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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2017년 5월, 예비군 훈련을 제주도에서 받고 2일간 스쿠터를 렌탈해서 제주도 북부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빙 했다.

 

원래 인스타그램에 간헐적으로 여행사진을 올리려 했다가

한번 지난 겨울 우크라이나 여행 사진이 보정해놓은 사진 몇개 빼고는 다 날아가버린 바람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농민마냥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해본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고, 여행지에 관한 정보도 그렇게 잘 알지 못해서

정보를 얻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포스팅이 아닌가 싶다.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장소에서 이러한 것을 보고 이러한 것을 느꼈다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자 한다면

내가 앞으로 올리게 될 여행기가 ... 좋을 지는 모르겠다. 뭐 아무튼 

 

시작해볼까?


약 21개월간의 병사생활이 끝나기 무섭게 줄곧 바래왔던 음대를 가려고 6개월간 전문하사를 하게 되었고,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레슨을 받았다.

전문하사 생활하랴, 입시준비하랴, 주말에는 레슨받으러 올라가랴,

정말 여태까지 살아가면서 고3 이후로 가장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전역하고 상경해서 신림에 고시텔을 잡은뒤 하루종일 악보그리고 피아노 연습하느라 바빴다.

과제를 못다해 그때 레슨해준 고등학교 선배분이 마음고생을 꽤 하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자신이 해야될 일들도 넘쳐나는데, 그래도 고등학교 후배였다고 되게 정성껏 가르쳐주셨었는데,

그 형의 스케쥴을 따르기엔 내 체력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해서 지각도 많이 했었다.

수능을 보기좋게 망쳐서 미친듯이 실기준비를 했지만, 반년이란 시간은 사소한 실수를 고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1지망, 2지망 모두 떨어져버렸다. 합격후보에 없다는 것을 통보받았을때 모든 것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재수를 할 자신을 완전히 잃었고, 그럴 힘 조차 남아나지 않았다. 

능력의 한계를 봐버린 자에게 싹튼 의지박약이락고나 할까,

또 다시 입시준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합격될 보장도 안될 뿐 더러, 이미 시기는 늦어버렸기에

깔끔하게 음대입시는 포기해버렸다. 깔끔했던가? 음악에 대한 미련이 많이 사라졌다곤 하지만,

나의 한계점과 맞닥뜨인 충격이 커서 그런가 서울에서의 남은 한달을 거의 벙진 채로 보내곤 했었다.

 

물론 음악이라는 것은 굳이 전공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중음악계에서는 비전공자도 많이 성공을 하니까.

즉, 나는 그렇게 간절한 사람은 아니였고, 실은 간절하다며 나 자신을 세뇌시켰을 뿐이다.

만약 내가 그렇게 음악을 하고 싶었더라면,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를 자퇴하고 단칸방에서 겨우살이식으로 살면서라도 레슨이든 뭐든 하면서 내 활동을 했겠지.

아직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하지 못했으면서 음악을 하고싶다면서 징징대는 건 이제 찌질하게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아무튼, 깨끗이 포기했다고 말하긴 힘들고, 학업을 계속 이어가며 모색은 하고 있다.

정규적으로 작곡이라는 것을 배운 게 반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선배가 그 기간동안이라도 많은 것을 내게 알려주려 했고, 

그 형의 지혜를 수용하면서 음악을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는 알기 때문에 

그정도 모색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음악을 할 것이라는 끈을 놓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핵심은 '입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 다양한 음악인들과 교류할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린 셈이다.

 

그렇게 2017년 3월이 왔다.

불합격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진주로 내려갔다.

서울에 비해 진주는 비교적 따뜻했지만, 그래봤자 늦겨울이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은 편입을 하거나 졸업을 해서 친한 사람이랄 것도 없었다.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존나게 쓸쓸했다.

어느정도 마음을 달래보고자

동아리생활이라도 하면서 감을 잃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피아노를 쳐댔고,

일반교양식으로 음악교육과 수업을 듣기도 했고, 짤막한 곡을 몇개 작곡하기도 했다.

부모님한테 최대한 손벌리기 싫어서 알바도 시작했다. 카페 알바 말이다.

 

그럼 뭐해, 알바는 짤리고, 동아리엔 음악적으로 맞다 싶은 사람이 없었고, 타과 수업은 성에 차지 않는걸.

근근히 전공공부는 계속 해오긴 했지만, 예전만큼 러시아어라는 것이 재밌게 다가오진 않았다.

의욕이 없었다. 이 곳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삶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차라리 부모님이 조금 더 힘드시더라도 재수를 할걸 하고 후회가 들기도 했다.

좀 더 나아가 고등학생때 왜 공부를 열심히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공부라도 의욕적으로 했으면 그래도 서울권으로 가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났을텐데.

 

홧김에 자퇴 생각을 하기도 했고, 남강에 몸을 던져볼까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게 뭐겠는가.

