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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아야 될 세계적인 우크라이나 화가-1에 이어지는 포스팅입니다.

 

6. 미하일로 세르히요비치 드미트렌코 (Михайло Сергійович Дмитренко)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화가로, 미니애폴리스, 뉴욕, 토론토에 있는 교회에 벽화를 그리곤 했습니다. 20세기동안 다양한 국가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프랑스 루르드 지역에서 그의 작품을 3점 보관중이고, 로마에는 올가 공작부인의 형상이 있습니다.

 

미하일로는 자신의 작품에 민족적 특성을 투영했는데, 유명한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 초상화가이기도 했고, 판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성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드미트렌코는 본인의 작화기법에 유스티니아우스 재임기(5~6세기) 동안의 비잔티움 양식과 고대 우크라이나 민속 예술 양식에 기초한 기법을 기초를 두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 예술인 단체를 구성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민의 문이 열리자 드미트렌코는 캐나다로 거처를 옮겨 디트로이트에서 자신의 여생을 지냈습니다.

 

7. 다비드 다비도비치 부를류크 (Давид Давидович Бурлюк)

 

 

2007년, 전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현대 예술품 경매시장 소더비(Sotheby's)에서 부를류크의 그림 <교회에서(В церкви)>이 65만 달러에 팔리면서 우크라이나 예술품 경매가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초기 가격는 16만 달러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수미 주(Сумська область)가 고향인 부를류크는 미래파 화가로, 그림 속에 아방가르디즘 개념을 접목하곤 했습니다.

 

볼셰비키와 이념적으로 맞지 않아, 처음에는 일본으로 갔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부를류크는 유럽, 호주, 미국 등지의 다양한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은 현재 뉴욕 기념 박물관이 보관중이고, 러시아, 유럽 국가, 일본, 캐나다에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8. 소피아 필리피브나(필리피우나) 레비츠카 (Софія Пилипівна Левицька; 佛 Sonia Lewitska 소니아 르위츠카/소니아 루이츠카/소냐 루이츠카 )

 

 

우크라이나 출신 화가 소피아 레비츠카는 프랑스인에게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 미술가들이 다수 가입해 있었던 '소피아 레비츠카의 친구'라는 커뮤니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의 이름은 20세기 프랑스 미술 역사에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박물관과 개인에게는 레비츠카의 작품이 거의 없다 시피 합니다.

 

소피아는 경험을 쌓고자 파리로 왔지만, 이후 프랑스에 계속 남아있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작품을 '살롱 도톰느(Le Salon d'Automne)'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현대미술 비평가 및 추종자,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천국의 정원에 살고 있는 유니콘"이라며 극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파리는 레비츠카의 재능을 인정한 셈이다. 그 후 베를린과 프라하에서도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피아 레비츠카는 우크라이나 민족 예술에서 오는 영감을 입체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법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9. 미콜라 네딜코 (Микола Недiлько)

 

네딜코는 우크라이나의 고흐라 불릴 만큼 정통 색채파 화가이자 풍경 화가입니다.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파리 등지에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국가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를 느끼지 못하자, 독일로 이민을 갔다가 후에 아르헨티나,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네딜코는 그림 속 선명하면서도 명쾌한 표현력, 생각치도 못한 색채 조합으로 이목을 끕니다. 미국의 콜렉터는 오늘날 거금을 주고 경매에서 그의 그림을 사들이곤 합니다. 미콜라 네딜코의 그림은 현재 매우 희귀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구글링을 해봐도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 역자)

 

10. 미콜라 흐리호로비치 부토비치 (Микола Григорович Бутович; 예명 - 부툼바스; Бутумбас)

부토비치는 유명한 화가이자 캐리커쳐리스트입니다. 부토비치의 그림은 현재 프라하와 라이프치히의 갤러리에 보관되어 있고, 서유럽이나 미국의 예술품 수집가 집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사탄숭배자의 형상'의 테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시절 부토비치는 20가지의 대회에 나가 대상을 싹쓸이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독일 내에서는 외국인 학생에게 상을 안주려고 하는 사회적 기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부토비치는 그 어떤 화가의 작품과도 유사성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그의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현대적 작화로 쓰여진 우크라이나의 역사, 신화, 일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원문 : Украинские ходожники мирового уровня, имена которых нужно знать.

https://zik.ua/ru/news/2017/08/09/ukraynskye_hudozhnyky_myrovogo_urovnya_ymena_kotorih_nuzhno_znat_1147289

 

Украинские художники мирового уровня, имена которых нужно знат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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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크라이나어에서 и가 노어의 ы발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편의상 /i/발음으로 표기한 점 알려드립니다!

** 제정 러시아 시기에 주로 활동했던 인명은 러시아식 발음을 따랐고,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식을 따랐습니다.

 

우크라이나 땅에서 적지 않은 천재들이 태어났고, 그 천재성은 낯선 땅에서 발휘가 되곤 했습니다. 예술 전문가들이 그들의 예술작품을 알아보곤 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세계적으로 인정은 받지만 정작 모국(우크라이나)에서 인지도를 얻지 못한 예술가들을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각자는 알아둘 필요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10명의 예술가를 소개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될 예술가들은 대체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했으며, 전세계적으로 그 능력을 높이 사는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 Uamodna.

 

1.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무라쉬코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Мурашко)

 

 

무라쉬코의 작품 대다수는 왕실가문이 개인적으로 수집을 하곤 했고, 그 자신은 베를린, 쾰른, 뒤셀도르프, 베네치아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 무라쉬코는 초상화가로 자신의 이름을 떨치곤 했고, 유럽에서는 클로드 모네, 폴 세잔느와 견줄만한 우크라이나의 독특한 인상주의적 기법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무라쉬코는 유럽의 그 어떤 화가와도 겹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지녔습니다. 알렉산드르가 '화려한 꽃'을 자신의 작품에서 테마로 다루곤 했습니다. 키이브(키예프)에서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예술 아카데미의 기초를 다지는데 이바지했습니다.

 

44년동안 살아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예술적 플랜로 가득한 무라쉬코는 비극적으로 임종을 맞았습니다. 볼셰비키 군대가 그를 찾아 잔인게 고문하여 죽였습니다. 붉은 군대의 우크라이나 인텔리를 없애고자 하는 확고한 목표 하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닌 유능한 문화인들이 하나 둘 희생되었고, 이는 1920년대를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2. 마리 바시키르체프 (Мария Константиновна Башкирцева; Marie Bashkirtseff)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의 작품은 여러 국가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 프랑스 니스에는 특히 우크라이나 여류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의 작품을 따로 다루는 곳이 있습니다. 폴타바에서 태어난 그에게 대외적인 유명세를 받을 가치을 부여해 준 요소는 무엇일까요?

 

젊은 나이에 프랑스로 이민을 간 바시키르체프는 파리에 자신의 화방을 차렸습니다. 대중은 마리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전시회에서 수많은 메달과 상을 받으며, 신문과 잡지에서 찬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와 에밀 졸라(Émile François Zola)가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마리 바시키르체프라는 프랑스 예술계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파리 근교의 삶, 즉, 하녀와 노동자, 집 잃은 아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화가가 유명을 달리하고 나서 여러 박물관이 바시키르체프의 작품을 사들였고, 몇몇은 루브르 박물관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마리 바시키르체프가 삶을 마감했던 시기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임을 미루어 보아, 원작은 현재 희귀한 실정이다.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마리는 수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끝내 고국(우크라이나)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3. 우물의 니키포르; 니키포르 크리니치키(크리니츠키) (Никифор из Колодца; Никифор Криницький)

 

 

우크라이나 출신 원시주의 미술가로, 전 세계 예술저서에서 17가지의 예명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200개의 그림으로 전시전을 펼친 뒤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니키포르(우크라이나 루신인)은 주로 성경과 상류층을 주요 테마로 다루었습니다.

 

첫번째 개인전은 현재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리비우(Львів; Lwòw)에서 열렸습니다. 그 후 다양한 국가에서 80회 이상의 전시회를 치루었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1957), 독일(1961), 파리(1964)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소박파(Art naïf)의 유능한 혁신가로써 자신의 유명세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니키포르 크리니치키는 단 한번도 메갈로폴리스에 방문한 적이 없고, 항공기를 탑승한 적도 없지만 자신의 그림 속에 거대한 마천루와 날아다니는 새의 시각에서 바라본 도시 경관을 담은 바가 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여성에 대한 환상도 없지만 세련된(??) 포르노를 연상하는 작품을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꽃으로 뒤덮인 도시 구획 단지를 묘사하기도 했는데, 낡아빠진 회색 건물을 식물, 꽃으로 이루어진 고급스러운 꽃봉오리 단지로 표현했습니다.

 

4. 올렉사(올렉시) 바실리오비치 흐리시첸코 (Олекса(Олексій) Васильович Грищенко; Alexis Gritchenko)

흐리시첸코는 세계적 명성을 지닌 유명한 파리계 화가에 속해 있습니다. Musée National d'art Moderne(파리), The Royal Museum in Copenhagen, The Museum of Montreal 박물관 등지에서 꾸준히 그의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뉴욕, 필라델피아, 마드리드, 스톡홀름에서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전문가의 품평에 따르면 올렉사의 각 예술작품은 70만 달러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올렉사는 오랜 시간동안 파리에서 살고 작품활동을 펼치면서 자신의 유명세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이미 자신의 고국을 떠난 그였지만, 파리의 보헤미안들은 그를 '우크라이나 강도'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파리에서 자신의 입체파 기법을 좀 더 역동적인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스타일을 변모하기도 했습니다.

