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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쯤 자수를 연구하던 B. 스타소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대인들은 장식을 수놓는 데 있어 선 하나 허투루 놓지 않았고, 문양 하나 하나 마다 고유의 뜻을 부여했다. 이는 그들만의 복잡한 언어이고, 미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이성과 감정을 함재한 근본적인 이유를 지닌 연속성 멜로디다."

 

비쉬반카를 입은 여성.

이번 포스팅에서는 우크라이나 자수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자수가 놓일 천의 색상과 형태, 꽃의 종류, 팔소매에 박힌 꽃, 무늬 그 자체에 녹아든 상징물은 나름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 우크라이나 각 지역마다 무늬나 장식이 상이하고, 심지어 하나의 상징물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컨대 폴레시아(Полісся) 지방(우크라이나 북부와 벨라루스 남부 사이에 위치한 지역)에는 검은 실이 흔하지 않아 검은색은 대체로 죽음이나 애도를 상징하는 반면, 포돌리아(Поділля) 지방(우크라이나 중부 지방; 빈니챠, 흐멜니츠키 지역)에서는 반대로 검은색은 땅을 나타내는 색으로 작용하면서 부유함이나 번창함을 상징하는 데 사용된다. 후자는 검은색을 주로 다루는 보르시칩스키(борщівський)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비쉬반카를 입은 여성.

 

비쉬반카(우크라이나 전통 의상)는 가장자리에 장식을 수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손과 뺨, 옷자락에서 신체적 접근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옷의 가장자리 밑을 통해 악(惡)이 들어온다 믿었기 때문이다. 옷 끝자락에 새겨진 자수는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상징적인 요소는 우선적으로 부적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미혼 여성의 윗옷은 팔소매, 목둘레, 옷밑단에 자수가 있고, 기혼 여성의 윗옷에는 가슴과 카라, 팔소매에 수놓아져 있다. 기혼 여성의 비쉬반카에는 밑단 자수가 미혼 여성에 비해 더 넓게 분포해 있는데, 이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비쉬반카를 입은 여성. 가슴에 장식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기혼 여성용 비쉬반카로 추정된다.

 

자수 문양은 기하학(추상)적 문양, 식물 문양, 동물(Zoomorphy) 문양 이렇게 3가지로 나뉜다. 기하학적 문양은 남성성을 나타내고, 식물 문양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불의 기호(마름모형 격자), 태양의 기호(바깥으로 뻗은 빛줄기를 포함하거나 정방형의 십자가를 품은 마름모), 씨를 뿌린 밭의 기호(중앙에 점이 찍혀 있는 마름모)로 남성성을 나타내곤 한다.

 

비쉬반카를 입은 남성. 불을 상징하는 마름모형 격자 속에 태양을 상징하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
비쉬반카를 입은 남성. 불을 상징하는 마름모형 격자 속에 정방형의 십자가와 바깥으로 뻗은 빛줄기가 번갈아 나타난다.

반면 여성복 내 기하학적 상징물로는 직선(땅), 다양한 형태의 나선과 물결, 뱀(물), x자를 연상케 하는 비스듬한 십자가(수확의 룬, 달의 상징)이 있다. 

 

여성용 비쉬반카. x자, 직선과 물결을 연상케하는 선으로 꾸며진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 의상에는 무늬에 남성의 상징, 여성의 상징만 내포해 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는 혼재되어 있다. 사람은 음양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결 형상(물)과 8각별(태양) 형상을 남성의 셔츠에도 여성의 셔츠에도 박기도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기의 상징물로 아동복에 부적으로 수놓기도 한다. 꽃 위에 감도는 별빛은 십자가와 같은 형태로 놓여져 있으며, 이는 태양의 힘을 끌어들이는 기호로 작용한다.

 

빨간 꽃 주위에 검은 실로 수놓아진 x자를 볼 수 있다.

 

비쉬반카의 속면에 매듭을 지으면 안된다는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셔츠를 장식하는 거룩한 의미를 고려해보면, 무늬를 구성하는 매듭은 운명과 삶의 여로에 매듭을 짓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자수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상징체로 베레기냐(Берегиня; 순진한 영혼; 동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가 있다. 베레기냐는 어머니의 정기와 불사의 인생, 가문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신비하고 역동적인 다수의 꽃으로 표현된다. 각 꽃의 가지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나타내기 때문에, 루쉬닉(Рушник; 결혼식에 쓰이는 수건)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무의 중간 부분과 윗 부분에 새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새는 천상계의 상징체, 영원함, 불사, 신성한 존재를 상징한다.

