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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역

한국의 지하철과 러시아의 지하철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인구 100만명 넘는 대도시로 왔으니 지하철은 타 봐야 되지 않겠는가.

오비 강으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iso 조절 깜빡함.

일단 소문대로 에스컬레이터는 깊었고, 문은 쾅 닫히고, 속도는 빨랐고, 소음은 정말 리드미컬했다.

지하철 소음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쓸데없이 신났다.

(실제로 지하철 소리에 맞춰 덩실대는 여자 봤음.)

 

 

다리가 하나 둘.

 

모닝 발랄라이카 한곡 때려주시고!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로. 시골 마을에 철로가 놓이면서 러시아 제 3의 도시가 되어버린 운빨 오지게 받은 도시. 

 

기차가 지나간다.

 

짹.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용해서 좋기도 했다.

확실히 대도시는 대도시인게, 강변의 규모가 확실히 남달랐다. 넓직넓직하고, 다리도 많이 놓이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바로 디마가 추천해 준 아카뎀고로독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 어딘가에서 내려서 조금 해맸던 것 같다. 

마르쉬루트카 타고 조금 낑겨서 갔다.

 

사람들이 많이 내린 곳에 일단 내렸더니 이런 광경이.

 

이런 자작나무 숲 속에 산책로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날파리는 덤.
밑에서 위로 찰칵.

 

이렇게 표지판도 있다.
엔게우(НГУ: Новосибир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본관인 듯 하다.
자작나무가 엄청 많다. 날파리도 엄청 많았다.
학생 기숙사거나 연구원 숙소. 색감이 맘에 든다.
무궁화는 삼천리 강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뱃지, 조각상, 동전, 컵받침 삽니다.

 

컬러풀한 아파트.

숲길을 걷다보면 주택가가 나오고, 주택가에서 조금맛 샛길로 나서면 또 숲이 우거져 있었다.

시베리아 한복판 특성상 날파리가 미친듯이 나와서 눈을 뜨기조차 힘든 정도였다.

흐루쇼프카에 컬러를 입혀서 그런가 건물들이 뭔가 정갈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이쁜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가 대로변과 마주쳤다. 어디쯤인가 싶어서 지도를 켜서 보았다.

길 따라 쭉 가서 숲을 한 번 해쳐가면 강변이 있는 것 같아 그 방면으로 쭉 가봤다.

 

야생화. 이름은 모름.
야생화.

 

기차가 지나간드아.

기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철로를 건너보니 조그만 승강장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철로에서 조금 더 들어가보니 강변을 향한 내리막길이 있었다. 

 

햇볓, 바다, 그리고 허세(?), 이 모든 게 강가에!
썬텐하는 사람, 물놀이 하는 사람. 다들 비키니를 입고 있어서 사진 찍기 두려웠다.

조금 둘러보다가 다시 돌아갔다. 뭔가 내가 있어선 안 될 곳만 같았다.

사진을 좀 많이 찍고 싶긴 했지만, 비키니 입은 사람들한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도 참 웃긴 짓 아닌가?

강물이긴 했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그냥 바다같았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만은 않으니,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술은 사랑입니다. 24시간.

 

다시 숲길을 걷는다.
또 다시 대로변은 개뿔.... 1차선이었네.

햇볓도 쨍쨍한데 그늘도 아닌 곳을 쭉 걸어갔다.

계획된 구간인만큼 길이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어 아카뎀고로독의 주택만큼이나 직관적이었다.

들꽃, 차, 흐루숍카.
진주(眞珠)로.

지상 낙원을 재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조성한 과학연구단지라는데,

알록달록한 색감과 쭉쭉 뻗은 길을 보고 "애썼네"하고 생각은 들었다.

숲과 소련식 건물, 조금만 나가면 물장구치고 썬텐 할 수 있는 강변까지.

공부하기엔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긴 했지만, 한국 대학생들이 여기서 공부한다면?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심심하다며 징징댈 게 뻔했다. 

학교 앞에 카페도 있고 마트도 있고 식당도 있고... 뭐 있을 건 다 있지만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조금 아쉬운 위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칙칙한 흐루숍카도 있다.
채도의 상하.