 

흐리시첸코는 앙드레 드렝(André Derain),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유명한 화가로 존경받아 왔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따른 평가처럼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8년 뮌헨에서 발간한 비망록에서 '우크라이나, 나의 하늘 빛깔 꿈을 품은...'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민족성을 우크라이나에 확실이 두었음에도, 서방에서 출간된 일부 저서에서는 지금까지 그를 러시아인으로 기술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5. 야키브(야키우) 야코비치 흐니즈돕시키(흐니즈돕스키) (Яків Якович Гніздовський)

 

 

20세기에 활동한 갈리치아 지방 출신 화가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아티스트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야키브의 작품은 존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의 장식품으로 남기도 했습니다. "그의 판화 작품 하나 하나는 특별한 소우주를 품고 있다."며 흐니즈돕스키의 동료들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흐니즈돕스키는 1950년 미니애폴리스 예술 대학에서 진행된 전시회를 시작으로 전시활동을 펼치다가, 뉴욕의 미국 예술인 협회에서 관리하는 갤러리에서 목판화 시리즈 '소나무'에 수록된 220개의 판화 작품을 전시하면서 넓은 인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1975년 11월에 도쿄에서 개인전을 펼쳤는데,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아들이 그 자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요세이도 갤러리'에서 사들였습니다. 미국 현대미술 전시회와 함께 야키브의 작품은 라틴 아메리카, 일본, 인도에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오늘날 야키브 그니즈돕스키의 작품은 보스턴 박물관, 필라델피아 박물관, 델라웨어 대학교, 워싱턴 대학교, 배틀러 대학, 우드워드 기금단, 넬슨 록펠러 컬렉션, 일본이 여러 박물관이 소유 중입니다.

 

다음 포스팅에 계속 이어집니다. :)

 

원문 : Украинские ходожники мирового уровня, имена которых нужно знать.

https://zik.ua/ru/news/2017/08/09/ukraynskye_hudozhnyky_myrovogo_urovnya_ymena_kotorih_nuzhno_znat_1147289

 

Украинские художники мирового уровня, имена которых нужно знать

Украинская земля породила немало гениев. И часто случалось так, что взращивала их талант чужбина. С их творчеством знакомы специалисты иск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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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쯤 자수를 연구하던 B. 스타소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대인들은 장식을 수놓는 데 있어 선 하나 허투루 놓지 않았고, 문양 하나 하나 마다 고유의 뜻을 부여했다. 이는 그들만의 복잡한 언어이고, 미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이성과 감정을 함재한 근본적인 이유를 지닌 연속성 멜로디다."

 

비쉬반카를 입은 여성.

이번 포스팅에서는 우크라이나 자수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자수가 놓일 천의 색상과 형태, 꽃의 종류, 팔소매에 박힌 꽃, 무늬 그 자체에 녹아든 상징물은 나름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 우크라이나 각 지역마다 무늬나 장식이 상이하고, 심지어 하나의 상징물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컨대 폴레시아(Полісся) 지방(우크라이나 북부와 벨라루스 남부 사이에 위치한 지역)에는 검은 실이 흔하지 않아 검은색은 대체로 죽음이나 애도를 상징하는 반면, 포돌리아(Поділля) 지방(우크라이나 중부 지방; 빈니챠, 흐멜니츠키 지역)에서는 반대로 검은색은 땅을 나타내는 색으로 작용하면서 부유함이나 번창함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 후자는 검은색을 주로 다루는 보르시칩스키(борщівський)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비쉬반카를 입은 여성.

 

비쉬반카(우크라이나 전통 의상)는 가장자리에 장식을 수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손과 뺨, 옷자락에서 신체적 접근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옷의 가장자리 밑을 통해 악(惡)이 들어온다 믿었기 때문이다. 옷 끝자락에 새겨진 자수는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상징적인 요소는 우선적으로 부적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미혼 여성의 윗옷은 팔소매, 목둘레, 옷밑단에 자수가 있고, 기혼 여성의 윗옷에는 가슴과 카라, 팔소매에 수놓아져 있다. 기혼 여성의 비쉬반카에는 밑단 자수가 미혼 여성에 비해 더 넓게 분포해 있는데, 이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비쉬반카를 입은 여성. 가슴에 장식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기혼 여성용 비쉬반카로 추정된다.

 

자수 문양은 기하학(추상)적 문양, 식물 문양, 동물(Zoomorphy) 문양 이렇게 3가지로 나뉜다. 기하학적 문양은 남성성을 나타내고, 식물 문양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불의 기호(마름모형 격자), 태양의 기호(바깥으로 뻗은 빛줄기를 포함하거나 정방형의 십자가를 품은 마름모), 씨를 뿌린 밭의 기호(중앙에 점이 찍혀 있는 마름모)로 남성성을 나타내곤 한다.

 

비쉬반카를 입은 남성. 불을 상징하는 마름모형 격자 속에 태양을 상징하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
비쉬반카를 입은 남성. 불을 상징하는 마름모형 격자 속에 정방형의 십자가와 바깥으로 뻗은 빛줄기가 번갈아 나타난다.

반면 여성복 내 기하학적 상징물로는 직선(땅), 다양한 형태의 나선과 물결, 뱀(물), x자를 연상케 하는 비스듬한 십자가(수확의 룬, 달의 상징)이 있다. 

 

여성용 비쉬반카. x자, 직선과 물결을 연상케하는 선으로 꾸며진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 의상에는 무늬에 남성의 상징, 여성의 상징만 내포해 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는 혼재되어 있다. 사람은 음양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결 형상(물)과 8각별(태양) 형상을 남성의 셔츠에도 여성의 셔츠에도 박기도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기의 상징물로 아동복에 부적으로 수놓기도 한다. 꽃 위에 감도는 별빛은 십자가와 같은 형태로 놓여져 있으며, 이는 태양의 힘을 끌어들이는 기호로 작용한다.

 

빨간 꽃 주위에 검은 실로 수놓아진 x자를 볼 수 있다.

 

비쉬반카의 속면에 매듭을 지으면 안된다는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셔츠를 장식하는 거룩한 의미를 고려해보면, 무늬를 구성하는 매듭은 운명과 삶의 여로에 매듭을 짓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자수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상징체로 베레기냐(Берегиня; 순진한 영혼; 동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가 있다. 베레기냐는 어머니의 정기와 불사의 인생, 가문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신비하고 역동적인 다수의 꽃으로 표현된다. 각 꽃의 가지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나타내기 때문에, 루쉬닉(Рушник; 결혼식에 쓰이는 수건)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무의 중간 부분과 윗 부분에 새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새는 천상계의 상징체, 영원함, 불사, 신성한 존재를 상징한다.

 

베레기냐를 상징하는 자수.
베레기냐를 상징하는 자수.

남성용 셔츠는 기하학적인 무늬로 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여성용 셔츠는 식물 무늬로 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럼에도 비쉬반카에서는 주로 기하학적 무늬나 식물 무늬가 섞인 형태가 많이 보이긴 한다.

 

비쉬반카에 새겨지는 식물의 세계는 충분히 다양하고, 포도나무, 오크(Oak)잎, 백당나무(Калина), 장미, 양귀비꽃, 빈카(Vinca), 라일락, 홉 등과 같은 종류가 쓰여진다.

 

포도나무는 비옥한 토양과 가정적인 삶을 상징하며, 기쁨과 가문의 번영을 가져다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의 비쉬반카에서 포도 다발이나 한 덩어리는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특히 폴타바식과 키이우식 양식이 유명하고, 체르니히우 양식에서는 예외적으로 루쉬닉(결혼식 때 쓰이는 길다란 수건)이나 식탁보에 포도 자수를 놓기도 한다.

 

키이우(키예프)식 여성 셔츠 문양.

오크나무는 신성한 나무이자 천국이나 통합세계에 자라는 세계수 프라두브(Прадуб)가 구체화된 존재이다. 또한 태양의 남성적인 기운과 발전과 삶을 물려받은 번개의 신 페룬(Перун)의 나무이기도 하는데, 이는 강인함, 아름다움, 장수를 의미한다.

오크나무 장식.
오크나무 장식.

백당나무(이하 칼리나)는 오크나무처럼 힘과 아름다움을 구체화시키는 존재이지만, 칼리나가 지닌 힘은 평범하지 않고, 아름다움은 쇠퇴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 만물과 불속성 3총사(해, 달, 별)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고, 해를 의미하는 고대 우크라이나어의 "Коло"라는 단어에서 칼리나(Калина)라는 말이 탄생했다. 빨간 열매는 피와 불사적 존재, 불, 해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루쉬닉과 여성 셔츠, 심지어 남성 셔츠에서도 전반적으로 칼리나 다발이 새겨지곤 한다. '칼리나-피-탄생-불멸'의 방식으로 의미론적 연결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칼리나는 여성의 정신적 삶의 상징으로, 여성성, 사랑, 아름다움, 시집살이, 기쁨과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칼리나 꽃 모양으로 약혼녀의 의복과 카라바이(Каравай; 결혼식 하객 대접용 빵)를 장식하기도 한고, 추수절에 여성들이 꽃으로 화관을 엮기도 한다.

 

오크나무 잎과 칼리나가 혼재되어 있는 양식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젊은 남성의 비쉬반카에서 발견되곤 한다. 건강한 힘과 아름다움을 지니는 종족의 생명력을 강하게 상징하기 때문이다.

 

루쉬닉, 오크나무 잎+칼리나 열매, 칼리나 꽃으로 장식된 비쉬반카

붉은 양귀비꽃은 필자(원문을 쓴)가 가장 선호하는 모티브로, 아름다움과 젊음, 혈기왕성함을 뜻한다. 양귀비 꽃 화관은 여성의 고결함을 상징하며 하얀색과 비교하기도 한다. 종족의 기억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죽은 사람이 흘린 핏방울에서 자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전투가 벌여졌던 들판에 양귀비꽃이 만개한다고 믿었다. 즉, 가냘피 흔들리는 꽃은 종족의 잊지 못할 기억이라는 의미를 내재하고, 선조들이 살아간 세계와의 연결과 불멸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양귀비꽃 장식은 장례용 루쉬닉(Покутний рушник)에 사용되기도 한다.

 

양귀비꽃 장식이 새겨진 비쉬반카.