내가 여기서 더 공부해야할 껀덕거리라도 만들지 않고서는 니힐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보지.

 

"여행"

 

러시아학 전공생이면서 러시아에 한번 가보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지.

내가 왜 러시아어를 배우겠어, 써먹으려고 배우려는 거 아니겠어.

 

카페 일을 완전히 그만두기 직전에 다짐했다.

일종의 동기부여를 할 겸, 조금 더 생각을 단순화할 겸, 러시아로 가보자.

기왕이면 카프카스도 한번 가보자고. 한국인이 최대한 없는 곳으로.

(물론 1년만에 조지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나라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사이에 살은 겉잡을 수 없이 쪄왔다. 여행 다니면서 사진발은 잘 받아야 될 것 같아

우선엔 군생활동안 쌓인 냉동지방과 스트레스로 팅팅 부어오른 가슴살을 없애야 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끊어서 안하던 운동을 했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학점관리도 꽤 열심히 했고, 알바천국, 알바몬을 뒤지며 알바자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예산을 어느정도 책정해냈고, 어디어디를 갈지 대략적으로 정해놓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큰 맘 먹고 휴학을 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리고 휴학을 해버렸다. 서울에 있었을 때 처럼 저녁알바와 야간알바 이렇께 두탕 뛰었다. - 서점과 편의점.

 

그렇게 미친듯이 돈을 쓸어모았고, 약 600만원 정도가 모였다.

그 중 카메라 값으로 약 90만원을 써버려 대략 5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남았다.

800만원을 목표로 했지만, 부수적으로 나가는 돈이 꽤 되어버린 바람에...

 

서점과 편의점의 케미는 미친듯이 좋았었다.

서점알바를 하면서 책도 많이 사게 되었고, 주로 손님이 없는 야간시간에 읽곤 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시도 많이 쓰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동안엔 또 미술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차라리 디자인을 배워볼까 하다가 때려치우기도 했었다.

앞으로 음악을 하게 되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될 지 길이 조금씩 잡혔고,

내가 정말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끝임없이 사색하고, 주변을 냉정하게 보고자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입시준비했던 기간과 알바 두탕 뛰면서 여행경비 모았던 기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의 결과 스스로의 한계점에 봉착하여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았고,

후자의 결과 앞으로의 삶의 방향, 나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수 있었기에.

 

다시 복학을 한뒤 마스터키보드와 맥북프로, 모니터링 헤드폰을 샀다.

로직을 만지면서 조금씩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믹싱, 마스터링을 배우기 보다는 다양한 VSTi를 접하고, 신디사이징의 감을 익혀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막막하기만 해서(독학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마 졸업하고 따로 레슨을 받을까 싶다.)

 

음악을 조금 더 다양하게 듣기도 했다. 

군대가기 전까지는 락에 기반한 노래를 주로 들어왔고,

병사시절에는 재즈를 주로 들어왔었고,

전문하사 기간을 포함한 입시생 시절에는 클래식을,

그렇게 한동안 클래식을 주구장창 듣다가

러시아음악, 일렉트로니카, 힙합으로 스펙트럼을 점점 넓혀왔다.

한 장르를 깊숙하게 파기 보다는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내 색을 찾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러면서 교환학생으로 떠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하기도 했다. (학점관리)

운좋게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현재 누르술탄)으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여행이 시작될테니 나름대로 자료도 찾아보곤 했다.

첫 해외여행인 만큼 긴장을 많이해서인가, 정말 미친듯이 정보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비행기표, 기차표, 숙소 등을 예약했고 각 도시당 얼마나 체류해 있을 지 정했다.

언어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선 싫든 좋든 말을 해야 시간이 잘 갈 것이기 때문에.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나를 휘감았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진 않을까.

내 힘으로 이루어낸, 나 혼자 개척해 나가는 첫 여행인 만큼 많이 떨리기도 했다.

짐 싸는 데도 요령이 없어 캐리어에 옷이랑 화장품, 뭐 기타 잡다한 것들을 마구 싸잡아넣다보니

짐도 꽤나 무거웠다. (여행 도중 되게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2018.07.07, 권태를 떨쳐내고자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날아갔다.

난생 처음 나홀로 비행기 출국,

두려움과 설렘에 제멋대로 콩닥이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허무함을 떨쳐내버릴 그 무엇을 찾으러 떠났다.

 

한달 반의 여행, 좀더 길게 봐서 약 1년 1개월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러시아(2018.07.07 출국) - 아르메니아 - 조지아 - 한국(휴식, 재정비, 밀린 일 마저 하기)

- 카자흐스탄(교환학생; 2018.09.13 출국) - 우크라이나(2019.01) - 키르기스스탄(2019.05) - 우즈베키스탄 - 러시아(2019) - 발트3국 - 폴란드 - 우크라이나(2019.07) - 러시아 모스크바 - 한국(2019.08.09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