 

숲길을 걷다가 주택가를 걷다가 도로변을 걷다가... 다채로운 캠퍼스구만.
소비에트 바이올렛.
한국말하는 레나.

사실 아카뎀고로독 도로변을 걷다가 중간에 목도 마르고 배터리도 충전할 겸 카페에 들렸다.

들어오는데, 보통 러시아에서는 퉁명스럽게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하거나 쌩 까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 카페 들어오자 마자 미소 지으면서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잠시 한국 온 것만 같은 기억이 들었고, 이러한 예감은 뭔가를 암시하고 있었는데...

 

음료수 계산을 마치고 잔돈을 받는데, 거기 알바생이 나를 보고는 어디 사람이냐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한국 사람?"하고 한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한국어 공부한다고, 한국 문화에 관심 있다면서 엄청 좋아한 것이다.

나도 오랫만에 한국어로 대화하겠다 싶어 신이나서, 이야기 하던 도중 음료수를 매장 바닥에 쏟고 말았다.

고놈의 방정.... 어휴... 한국에서 그랬듯이 휴지 어딨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자기네들이 치우겠다 그랬다.

목이 마르니 음료수 한 컵 정도는 마셔야겠다 싶어서 다시 사려고 했지만, 계산 안해도 된다면서 그냥 하나 다시 만들어주더라.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여기 한국인이 올 곳은 아닌데 이렇게 봐서 너무 놀랍다는 말이었다.

노보시비르스크 자체에서 한국인을 많이 못보기도 한 데다가, 아카뎀고로독까지 손수 찾아오는 사람은 더욱이 없다는 말.

아이돌 누구누구 좋아하고 드라마도 정말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되게 달콤했던 걸로 기억난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맛. 호불호는 갈릴 수도 있음.

아무튼, 카카오톡 아이디 교환하고 매장을 나섰다.

잠시 좀 연락하다가 , 열차 안에서 인터넷도 잘 안잡히기도 했고, 여행에 집중하느라

연락이 길게 가진 않았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저 분이 일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kuzina 아카뎀고로독에 혹시 들릴 일 있으면 한국어 세례 받을 준비 하시길. 


음료수 쏟아서 미안하고, 리필해줘서 고마워.

아무튼, 한국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항상 밝은 미소 잃지 말고 잘 살렴.


 

새.
어느덧 중심부로 진입한 것 같다. 
더우니 체 게바라도 탐해 보고.
체 게바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인의 두상을 판다.

 

평범한 중소도시의 느낌. 학생들이랑 연구진이 몇 명인데 기본적인 인프라는 갖춰져야지.
작은 장터.
이젠 시내로 갈 시간.
삼촌 '됴네르'. 됴네르, 샤우르마, 도네르 다 '케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시내로.

 

버스정거장까지 걸어갔더니 너무 화장실이 급했는데, 주위에 화장실이 없다고 하더라. 

원래 남의 매장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지라, 고민을 꽤 했지만,

우선 내 속이 중요하니까, 주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어서 따뜻하게 마셨다 이 더운 날에...

 

그렇게 겨우 겨우 해결하고 커피를 좀 마시다 보니, 버스가 왔다.

노보시비르스크 쪽으로 간다고 해서 냅다 탔다.

그렇게 앉아서 아카뎀고로독에서 본 것들을 하나 둘 회상을 하자

어떤 여성분이 뭔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안해서 "즈드라시쩨!"하고 인사를 했다.

여자도 맞받아쳤다, "즈드라시쩨!"

인사를 해도 계속 빤히 쳐다보길래 무서워서 눈을 밑으로 내렸더니

손을 딱 내밀고 있었고, 허리 춤에는 표랑 잔돈이 든 허리가방을 매고 있었다.

 

"아, 차장한테 돈을 내는 시스템이였지 러시아는!"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뻘줌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돈을 쥐어 줬다.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여태까지 마르쉬루트카를 탄지라,

항상 내릴 때 돈을 지불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 잔돈과 표를 거슬러주고 유유히 다른 승객한데로 다가갔다.