 

장미는 우크라이나 민족의 꽃으로, 전통 가옥의 창문 맡에 조심스레 간직해 놓기도 한다. 태양이 연상되는 모습을 지녀 셔츠나 루쉬닉에 수놓기도 한다. 장미(Роза)의 옛말인 '루쟈(Ружа)'에서 태양(Солнце)의 옛말인 '라(Ра)'를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우크라이나에서 피(Кровь)는 '루다(Руда)'로 불렸는데, 이러한 이유로 장미는 '들끓는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장미는 사랑의 여신 '라다(Лада)'와 그의 딸이자 봄의 여신인 '렐(Лель)'의 꽃이다. '꽃의 왕'이라 불리는 이 꽃은 자비심과 융성함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특히 붉은 장미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뜻하기도 한다. 장미 무늬는 자수에 사용되는 꽃 문양 중 '멈추지 않는 영원한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요소로 쓰인다. 기하학적 무늬에 놓인 장미는 단순한 꽃을 넘어서서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을 연결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는 '별의 꽃'이기도 하다. 

 

장미 문양.
장미 문양.
장미 문양

 

동물 모티브는 식물이나 기하학적 모티브에 비해 비쉬반카에서 덜 나타나고, 아동들이 입는 비쉬반카나 루쉬닉, 식탁보을 특징짓곤 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로는 비둘기, 뻐꾸기, 닭, 전설 속 새, 개, 말 등이 있다. 

 

비둘기는 민간 사이에서 성스럽고 헌신적인 상을 대표하여 '신의 새'라고도 불리며, 청렴함, 정화의 상징성을 지니고, 혼례의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 쌍의 비둘기는 사랑과 창조를 뜻한다. 영혼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지니기도 한다. 비둘기, 특히나 하얀 비둘기의 형상은 선량한 영혼을 받아들이고, 검은 까마귀는 악한 영혼을 받아들인다고 여겨지곤 했다.

 

비둘기와 장미, 오크나무 잎과 칼리나 열매가 어우러진 장식.

뻐꾸기는 '신화적인 새'의 대표격 중 하나다. 점쟁이 뻐꾸기(Кукушка-гадалка)는 봄을 알려주고,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살아가게 될 지 예견해주기도 한다. 봄날에 뻐꾸기 소리를 듣는 채 돈을 가지고 있으면, 한 해에 행운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뻐꾸기는 죽음과 저승세계에 관한 상징성을 지닌다. 민간에 의하면, 뻐꾸기는 겨울 철새들이 떠나가는 장소(비리예; Вырие)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봄이 오면 떠나갔던 새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사자(死者)의 왕이 거처하는 비리예로 모든 철새가 떠나갔을 때 문을 잠근다. 루쉬닉에서 칼리나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뻐꾸기를 종종 새기곤 하는데, 이는 종족의 유지를 의미한다.

 

백당나무에 앉은 뻐꾸기.

아쉽게도 포스팅 하나에 모든 내용을 담기는 매우 힘들다. 수많은 민간설화의 내용은 우크라이나 자수의 비밀을 풀기 위한 단서로만 접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전통 자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브로도프식 자수 정서법'을 선보일 차례가 이제서야 온 것 같다.

 

'브로도프식 자수 정서법'는 기나긴 세월동안 우크라이나 자수의 다양성을 꾸준히 연구한 볼로디미르 피드히르냐크(Володімір Петрович Підгірняк)를 통해 보편적인 유명세를 띠었다. 피드히르냐크는 환 카르파티 지역의 전통 공예 속 기호의 의미를 연구하여 공예품 속 장식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그는 우크라이나 자수 속 상징체 속 문자, 고대 달력, 작품 속에 내재된 의미를 해석했다. 해석론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하단의 내용은 그의 저서의 일부에서 발췌했다.

 

알파벳 기본 법칙:

 

상기에 기술한 알파벳 정서법의 응용은 그의 저서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필자가 브로도프 정서법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장 많이 끈 부분은 바로 '인명 표기'고, 하단에 첨부된 사진에서 본인만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겨도 되고, 받는 이의 이름을 새긴 주머니를 만들어 선물해 주셔도 됩니다."

 

이름 외에도 문구가 새겨진 부적이나 기도문을 새길 수도 있다.

 

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3. 고귀하신 성모 마리아여, 제 아이의 어머니이자 비호자가 되어주소서.

 

원문 : Тайна украинской вышивуки / Журнал Ярмарки Мастеров

 

Тайна украинской вышивки | Журнал Ярмарки Мастеров

Тайна украинской вышивки: – Журнал Ярмарки Мастеров о рукоделии, творчестве, дизайне. ✓Читай! ✓Узнавай! ✓Делись!

www.livemaster.ru

 

러시아 음악인들이 벨라루스 대선 하루 전에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는 무료 공연 참여를 거절했다.

"Наша Нива"와 여러 벨라루스 언론에서 이러한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벨라루스 문화부장관은 8월 8일에 벨라루스의 규모있는 13개의 도시에서 무료 공연 "벨라루스를 위하여(За Беларусь)"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국영신문 "벨라루스의 오늘"은 콘서트에 참가하게 될 국내 및 국외 뮤지션 명단을 공개했다. 벨라루스 인들은 SNS 상에서 명단에 있는 가수들에게 공연을 하지 말고 '독재자를 지지하지 말라'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벨라루스 가수 메블(Мэвл)과 러시아 음악 그룹 라사(Rasa), 자로 & 한자(Джаро & Ханза), 카르-멘(Кар-Мэн)을 비롯하여 레오니드 아구틴(Леонид Агутин)과 스타스 피예하(Стас Пьеха), 율리안나 카라울로바(Юлианна Караулова)와 같은 가수들이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게 될 콘서트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티스트들의 공연 취소 공지

 

러시아의 싱어송라이터 그리고리 렙스(Григорий Лепс)는 벨라루스에서 공연을 하지 말라는 요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청중들과 제 음악으로 기쁨의 순간을 함께 나누어야만 해요.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어요."

 

-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는 8월 9일에 시행된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Александр Лукашенко)는 6번째로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 루카셴코의 경쟁 상대로는 정치적 비판을 빌미로 투옥된 세르게이 티하놉스키(Сергей Тихановский)를 대신하여 출마한 그의 아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Светлана Тихановская)가 있다. 

 

- 티하놉스카야의 사전 대선 미팅에 벨라루스 각지에서 온 수천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최근 며칠간 정부 당국은 다양한 부분을 구실삼아 대선 운동을 방해한 바 있다. 티하놉스카야는 8월 6일 민스크에서 시행된 미팅을 끝으로 선전 행사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을 밝혔다.

 

출처 : https://meduza.io/news/2020/08/07/rossiyskie-artisty-stali-otkazyvatsya-ot-vystupleniy-v-belorussii-za-den-do-vyborov-v-sotssetyah-ih-prosili-ne-podderzhivat-diktaturu

 

Российские артисты стали отказываться от выступлений в Белоруссии за

Российские артисты стали отказываться от выступлений на бесплатных концертах, которые пройдут по всей Белоруссии за день до президент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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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iliyaprusikin

 팝 그룹 리틀 빅(Little Big)은 이번 해 <Uno>라는 곡으로 유로비전에 러시아 아티스트를 대표하여 참가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유로비전이 취소되면서 참가를 못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리틀 빅의 멤버 일리야 프루시킨(Илья Прусикин)은 유튜버 엘다르 자라호프(Эльдар Джарахов)와 함께 <카란틴비전 2020>이라는 경연대회를 열었다.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곡을 쓰고 폰으로 1분 비디오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карантиновидение2020'로 해쉬태그를 달고 리틀 빅과 자라호프를 태그함으로써 경연에 참가할 수 있다. 

 

 

 

 <메두사(meduza.io)> 또한 유로비전을 대체할 수 있는 콘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는 하단에 기술하도록 하겠다.

 

원본 : https://meduza.io/shapito/2020/04/01/little-big-zapustili-konkurs-karantinovidenie-2020-nuzhno-napisat-pesnyu-i-snyat-klip-na-telefon

 

Little Big запустили конкурс «Карантиновидение 2020». Нужно написать песню и снять клип на телефон — Meduza

Группа Little Big должна была представлять Россию на «Евровидении» с песней «Uno». Увы, конкурс отменили из-за пандемии коронавируса. Но лидер Little Big Илья Прусикин и блогер Эльдар Джарахов не смирились и запустили свой собственный конкурс под название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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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에서 실시한 콘테스트는 구독자에게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이탈리아, 스웨덴, 아이슬란드 참가곡 중 가장 나은 곡을 투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리틀 빅(Little Big)은 투표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리틀 빅에 투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원문에는 순위권에 안착된 가수의 다른 곡들도 올려놓긴 했지만, 이번 포스팅에는 유로비전 참가곡만 올리도록 하겠다.)

 

5위. 불가리아 : Victoria - Tears Getting Sober (9%)

Victoria Georgieva - Tears Getting Sober

4위. 이탈리아 : Diodato - Fai Rumore (11%)

Diodato - Fai Rumore

3위. 스웨덴 : The Mamas - Move

The Mamas - Move

2위. 리투아니아 : The Roop - On Fire

The Roop - On Fire

1위. 아이슬란드 : Daði og Gagnamagnið - Think About Thing (Daði Freyr)

Daði og Gagnamagnið - Think About Thing

원문 : https://meduza.io/slides/evrovidenie-otmenili-nu-i-chto-my-ustroili-svoe-i-vot-kto-po-versii-nashih-chitateley-pobedil-v-konkurse

 

«Евровидение» отменили… Ну и что, мы устроили свое! И вот кто по версии наших читателей победил в конкурсе — Meduza

«Евровидение» отменили из-за пандемии коронавируса, поэтому «Медуза» провела свое. Мы предложили нашим читателям проголосовать за лучшего из пяти исполнителей из Болгарии, Литвы, Италии, Швеции и Исландии. Little Big в конкурс включать не стали, потому чт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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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eduza.io (https://meduza.io/feature/2020/03/22/na-kazhdogo-iz-nas-legion-mentov)

 '경찰'이라는 요소는 러시아에서 샹송부터 아방가르드 음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현대 음악 장르 속에서 다뤄지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다. 경찰이란 뭘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리를 행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진정한 적인 걸까? 메두사(Meduza.io)에서 주관하는 스페셜 프로젝트 'Голунов(Golunov)'에서 음악 저널리스트이자 학교에서 문화학을 가르치는 아르템 론다료프(Артем Рондарев)가 러시아 음악계에서 경찰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어떤 순간에 음악가들이 정치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는지에 이야기했다.

