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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buro247.ru/culture/music/12-apr-2017-husky-and-esenin.html

Рэпер Хаски просидел неделю в тюрьме, его концерты в разных городах были сорваны, а в песнях обнаружили признаки экстремизма. Сергей Минаев выясняет у артиста, в какие игры, помимо политических, он продолжит играть.

래퍼 하스키(Хаски)가 1주일 동안 구금되면서 도시순회공연이 취소되었고, 그의 노래 속에서 극단주의적인 상징매개들이 발견되었다. 세르게이 미나예프(Сергей Минаев)는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음악적으로 정치적인 행보를 꾸려나갈 지 물어보았다.

 

크라스노다르에서 콘서트를 제지하자 자동차 위로 올라가 자신의 곡 "Ай"를 관객들과 부름. 이후 체포된 뒤 재판을 받음. 체포된 하스키를 떠나보내며 관객들은 러시아 국가를 부르고 있다. 출처: Meduza.

세르게이 미나예프 : 우선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거의 8년 동안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잖아요. 하스키씨는 음악계에서 진실을 중요시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 생각이 들어요.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 쪽에 종사하지도 않고 종사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최는 몇개월 동안 콘서트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고, 키셀레프가 «России 1»에서 하스키씨를 마야코프스키에 빗대기도 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현재 정치판의 중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고 계신가요?

 

하스키 : 확실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정치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싶지 않아요. 양복을 입으면서 국가두마에서 정치에 종사하고 싶지도 않아요. 정신줄 놓고 음악이나 시를 쓰면서 호텔 발코니에 목을 걸고 싶어요. 저는 그런 활동을 좋아하지, 웅변조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세르게이 : 호텔로 화제를 돌려보죠. 어제 지인이 저한테 메세지를 보냈어요. 제가 하스키씨를 인터뷰하는 지도 몰랐죠. 그 기자랑 최근에 있었던 공연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때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하스키 마케팅 관계자가 잘 해냈어, 근데 하스키 자신이 만족했는지는 궁금하네." 이러한 지지의 움직임이 생겼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스키 : 임시구금소에서 있었는데 경찰이 저를 복도로 불러내더니 폰으로 뉴스를 보여줬죠. "옥시미론, 노이즈, 바스타..." 그때 전 스칸보르드(낱말퀴즈)를 하루종일 풀고 있었죠. 정말 이상했어요. 처음엔 어떻게 반응을 해야될 지 몰랐지만, 좋은 쪽으로 보기로 했어요.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했다" 이런식으로요. 선동자인 마냥 공연을 하고 난 뒤, 의도치 않게 그 속에서 제 역할을 다했죠.

 

세르게이 : 구금소는 어땠나요? 누구랑 있었나요?

 

하스키 : 위험한 상습범들이 있었죠. 한 놈은 위자료를 납부하지 않았고, 다른 놈은 자신의 주차장에 리어카를 대놓고 엔진을 흘린 것에 대한 복수극을 펼쳤죠. 저랑 같이 앉아 있었던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몸을 긁고 앉아 있어서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두려워 했어요. 극도로 단순한 사람들이에요. 건너편 유치장에는 8명 가량의 노숙자가 앉아 있었는데, 악취가 엄청 풍겼죠. 제가 갖혀있던 곳은 이런 룰이 있었어요. 냄새가 나면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끼리, 냄새가 나면 노숙자 무리들이랑. 뭐, 그랬어요.

 

세르게이 : 코엔형제의 코미디극을 보는 것 같네요.

 

하스키 : 그렇죠.

 

출처 : https://piter.tv/event/Reper_Haski_priedet_v_Peterburg/

세르게이 : 최근 콘서트에서 검열관에 관한 가사는 다 빼지 않으셨나요.