 

시내 가는 길.

그렇게 러시아 시내버스라는 것을 처음 타보았다.

그리고 약 40분 정도에 걸쳐 시내로 나갔다.

잘못 착각해 조금 외곽에 내려가 레치노이 복잘(Речной вокзал)까지 걸어간 기억이 난다.

크바스! 저렴하고 맛도 좋은! (사실 마시다 보니 정 들어버림.)
인도풍의 공연이 마침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 때 보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뭔가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제서야 노보시비르스크가 광역시 규모의 도시라는 걸 깨달았다.

지하철에도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고, 길거리에 차도 더 많아졌다. 

시계를 보니 딱 '러시아워'였다. (Russia war 아니다.)

지하철 내부. iso 조절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도시의 활기를 조금 느낀 뒤, 지하철의 리듬을 느끼러 지하로 내려갔다.

 

노보시비르스크 향토 박물관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박물관.

 

오페라 극장, 그 앞에 놓여진 레닌 광장.
필하모니 공연 홀.
우연히 지나친 시계꽃밭.
니콜라이 예배당.
오페라 극장 맞은 편 5월 1일 광장 초입부 분수.
여유로움.
활기참.
음악.
결혼

시내에서의 동선은 오페라 극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퇴근 시간 후의 강변을 또 와야 돼 시간이 애매해서,

가장 핵심 중심부만 좀 둘러보기로 했다.

 

도시 자체의 느낌은 한국으로 치면 대전, 확실히 관광을 위한 도시는 아닌 듯.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살기에는... 잘 모르겠다, 겨울엔 안 가봐서. 

 

상인 З. Г. 크류코프의 집.
토니모리. CIS권과 우크라이나에서 꽤 본 것 같다.
저 끝에 분수.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자발적으로 공원으로 갔을까.

솔직히 거제에 있을 때는 시골이어서 굳이 공원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서 패스.

진주에 있었을 때는? 요즘에야 강변을 많이 다니지만, (지금은 또 코로나 때문에 안 가긴 하지만...)

2018년에 떠난 여행 이전에는 1년에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내 사례로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특히 도시 사람들은 공원이라는 공간과 그리 친숙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노는 패턴을 보면 피씨방-노래방-당구장-술집-카페 이런 루트니까.

실내에서 노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으로서 실외생활은 그냥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다.

 

산책하기 좋은 시기엔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라오고,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나도 걸어다니는 것은 좋아하지만, 공원을 굳이 찾아가고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공원이라는 공간이 선호되는 게 당연한 건 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여행했을 때는 공원이란 말 그대로 쉬어가는 곳이었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사람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고...

다음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카페는 안 들리냐고?

 

날씨도 좋은데 굳이?

특히 해 질 부렵에는 선선하고 습하지도 않아 밖에 나가기 정말 좋은 계절인걸.

 

분수와 접선.
여기도 꽃 바구니 하나 둘 데롱데롱. 그 뒤에는 흐루숍카.
흔한 길거리.

 

적당히 사람 구경하고 또 다시 강변으로 향했다.

해 질 무렵의 오비강을 보고 싶어서.

물론 기차시간이 기차시간이라 완전히 노을이 지진 않겠지만...

 

지하철 승합장.

 

내 예상대로 아직 노을은 생기지 않았다.

보통 9시 쯤 되어야 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그 시간 쯤이면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대신 골든 타임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기.

햇빛이 적당히 땅을 금빛으로 물 들일 때.

 

담소를 나누거나, 음악을 듣거나.
자전거 타는 아이
난간에 초점을 맞추어.
골든 타임.
지하철로는 아침보다 더 금빛을 띤다.
쨍!
노상콜라, 옆에는 낚시 준비 중.
아침보다 사람 수가 월등히 많다.
다리를 도대체 몇 개나 찍는 거야?!!
다리에 맺힌 해.
깨알 디에세랄 셀카.
오늘만 몇 번 온거지 여기. 3번?
Ой, мороз, мороз... Не морозь меня... 여름에 흘러나오는 '추위'의 노래.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노보시비르스크에서의 하루도 저물어 갔다. 