 

베레기냐를 상징하는 자수.
베레기냐를 상징하는 자수.

남성용 셔츠는 기하학적인 무늬로 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여성용 셔츠는 식물 무늬로 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럼에도 비쉬반카에서는 주로 기하학적 무늬나 식물 무늬가 섞인 형태가 많이 보이긴 한다.

 

비쉬반카에 새겨지는 식물의 세계는 충분히 다양하고, 포도나무, 오크(Oak)잎, 백당나무(Калина), 장미, 양귀비꽃, 빈카(Vinca), 라일락, 홉 등과 같은 종류가 쓰여진다.

 

포도나무는 비옥한 토양과 가정적인 삶을 상징하며, 기쁨과 가문의 번영을 가져다 온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의 비쉬반카에서 포도 다발이나 한 덩어리는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특히 폴타바식과 키이우식 양식이 유명하고, 체르니히우 양식에서는 예외적으로 루쉬닉(결혼식 때 쓰이는 길다란 수건)이나 식탁보에 포도 자수를 놓기도 한다.

 

키이우(키예프)식 여성 셔츠 문양.

오크나무는 신성한 나무이자 천국이나 통합세계에 자라는 세계수 프라두브(Прадуб)가 구체화된 존재이다. 또한 태양의 남성적인 기운과 발전과 삶을 물려받은 번개의 신 페룬(Перун)의 나무이기도 하는데, 이는 강인함, 아름다움, 장수를 의미한다.

오크나무 장식.
오크나무 장식.

백당나무(이하 칼리나)는 오크나무처럼 힘과 아름다움을 구체화시키는 존재이지만, 칼리나가 지닌 힘은 평범하지 않고, 아름다움은 쇠퇴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 만물과 불속성 3총사(해, 달, 별)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고, 해를 의미하는 고대 우크라이나어의 "Коло"라는 단어에서 칼리나(Калина)라는 말이 탄생했다. 빨간 열매는 피와 불사적 존재, 불, 해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루쉬닉과 여성 셔츠, 심지어 남성 셔츠에서도 전반적으로 칼리나 다발이 새겨지곤 한다. '칼리나-피-탄생-불멸'의 방식으로 의미론적 연결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칼리나는 여성의 정신적 삶의 상징으로, 여성성, 사랑, 아름다움, 시집살이, 기쁨과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칼리나 꽃 모양으로 약혼녀의 의복과 카라바이(Каравай; 결혼식 하객 대접용 빵)를 장식하기도 한고, 추수절에 여성들이 꽃으로 화관을 엮기도 한다.

 

오크나무 잎과 칼리나가 혼재되어 있는 양식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젊은 남성의 비쉬반카에서 발견되곤 한다. 건강한 힘과 아름다움을 지니는 종족의 생명력을 강하게 상징하기 때문이다.

 

루쉬닉, 오크나무 잎+칼리나 열매, 칼리나 꽃으로 장식된 비쉬반카

붉은 양귀비꽃은 필자(원문을 쓴)가 가장 선호하는 모티브로, 아름다움과 젊음, 혈기왕성함을 뜻한다. 양귀비 꽃 화관은 여성의 고결함을 상징하며 하얀색과 비교하기도 한다. 종족의 기억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죽은 사람이 흘린 핏방울에서 자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전투가 벌여졌던 들판에 양귀비꽃이 만개한다고 믿었다. 즉, 가냘피 흔들리는 꽃은 종족의 잊지 못할 기억이라는 의미를 내재하고, 선조들이 살아간 세계와의 연결과 불멸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양귀비꽃 장식은 장례용 루쉬닉(Покутний рушник)에 사용되기도 한다.

 

양귀비꽃 장식이 새겨진 비쉬반카.