 

하스키 : 아니요. 한 번은 일부러 무대에서 관객들이 그 부분을 부르도록 마이크를 넘긴 적은 있어요. 상호작용인 셈이죠. 가사를 빼거나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세르게이 : 그러니까 구금당한 이후로도 어떤 부분은 빼야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거죠.

 

하스키 : 그렇죠. 청중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요. 제가 선창하면, 관객들이 후창하는 거죠. 자신들이 똑같은 범죄자가 된다는 게 재밌다 이거예요. 좋은 현상이죠.

 

세르게이 : 관객은 얼마나 있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하스키 : 6500명 정도 예상했는데 500명 모자랐어요. 비영리적인 공연치고는 나쁘진 않았어요.

 

세르게이 : 저는 많다고 느껴지네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가수가 러시아에 쉬누르(Шнур)랑 젬피라(Земфира) 이렇께 두 명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거든요. 뭔각 감회가 새로웠나요?

 

하스키 : 그런 것 같은데, 저는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아서... 제게 가장 적합한 무대는 5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클럽이에요. 그런 곳에서 공연할 때 좋은 느낌을 받아요. 7000명의 관객이라, 뭔가 사진을 벽지로 바른 느낌이에요.

 

세르게이 : 좋은 비유네요.

 

하스키 : 네.

 

세르게이 : 후드티 모자를 벗으면 사람들이 하스키씨를 많이 알아보나요? 

 

하스키 : 주기적으로 알아봐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지하철을 애용하는데, 지하철을 타면서 후드 모자를 써야겠다는 것을 느꼈죠. 저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세르게이 : 한 신인 프로듀서가 저한테 이런식으로 물었어요. "세르게이씨, 세르게이씨께서 일하는 잡지(에스콰이어)사에서는 하스키를 좋게 보나요?"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네, 좋게 봐요, 재능 있는 래퍼잖아요." "근데 걔 완전 광고주잖아요." "무슨 말이에요?" "총 맞아 죽은 모습을 연출해서 리츠칼튼 호텔 베란다에서 목 매단 퍼포먼스를 했잖아." 이 말에 전 이렇게 답했어요. "뭐 어때, 난 하스키 노래를 들어.". 하스키씨라면 어떻게 말하셨을 것 같나요?

 

하스키 : 총 맞았다는 건 제가 생각해낸 게 아니에요. (윗옷을 벗고 외상 자국을 묘사한 것.) 뭔가 제 인생에는 끊임없이 무슨 일이 발생해요. 그냥 제가 유명해지니까 이런 이야기가 생기는 거예요. 내 친구가 클럽같은 곳에서 누군가의 점퍼를 가져갔고, 어디선가 저를 총으로 쏘고는 무슨 일이 또 일어났다는 식의 이야기요. 리츠칼튼에서 일어난 퍼포먼스의 플롯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내용을 말해줄 수도 없어요.

 

세르게이 : 작년에 저명한 래퍼들이 많이 죽었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건가요?

 

하스키 : 연관성이 조금 있어요.

 

세르게이 : 미신적인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목을 매는 퍼포먼스로 장례식을 치른 건가요?

 

하스키 : 아뇨. 악령의 장난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저는 인간 형상을 지닌 몇몇 악마를 봤어요. 이상했죠, 특히나 장례식이 끝난 뒤 1주일 동안요.

 

세르게이 : 예를 들자면요?

 

하스키 :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한 번 느껴봐야 돼요.

 

리츠 칼튼 호텔 퍼포먼스. 출처 : https://the-flow.ru/news/husky-from-window

 

하스키 : 네.

 

세르게이 : 당신 아내가 임신했는 지 모르고 계셨나요?

 

하스키 : 알고 있었어요. 네, 저는 제 유명세로 놀아난 거예요. 따로 뭘 또 하겠어요? 지루해요.

 

세르게이 : 교회는 다니시나요?

 

하스키 : 네, 다녀요.

 

세르게이 : 신을 믿으시나요?

 

하스키 : 되게 곤란한 질문이네요.