 

 사회인과 기득권층 관계는, 문화를 통해 반영된 것을 포함하자면, 거의 늘 '상호적대관계'라고 볼 수 있다. 각자가 각자에게 가진 증오를 통해 서로에게 도망칠 틈을 주지 못한다는 면에서 각각 동일선 상에 놓이곤 한다 .

 

 국가가 안정기에 놓여 있을 때 사람들은 경찰에게 경의를 크게 표한다.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스 시대(영국이 산업 발전을 통해 자유주의 관념에 기반한 낙관주의와 함께 큰 호황기를 맞았던 시기)에 활동했던 레스트레이드 경감(셜록 홈즈 시리즈 속 인물)는 멍청하지만, 자신이 맡은 바에 정직하게 임하는 모습 덕분에 멍청한 행실로 화를 부르지는 않는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로 인해 대도시에 범죄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정치적 부패가 만연해지면서, 경찰에게 "돼지(Pigs)"라는 별칭이 들러붙곤 했다. 그 시기 동안 경찰을 그렇게 칭하곤 했다. 서브컬쳐에서나, 사회적 엘리트에게 비관적인 감정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별명이 생겨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곤 했다.

 

소련의 록 문화는 히피 문화의 결과물인 '경찰을 향한 불쾌한 시선'이라는 서브컬쳐의 표본을 물려받았다. 그 당시 경찰과 대치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지금 현재 이루어지는 모습처럼 격하진 않았다.), 대놓고 반항심을 표출하는 일은 드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펑크는 더러움을 좋아하지만, 히피는 꽃을 좋아하고, 짭새는 이 둘을 체포한다."는 보리스 그레벤시코프(Борис Гребенщиков)의 말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 문장 속에 '짭새(Менты)'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 이 단어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문학계에서는 터부시되는 말이다. 소련 시기의 록 음악에서 "짭새"와 연관된 것을 떠올리는 건 다소 어려운 일이다. 당시 그 어떤 가수도 공권력이 강한 기관을 도발하는 행위를 하고자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짭새'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줬다. 80년대 락커 움카(Умка)의 한 노래에서는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기도 한다. "짭새가 벤치에 앉아 너를 깨워, 새장 속에 세 들어 사는 이(И будил тебя мент на скамейке, и на лестничной клетке жилец)". 짭새도, 새장 속에 세 들어 사는 이도 낯선 존재지만, 어찌 되었든 불쾌한 감정 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록 음악은 국가 권력과 실로비키를 비판했다. 오늘날에는 당시 로커가 사용했던 은유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련 서기층은 이런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곤 했지만... '반대'라는 말로 좀 더 명확하게 논증되기는 한다. 소련의 권력층이 사라지면서, 러시아 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작사가 일리야 코르밀체프(Илья Кормильцев)는 자신의 저서 <로큰롤의 대사기극 -2(Великом рок-н-ролльном надувательстве - 2)>에서 "러시아 록은 더이상 정치적인 색채를 띄지 않는다고 하는데, 명백한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록의 후계자들은 탐미주의, 쇼맨십, 실존주의적 고찰에 빠졌다. 당장에 일리야 라구텐코(Илья Лагутенко), 젬피라(Земфира) 등 "우리의 라디오(наше радио)"에 포함된 수 많은 곡들을 들어보면 '사회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예고르 레토프(Егор Летов; 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의 메인 보컬 및 작사)의 유명세는 '러시아 록의 정치적 패러다임'을 유지한 몇몇 로커 중 하나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80년대 말, 자유를 어느정도 얻은 시기에 그는 "짭새 군단이 우리에게(На каждого из нас легион ментов)"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Noize MC는 <사람다운 것(Все как у людей)>을 통해 권력에 관한 자신의 총체적 비판을 표현했는데 ('모집된 사람은 호송 차량과 3명 / 2명의 짭새와 민간인 한 명(В наборе — автозак и три человека: двое ментов на одного — все как у людей)'), 레토프의 곡에서 발췌한 샘플을 후렴구에 사용하기도 했다. 러시아 로커들이 줄곧 비난해 왔던 정치 권력 계승에 관한 묘사를 했다.

 

 록이라는 장르 자체에 이익이 되는 건 없었다. 사회적 기반을 잃게 되면서,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해왔던 셰브추크(Шевчук; ДДЦ 멤버)나 코르밀체프(Кормильцев; Наутилус помплиус 멤버)를 선두로 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검증된 고전 명작들이나 깊은 뜻이 담긴 곡을 듣는 대신 '팝 음악'에 심취한 대중들의 멍청한 취향'에 비난의 소리를 냈다. 그 말인 즉, 소련 짭새(менты)가 록 음악을 탄압하던 시기가 끝남과 동시에 러시아 록은 끝났다는 끝났으며,  검열이 약화되자 로커들이 순한 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 - Анархия

 

Noize MC - Все как у людей

 하지만 "짭새"라는 테마를 중점적으로 오랫동안 다루워 왔던 장르(죄수 음악; Блатная песня; Блантняк)가 있었던 덕분에 공권자를 다룬 음악의 역사는 그렇게 쉽게 끝나진 않았다. 죄수 음악에서 '짭새', '경관' 등과 같은 공권력을 지닌 사람을 나타내는 말은 '사회적 증오'의 역할을 지닌 것이 아닌, '운명의 도구'로써의 기능을 한다. 범죄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도 생래적으로 범죄라는 것을 저지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짭새'도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보면 '볼바의 예언'에 따르기라도 하듯, 범죄자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도록 놔둔다. 죄수 음악에서는 개인성의 부재와 관련된 모티브가 중점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전 신화와 전래 동화의 범주를 다루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죄수 음악 속에는 악역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도둑과 도둑이 아닌 자가 처한 운명, 현상, 상황 속 희생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경찰을 적으로 구분짓지 않는 것과, 극복하기 힘든 운명과 면할 수 없는 "작은 죽음"의 대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컨트리 음악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죄수 음악이라는 것이 그럴싸한 이야기를 잃은 채 옛날 옛적의 신화적 내러티브만 기록된 역사의 모음이기에, 흥미로운 점이라 함은 그 음악 자체라기 보다는, 비슷한 방식으로 힙합이라는 장르가 정치적인 테마를 다룬다는 데 있다.

 

 오리지널 힙합에는 외적으로 보이는 래퍼의 개성과 행동과는 별개로 억압을 받은 사례가 산출되었다. 래퍼를 신뢰하기에 앞서, 래퍼가 말하는 메세지와 신화적 공통 테마(Mythologem)를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힙합과 죄수 음악 둘다 일탈적 성격을 띠고, 범죄 진술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러시아 힙합은 테마를 모색할 때 비슷한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사용되는 죄수 음악의 미학과 마주하게 되었다. 90년대 말과 00년대 초 경찰들이 힙합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죄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죄수 음악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죄수 음악에서 '나쁜 사람은 없고, 다만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통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00년대 음악과 힙합 트랙에서는 실로비키를 나름의 인내(忍耐)로써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카스타(Каста)는 <Гончей>라는 곡을 통해'짭새'를 '노래의 주인공을 돕기 위해 그를 세상에 남겨두며 홀로 울먹이는 불행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녹가노(Ноггано)와 콜라보한 АК-47의 <Russian Paradise>라는 곡에서는 녹가노를 불철주야 잡으려 드는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팔리아멘트 라이트(담배)를 피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00년대 러시아의 암울한 현실을 잘 다뤘던 크로보스토크(Кровосток)은 'Цветы в вазе'에서 경찰을 '인간이 마주칠 수 있는 가장 죄가 없는 사람'으로 나타냈다. 이 곡에서 주인공이 경찰에게서 돈을 훔치는 '희생'을 행할 때, '짭새들'는 UAZ(УАЗ) 차량에 앉아 있었던 사람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크로보스토크는 법망 외부의 대중들 사이에서 일하기 때문에 합법적이지 않은 수단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경찰의 결백함'을 명확히 잘 표현해 내었다. 이 또한 '무량함'과 관련된 죄수 음악의 모티브고, 경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Кровосток - Цветы в вазе.

 Bad Balance의 <Криминал 90-х>에 수록된 곡 중 'Менты'는 상단에 묘사된 '짭새'의 양상을 집대성한 곡이다. 이 곡에 의하면, '짭새'란 범죄 현장에서 두려움의 존재이자 무수한 비리를 저지르는 존재지만, 현지의 '약쟁이'와 함께 약을 한 뒤, 경위서에 다음과 같이 작성해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600여 대의 외계차(벤츠)에 소총 사격'. 그러고는 '자신을 질식사시킨다'. 경찰차 카오디오에서 프로페소르 레베딘스키(Профессор Лебединский)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레베딘스키는 죄수 음악과 소비에트식 감상주의 음악, 샹송의 스타일을 접목시킨 짖는 듯한 목소리를 크로스오버한 아티스트다.) 즉, 90년대의 '짭새'는 나쁜 사람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고, 다만 피곤한 삶에 쩔어있는 사람이자 언제든 눈 감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사회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사람 속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Bad Balance - Менты

 오랜 시간동안 (거의 2010년대 까지), 서브컬쳐와 음악가와 정치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었다. 대히트를 쳤던 팝 음악에서도 '짭새'도 사람이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곤 했다. 어쩔 수 없는 증오, 권력이 망쳐놓은 시민, 우리와 같은 일반인의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상대하기 귀찮고 못 살게 굴지만, 사람을 죽이진 않는 술 취한 이웃'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AK-47&녹가노(Ноггано)의 <No pasaran>이라는 곡에서 경찰을 '가정적인 사람'으로 그려내기도 하는데, 1절부터 3절까지 '쓰레기 - 짭새'와 같은 끔찍한 대립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만약 본인이 짭새라면 권총을 든 우리 편, 본인이 쓰레기라면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뇌물 악당이라는 식으로 표현을 해 놨다. 쓰레기같은 놈이라 남자답지 못하게 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AK47 - No Pasaran!!! (Feat. Ноггано)

 러시아의 전반적인 팝과 일부 힙합에는 '작사법'이라는 것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가사 속 인물이 따르는 모든 법은 사회의 '건전한 의미'를 담고 있고, 이에 불복종하는 것은 '무량함'이라 불려진다. 오랜 시간동안 모순적인 기준으로 가사 속 인물과 '짭새'를 동일한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 누구도 법을 준수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한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순수할 것 없는' 러시아 전통 목가(牧歌)가 연주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 속해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모두가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경찰을 비난하며 자신의 이웃처럼 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닌 힙합이 기존에 있던 인식의 틀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현재의 상황과 얼마나 맞물려 있는지, 혹시 미국 흑인들이 주류가 된 80-90년대의 힙합, 특히 갱스터 랩이 영향을 줬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1992년, 유명한 갱스터 래퍼이자 메탈 보컬인 Ice-T가 'Cop Killer'라는 트랙을 냈다. 이 곡은 미국에서 굉장한 문제가 되었고, 결국 이 곡을 앨범 트랙리스트에서 제외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정치인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재밌는 사실을 말하자면, 이 곡을 '랩'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힙합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곡이긴 하지만...

