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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은 엄청 단순한 것에서 시작된다. 

무심결에 피터팬 콤플렉스의 로케트라는 곡이 머릿속에 맴돌면 2013년 갓 새내기가 되었던 그 시절의 추억을 왜곡하고,

지나가다 우연히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를 보면, 나를 정말 못살게 굴었던 우즈벡 공연단원(특히 남자 아재들!)들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좋은 추억이 왜곡된다.

 

'볼쇼이 쿠날레이'라는 곳을 내가 알게된 것도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드미트리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고, 그가 부랴티아 출신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갑자기 부랴티아라는 곳에 호기심이 생겨 검색을 해봤다.

처음에는 완전히 티벳정교스러운 건축물로 조성된 어느 작은 마을을 떠올렸지만,

그런 곳은 많이 없었던 것 같고(다짠도 그렇게 많진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대체로 자연 관광지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찾게 된 곳이 '타르바가타이 시'였다.

타르바가타이 시의 사진을 어느 정도 보고 인터넷 서핑도 좀 하다 보니, 이 주위에 가장 아름다운 시골로 선정된 곳이 있다고 해서 알아본 게 볼쇼이 쿠날레이(Большой куналей)다.

 

17세기 중엽 정교회가 신구파로 나뉘었고, 고의식파(старообрядчество)들이 국가의 차별과 탄압을 피해

구교도의 박해를 피해 현 벨라루스의 베트키(Ветки; 호멜 주)로 이주하곤 했다. 

당시 베트키를 통치하고 있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이 쇠약해지자, 러시아가 이 곳을 점령했고, 그 후

예카테리나 2세의 칙령에 따라 1765년에 거기에 있던 약 40,000명의 구교도 신자들이 부랴티아로 쫓겨나 바이칼 인근의 다양한 곳으로 흩어져 살았다고 한다.

대체로 대가족 단위로 이주를 해왔기 때문에(혹은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이들을 세메이스니예(Семейные)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교도인의 전통 의복(혹은 짬뽕)을 입은 사람들. 출처 : http://wiki.starover.net/

예카테리나가 구교도 신자를 세금 감면 혜택까지 줘가면서 멀고 먼 땅으로 이주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러시아 민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부랴티아가 러시아령이라는 것을 정당화하고, 국경을 수호하는 코사크에게 식량을 공급해줄 농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머나먼 낯선 땅으로 이주당해 부랴티아의 서남부 지방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대표적으로 타르바가타이(Тарбагатай), 비추르(Бечурский), 무호르시비리(Мухоршибирь) 등이 있다. - 대체로 러시아-청나라 국경지대.

볼쇼이 쿠날레이도 이주민의 마을 중 하나로, 구교도적 생활 양식에 따라 살고 있다. 

출처 : https://newbur.ru/n/44641/
출처 : https://zen.yandex.ru/media/id/5c40615ef2b20900a9599b2c/bolshoi-kunalei-i-malyi-kunalei-5d9e8a630ce57b00af047c27
출처 : https://visit-rzn.ru/strany-evropy/krasivye-nazvaniya-russkih-dereven-pyat-samyh-privlekatelnyh-sel-rossii/

지금까지 구교도의 생활방식을 잘 보존해왔다는 공로로 타르바가타이 일대의 문화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전통복장은 채도 높은 색의 옷감을 사용한 것과, 구슬을 이용한 장식이 가장 큰 특징이고,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적 요소가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그 외에도 부랴트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의 의복 양식에도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오두막 집도 알록달록하게 채색되어 있어 세메이스니예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만의 유서있는 합창단을 갖추고 있는데, 프랑스,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팻말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러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시골&소도시 - 볼쇼이 쿠날레이. 어서오십시오!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지만, 인구의 고령화가 가장 큰 쟁점이다.

이를 계승해야할 젊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버리고, 그러다 보니 마을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이러한 기조는 러시아 시골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곳이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러시아 시골 마을'을 엄선해 인프라를 구축하려 하는 듯 하다.

 

사실 구교도들이 모여 살았던 곳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타르바가타이(Тарбагатай)가 있다.

거기도 선명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꽤 많이 있다.

원색 계통을 많이 이용하고, 그런 계통을 좋아하는 것은 구교도 신자의 공통적인 취향인 것 같고,

오히려 과감한 색상을 이용하면서 '원초적인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드는 것 같다.

'구'라는 말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영상에 의하면) FM적인 요소는 더이상 없다고 한다.

즉, 민족 의상은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이상 잘 안 입게 되고, 결혼식같은 경우도 전통 방식으로 잘 진행되진 않는다고 한다.

-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다, 이미 현대 문명을 맛보았으니...

그래도 드문드문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전통 방식으로 환대를 하면서 구교도 문화의 많은 부분을 최대한 보려주고는 하고 있다.

국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골 중 하나로 선정한 걸 보니 이 마을을 말미암아 관광 수입을 어느정도 노리는 것 같긴 하다.

 

만약 이 곳이 관광객을 많이 끌어 들이고자 한다면, 마을을 어느 정도 재정비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나같은 놈은 정말 이런 원초적인 게 맘에 들지만, 대개 관광객들은 도시나 촌락을 여행할 때 어느 정도 정돈된 모습을 바란다.

여행객들의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하여 러시아 당국이 이 마을을 잘 다듬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진과 영상을 보고, 무형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공간인 만큼, 이러한 문화를 계승하는 사람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길을 잘 만들고, 양철 지붕을 기왓장으로 대체시키고 하면 정말 이쁜 곳이 될 것 같다.

깔끔하게, 마을이 가진 매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프라를 잘 구축해내면,

아마 전 세계에서 오려고 난리 칠 거고, 한국 사람들 인생샷 찍으러 많이들 올 것 같다.

 

잘리시치키 포스팅할 때 말했듯, 이 시설 저 시설 아무거나 막 넣고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유적지나 자연관광지는 그 경관을 해치는 요소를 인프라랍시고 너무 많이 잡아넣어서 문제다 하여간에...

이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미를 인프라라는 빌미로 훼손시키지 않길...

 

 

 

 

혹시 갈 사람이 있나 싶어서 가는 방법을 살짝 적어놓긴 하겠다.

 

http://www.visitburyatia.ru/company/raspisanie/

 

(Ulitsa Sovetskaya 1, Ulan-Ude, Buryatia)

여기서 441번 버스 타고 출발하면 된다. 아침 7시 부터 저녁 7시 까지 30분 간격으로 출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