 

세르게이 : 언젠가 고해성사를 한 적은 있으신가요?

 

하스키 : 네.

 

세르게이 : 21세기에 들어 사람들은 교회나 심리학자나 페이스북을 찾는데, 하스키씨는 교회를 선택하셨나요?

 

하스키 : 네. 심리학자를 찾아가긴 두렵고, 페이스북은 없어요.

 

세르게이 : 왜 심리학자를 두려워 하시죠?

 

하스키 : 저랑 말하는 사람이 저보다 부족하지 않아야 된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종이상자와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친구랑 그런 주제로 대화하는 게 더 낫겠어요.

 

세르게이 : 친구는 많은 편인가요?

 

하스키 : 그다지 많진 않아요.

 

세르게이 :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연락이 두절된 친구는 얼마나 되나요?

 

하스키 : 말하기 어렵네요. 단 한 번도 친구가 많았던 적이 없어서요.

 

세르게이 : 사람들이 하스키씨를 노이즈마케팅이 뭔지 잘 아는 대단한 쇼비즈니스 맨. 무엇이 하스키씨의 인생을 생생한 퍼포먼스로 바꿨는 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스키 : 부분적으로는 맞아요. 최근 들어서 그런 항간의 소음이 지겨워지긴 했지만요. 저는 살아가면서 무엇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진 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 걸 생각한다는 게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거든요. 한 해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에게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예요.

 

세르게이 : 이게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스키 : 아마도요.

 

세르게이 : 올해 몇살이시죠?

 

하스키 : 25살이요.

 

세르게이 : 자신의 삶에 더 큰 두려움이 느껴지시는 건가요?

 

하스키 : 저는 항상 어떤 것 때문에 삶이 두려웠어요. 공포감이 흉측한 모습으로 저에게 엄습해 오는 걸 느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세르게이 : 그래도 그런 공포감이 어딘가로 도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나요?

 

하스키 :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지 모르겠네요. 즉, 어찌 어찌 해서 도네츠크로 갔어요. 사진을 찍고 전투가 진행중인 공항으로 갔죠. 그 때 지금 그 현장으로 다가가 촬영을 좀 해본 뒤 도망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 사유지가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군이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놨더라고요, 사람은 없고 개만 있었어요. 어떤 개는 혈통있는 비싼 개였죠. 공포감에서 나온 힘이 저를 공항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준 매개체가 되었어요.

 

세르게이 : 혼자 갔었나요?

 

하스키 : 네, 제 주변에 있는 군용차량으로부터 몸을 숨기곤 했어요. 그러다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고요.

 

세르게이 : 누가 이송해 갔나요?

 

하스키 : 그 때 운이 참 좋았던 게, 저를 그 자리에서 쏴 죽였을 수도 있었는데 살려뒀어요. 그 사람들은 모토로라(Моторола; Арсен Павлов의 가명) 분대인 "스파르타(Спарта)" 소속 군인이었어요. 모토로라한테 이송되었는데, 2시간 동안 제가 방해 분자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느라 애 썼어요. 

 

세르게이 : 자하르 프릴레핀(Захар Прилефин; 러시아 작가, 전쟁 파견작가)도 그 때 도네츠크에 있었나요?

 

하스키 : 학문적 목적으로 왔지만, 내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어요. 그 땐 모토로라(와 잘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았어요.

 

세르게이 : 무슨 목적으로 거기로 가셨나요? (모스크바의 TV 방청객 세르게이 미나예프가 묻습니다.)

 

하스키 : 그거 아시나요, 제 정치 성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아요. 18살 때 우여곡절 끝에 «7 октября»를 녹음했어요. 20살 쯤 되었을 때, 멀리 떠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봐야 할 필요가 있었죠. 제 정치 성향은 유튜브 영상 몇 개 봐서 생기는 게 아니예요. 제 생각에 정치 성향이란 영혼에 새겨진 상처예요. 끔찍하게 들리네요 (웃음). 저는 말을 하고 다양한 옷을 입으면서 일을 하는데, 그 사이에 쉴 틈이 없죠. 제가 상처받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세르게이 : 돈바스에는 몇 번 가보셨나요?