드미트리와 니나의 모교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가 위치한 아카뎀고로독도 갔다 왔고,

오페라하우스도 구경하고, 공원도 좀 보고, 오비 강도 좀 걸었다.

비록 니나가 말한 '건축이 정말 이쁘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는 못한 한나절이었지만, 

결국 의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명문대 캠퍼스를 누려봤다는 것, 시베리아 제 1도시를 들렸다는 것 아니겠는가.

지하철도 처음 타보고... 러시아 카페 매장에서 음료수도 쏟아봤고! 물품 보관소에서 짐을 찾아 기차를 타러 갔다.

노보시비르스크역. 조금씩 노을이 져가고 있었다.
'현재 시간 약 저녁 9시 10분.'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다.

 

자 이제 어디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우랄연방관구 최대 도시로.

러시아 월드컵 개최지 중 한 곳으로. 바로 예카테린부르크로 가보자고.

조금씩 지정학적 유럽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지만, 실감의 속도가 둔했던 건 왜일까.

 

Погнали!
예카테린부르크로 가자.

 

* 노래가 이 블로그에선 재생이 안되니 링크 타고 유튜브에서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

Под небом голубым есть город золотой,
С прозрачными воротами и яркою звездой.
А в городе том сад, все травы да цветы;
Гуляют там животные невиданной красы.

푸른 하늘 아래 금빛 도시가 있네

투명한 관문과 밝게 빛나는 별

도시 속 정원에는 풀과 꽃이 잔뜩 피었네

미지의 아름다움을 지닌 동물들이 돌아다니네

 

Одно - как желтый огнегривый лев,
Другое - вол, исполненный очей;
С ними золотой орел небесный,
Чей так светел взор незабываемый.

하나는 불 같은 금빛 갈퀴의 사자

하나는 눈이 초롱한 금빛 소

그 위에는 황금빛 하늘 독수리

빛나는 눈빛을 잊을 수 없네

 

А в небе голубом горит одна звезда;
Она твоя, о ангел мой, она твоя всегда.
Кто любит, тот любим, кто светел, тот и свят;
Пускай ведет звезда тебя дорогой в дивный сад.

푸른 하늘에 별 하나가 빛나네,

이건 그대의 것, 나의 천사여, 항상 그대 곁에.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빛나는 자를 성스러이 여기어,

별이 사랑스런 그대를 아리따운 정원으로 데려가길

 

Тебя там встретит огнегривый лев,
И синий вол, исполненный очей;
С ними золотой орел небесный,
Чей так светел взор незабываемый.

불 같은 금빛 갈퀴의 사자를 그대와

눈이 초롱한 파란 소를 그대와

그 위에는 황금빛 하늘 독수리

빛나는 눈빛을 잊을 수 없겠지


나는 과연 푸른 하늘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을 누군가에게서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금빛 도시로 나를 인도해줄 그런 별을 만날 수 있을까.

희망적인 가사, 아름다운 노랫말을 음미하면서도 어디 한 구석이 찜찜해지곤 한다.

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나의 현실과 비교하는 나 자신이 이상한 걸까,

있지도 않는, 있을 수도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행동이 이상한 걸까.

 

-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가장 변종이다.

 

내게도 사랑하는 이가 하나 있다. 정말 먼 곳에 있고, 실제로 만난 일수는 얼마 되지 못한다.

여러모로 나와 맞지 않는 여인이다. 취향도, 가치관도 완전히 엇갈렸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녀가 이 노래를 듣는다면(아마 들었을 것이다.) 별을 내게 주겠노라 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먼저 가진 뒤 금빛 도시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릴 것이다.

 

나보고 이기적이라며 질타할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런 사람들도.

그냥 가치관의 차이니까.

 

나로 인해 그 곳에 갈 사람보다는, 나를 위해 그곳에 갈 사람을 원할 뿐이다.

물론 나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그 곳에 가고 싶지는 않고,

내 힘으로, 내 노력과 끈기로 연인을 위해 그곳으로 갈 준비는 얼마든지 되어 있다.

