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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의 서막을 알렸고,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에 올라타면서 긴긴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차에 타기 전 부터 나에게 관심을 보인 울란우데 출신 '칭기즈'와 그의 동료,

열차 맞은 편에 탄 이름 모를 연금수령자와 사할린 섬 여행하고 고향으로 복귀하는 시크한 아저씨,

가족여행으로 온 듯한 여러 사람들...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았고, 더군다나 러시아어도 막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라

수많은 유튜버가 보여준 낭만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여행이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생각이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은 매 한 가지니까.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소홀히 하는 편이라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 역까지 장장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름 젊은 패기에 (당시 25살이었으니) 표를 예매했을 땐 3일이면 굉장히 짧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3일을 기차 안에서 지내보니 3일이라는 기간은 정말 길었다.

샤워도 하지 못해(샤워를 할 순 있었지만 캐리어를 열기가 귀찮았다.) 머리는 머리대로 떡지고

말이 잘 통하지 않기에 의사소통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잠은 잠대로 잘 수가 없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 역
인(Ин)역
치타(Чита) 역
울란우데(Улан-Уде)역

 

그래도 다른 칸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칭기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캄차카에서 어부일 하다가 고향으로 가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과 막판에 한국 여행객 통역해주면서 친해지면서

마냥 고통스러운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스럽긴 했다.

 

담배 피는 칭기즈 형님

칭기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몽골계 러시아 소수민족인 부랴트인이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배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 타고 울란우데로 가는 사람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무려 횡단 열차를 타기 전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원래 본업은 화가였으나, 아무래도 그림 그려 돈 벌어먹는 게 힘들겠지, 더군다나 모스크바가 아니라 울란우데에서 활동한다면...

러시아에서 돈벌이도 변변치 않아 한국으로 일하러 간 듯했다.

 

생 부랴트인이라 그런지 부랴트 말도 조금 할 줄 알았고,

나름대로 자신의 민족에 자긍심이 있는 사람이라 부랴트어를 할 줄 모르는 울란우데 쪽 아이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러시아어를 조금씩 가르쳐주기도 했고, 푸쉬킨의 예언자라는 시를 써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려주면서 까지 이해를 시켜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뭔가 의미가 확 오지 않아 이해를 못한 내색을 보이자 씁쓸해하기도 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으신 분과 칭기즈

또 한편으로는 맞은편 좌석 남자분께

내가 외국인이니 잘 챙겨달라는 말을 누누이 하셨다. (그러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러면서 그 두 명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는데,

유추컨대, 왜 굳이 다른 나라 나가서 일을 하느냐는 식으로 핀잔을 준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사할린은 볼 게 많이 없었다면서 오고 가는데 시간만 낭비했다는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거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뚝뚝하면서도 은근히 나를 챙겨주기도 했고,

서로 고향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이름을 까먹었다...) 자신이 사는 오룔(Орёл)이라는 도시를 보여줬고

나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거제 사진을 보여줬다.

현대적인 건물이 번쩍번쩍 빛나는 사진을 보고 흥미를 꽤나 가지셨다.

 

나랑은 직접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같이 있는 자리가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차창 너머 이름 모를 시골 마을

열차 안에 있는 아이들이랑 마피아 놀이를 하기도 했고, 보드 게임하는 걸 구경하기도 했다.(할 줄 몰라서...)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정말 아쉽긴 했지만, 나름대로 재밌었다. 마피아 게임을 원활하게 할 정도의 러시아어 실력을 갖추지 못해

많이 주절대는 사람을 지목하고 얘가 마피아야! 너무 많이 씨부려! 이러면서 몰아세우기도 했다.

마피아 놀이는 한국에서 하는 것과 거의 똑같았다. 마피아, 시민, 경찰, 의사 이렇게 있는 상태로 하니까.

그때 같이 게임을 했던 친구들이 나를 제외하고 6명인가 그랬는데 전부 다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열차에서 다 친해진 느낌?