 

 이러한 해프닝은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 가운데 힙합은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른 장르에서는 부자연스러운 탈선이라 여기는 것이 힙합에서는 (적어도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인생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선천적 이방인'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인생 스토리인 것이다. 힙합을 향한 모럴 패닉(Moral panic)을 지지하는 기자들에게서도 일부 비롯되기도 했다. 어쨌든, "지배 계층이 힙합에 대해 나쁘게 인식하고, 힙합 아티스트는 그런 묘사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해 한다."는 지령은 랩 음악의 구조와 이데올로기에 내려져 힙합이 전파된 다른 문화에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러시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정치인을 격하시키는 과정은 단지 시간 문제였다. 힙합은 적을 만드는 행위를 양분삼아 왔다.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미국 흑인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었으니까. 주변 환경이 별 문제될 것 없는 사람들이 그러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되면, 슬럼가 속 흑인들이 겪는 문제와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러시아 힙합에서는 만들어진 '범죄자' 역할의 상징적인 수단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적이랄 게 없었지만, 이제 적이라는 게 생겨난 것이다.

 

 당연하게도, 적의 대상이 항상 경찰만은 아니였다. 예를 들면, 하스키(Хаски)는 자신이 자라난 환경, 이른바 판넬 하우스를 적으로 두고 있고, 옥시미론(Oxxxymiron)은 자신의 과거, 정확히 말하자면 유복하게 자란 과거의 불확실성을 적으로 여겨,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작은 비극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에 관심을 보이곤 한다.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가 적이 될 수도 있고, 가리 토포르(Гарри Топор)처럼 이러한 중독을 부추기는 사람을 적을 둘 수도 있다 (미샤 마바시(Миша Маваши)는 그런 식으로 나라를 망치는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DEEP-EX-SENSE와 빌리 밀리가나(Билли Миллигана)처럼 배틀 래퍼를 적으로 두기도 한다. 토니 라우타(Тони Раута)처럼 모든 사람을 적으로 여기는 사례도 있다. 물론, 어떤 한 사람한테만 해당되는 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일반화를 시키는 건 위험한 짓이다.

 

 힙합에 통해 의미가 부여된 '적을 찾는다'는 아이디어는 경찰서에서 적을 찾는 것 보다 그 범주가 넓다 ('불특정한 놈, '부재', '인생 사정'). 좀 더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경찰은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찍혀 있으니 경찰서에서 굳이 적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찾게 된다면 경찰서 내에서 진짜 적이 누구인 지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구실로 뇌물을 강요하나 집에서는 사랑스런 남편이나 아버지가 되는 삐에로가 아닌. *확실하지 않은 번역.

 

 연대기를 그리자면, 가장 피크가 되었던 시기는 2010년, 프시헤야(Психея)라는 그룹이 <Убей мента>을 공연했을 때라고 볼 수 있다. Ice-T의 이야기를 라임을 통해 그려낸 이 노래은 미국의 갱스터 랩을 도입한 곡이었다. 다소 유행이 지난 양식의 노래로써, 오랜 기간동안 콘서트에서 부르곤 했지만, 문제될 것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2010년에 표현이 과격하다는 이유로 공연 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제 'Убей мента'라는 곡을 부른다면 안 좋은 일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Deathsquad의 멤버 알렉세이 모로조프(Алексей Морозов)가 2019년 가을에 이 곡을 부르다가 벌금을 문 것이 그 예다. 당연히 비슷한 임팩트를 지닌 곡들이 암암리에 공연되긴 했지만, 프시헤야의 사례가 유독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이제 법망 아래 수시로 감시가 이루어 질 것이고, 법은 인간보다 더 높은 곳에 있기로 결정되었다. 프시헤야의 멤버를 향한 비판이 빠르게 빗발쳤다.

 

 법제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Сомали в снегу' 프로젝트의 Dino MC47가 청중에게 "여러분의 지붕는 누구입니까, 도둑입니까 쓰레기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실로비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변화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찰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삶의 틀에서 벗어났고, 수감인 음악에서 보여지는 경찰의 모습은 이제 실로비키의 협력자와 라이벌로 바뀌었다.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도둑과 쓰레기의 차이는 이제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도둑과 쓰레기 둘 다 다양한 형태와 우두머리를 갖춘 죽음의 분대인 것이다. 쓰레기와 더 이상 '동일한 곳'에서 일을 결정할 수 없다. 그 누구의 통제 하에 증오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증오를 만들어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식의 큰 변화는 Dino MC47의 '댄싱 랩', 그러니까 '관계'를 노래하는 로열한 힙합을 통해 더 두드러졌다. 'Сомали в снегу' 프로젝트 중이 아닌 시기에 이 노래를 들으면 실망감에 이어폰을 빼곤 하지만, 그 실망감은 바로 정치적 의미의 실망인 것이다.

 

Сомали в снегу - Люцифер голодный

Shortparis의 'Страшно'라는 곡의 마지막 절은 레토프의 'Мы лед под ногами майора'의 가사를 재해석한 내용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레토프의 곡에서는 '우리'라는 얼음이 장교가 미끄러져 자빠지도록 한다면, Shortparis는 "얼음은 도와주지 않아"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넘어지던가 말던가 장교는 피할 수 없는 증오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춤이나 추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Потому и страшно)"라는 구절은 출구가 없는 상황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요약한다는 면에서 레토프의 사회적 낙관주의와는 차이를 보인다.

 

Shortparis - Страшно

마침내, 포르노필미(Порнофильмы)의 신곡 <Это пройдет>에서는 심문, 짭새의 비웃음, 여성을 불구로 만드는 경찰의 행동도 다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서로 연결된 사회적, 전문적인 집단의 길거리 싸움이 아닌 현재 정치적 상황 속 상호간의 단절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짭새'는 이미 일반인과 섞일 수 없는 존재고, 더이상 이들로 인해 이득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경찰은 그저 지나쳐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포르노필미는 이 곡으로 인해 정치적 테마를 다루고 진부한 펑크음악을 계속 낸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이 그룹은 정치적, 미학적 침체기 속 감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했다. 그들은 우리는 미래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 지 알린 셈이다.

 

원문 : На каждого из нас легион ментов Как менялся образ полицейского в российской музыке — от БГ и Летова до Shortparis и «Кровостока» https://meduza.io/feature/2020/03/22/na-kazhdogo-iz-nas-legion-mentov

 

На каждого из нас легион ментов Как менялся образ полицейского в российской музыке — от БГ и Летова до Shortparis и «Кровостока»

Полицейский — один из главных героев современной российской музыки в самых разных жанрах, от шансона до авангардистских экспериментов Shortparis. Кто же он — свой парень, коррупционер поневоле или настоящий враг? В рамках спецпроекта «Голунов» музыкальный

meduza.io

 

 예전에 소셜 연구소 The Pudding에서 영미권 힙합 지도를 만들었었다. 그 후 러시아 랩에도 이런 접근 방식을 취해야겠다 생각을 했고, 조금 더 많이 고민을 했다. 얀덱스 뮤직(Яндекс.Музыка)에서 접할 수 있는 곡들의 가사를 모아, 힙합씬 전체 혹은 래퍼 개인을 특징짓는 어휘를 조사했다. 그 결과 1년 주기로 어떤 단어가 가장 유행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Я горожанин Мордора. На пиру — не сняв ошейника»처럼 가사 몇 구절을 쓰면 누구의 방식을 모방하는지 맞추는 테스트를 시행했으며, 러시아 랩 지도도 그렸다.

 

주로 쓰이는 단어

 우선 힙합 음악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500개의 동사, 명사, 형용사를 찾아보았다. 우리가 조사한 모든 단어가 힙합을 대표하는 가사라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자주 쓰이는 단어 Top-500에 들었다 해도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는 몇 배나 많이 쓴 바람과 사람(ветер и любовь)이라는 단어가 있다. 평화와 자유(мир и свобода)도 마찬가지다.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더 많은 사항은 원문 참고.

 힙합 문화를 명확히 특징짓는 단어로는 '랩(рэп)'과 '힙합(хип-хоп)'이 있다. 래퍼는 자신의 음악과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많이 다루는 데, 그 과정에서 트랙(трек), 마이크(микрофон), 비트(бит), 라임(рифма) 혹은 앨범(альбом)이라는 단어도 즐겨 사용하기도 한다. 타치카(тачка; 자동차), 하타(хата; 반나절 내지는 하루 정도 임대해주는 아파트. 한국으로 치면 모텔과 같은 용도로 쓰인다.) 등과 같은 욕설이나 은어 또한 많이 쓰인다. 힙합과 거리가 먼 단어로는 달(луна), 봄(весна), 새(птица), 비(дождь), 강(река), 날개(крыло), 조용함(тишина), 심장(сердце) 등이 있다.

가장 특징적인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

 그다음 사용빈도를 배제한 채 가장 힙합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를 조사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랩 가사에서 자주 들리는 Top-500 리스트를 넘어서 어떠한 단어가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 힙합에서 쓰이는 빈도를 비교 분석했다.