 

다만,

내가 그대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하늘나라에서 이 노래를 그대에게 부르리라.

 

<Десять Стрел> 1986

1. Каменный уголь

2. Хозяин 

3. Трамвай 

4. Стучаться в двери травы 

5. Она может двигать

6. Десять стрел

7. Платан

8. Шары из хрусталя

9. Небо становится ближе

10. Яблочные дни

11. Горо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의 서막을 알렸고,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에 올라타면서 긴긴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차에 타기 전 부터 나에게 관심을 보인 울란우데 출신 '칭기즈'와 그의 동료,

열차 맞은 편에 탄 이름 모를 연금수령자와 사할린 섬 여행하고 고향으로 복귀하는 시크한 아저씨,

가족여행으로 온 듯한 여러 사람들...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았고, 더군다나 러시아어도 막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라

수많은 유튜버가 보여준 낭만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여행이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생각이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은 매 한 가지니까.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소홀히 하는 편이라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 역까지 장장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름 젊은 패기에 (당시 25살이었으니) 표를 예매했을 땐 3일이면 굉장히 짧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3일을 기차 안에서 지내보니 3일이라는 기간은 정말 길었다.

샤워도 하지 못해(샤워를 할 순 있었지만 캐리어를 열기가 귀찮았다.) 머리는 머리대로 떡지고

말이 잘 통하지 않기에 의사소통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잠은 잠대로 잘 수가 없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 역
인(Ин)역
치타(Чита) 역
울란우데(Улан-Уде)역

 

그래도 다른 칸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칭기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캄차카에서 어부일 하다가 고향으로 가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과 막판에 한국 여행객 통역해주면서 친해지면서

마냥 고통스러운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스럽긴 했다.

 

담배 피는 칭기즈 형님

칭기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몽골계 러시아 소수민족인 부랴트인이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배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 타고 울란우데로 가는 사람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무려 횡단 열차를 타기 전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원래 본업은 화가였으나, 아무래도 그림 그려 돈 벌어먹는 게 힘들겠지, 더군다나 모스크바가 아니라 울란우데에서 활동한다면...

러시아에서 돈벌이도 변변치 않아 한국으로 일하러 간 듯했다.

 

생 부랴트인이라 그런지 부랴트 말도 조금 할 줄 알았고,

나름대로 자신의 민족에 자긍심이 있는 사람이라 부랴트어를 할 줄 모르는 울란우데 쪽 아이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러시아어를 조금씩 가르쳐주기도 했고, 푸쉬킨의 예언자라는 시를 써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려주면서 까지 이해를 시켜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뭔가 의미가 확 오지 않아 이해를 못한 내색을 보이자 씁쓸해하기도 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으신 분과 칭기즈

또 한편으로는 맞은편 좌석 남자분께

내가 외국인이니 잘 챙겨달라는 말을 누누이 하셨다. (그러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러면서 그 두 명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는데,

유추컨대, 왜 굳이 다른 나라 나가서 일을 하느냐는 식으로 핀잔을 준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사할린은 볼 게 많이 없었다면서 오고 가는데 시간만 낭비했다는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거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뚝뚝하면서도 은근히 나를 챙겨주기도 했고,

서로 고향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이름을 까먹었다...) 자신이 사는 오룔(Орёл)이라는 도시를 보여줬고

나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거제 사진을 보여줬다.

현대적인 건물이 번쩍번쩍 빛나는 사진을 보고 흥미를 꽤나 가지셨다.

 

나랑은 직접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같이 있는 자리가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차창 너머 이름 모를 시골 마을

열차 안에 있는 아이들이랑 마피아 놀이를 하기도 했고, 보드 게임하는 걸 구경하기도 했다.(할 줄 몰라서...)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정말 아쉽긴 했지만, 나름대로 재밌었다. 마피아 게임을 원활하게 할 정도의 러시아어 실력을 갖추지 못해

많이 주절대는 사람을 지목하고 얘가 마피아야! 너무 많이 씨부려! 이러면서 몰아세우기도 했다.