 

모두 울란우데 쪽에서 다 내리고 나니 어떤 러시아 사람이 나한테 나가오 더니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 쪽에 한국인이 있는데 통역 좀 해달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웬 한국인 여성분이 러시아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

어쩐지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계셨는데 설마설마하고 말을 안 걸다가 한국인인 걸 제대로 알고서야

마치 코를 풀어내듯 한국어를 풀어냈다. 그분도 이르쿠츠크로 가시는 분인데, 리스트비얀카였나 아무튼 거기로 간다고 하더라.

러시아 전래동화 같은 거 아는 거 있냐, 얼마나 러시아어 배웠느냐, 어디로 가느냐, 이런저런 질문 세례를 받고는 

러시아 카드게임인 두락(Дурак)을 했는데, 나도 통역을 못하자 일단 하면서 배우자면서

나랑 한국인 여성분이랑 아무거나 지레짐작하며 내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패를 들 테니 너네들이 게임을 즐겨라는 식으로 진행이 흘러갔다.

지금 시점에서 이 게임을 하라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데(카자흐스탄에서 보드카 마시면서 배운 지라...)

좀 배워갈 걸 그랬나?

 

바이칼

그렇게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바이칼 호수가 나왔다. 물론 해가 거의 질 무렵이라 잘 보이진 않았다.

이제 이르쿠츠크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 잠도 오고 그러니 잠을 자러 갔다.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승무원이 도착 20분 전에 나를 깨웠다.

이르쿠츠크 도착할 때쯤 깨워달라는 맞은편 아저씨도 깨우고 이르쿠츠크에 내려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고

한국인 여성분 택시 잡는 거 러시아인이랑 같이 도와주고 그분들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정도 되었다.

아침에 알혼섬에 있는 숙소로 가는 픽업차량이 온다고 하니 폰도 충전하다가 잠시 선잠을 청했다.

아침 9시쯤에 온다고 그랬는데 버스 기사가 엄청 지각해버리는 바람에 거의 10시쯤에 탄 것 같다.

그때까지 뭐했냐면, 아무것도 안 했다. 역 주변을 서성대다가 다시 들어가 앉아 있다가를 한참을 반복했다. 

 

버스가 늦게 도착한 바람에 짜증이 엄청 난 상태였는데 갑자기 어떤 남성분이 내게 다가와 죤기혼크? 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처음엔 응? 하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알아채고선 다! 다! 하고 소리치고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탔다.

몇몇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을 돌면서 사람들을 더 태우고 알혼섬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거의 8-9시간가량 걸렸다. 

 

알혼섬으로 가는 배

알혼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까지 가서야 느꼈다.

중국인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그때 바이칼 호수에 관한 노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나 뭐라나...

같은 버스에 탄 한국분이 설명해 주시더라.

 

3일 8시간 만에 알혼섬에 도착했고, 조금 쉬고 싶었지만 한국 여행자분들과 호수변에서 만나기로 해서 짐 정리하고 바로 나갔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 몇 개만 올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무르 강
어느 시골의 한 목조 오두막

 

전형적인 시골 풍경

 

 

 

2014년에 한러간 상호무비자 협정을 맺은 이후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떠오른 러시아 극동의 도시,

한때는 연해주로도 불렸고, 강제이주 전까지만 해도 무수한 독립운동가들과 

무기력한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조선을 벗어나고자 했던 농민들이 이주를 하곤 했었던 도시,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차고 넘치는 도시,

그렇게 첫 해외여행을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에서 시작했다.

 

마침 러시아어를 전공하기도 해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선택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첫 관문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블라디보스톡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떠올리자니 해풍이 서늘하게 부는 이른 아침의 항만만이 떠오른다.

러시아로 떠나기전 인터넷을 통해, 주윗사람을 통해 신빙성 없는 스테레오타입을 들어왔기에,

행여 누군가 내 물건을 훔쳐가진 않을까, 행여 누군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나를 기분나쁘게 하지는 않을까

크로스백을 부둥켜안다 시피 하며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난다.

더군다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아파트방이라, 외곽에 군데군데 지어진 흐루쇼프카는 

여행초심자이자 러시아초심자인 나를 두렵게 하기엔 충분했었다.