 

하스키 : 한 12번 보다는 덜 간 것 같아요.

 

세르게이 : 더 이상 거기로 가지 않게 된 계기가 뭔가요?

 

하스키 : 저는 멈춘 게 아니에요. 마지막에 방문한 게 콘서트하러 갔을 땐데, 반드시 다시 갈 거예요. 저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 가잖아요. 인문학적인 목적으로도 몇 번 갔었어요.

 

세르게이 : 많은 사람들이 모든 나라에서 힙합은 정부의 정치에 반발한다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outlaw라고들 해요. 갑작스레 도네츠크로 가셨잖아요. 반정부 아티스트로 낙인 찍히는 게 두렵지 않으신가요?  

 

하스키 : 도네츠크에 있었다는 건 진정한 불법행위죠. 아니요, 전 비난의 화살이 두렵지 않아요. 자하르가 페이스북에 제 뮤직비디오를 첨부하면서 포스팅을 할 때, 28가지를 명료화 시키죠. 이런 식으로요. «랩이라는 음악 장르가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번 보세요, 여기 핵심이 있어요.». 나발느이(러시아 사회학자)가 «하스키를 지지합시다, 그렇다고 그 어떤 경우에도 제가 하스키를 친돈바스인이라고 몰아세운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런 운동가들의 말들이 제게 부끄러움을 줘요.

 

세르게이 : 제 생각엔 그걸 즐기시는 것 같은데요.

 

하스키 : 당연하죠.

 

세르게이 : <황금을 찾아라.>(소련 영화: Свой среди чужих и чужой среди своих)

 

하스키 : 그렇게라도나마 자립심을 유지시킬 수 있어요. 제 정치적 관점은 대충매체를 읽으면서 생긴 게 아니에요. 진보세력들과 술 마시고 즐기려고가 아니라 그런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거죠.

 

Хаски - Иуда. (2018) «Евангелие от собаки»에 수록될 곡 중 하나였지만, 앨범 발매가 취소되면서 «Иуда»만 발표된 상태다. 러시아 연방 일대에서는 조회 불가능.

 

세르게이 : 이번 해에 새 앨범 «Евангелие от собаки»를 내야 했었는데,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고는 계획을 취소했잖아요. "내게 덮쳐오는 비난을 어떻게 없애버릴까 너무 많은 고민을 한다. 이젠 다르다. 나는 삶 속에서 확실한 해결책을 찾았다." 장난인가요 아니면 뭔가 심상치 않은 생각이 떠오른 건가요?

 

하스키 : 둘 다 해당돼요.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네요.

 

세르게이 : 왜요? 젊고, 유명하고, 수 천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시는데.

 

하스키 : 저는 예술적인 문제만 해결해요. 다른 건 제 흥미를 끌지 않아요. 뭔가 거창한 걸 쓰려면,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돼요. 지금 당장에는 그런 거창한 걸 다룰만한 요소가 없네요. 유명해지려고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아요. 새 앨범을 내게 된다면 고전음악이라던가 큰 의미는 없을 거예요. 뭔가 떠올릴 수 있도록 조용한 환경 속에서 많은 사색을 해야 돼요. 1년, 2년 아니면 3년 정도.

 

세르게이 : 콘서트를 취소하고 키셀료프 중심의 «Россия»채널에서 더이상 방송을 하지 않으면서 권력과 서브컬쳐 사이의 중계자가 되는 건 어떻겠냐는 말은 없었나요?

 

하스키 : 저는 "고향", "러시아", "러시아 역사"에 매력을 느끼고 우러러보는 사람이에요. 스메르쟈코프(<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등장인물)같은 작자가 아니죠. 요즘 실권자들과는 말도 못할까봐 두려워요.

