나름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녁 먼저 먹었다. 하루 종일 오프로드를 달리느라 힘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 남자분 2분이랑 만나지 못하게 되자, 숙소 주방장이랑 이야기를 좀 나눴다.
원래 우즈벡 사람인데, 매년 여름마다 가족들이 전부다 알혼섬으로 와서 이 숙소에서 일한다고 한다.
주방장은 미샤 아저씨, 즉 가장이시고, 아내분도 같이 돕고 있었다.
큰 아들은 여러 소일거리를 맡고 있었고, 나이가 엄청 어린 딸래미는 숙소 주인아주머니의 손녀랑 같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일을 하셨다고 하셨다. 부산 쪽이었나... 내가 그쪽 출신이라고 하니 되게 반가워하셨다.
한국 차 이야기도 꺼내시고, 한국에서 뭐하냐, 우즈벡은 가봤냐 등등 어느 정도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그다음 날 저녁쯤에 차나 한번 같이 마시자고 말씀을 하셨다.
물론... 그다음 날 예상치도 못하게 술판이 벌어진 바람에 같이 못 마셨지만 ㅠ.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숙소 주인아주머니를 만났다.
여행 어땠느냐 물어보시고는, 거주지 등록증을 주시면서 내일 있을 유람선 투어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
유람선이 아침 9시에 출발하니 10분 전까지 배 선착장으로 가라고 일러두셨다.
투어는 그 전날에 무엇 무엇을 할 거다 결정을 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 내게 물어보셨다.
투어 어떤 거 하실 거냐고.
어떤 투어가 있는지 말씀해달라고 하니 남부 투어랑 북부 투어, 유람선 투어가 있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북부를 많이 가기도 하고, 거기가 남부보다 볼 것도 많고 재밌을 거다 말씀하셔서 북부 투어는 무조건 넣었다.
그다음 남부 투어와 유람선 투어 중 하나를 고민했는데, 그래, 조금 고민했다.
유람선 투어가... 조금 더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북부 투어랑 남부 투어가 1000루블,
유람선 투어가 1200이었나 1500이었나 그 언저리였을 것이다. 기억이 안 나 ㅠㅠㅠㅠㅠㅠㅠㅠ
솔직히 북부를 보았다면 남부는 큰 감흥은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
유람선 투어를 추천해주시는 주인아주머니 말씀만 믿고 거금을 지불했다.
숙소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고 잠시 쉬었다가,
어제 애매하게 본 부르한 바위 노을을 제대로 보기 위해 혼자서라도 갔다.
날씨는 해가 질 때쯤 되니 조금 선선했다. 반팔을 입고 나왔는데 살짝 쌀랑하긴 했었다...
컴퓨터에 사진 옮기고 SD카드를 카메라에 도로 끼우지 못한 탓에 폰카로 찍었지만... 폰카도 나쁘진 않잖아 요즘.
그렇게 또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부르한 바위와 함께.
조용히 혼자서 상상에 잠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던 하루였다.
깜깜한 밤길을 뚫고 숙소로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크바스를 마셔보고 싶어 한 병 사서 복귀했다.
적막이 감도는 부엌에서 크바스를 조금 마시고, 부엌 냉장고에 넣어 놓은 뒤,
내일, 북부 투어보다 조금 더 비싼 유람선 투어를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