 

그러다가 기차를 기다리면서 낮선이와 대화를 하고

노숙자랑 자그마한 공원에서 노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뒤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어느 정도 소화해낼 수 있었던 러시아어의 덕이 가장 큰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톡 해양공원

블라디보스톡에는 약 3일정도 체류했었고, 극동에 있는 중소도시라 그런지 그렇게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처음 가보거나, 바이칼이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러시아라는 나라를 단순히 경험하기엔 나름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르하트나야(Бархатная) 흑맥주. 맛은 그저 그랬다.

불켜진 흐루쇼프카를 바라보며 러시아 맥주와 슈퍼표 웨하스도 먹을 수 있고 

밀키스 포도맛, 메론맛, 바나나맛. 그리고 흑빵(хлеб)

흑빵과 곁들여 우리나라에서 팔지 않는 과일맛 밀키스도 맛볼 수 있었다.

참고로 주식이 빵이다 보니 저 정도 덩치의 흑빵도 굉장히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다.

특히나 모스크바도 상트도 아닌 블라디보스톡이라면... 10루블 이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해양공원 유료화장실 관리인

화장실 지키는 뚱뚱이 아줌마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화장실이 유료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0루블이면 허름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수도권에 비하면 매우 싸다. (모스크바 기준 50~60루블)

 

해양공원에서 바얀(Баян)키는 아저씨.

바얀 연주하는 어르신도 볼 수 있다. 

러시아 어딜가든 바얀을 키면서 구걸하는 아저씨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스탈로바야(Столовая)에서 먹은 점심. 가격은 가물가물하지만 약 100-150정도 나온 듯 하다.

스탈로바야에서 러시아 현지인들이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

스탈로바야라 함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고르되 계산은 각 음식마다 치뤄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고 주로 가정식이 나오기 때문에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나는 킹크랩을 먹지 않았다. 주로 킹크랩이랑 곰새우 먹으러 많이들 가지만

당시 내 여행의 취지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온전히 느끼는 데에 있어서...

킹크랩이랑 곰새우가 그렇게 저렴하고 맛있는데 후회 안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뭐... 조금"

중국계 노숙자

재수 좋으면 노숙자의 춤사위도 볼 수 있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춤 출 줄 안다고 막 추는데, 실컷 다 추게 해놓고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뻘줌해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면 노숙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정말 재밌긴 하지만, 위생상 안전상 그렇게 추천할 것은 못된다.

 

드미트리 아저씨

다행히 사연 많은 드미트리 아저씨가 도와주신 덕에 노숙자들이랑 맘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잘 살고 계시려나. 연락한다 해놓고서 이때까지 연락을 안했는데... 

드미트리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숙자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와서 말을 막 걺.

나랑 드미트리 아저씨한테 맥주 한 병씩 사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나, 

노숙자들이 술에 절어 있기도 하고,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러시아어를 못했기 때문에

많은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에서 왜 노숙자를 БИЧ(Бывший интелигентный человек)이라 칭하는지 알법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했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곤 했다.

그 때 만난 노숙자도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혁명광장에서 소련느낌 물씬 나는 광장을 볼 수도 있고, 정교회 사원도 볼 수 있다.

비록 러시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트램이나 트롤리버스는 구경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스타렉스 사이즈의 미니밴 버스를 탈 수 있고, 

러시아 백화점도 구경할 수 있고, 러시아어를 들을 수도 있고, 서점에서 러시아어로 된 책을 살 수도 있으니

그러한 면에서 간단하게 러시아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광장. 여기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쭉 걷다가 나온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동상. - 닫혀 있던 항구 블라디보스톡이 열렸다. -
니콜라이 개선문.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커서 나름 놀랬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정작 여행에 유익한 정보를 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미안할 따름이다.