가장 특징적인 동사로 базарить(시끄럽게 지껄이다. 시장통 분위기로 만들다. базар에서 파생된 단어.)와 пиздеть(씨부리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욕설로 пиздец가 있다.)가 나왔고, умчаться(시간 따위가 빨리 흐르다), отзываться(비평하다, 리뷰하다), тосковать(애수에 차다)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감정과 충동을 나타내는 동사가 그렇지 않은 단어로 책정되었다. 힙합을 가장 특징짓는 형용사와 부사의 상위권에는 대부분 욕에서 파생된 단어가 차지하고 있다.

 

1. 명사 순위 (왼: 힙합, 오른: 비 힙합)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2. 형용사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3. 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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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사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5. 감탄사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랩에서의 전형적인 인간상은 래퍼(рэпер)와 브로(братик)가 있고, 다소 낯선 인간상으로는 할머니(старушка)와 집시(цыганк)

가 있다. 활동무대는 주로 스튜디오나 슬럼가가 대표적이고, 풀밭(луг)이나 밀림(тайга)이라는 말은 힙합과 거리가 멀다. 자주 다뤄지는 동물은 토끼(зай)와 개(псина), 안티테제로는 꾀꼬리(соловей), 두루미(журавль)가 있다. 힙합에서는 다른 장르에서보다 브랜드 네임이 훨씬 더 많이 언급이 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나이키(найки)와 구찌(гуччи), 벤츠(мерины) 등이 있고, 아이폰(айфоны)도 많이 들린다. 힙합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조사를 하지 못했는데, 다른 장르에서 그 누구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인물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2. 장소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3. 의류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4. 동물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5. 신체부위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개별 단어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을 모두 살펴본 뒤에야 완전히 랩 다운 구절들을 선별할 수 있었다. 그다음 4행으로 이루어진 가사를 얻기 위해 그 구절들을 '자동 시 생산기'에 넘겼다. 보통은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다양한 래퍼의 랩 구절이 조화를 잘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은 가사도 생기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랩과 가장 상이한 음악 가사를 구성할 때 실제 있는 노래의 가사에서 따온 듯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이다. 

 

(예시는 원문에서 볼 수 있음 :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시기별 구분

 우리는 러시아 랩의 역사를 5 부분으로 나누어, 각 시대별로 다른 시기에 비해 특히 자주 쓰는 단어를 찾아봤다. 90년도와 00년도 초에선 겹치는 특성이 많았는데, 길거리에서의 생활과 싸움, 결투를 많이 다루었고, 이러한 주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에 따른 상을 기다리면서도 진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00년대 중반에서는 슬랭이 퍼져나가 분노를 표하거나 괴로움을 다루기 시작하게 되면서 이전 시대의 랩과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10년도 초반부터는 영어에서 나온 외래어가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최근 힙합 시장을 결정짓는 단어 목록에 hype(хайп), blunt(блант), cash(кэш), cop(коп), trip(трип), hater(хейтер) 등이 있다는 것에서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시기 별 대표 단어의 예시

 예시는 각 시대별 Top-15의 명사, 형용사, 동사에서 가져왔다.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더 많은 예시는 원문 참고.

 90년도에는 가사에 비속어나 폭력적인 어휘의 비중이 다른 장르의 곡에 비해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00년대 초에 눈에 띄게 늘어나다가 0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으면서 동시에 슬랭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2000년대 말에는 비속어의 비중이 여타 장르의 17배, 최근에는 약 10배가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비속어를 많이 쓰는 아티스트로는 페이스(Фейс). THRILL PILL, 샤바(Сява), 크로보스토카(«Кровостока»), Big Russian Boss가 있다.

 

가수 별 구분

 전반적인 장르에서 뿐만 아니라 가수 개개인에게도 특징적인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바스타(Баста)의 가사를 통해 로스토프(Ростов; 러시아 지역 이름)와 중국차茶(пуэр; 근육을 진정시키는 차)라는 단어를 많이 언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프(Гуф)를 대표하는 단어로 대장간(кузня; 은어로 '교회'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노멀한(нормально), 떨(планчик), 모스크바 강(Москва-река), 완전히(абсолютно)가 있다. 스크립토닛(скриптонит)은 이해하다(вкуривать. 담배를 피울 때 공기를 안으로 내보내는 것을 연상하면 됨.), 좆병신(поц; 성기라는 뜻에서 파생됨. син. - мудак), 리스펙(шпек; респект - решпект - шпект), 떨(хапка) 등의 말을 누구보다 많이 사용한다. 티마티(Тимати)는 비즈니스맨(бизнесмен), 통계(статус), 표(график), 창녀(чикса), 춤추다(танцевать)를, 슬라바 KPSS(Слава КПСС)는 존재(бытие), 어그로(хайп; 존경, 사재기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함), 성교하다(ебать), 러시아(Россия)를 즐겨 쓴다..

 

 특정한 래퍼가 특히 많이 쓰는 단어를 정리한 뒤, «Триагрутрики»에게는 «Биг сити лайф», ATL에게는 «Планета Железяка», 이런 식으로 그러한 어휘가 많이 쓰이는 곡을 추려보았다.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더 많은 아티스트는 원문 참고.

 다른 장르의 음악 중 가장 랩 가사적 성격을 띤 곡은 연주하는 아티스트로는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키르피치(Кирпичи)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랩과 어휘적으로 비슷한 면모를 가진 곡을 쓴 가수로 DDT(ДДТ), 예고르 크리드(Егор Крид), 세르게이 트로피모프(Сергей Трофимов), 알렉산드르 로젠바움(Александр Розенбаум), 아쿠아리움(Аквариум), 그라쥐단스카야 오보로나(Гражданская оборона), 디스코텍 아바리아(Дискотека Авария)가 있다.

러시아 랩 지도

 드디어 우리는 래퍼 별 단어 선별 기호에 따른 러시아 랩 지도를 만들었다. 가수 사이에 특징적 단어가 많이 겹칠수록, 지도에서 서로의 위치는 가까워진다.

 

 구프(Гуф)와 슬림(Слим)처럼 한 그룹에 구성되거나 구성되었던 래퍼, 같은 레이블(안티하이프Антихайп, Black Star)에 소속된 래퍼들이 지도상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게 눈에 띈다. 로스토프(Ростовая), 우랄(Уральская), 우핌(Уфимская) 등 지역 씬도 돋보인다. 하얀 추바시인(белой Чувашии)라 불리는 아티스트들도 서로 인접한 거리 상에 있다. 뉴 웨이브 래퍼도 몇몇 클러스터를 형성했는데, 가장 밀도가 높은 곳은 페이스(Фейс), PHARAOH, GONE.Fludd, THRILL PILL, COLDCLOUD 등이 위치한 지도의 남서부 구간이다. 그 옆에는 Oxxxymiron, 슬라바 KPSS(Слава КПСС), Rickey F와 같은 랩 배틀에 특화된 아티스트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Booking Machine 멤버들은 지도 상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걸 미루어 보아, 서로 특징적인 어휘가 상이함을 알 수 있다.

 

러시아 랩 지도 / 출처 : Яндекс.Музыки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더 많은 사항은 원문 참고.

 

 

 

 

원문(Оригинальный текст) : https://yandex.ru/company/researches/2018/rap

 

Русский рэп как набор слов — исследование Яндекс.Музыки

Аналитики Яндекса изучили тексты русскоязычных рэперов и нашли слова, характерные для рэпа вообще и для конкретных исполнителей. Проследили, какие слова входили в моду начиная с девяностых. И составили карту русского рэпа: чем ближе два рэпера по лексическ

yandex.ru

 

출처 : https://www.buro247.ru/culture/music/12-apr-2017-husky-and-esenin.html

Рэпер Хаски просидел неделю в тюрьме, его концерты в разных городах были сорваны, а в песнях обнаружили признаки экстремизма. Сергей Минаев выясняет у артиста, в какие игры, помимо политических, он продолжит играть.

래퍼 하스키(Хаски)가 1주일 동안 구금되면서 도시순회공연이 취소되었고, 그의 노래 속에서 극단주의적인 상징매개들이 발견되었다. 세르게이 미나예프(Сергей Минаев)는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음악적으로 정치적인 행보를 꾸려나갈 지 물어보았다.

 

크라스노다르에서 콘서트를 제지하자 자동차 위로 올라가 자신의 곡 "Ай"를 관객들과 부름. 이후 체포된 뒤 재판을 받음. 체포된 하스키를 떠나보내며 관객들은 러시아 국가를 부르고 있다. 출처: Meduza.

세르게이 미나예프 : 우선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거의 8년 동안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잖아요. 하스키씨는 음악계에서 진실을 중요시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 생각이 들어요.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 쪽에 종사하지도 않고 종사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최는 몇개월 동안 콘서트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고, 키셀레프가 «России 1»에서 하스키씨를 마야코프스키에 빗대기도 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현재 정치판의 중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고 계신가요?

 

하스키 : 확실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정치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싶지 않아요. 양복을 입으면서 국가두마에서 정치에 종사하고 싶지도 않아요. 정신줄 놓고 음악이나 시를 쓰면서 호텔 발코니에 목을 걸고 싶어요. 저는 그런 활동을 좋아하지, 웅변조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세르게이 : 호텔로 화제를 돌려보죠. 어제 지인이 저한테 메세지를 보냈어요. 제가 하스키씨를 인터뷰하는 지도 몰랐죠. 그 기자랑 최근에 있었던 공연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때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하스키 마케팅 관계자가 잘 해냈어, 근데 하스키 자신이 만족했는지는 궁금하네." 이러한 지지의 움직임이 생겼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스키 : 임시구금소에서 있었는데 경찰이 저를 복도로 불러내더니 폰으로 뉴스를 보여줬죠. "옥시미론, 노이즈, 바스타..." 그때 전 스칸보르드(낱말퀴즈)를 하루종일 풀고 있었죠. 정말 이상했어요. 처음엔 어떻게 반응을 해야될 지 몰랐지만, 좋은 쪽으로 보기로 했어요.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했다" 이런식으로요. 선동자인 마냥 공연을 하고 난 뒤, 의도치 않게 그 속에서 제 역할을 다했죠.

 

세르게이 : 구금소는 어땠나요? 누구랑 있었나요?