마피아 놀이는 한국에서 하는 것과 거의 똑같았다. 마피아, 시민, 경찰, 의사 이렇게 있는 상태로 하니까.

그때 같이 게임을 했던 친구들이 나를 제외하고 6명인가 그랬는데 전부 다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열차에서 다 친해진 느낌?

 

모두 울란우데 쪽에서 다 내리고 나니 어떤 러시아 사람이 나한테 나가오 더니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 쪽에 한국인이 있는데 통역 좀 해달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웬 한국인 여성분이 러시아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

어쩐지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계셨는데 설마설마하고 말을 안 걸다가 한국인인 걸 제대로 알고서야

마치 코를 풀어내듯 한국어를 풀어냈다. 그분도 이르쿠츠크로 가시는 분인데, 리스트비얀카였나 아무튼 거기로 간다고 하더라.

러시아 전래동화 같은 거 아는 거 있냐, 얼마나 러시아어 배웠느냐, 어디로 가느냐, 이런저런 질문 세례를 받고는 

러시아 카드게임인 두락(Дурак)을 했는데, 나도 통역을 못하자 일단 하면서 배우자면서

나랑 한국인 여성분이랑 아무거나 지레짐작하며 내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패를 들 테니 너네들이 게임을 즐겨라는 식으로 진행이 흘러갔다.

지금 시점에서 이 게임을 하라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데(카자흐스탄에서 보드카 마시면서 배운 지라...)

좀 배워갈 걸 그랬나?

 

바이칼

그렇게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바이칼 호수가 나왔다. 물론 해가 거의 질 무렵이라 잘 보이진 않았다.

이제 이르쿠츠크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 잠도 오고 그러니 잠을 자러 갔다.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승무원이 도착 20분 전에 나를 깨웠다.

이르쿠츠크 도착할 때쯤 깨워달라는 맞은편 아저씨도 깨우고 이르쿠츠크에 내려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고

한국인 여성분 택시 잡는 거 러시아인이랑 같이 도와주고 그분들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정도 되었다.

아침에 알혼섬에 있는 숙소로 가는 픽업차량이 온다고 하니 폰도 충전하다가 잠시 선잠을 청했다.

아침 9시쯤에 온다고 그랬는데 버스 기사가 엄청 지각해버리는 바람에 거의 10시쯤에 탄 것 같다.

그때까지 뭐했냐면, 아무것도 안 했다. 역 주변을 서성대다가 다시 들어가 앉아 있다가를 한참을 반복했다. 

 

버스가 늦게 도착한 바람에 짜증이 엄청 난 상태였는데 갑자기 어떤 남성분이 내게 다가와 죤기혼크? 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처음엔 응? 하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알아채고선 다! 다! 하고 소리치고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탔다.

몇몇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을 돌면서 사람들을 더 태우고 알혼섬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거의 8-9시간가량 걸렸다. 

 

알혼섬으로 가는 배

알혼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까지 가서야 느꼈다.

중국인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그때 바이칼 호수에 관한 노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나 뭐라나...

같은 버스에 탄 한국분이 설명해 주시더라.

 

3일 8시간 만에 알혼섬에 도착했고, 조금 쉬고 싶었지만 한국 여행자분들과 호수변에서 만나기로 해서 짐 정리하고 바로 나갔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 몇 개만 올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무르 강
어느 시골의 한 목조 오두막

 

전형적인 시골 풍경

 

 

 

2014년에 한러간 상호무비자 협정을 맺은 이후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떠오른 러시아 극동의 도시,

한때는 연해주로도 불렸고, 강제이주 전까지만 해도 무수한 독립운동가들과 

무기력한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조선을 벗어나고자 했던 농민들이 이주를 하곤 했었던 도시,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차고 넘치는 도시,

그렇게 첫 해외여행을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에서 시작했다.

 

마침 러시아어를 전공하기도 해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선택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첫 관문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블라디보스톡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떠올리자니 해풍이 서늘하게 부는 이른 아침의 항만만이 떠오른다.