어떤 관광지가 언제 지어지고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알아보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그러한 정보까지 알고 가면 조금 더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내가 관광가이드로 일하지 않는 한 디테일한 것 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포스팅을 통해서 제공해줄 수 있는 정보는

대강 이러이러한 장소가 있었네, 이 도시는 이러한 느낌이 들었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네 하는 개인정인 감상 뿐이기에,

정말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들은 다른 포스팅을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정보는 내가 정말 원할 때 직접 자료를 찾아낸 뒤 따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블라디보스톡 굼(ГУМ). 본점은 모스크바 크렘린 부근에 있다.
굼 뒤편에는 플리마켓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 디저트류를 주로 팔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크지는 않은 도시고, 관광할 거리가 그렇게 넘쳐나는 곳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톡이 근래 뜬 것도

"유럽 느낌이 나는 가장 가까운 도시", "저렴한 킹크랩", "관광 무비자 체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 및 종착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정말 많았다. 특히 관광지 쪽으로 가면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혼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시각에 모든 것을 맞추지는 말자"는 것이다.

식당에서 쩝쩝대며 음식을 먹는다거나(러시아에서는 굉장히 예의없는 행동임)

돈을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에서 불쾌감을 느낀다거나

영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 

특히 첫번째. 식당에서 너무 쩝쩝대서 깜짝 놀랬다.

개인적으로 쩝쩝소리를 굉장히 싫어하지만, 한국에 있을 땐 참았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쩝쩝소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핀잔을 주다간 오히려 인간관계가 확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쩝쩝대는 것을 굉장히 '무례'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이 아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다루는 러시아인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한국인의 쩝쩝소리(Чавканье)에 대해 자주 언급이 될 정도니...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더욱이 웃긴 건 그렇게 쩝쩝대는 것이 '만족의 신호', '먹음직스러움'을 나타낸다고 설명하니... 실드를 칠 걸 실드쳐야지.

자국에서의 사소한 행동이 타국에서는 굉장한 불쾌감을 자아내는 경우가 무의식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도시의 역사, 건축물의 역사, 상징물에 담긴 전설 등에 관한 내용을 알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는 관습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가는 것이 여행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이 든다.

 

뭐 어찌 되었든, 블라디보스톡은 내게 안겨진 러시아의 첫인상을 품고 있는 도시이다.

나같은 러시아학도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첫인상이 어땠는가 물어보면 쉽게 답이 나오진 않는다.

 

"사람 사는 동네. 생각보단 잘 웃는 사람들."

 

인형탈 알바생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
제복 입은 할아버지

 

러시아인들이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은

수업시간을 통해서나 랜선으로 사귄 친구들을 통해 많이 들어와 별로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중심가를 돌아다니면서 그닥 위험하지 않았고,

인종차별과 폭언을 통해 상처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어딜가든 미친놈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때, 걱정해주면서 몇 번이고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아주머니,

노숙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준 우연히 마주친 드미트리 아저씨, 무심하게 음식 담아주는 스탈로바야 직원분들 등등...

얼타면서 다른 곳에 싸인하려 하니 손가락으로 밑으로 세게 쿵 내려치며 "즈졔시(Здесь)!"하고 소리친 물품 보관소 아주머니

그 외에도 루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시크하게 동전 세는 것을 도와주는 슈퍼 아주머니,

아이들한테 굉장히 차가운 표정으로 훈육하는 어머님들,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땐 웃음꽃이 피어나는 젊은 사람들,

옛 소비에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제복 입은 할아버지 등등...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초면에 무뚝뚝한건 매한가지니 큰 이질감은 없었다.

다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서비스 정신(미소가 덜한 서비스), 다른 시스템(유료 화장실, 미니밴 버스, 신호 카운터, 러시아어, 역 입구 보안검색대 등등)에서 신기함을 느끼긴 했지만, 사람 개개인으로 놓고 보았을 땐 역시 사람 사는 데는 그 방식이 다 똑같다고 '벌써부터' 느껴버렸다. 

 

성산일출봉. 2017년 5월, 예비군 훈련을 제주도에서 받고 2일간 스쿠터를 렌탈해서 제주도 북부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빙 했다.