 

하스키 : 위험한 상습범들이 있었죠. 한 놈은 위자료를 납부하지 않았고, 다른 놈은 자신의 주차장에 리어카를 대놓고 엔진을 흘린 것에 대한 복수극을 펼쳤죠. 저랑 같이 앉아 있었던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몸을 긁고 앉아 있어서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두려워 했어요. 극도로 단순한 사람들이에요. 건너편 유치장에는 8명 가량의 노숙자가 앉아 있었는데, 악취가 엄청 풍겼죠. 제가 갖혀있던 곳은 이런 룰이 있었어요. 냄새가 나면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끼리, 냄새가 나면 노숙자 무리들이랑. 뭐, 그랬어요.

 

세르게이 : 코엔형제의 코미디극을 보는 것 같네요.

 

하스키 : 그렇죠.

 

출처 : https://piter.tv/event/Reper_Haski_priedet_v_Peterburg/

세르게이 : 최근 콘서트에서 검열관에 관한 가사는 다 빼지 않으셨나요.

 

하스키 : 아니요. 한 번은 일부러 무대에서 관객들이 그 부분을 부르도록 마이크를 넘긴 적은 있어요. 상호작용인 셈이죠. 가사를 빼거나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세르게이 : 그러니까 구금당한 이후로도 어떤 부분은 빼야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거죠.

 

하스키 : 그렇죠. 청중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요. 제가 선창하면, 관객들이 후창하는 거죠. 자신들이 똑같은 범죄자가 된다는 게 재밌다 이거예요. 좋은 현상이죠.

 

세르게이 : 관객은 얼마나 있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하스키 : 6500명 정도 예상했는데 500명 모자랐어요. 비영리적인 공연치고는 나쁘진 않았어요.

 

세르게이 : 저는 많다고 느껴지네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가수가 러시아에 쉬누르(Шнур)랑 젬피라(Земфира) 이렇께 두 명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거든요. 뭔각 감회가 새로웠나요?

 

하스키 : 그런 것 같은데, 저는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아서... 제게 가장 적합한 무대는 5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클럽이에요. 그런 곳에서 공연할 때 좋은 느낌을 받아요. 7000명의 관객이라, 뭔가 사진을 벽지로 바른 느낌이에요.

 

세르게이 : 좋은 비유네요.

 

하스키 : 네.

 

세르게이 : 후드티 모자를 벗으면 사람들이 하스키씨를 많이 알아보나요? 

 

하스키 : 주기적으로 알아봐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지하철을 애용하는데, 지하철을 타면서 후드 모자를 써야겠다는 것을 느꼈죠. 저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세르게이 : 한 신인 프로듀서가 저한테 이런식으로 물었어요. "세르게이씨, 세르게이씨께서 일하는 잡지(에스콰이어)사에서는 하스키를 좋게 보나요?"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네, 좋게 봐요, 재능 있는 래퍼잖아요." "근데 걔 완전 광고주잖아요." "무슨 말이에요?" "총 맞아 죽은 모습을 연출해서 리츠칼튼 호텔 베란다에서 목 매단 퍼포먼스를 했잖아." 이 말에 전 이렇게 답했어요. "뭐 어때, 난 하스키 노래를 들어.". 하스키씨라면 어떻게 말하셨을 것 같나요?

 

하스키 : 총 맞았다는 건 제가 생각해낸 게 아니에요. (윗옷을 벗고 외상 자국을 묘사한 것.) 뭔가 제 인생에는 끊임없이 무슨 일이 발생해요. 그냥 제가 유명해지니까 이런 이야기가 생기는 거예요. 내 친구가 클럽같은 곳에서 누군가의 점퍼를 가져갔고, 어디선가 저를 총으로 쏘고는 무슨 일이 또 일어났다는 식의 이야기요. 리츠칼튼에서 일어난 퍼포먼스의 플롯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내용을 말해줄 수도 없어요.

 

세르게이 : 작년에 저명한 래퍼들이 많이 죽었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건가요?

 

하스키 : 연관성이 조금 있어요.

 

세르게이 : 미신적인 요소에 얽매이지 않고 목을 매는 퍼포먼스로 장례식을 치른 건가요?

 

하스키 : 아뇨. 악령의 장난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저는 인간 형상을 지닌 몇몇 악마를 봤어요. 이상했죠, 특히나 장례식이 끝난 뒤 1주일 동안요.

 

세르게이 : 예를 들자면요?

 

하스키 :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한 번 느껴봐야 돼요.

 

리츠 칼튼 호텔 퍼포먼스. 출처 : https://the-flow.ru/news/husky-from-window

 

하스키 : 네.

 

세르게이 : 당신 아내가 임신했는 지 모르고 계셨나요?

 

하스키 : 알고 있었어요. 네, 저는 제 유명세로 놀아난 거예요. 따로 뭘 또 하겠어요? 지루해요.

 

세르게이 : 교회는 다니시나요?

 

하스키 : 네, 다녀요.

 

세르게이 : 신을 믿으시나요?

 

하스키 : 되게 곤란한 질문이네요.

 

세르게이 : 언젠가 고해성사를 한 적은 있으신가요?

 

하스키 : 네.

 

세르게이 : 21세기에 들어 사람들은 교회나 심리학자나 페이스북을 찾는데, 하스키씨는 교회를 선택하셨나요?

 

하스키 : 네. 심리학자를 찾아가긴 두렵고, 페이스북은 없어요.

 

세르게이 : 왜 심리학자를 두려워 하시죠?

 

하스키 : 저랑 말하는 사람이 저보다 부족하지 않아야 된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종이상자와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친구랑 그런 주제로 대화하는 게 더 낫겠어요.

 

세르게이 : 친구는 많은 편인가요?

 

하스키 : 그다지 많진 않아요.

 

세르게이 :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연락이 두절된 친구는 얼마나 되나요?

 

하스키 : 말하기 어렵네요. 단 한 번도 친구가 많았던 적이 없어서요.

 

세르게이 : 사람들이 하스키씨를 노이즈마케팅이 뭔지 잘 아는 대단한 쇼비즈니스 맨. 무엇이 하스키씨의 인생을 생생한 퍼포먼스로 바꿨는 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스키 : 부분적으로는 맞아요. 최근 들어서 그런 항간의 소음이 지겨워지긴 했지만요. 저는 살아가면서 무엇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진 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 걸 생각한다는 게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거든요. 한 해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에게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예요.

 

세르게이 : 이게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스키 : 아마도요.

 

세르게이 : 올해 몇살이시죠?

 

하스키 : 25살이요.

 

세르게이 : 자신의 삶에 더 큰 두려움이 느껴지시는 건가요?

 

하스키 : 저는 항상 어떤 것 때문에 삶이 두려웠어요. 공포감이 흉측한 모습으로 저에게 엄습해 오는 걸 느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세르게이 : 그래도 그런 공포감이 어딘가로 도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나요?

 

하스키 :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지 모르겠네요. 즉, 어찌 어찌 해서 도네츠크로 갔어요. 사진을 찍고 전투가 진행중인 공항으로 갔죠. 그 때 지금 그 현장으로 다가가 촬영을 좀 해본 뒤 도망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 사유지가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군이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놨더라고요, 사람은 없고 개만 있었어요. 어떤 개는 혈통있는 비싼 개였죠. 공포감에서 나온 힘이 저를 공항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준 매개체가 되었어요.

 

세르게이 : 혼자 갔었나요?

 

하스키 : 네, 제 주변에 있는 군용차량으로부터 몸을 숨기곤 했어요. 그러다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고요.

 

세르게이 : 누가 이송해 갔나요?

 

하스키 : 그 때 운이 참 좋았던 게, 저를 그 자리에서 쏴 죽였을 수도 있었는데 살려뒀어요. 그 사람들은 모토로라(Моторола; Арсен Павлов의 가명) 분대인 "스파르타(Спарта)" 소속 군인이었어요. 모토로라한테 이송되었는데, 2시간 동안 제가 방해 분자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느라 애 썼어요. 

 

세르게이 : 자하르 프릴레핀(Захар Прилефин; 러시아 작가, 전쟁 파견작가)도 그 때 도네츠크에 있었나요?

 

하스키 : 학문적 목적으로 왔지만, 내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어요. 그 땐 모토로라(와 잘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았어요.

 

세르게이 : 무슨 목적으로 거기로 가셨나요? (모스크바의 TV 방청객 세르게이 미나예프가 묻습니다.)

 

하스키 : 그거 아시나요, 제 정치 성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아요. 18살 때 우여곡절 끝에 «7 октября»를 녹음했어요. 20살 쯤 되었을 때, 멀리 떠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봐야 할 필요가 있었죠. 제 정치 성향은 유튜브 영상 몇 개 봐서 생기는 게 아니예요. 제 생각에 정치 성향이란 영혼에 새겨진 상처예요. 끔찍하게 들리네요 (웃음). 저는 말을 하고 다양한 옷을 입으면서 일을 하는데, 그 사이에 쉴 틈이 없죠. 제가 상처받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세르게이 : 돈바스에는 몇 번 가보셨나요?

 

하스키 : 한 12번 보다는 덜 간 것 같아요.

 

세르게이 : 더 이상 거기로 가지 않게 된 계기가 뭔가요?

 

하스키 : 저는 멈춘 게 아니에요. 마지막에 방문한 게 콘서트하러 갔을 땐데, 반드시 다시 갈 거예요. 저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 가잖아요. 인문학적인 목적으로도 몇 번 갔었어요.

 

세르게이 : 많은 사람들이 모든 나라에서 힙합은 정부의 정치에 반발한다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outlaw라고들 해요. 갑작스레 도네츠크로 가셨잖아요. 반정부 아티스트로 낙인 찍히는 게 두렵지 않으신가요?  

 

하스키 : 도네츠크에 있었다는 건 진정한 불법행위죠. 아니요, 전 비난의 화살이 두렵지 않아요. 자하르가 페이스북에 제 뮤직비디오를 첨부하면서 포스팅을 할 때, 28가지를 명료화 시키죠. 이런 식으로요. «랩이라는 음악 장르가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번 보세요, 여기 핵심이 있어요.». 나발느이(러시아 사회학자)가 «하스키를 지지합시다, 그렇다고 그 어떤 경우에도 제가 하스키를 친돈바스인이라고 몰아세운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런 운동가들의 말들이 제게 부끄러움을 줘요.