러시아로 떠나기전 인터넷을 통해, 주윗사람을 통해 신빙성 없는 스테레오타입을 들어왔기에,

행여 누군가 내 물건을 훔쳐가진 않을까, 행여 누군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나를 기분나쁘게 하지는 않을까

크로스백을 부둥켜안다 시피 하며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난다.

더군다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아파트방이라, 외곽에 군데군데 지어진 흐루쇼프카는 

여행초심자이자 러시아초심자인 나를 두렵게 하기엔 충분했었다.

 

그러다가 기차를 기다리면서 낮선이와 대화를 하고

노숙자랑 자그마한 공원에서 노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뒤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어느 정도 소화해낼 수 있었던 러시아어의 덕이 가장 큰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톡 해양공원

블라디보스톡에는 약 3일정도 체류했었고, 극동에 있는 중소도시라 그런지 그렇게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처음 가보거나, 바이칼이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러시아라는 나라를 단순히 경험하기엔 나름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르하트나야(Бархатная) 흑맥주. 맛은 그저 그랬다.

불켜진 흐루쇼프카를 바라보며 러시아 맥주와 슈퍼표 웨하스도 먹을 수 있고 

밀키스 포도맛, 메론맛, 바나나맛. 그리고 흑빵(хлеб)

흑빵과 곁들여 우리나라에서 팔지 않는 과일맛 밀키스도 맛볼 수 있었다.

참고로 주식이 빵이다 보니 저 정도 덩치의 흑빵도 굉장히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다.

특히나 모스크바도 상트도 아닌 블라디보스톡이라면... 10루블 이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해양공원 유료화장실 관리인

화장실 지키는 뚱뚱이 아줌마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화장실이 유료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0루블이면 허름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수도권에 비하면 매우 싸다. (모스크바 기준 50~60루블)

 

해양공원에서 바얀(Баян)키는 아저씨.

바얀 연주하는 어르신도 볼 수 있다. 

러시아 어딜가든 바얀을 키면서 구걸하는 아저씨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스탈로바야(Столовая)에서 먹은 점심. 가격은 가물가물하지만 약 100-150정도 나온 듯 하다.

스탈로바야에서 러시아 현지인들이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

스탈로바야라 함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고르되 계산은 각 음식마다 치뤄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고 주로 가정식이 나오기 때문에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나는 킹크랩을 먹지 않았다. 주로 킹크랩이랑 곰새우 먹으러 많이들 가지만

당시 내 여행의 취지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온전히 느끼는 데에 있어서...

킹크랩이랑 곰새우가 그렇게 저렴하고 맛있는데 후회 안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뭐... 조금"

중국계 노숙자

재수 좋으면 노숙자의 춤사위도 볼 수 있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춤 출 줄 안다고 막 추는데, 실컷 다 추게 해놓고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뻘줌해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면 노숙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정말 재밌긴 하지만, 위생상 안전상 그렇게 추천할 것은 못된다.

 

드미트리 아저씨

다행히 사연 많은 드미트리 아저씨가 도와주신 덕에 노숙자들이랑 맘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잘 살고 계시려나. 연락한다 해놓고서 이때까지 연락을 안했는데... 

드미트리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숙자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와서 말을 막 걺.

나랑 드미트리 아저씨한테 맥주 한 병씩 사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나, 

노숙자들이 술에 절어 있기도 하고,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러시아어를 못했기 때문에

많은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에서 왜 노숙자를 БИЧ(Бывший интелигентный человек)이라 칭하는지 알법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했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곤 했다.

그 때 만난 노숙자도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혁명광장에서 소련느낌 물씬 나는 광장을 볼 수도 있고, 정교회 사원도 볼 수 있다.

비록 러시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트램이나 트롤리버스는 구경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스타렉스 사이즈의 미니밴 버스를 탈 수 있고, 

러시아 백화점도 구경할 수 있고, 러시아어를 들을 수도 있고, 서점에서 러시아어로 된 책을 살 수도 있으니

그러한 면에서 간단하게 러시아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광장. 여기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쭉 걷다가 나온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동상. - 닫혀 있던 항구 블라디보스톡이 열렸다. -
니콜라이 개선문.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커서 나름 놀랬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정작 여행에 유익한 정보를 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미안할 따름이다.