 

원래 인스타그램에 간헐적으로 여행사진을 올리려 했다가

한번 지난 겨울 우크라이나 여행 사진이 보정해놓은 사진 몇개 빼고는 다 날아가버린 바람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농민마냥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해본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고, 여행지에 관한 정보도 그렇게 잘 알지 못해서

정보를 얻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포스팅이 아닌가 싶다.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장소에서 이러한 것을 보고 이러한 것을 느꼈다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자 한다면

내가 앞으로 올리게 될 여행기가 ... 좋을 지는 모르겠다. 뭐 아무튼 

 

시작해볼까?


약 21개월간의 병사생활이 끝나기 무섭게 줄곧 바래왔던 음대를 가려고 6개월간 전문하사를 하게 되었고,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레슨을 받았다.

전문하사 생활하랴, 입시준비하랴, 주말에는 레슨받으러 올라가랴,

정말 여태까지 살아가면서 고3 이후로 가장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전역하고 상경해서 신림에 고시텔을 잡은뒤 하루종일 악보그리고 피아노 연습하느라 바빴다.

과제를 못다해 그때 레슨해준 고등학교 선배분이 마음고생을 꽤 하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자신이 해야될 일들도 넘쳐나는데, 그래도 고등학교 후배였다고 되게 정성껏 가르쳐주셨었는데,

그 형의 스케쥴을 따르기엔 내 체력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해서 지각도 많이 했었다.

수능을 보기좋게 망쳐서 미친듯이 실기준비를 했지만, 반년이란 시간은 사소한 실수를 고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1지망, 2지망 모두 떨어져버렸다. 합격후보에 없다는 것을 통보받았을때 모든 것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재수를 할 자신을 완전히 잃었고, 그럴 힘 조차 남아나지 않았다. 

능력의 한계를 봐버린 자에게 싹튼 의지박약이락고나 할까,

또 다시 입시준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합격될 보장도 안될 뿐 더러, 이미 시기는 늦어버렸기에

깔끔하게 음대입시는 포기해버렸다. 깔끔했던가? 음악에 대한 미련이 많이 사라졌다곤 하지만,

나의 한계점과 맞닥뜨인 충격이 커서 그런가 서울에서의 남은 한달을 거의 벙진 채로 보내곤 했었다.

 

물론 음악이라는 것은 굳이 전공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중음악계에서는 비전공자도 많이 성공을 하니까.

즉, 나는 그렇게 간절한 사람은 아니였고, 실은 간절하다며 나 자신을 세뇌시켰을 뿐이다.

만약 내가 그렇게 음악을 하고 싶었더라면,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를 자퇴하고 단칸방에서 겨우살이식으로 살면서라도 레슨이든 뭐든 하면서 내 활동을 했겠지.

아직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하지 못했으면서 음악을 하고싶다면서 징징대는 건 이제 찌질하게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아무튼, 깨끗이 포기했다고 말하긴 힘들고, 학업을 계속 이어가며 모색은 하고 있다.

정규적으로 작곡이라는 것을 배운 게 반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선배가 그 기간동안이라도 많은 것을 내게 알려주려 했고, 

그 형의 지혜를 수용하면서 음악을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는 알기 때문에 

그정도 모색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음악을 할 것이라는 끈을 놓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핵심은 '입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 다양한 음악인들과 교류할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린 셈이다.

 

그렇게 2017년 3월이 왔다.

불합격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진주로 내려갔다.

서울에 비해 진주는 비교적 따뜻했지만, 그래봤자 늦겨울이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은 편입을 하거나 졸업을 해서 친한 사람이랄 것도 없었다.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존나게 쓸쓸했다.

어느정도 마음을 달래보고자

동아리생활이라도 하면서 감을 잃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피아노를 쳐댔고,

일반교양식으로 음악교육과 수업을 듣기도 했고, 짤막한 곡을 몇개 작곡하기도 했다.

부모님한테 최대한 손벌리기 싫어서 알바도 시작했다. 카페 알바 말이다.

 

그럼 뭐해, 알바는 짤리고, 동아리엔 음악적으로 맞다 싶은 사람이 없었고, 타과 수업은 성에 차지 않는걸.