 

세르게이 : 제 생각엔 그걸 즐기시는 것 같은데요.

 

하스키 : 당연하죠.

 

세르게이 : <황금을 찾아라.>(소련 영화: Свой среди чужих и чужой среди своих)

 

하스키 : 그렇게라도나마 자립심을 유지시킬 수 있어요. 제 정치적 관점은 대충매체를 읽으면서 생긴 게 아니에요. 진보세력들과 술 마시고 즐기려고가 아니라 그런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거죠.

 

Хаски - Иуда. (2018) «Евангелие от собаки»에 수록될 곡 중 하나였지만, 앨범 발매가 취소되면서 «Иуда»만 발표된 상태다. 러시아 연방 일대에서는 조회 불가능.

 

세르게이 : 이번 해에 새 앨범 «Евангелие от собаки»를 내야 했었는데,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고는 계획을 취소했잖아요. "내게 덮쳐오는 비난을 어떻게 없애버릴까 너무 많은 고민을 한다. 이젠 다르다. 나는 삶 속에서 확실한 해결책을 찾았다." 장난인가요 아니면 뭔가 심상치 않은 생각이 떠오른 건가요?

 

하스키 : 둘 다 해당돼요.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네요.

 

세르게이 : 왜요? 젊고, 유명하고, 수 천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시는데.

 

하스키 : 저는 예술적인 문제만 해결해요. 다른 건 제 흥미를 끌지 않아요. 뭔가 거창한 걸 쓰려면,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돼요. 지금 당장에는 그런 거창한 걸 다룰만한 요소가 없네요. 유명해지려고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아요. 새 앨범을 내게 된다면 고전음악이라던가 큰 의미는 없을 거예요. 뭔가 떠올릴 수 있도록 조용한 환경 속에서 많은 사색을 해야 돼요. 1년, 2년 아니면 3년 정도.

 

세르게이 : 콘서트를 취소하고 키셀료프 중심의 «Россия»채널에서 더이상 방송을 하지 않으면서 권력과 서브컬쳐 사이의 중계자가 되는 건 어떻겠냐는 말은 없었나요?

 

하스키 : 저는 "고향", "러시아", "러시아 역사"에 매력을 느끼고 우러러보는 사람이에요. 스메르쟈코프(<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등장인물)같은 작자가 아니죠. 요즘 실권자들과는 말도 못할까봐 두려워요.

 

세르게이 : 왜죠?

 

하스키 : 모든 것을 빼앗는 무리가 있어요. 그 주위로 정치 상황을 보도하는 미디어층이 둘러싸고 있죠. 상황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그 무리가 돈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애석하게도 그래요.

 

세르게이 : 하원에 로마 지간(러시아 래퍼), 프타하(러시아 래퍼), 그 외 몇몇 사람들을 초청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렇게 말했죠 "당신들 대체 뭐야?"

 

하스키 : 이런 사람들 빼고는 음악가들은 하원에 입단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40살 조금 안되는 나이의 더 성숙한 사람들이기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다르죠.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다고 생각돼요.

 

세르게이 : 왜죠?

 

하스키 : 저도 몰라요. 청년정책부(?)에서 정책을 내놓는 모든 사람을 놓고 보자면, '청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즉,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방식 속에서 무분별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에 권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인거죠. 지금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있어요. 미코얀(아르메니아 정치인)의 별장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두 알고 있죠.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인터넷 세대가 텔레비전 세대와 같이 않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이들은 부모와의 간극을 가지고 있죠. 거기서 저는 젊은 세대들의 안목과 국정경영능력에 의문을 가져요. 다양한 해결책이 있을 뿐이죠.

 

세르게이 : 저는 거의 20년 동안 이런 말을 들어요. "여기, 일꾼들이 죽고 모든 게 바뀌었다." 대충 맞다고 네-네 하지만, 계속 아무것도 안 바뀌고 있죠. 그러고는 저보다 어린 30살 먹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네들 두목의 물 두방울같다는 걸 알게 되죠.

 

하스키: 음, 인터넷과 같이 자라온 밀레니엄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돌연변이예요. 심지어 신체적 조건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세르게이 :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다양한 뮤지션과 레코딩을 하신다는데 왜 그러시는거죠?

 

하스키 : 콜라보레이션을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아요.

 

Хаски - Вокруг так много всего (feat. Казускома) (2018)

세르게이 : 최근에 «Казускома»랑 콜라보한 트랙을 내셨잖아요.

 

하스키 : 네, 맘에 들어요.

 

세르게이 : 러시아 음악계에서 누구를 가장 최고로 꼽나요?

 

하스키 : 그렇게 유명하진 않은 음악가인데, 페테르부르크에 Батерс라는 아티스트가 괜찮더라고요. 카라간다(카자흐스탄의 도시)의 Масло Черного Тмина의 스타일도 맘에 들고, 그 외에도 Big Baby Tape도 좋았어요. Батерса랑 Масло Черного Тмина도 Big Baby Tape가 올해 그랬듯이 대박쳤으면 좋겠네요.

 

세르게이 :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느껴지나요? 2010년의 하스키와 2018년의 하스키 사이에 어떤 크나큰 아티스트적 행보를 걸으셨나요?

 

하스키 : 사실 최근 2년동안 일어난 일을 평가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의자에 엉덩이 탁 붙이고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세르게이 : 뭔가 읽을 시간은 있나요?

 

하스키 : 네 있어요. 오늘날 어떤 러시아어 단어가 쓰이는 지 알아야 하니까요.

 

세르게이 : 오늘날 어떤 러시아어 단어가 쓰인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스키 : 공부하려고 하고 있어요. 순수시는 뭔가 제 취향은 아니에요. 보리스 리쥐(Б. Б. Рыжий; 러시아 시인, 지질학자.) 이후로 절 감동시킨 작품은 없었어요. 안드레이 로디오노프(Андрей Родионов;러시아 시인)도 나쁘진 않았어요.

 

세르게이 : 제 미숙한 시점으로 보아 음악에 더 주의를 기울이려 하시는군요. 하스키씨는 시인이지만 지금은 아마 뮤시션으로 많이 나아가신 듯 해요.

 

하스키 : 저는 100% 가사 중심의 래퍼지만, 음악도 정말 좋아해요. 무엇보다, 언젠가 가사라는 게 저를 죄여올 거예요. 음악이라는 건 어찌 되었든 상관 없지만, 가사는 기억되는 것이잖아요.

 

세르게이 : 뭔가 대작을 쓸 수도 있나요?

 

하스키 : 반드시 할 거예요. 그렇게 해두죠.

 

세르게이 : 결혼은 언제 하셨죠?

 

하스키 : 2017년 여름에요.

 

세르게이 : 결혼생활로 인해 변한게 있나요? 좀 더 세심한 사람이 되셨는지요?

 

하스키 : 그렇게 잘은 모르겠어요. 사람을 속이거나 그러진 않아요. 변한 게 있다고 함은, 주거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가정을 꾸릴려면 어딘가에는 살아야 되잖아요.

 

세르게이 : 가정생활이 시작되었네요.

 

하스키 : 이런 생각도 드네요. 모든 게 제대로 된다면, 연극을 하면서 왼발로 해결을 할 수 있는지. (번역 불가)

 

세르게이 : 음악으로만 돈을 벌고 계신가요?

 

하스키 : 네, 오직 음악으로만요.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해낼 수도 있겠지만, 돈이 그리 많이 벌리진 않아요.

 

세르게이 : 울란우데에서의 어린시절에 관해 질문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동쪽으로 이르쿠츠크를 넘어선 적이 없다보니 울란우데라는 곳을 상상할 수가 없는데요, 거긴 어떤가요? 이른 시기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싫어하진 않았나요? 싸움은 있었나요?

 

하스키 : 그런 건 없었어요. 지금까지 제 곁에 있는 불알친구들이 있어요. 좋은 사람들도 적잖게 있어요, 제 주변 환경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지만요. 주위엔 주정뱅이, 범죄자, 지독한 가난, 공통적으로 느끼는 절망, 질퍽한 길이 있었죠. 러시아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쓸데없는 것 같아요. 다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아실 거예요.

 

세르게이 : 울란우데에 살 때 거길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나요?

 

하스키 : 뭐 그렇죠.

 

세르게이 : 거기로 돌아가곤 했나요?

 

하스키 : 당연하죠. 고향으로 돌아갈 때면, 매번 더 따뜻해지고, 어린시절 만큼 그렇게 혹독하지만은 않아요.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이 죽고 있다는 거예요. 수도를 우랄산맥 너머로 옮겨야 할 필요가 있어요.

 

세르게이 : 부모님은 뭐라시던가요? 어떻게 하스키씨를 바라보시나요?

 

하스키 : 엄마는 되게 사려깊은 분이세요, 단순한 사람은 아니셨죠. 사적인 얘기를 안하시다 보니 서로 서로를 2명의 다 큰 성인처럼 대하곤 하셨죠. 혼낼 일이 있으면 제게 공손하게 물어보고 제가 답을 하는 식으로요. 내면에서 사람을 동등하게 본다는 걸 느끼곤 했죠.

 

세르게이 : 부모님이 하스키씨가 스타가 되었다는 걸 아시나요?

 

하스키 : 아마도요. 가끔씩 기자들이 부모님을 취재하기도 해요. 그럼 엄마한테 말해요 "그냥들 왔어".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항상 의논해요. 가능하다면 제 유명세가 가족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면 해요.

 

원문(Оригинальная статья) : 

https://esquire.ru/hero/81392-haski-ya-ne-boyus-mne-naplevat/

 

Хаски: «Я не боюсь, мне наплевать»

Рэпер Хаски просидел неделю в тюрьме, его концерты в разных городах были сорваны, а в песнях обнаружили признаки экстремизма. Сергей Минаев выясняет у артиста, в какие игры, помимо политических, он продолжит играть.

esquir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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