어떤 관광지가 언제 지어지고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알아보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그러한 정보까지 알고 가면 조금 더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내가 관광가이드로 일하지 않는 한 디테일한 것 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포스팅을 통해서 제공해줄 수 있는 정보는

대강 이러이러한 장소가 있었네, 이 도시는 이러한 느낌이 들었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네 하는 개인정인 감상 뿐이기에,

정말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들은 다른 포스팅을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정보는 내가 정말 원할 때 직접 자료를 찾아낸 뒤 따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블라디보스톡 굼(ГУМ). 본점은 모스크바 크렘린 부근에 있다.
굼 뒤편에는 플리마켓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 디저트류를 주로 팔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크지는 않은 도시고, 관광할 거리가 그렇게 넘쳐나는 곳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톡이 근래 뜬 것도

"유럽 느낌이 나는 가장 가까운 도시", "저렴한 킹크랩", "관광 무비자 체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 및 종착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정말 많았다. 특히 관광지 쪽으로 가면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혼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시각에 모든 것을 맞추지는 말자"는 것이다.

식당에서 쩝쩝대며 음식을 먹는다거나(러시아에서는 굉장히 예의없는 행동임)

돈을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에서 불쾌감을 느낀다거나

영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 

특히 첫번째. 식당에서 너무 쩝쩝대서 깜짝 놀랬다.

개인적으로 쩝쩝소리를 굉장히 싫어하지만, 한국에 있을 땐 참았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쩝쩝소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핀잔을 주다간 오히려 인간관계가 확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쩝쩝대는 것을 굉장히 '무례'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이 아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다루는 러시아인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한국인의 쩝쩝소리(Чавканье)에 대해 자주 언급이 될 정도니...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더욱이 웃긴 건 그렇게 쩝쩝대는 것이 '만족의 신호', '먹음직스러움'을 나타낸다고 설명하니... 실드를 칠 걸 실드쳐야지.

자국에서의 사소한 행동이 타국에서는 굉장한 불쾌감을 자아내는 경우가 무의식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도시의 역사, 건축물의 역사, 상징물에 담긴 전설 등에 관한 내용을 알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는 관습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가는 것이 여행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이 든다.

 

뭐 어찌 되었든, 블라디보스톡은 내게 안겨진 러시아의 첫인상을 품고 있는 도시이다.

나같은 러시아학도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첫인상이 어땠는가 물어보면 쉽게 답이 나오진 않는다.

 

"사람 사는 동네. 생각보단 잘 웃는 사람들."

 

인형탈 알바생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
제복 입은 할아버지

 

러시아인들이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은

수업시간을 통해서나 랜선으로 사귄 친구들을 통해 많이 들어와 별로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중심가를 돌아다니면서 그닥 위험하지 않았고,

인종차별과 폭언을 통해 상처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어딜가든 미친놈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때, 걱정해주면서 몇 번이고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아주머니,

노숙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준 우연히 마주친 드미트리 아저씨, 무심하게 음식 담아주는 스탈로바야 직원분들 등등...

얼타면서 다른 곳에 싸인하려 하니 손가락으로 밑으로 세게 쿵 내려치며 "즈졔시(Здесь)!"하고 소리친 물품 보관소 아주머니

그 외에도 루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시크하게 동전 세는 것을 도와주는 슈퍼 아주머니,

아이들한테 굉장히 차가운 표정으로 훈육하는 어머님들,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땐 웃음꽃이 피어나는 젊은 사람들,

옛 소비에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제복 입은 할아버지 등등...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초면에 무뚝뚝한건 매한가지니 큰 이질감은 없었다.

다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서비스 정신(미소가 덜한 서비스), 다른 시스템(유료 화장실, 미니밴 버스, 신호 카운터, 러시아어, 역 입구 보안검색대 등등)에서 신기함을 느끼긴 했지만, 사람 개개인으로 놓고 보았을 땐 역시 사람 사는 데는 그 방식이 다 똑같다고 '벌써부터' 느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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