 

장미는 우크라이나 민족의 꽃으로, 전통 가옥의 창문 맡에 조심스레 간직해 놓기도 한다. 태양이 연상되는 모습을 지녀 셔츠나 루쉬닉에 수놓기도 한다. 장미(Роза)의 옛말인 '루쟈(Ружа)'에서 태양(Солнце)의 옛말인 '라(Ра)'를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우크라이나에서 피(Кровь)는 '루다(Руда)'로 불렸는데, 이러한 이유로 장미는 '들끓는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장미는 사랑의 여신 '라다(Лада)'와 그의 딸이자 봄의 여신인 '렐(Лель)'의 꽃이다. '꽃의 왕'이라 불리는 이 꽃은 자비심과 융성함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특히 붉은 장미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뜻하기도 한다. 장미 무늬는 자수에 사용되는 꽃 문양 중 '멈추지 않는 영원한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요소로 쓰인다. 기하학적 무늬에 놓인 장미는 단순한 꽃을 넘어서서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을 연결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는 '별의 꽃'이기도 하다. 

 

장미 문양.
장미 문양.
장미 문양

 

동물 모티브는 식물이나 기하학적 모티브에 비해 비쉬반카에서 덜 나타나고, 아동들이 입는 비쉬반카나 루쉬닉, 식탁보을 특징짓곤 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로는 비둘기, 뻐꾸기, 닭, 전설 속 새, 개, 말 등이 있다. 

 

비둘기는 민간 사이에서 성스럽고 헌신적인 상을 대표하여 '신의 새'라고도 불리며, 청렴함, 정화의 상징성을 지니고, 혼례의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 쌍의 비둘기는 사랑과 창조를 뜻한다. 영혼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지니기도 한다. 비둘기, 특히나 하얀 비둘기의 형상은 선량한 영혼을 받아들이고, 검은 까마귀는 악한 영혼을 받아들인다고 여겨지곤 했다.

 

비둘기와 장미, 오크나무 잎과 칼리나 열매가 어우러진 장식.

뻐꾸기는 '신화적인 새'의 대표격 중 하나다. 점쟁이 뻐꾸기(Кукушка-гадалка)는 봄을 알려주고,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살아가게 될 지 예견해주기도 한다. 봄날에 뻐꾸기 소리를 듣는 채 돈을 가지고 있으면, 한 해에 행운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뻐꾸기는 죽음과 저승세계에 관한 상징성을 지닌다. 민간에 의하면, 뻐꾸기는 겨울 철새들이 떠나가는 장소(비리예; Вырие)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봄이 오면 떠나갔던 새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사자(死者)의 왕이 거처하는 비리예로 모든 철새가 떠나갔을 때 문을 잠근다. 루쉬닉에서 칼리나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뻐꾸기를 종종 새기곤 하는데, 이는 종족의 유지를 의미한다.

 

백당나무에 앉은 뻐꾸기.

아쉽게도 포스팅 하나에 모든 내용을 담기는 매우 힘들다. 수많은 민간설화의 내용은 우크라이나 자수의 비밀을 풀기 위한 단서로만 접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전통 자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브로도프식 자수 정서법'을 선보일 차례가 이제서야 온 것 같다.

 

'브로도프식 자수 정서법'는 기나긴 세월동안 우크라이나 자수의 다양성을 꾸준히 연구한 볼로디미르 피드히르냐크(Володімір Петрович Підгірняк)를 통해 보편적인 유명세를 띠었다. 피드히르냐크는 환 카르파티 지역의 전통 공예 속 기호의 의미를 연구하여 공예품 속 장식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그는 우크라이나 자수 속 상징체 속 문자, 고대 달력, 작품 속에 내재된 의미를 해석했다. 해석론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하단의 내용은 그의 저서의 일부에서 발췌했다.

 

알파벳 기본 법칙:

 

상기에 기술한 알파벳 정서법의 응용은 그의 저서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필자가 브로도프 정서법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장 많이 끈 부분은 바로 '인명 표기'고, 하단에 첨부된 사진에서 본인만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귀여우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겨도 되고, 받는 이의 이름을 새긴 주머니를 만들어 선물해 주셔도 됩니다."

 

이름 외에도 문구가 새겨진 부적이나 기도문을 새길 수도 있다.

 

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3. 고귀하신 성모 마리아여, 제 아이의 어머니이자 비호자가 되어주소서.

 

원문 : Тайна украинской вышивуки / Журнал Ярмарки Мастеро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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