 

세르게이 : 왜죠?

 

하스키 : 모든 것을 빼앗는 무리가 있어요. 그 주위로 정치 상황을 보도하는 미디어층이 둘러싸고 있죠. 상황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그 무리가 돈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애석하게도 그래요.

 

세르게이 : 하원에 로마 지간(러시아 래퍼), 프타하(러시아 래퍼), 그 외 몇몇 사람들을 초청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렇게 말했죠 "당신들 대체 뭐야?"

 

하스키 : 이런 사람들 빼고는 음악가들은 하원에 입단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40살 조금 안되는 나이의 더 성숙한 사람들이기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다르죠.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다고 생각돼요.

 

세르게이 : 왜죠?

 

하스키 : 저도 몰라요. 청년정책부(?)에서 정책을 내놓는 모든 사람을 놓고 보자면, '청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즉,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방식 속에서 무분별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에 권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인거죠. 지금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있어요. 미코얀(아르메니아 정치인)의 별장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두 알고 있죠.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인터넷 세대가 텔레비전 세대와 같이 않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이들은 부모와의 간극을 가지고 있죠. 거기서 저는 젊은 세대들의 안목과 국정경영능력에 의문을 가져요. 다양한 해결책이 있을 뿐이죠.

 

세르게이 : 저는 거의 20년 동안 이런 말을 들어요. "여기, 일꾼들이 죽고 모든 게 바뀌었다." 대충 맞다고 네-네 하지만, 계속 아무것도 안 바뀌고 있죠. 그러고는 저보다 어린 30살 먹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네들 두목의 물 두방울같다는 걸 알게 되죠.

 

하스키: 음, 인터넷과 같이 자라온 밀레니엄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돌연변이예요. 심지어 신체적 조건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세르게이 :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다양한 뮤지션과 레코딩을 하신다는데 왜 그러시는거죠?

 

하스키 : 콜라보레이션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아요.

 

Хаски - Вокруг так много всего (feat. Казускома) (2018)

세르게이 : 최근에 «Казускома»랑 콜라보한 트랙을 내셨잖아요.

 

하스키 : 네, 맘에 들어요.

 

세르게이 : 러시아 음악계에서 누구를 가장 최고로 꼽나요?

 

하스키 :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 음악가인데, 페테르부르크에 Батерс라는 아티스트가 괜찮더라고요. 카라간다(카자흐스탄의 도시)의 Масло Черного Тмина의 스타일도 맘에 들고, 그 외에도 Big Baby Tape도 좋았어요. Батерса랑 Масло Черного Тмина도 Big Baby Tape가 올해 그랬듯이 대박쳤으면 좋겠네요.

 

세르게이 :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느껴지나요? 2010년의 하스키와 2018년의 하스키 사이에 어떤 크나큰 아티스트적 행보를 걸으셨나요?

 

하스키 : 사실 최근 2년동안 일어난 일을 평가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의자에 엉덩이 탁 붙이고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세르게이 : 뭔가 읽을 시간은 있나요?

 

하스키 : 네 있어요. 오늘날 어떤 러시아어 단어가 쓰이는 지 알아야 하니까요.

 

세르게이 : 오늘날 어떤 러시아어 단어가 쓰인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스키 : 공부하려고 하고 있어요. 순수시는 뭔가 제 취향은 아니에요. 보리스 리쥐(Б. Б. Рыжий; 러시아 시인, 지질학자.) 이후로 절 감동시킨 작품은 없었어요. 안드레이 로디오노프(Андрей Родионов;러시아 시인)도 나쁘진 않았어요.

 

세르게이 : 제 미숙한 시점으로 보아 음악에 더 주의를 기울이려 하시는군요. 하스키씨는 시인이지만 지금은 아마 뮤시션으로 많이 나아가신 듯 해요.

 

하스키 : 저는 100% 가사 중심의 래퍼지만, 음악도 정말 좋아해요. 무엇보다, 언젠가 가사라는 게 저를 죄여올 거예요. 음악이라는 건 어찌 되었든 상관 없지만, 가사는 기억되는 것이잖아요.

 

세르게이 : 뭔가 대작을 쓸 수도 있나요?

 

하스키 : 반드시 할 거예요. 그렇게 해두죠.

 

세르게이 : 결혼은 언제 하셨죠?

 

하스키 : 2017년 여름에요.

 

세르게이 : 결혼생활로 인해 변한게 있나요? 좀 더 세심한 사람이 되셨는지요?

 

하스키 : 그렇게 잘은 모르겠어요. 사람을 속이거나 그러진 않아요. 변한 게 있다고 함은, 주거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가정을 꾸릴려면 어딘가에는 살아야 되잖아요.

 

세르게이 : 가정생활이 시작되었네요.

 

하스키 : 이런 생각도 드네요. 모든 게 제대로 된다면, 연극을 하면서 왼발로 해결을 할 수 있는지. (번역 불가)

 

세르게이 : 음악으로만 돈을 벌고 계신가요?

 

하스키 : 네, 오직 음악으로만요.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해낼 수도 있겠지만, 돈이 그리 많이 벌리진 않아요.

 

세르게이 : 울란우데에서의 어린시절에 관해 질문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동쪽으로 이르쿠츠크를 넘어선 적이 없다보니 울란우데라는 곳을 상상할 수가 없는데요, 거긴 어떤가요? 이른 시기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싫어하진 않았나요? 싸움은 있었나요?

 

하스키 : 그런 건 없었어요. 지금까지 제 곁에 있는 불알친구들이 있어요. 좋은 사람들도 적잖게 있어요, 제 주변 환경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지만요. 주위엔 주정뱅이, 범죄자, 지독한 가난, 공통적으로 느끼는 절망, 질퍽한 길이 있었죠. 러시아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쓸데없는 것 같아요. 다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아실 거예요.

 

세르게이 : 울란우데에 살 때 거길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나요?

 

하스키 : 뭐 그렇죠.

 

세르게이 : 거기로 돌아가곤 했나요?

 

하스키 : 당연하죠. 고향으로 돌아갈 때면, 매번 더 따뜻해지고, 어린시절 만큼 그렇게 혹독하지만은 않아요.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이 죽고 있다는 거예요. 수도를 우랄산맥 너머로 옮겨야 할 필요가 있어요.

 

세르게이 : 부모님은 뭐라시던가요? 어떻게 하스키씨를 바라보시나요?

 

하스키 : 엄마는 되게 사려깊은 분이세요, 단순한 사람은 아니셨죠. 사적인 얘기를 안하시다 보니 서로 서로를 2명의 다 큰 성인처럼 대하곤 하셨죠. 혼낼 일이 있으면 제게 공손하게 물어보고 제가 답을 하는 식으로요. 내면에서 사람을 동등하게 본다는 걸 느끼곤 했죠.

 

세르게이 : 부모님이 하스키씨가 스타가 되었다는 걸 아시나요?

 

하스키 : 아마도요. 가끔씩 기자들이 부모님을 취재하기도 해요. 그럼 엄마한테 말해요 "그냥들 왔어".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항상 의논해요. 가능하다면 제 유명세가 가족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면 해요.

 

원문(Оригинальная статья) : 

https://esquire.ru/hero/81392-haski-ya-ne-boyus-mne-naplevat/

 

Хаски: «Я не боюсь, мне наплевать»

Рэпер Хаски просидел неделю в тюрьме, его концерты в разных городах были сорваны, а в песнях обнаружили признаки экстремизма. Сергей Минаев выясняет у артиста, в какие игры, помимо политических, он продолжит играт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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