근근히 전공공부는 계속 해오긴 했지만, 예전만큼 러시아어라는 것이 재밌게 다가오진 않았다.

의욕이 없었다. 이 곳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삶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차라리 부모님이 조금 더 힘드시더라도 재수를 할걸 하고 후회가 들기도 했다.

좀 더 나아가 고등학생때 왜 공부를 열심히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공부라도 의욕적으로 했으면 그래도 서울권으로 가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났을텐데.

 

홧김에 자퇴 생각을 하기도 했고, 남강에 몸을 던져볼까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게 뭐겠는가.

내가 여기서 더 공부해야할 껀덕거리라도 만들지 않고서는 니힐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보지.

 

"여행"

 

러시아학 전공생이면서 러시아에 한번 가보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지.

내가 왜 러시아어를 배우겠어, 써먹으려고 배우려는 거 아니겠어.

 

카페 일을 완전히 그만두기 직전에 다짐했다.

일종의 동기부여를 할 겸, 조금 더 생각을 단순화할 겸, 러시아로 가보자.

기왕이면 카프카스도 한번 가보자고. 한국인이 최대한 없는 곳으로.

(물론 1년만에 조지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나라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사이에 살은 겉잡을 수 없이 쪄왔다. 여행 다니면서 사진발은 잘 받아야 될 것 같아

우선엔 군생활동안 쌓인 냉동지방과 스트레스로 팅팅 부어오른 가슴살을 없애야 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끊어서 안하던 운동을 했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학점관리도 꽤 열심히 했고, 알바천국, 알바몬을 뒤지며 알바자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예산을 어느정도 책정해냈고, 어디어디를 갈지 대략적으로 정해놓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큰 맘 먹고 휴학을 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리고 휴학을 해버렸다. 서울에 있었을 때 처럼 저녁알바와 야간알바 이렇께 두탕 뛰었다. - 서점과 편의점.

 

그렇게 미친듯이 돈을 쓸어모았고, 약 600만원 정도가 모였다.

그 중 카메라 값으로 약 90만원을 써버려 대략 5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남았다.

800만원을 목표로 했지만, 부수적으로 나가는 돈이 꽤 되어버린 바람에...

 

서점과 편의점의 케미는 미친듯이 좋았었다.

서점알바를 하면서 책도 많이 사게 되었고, 주로 손님이 없는 야간시간에 읽곤 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생각이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시도 많이 쓰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동안엔 또 미술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차라리 디자인을 배워볼까 하다가 때려치우기도 했었다.

앞으로 음악을 하게 되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될 지 길이 조금씩 잡혔고,

내가 정말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끝임없이 사색하고, 주변을 냉정하게 보고자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입시준비했던 기간과 알바 두탕 뛰면서 여행경비 모았던 기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의 결과 스스로의 한계점에 봉착하여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았고,

후자의 결과 앞으로의 삶의 방향, 나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수 있었기에.

 

다시 복학을 한뒤 마스터키보드와 맥북프로, 모니터링 헤드폰을 샀다.

로직을 만지면서 조금씩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믹싱, 마스터링을 배우기 보다는 다양한 VSTi를 접하고, 신디사이징의 감을 익혀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막막하기만 해서(독학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마 졸업하고 따로 레슨을 받을까 싶다.)

 

음악을 조금 더 다양하게 듣기도 했다. 

군대가기 전까지는 락에 기반한 노래를 주로 들어왔고,

병사시절에는 재즈를 주로 들어왔었고,

전문하사 기간을 포함한 입시생 시절에는 클래식을,

그렇게 한동안 클래식을 주구장창 듣다가

러시아음악, 일렉트로니카, 힙합으로 스펙트럼을 점점 넓혀왔다.

한 장르를 깊숙하게 파기 보다는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내 색을 찾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러면서 교환학생으로 떠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하기도 했다. (학점관리)

운좋게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현재 누르술탄)으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여행이 시작될테니 나름대로 자료도 찾아보곤 했다.

첫 해외여행인 만큼 긴장을 많이해서인가, 정말 미친듯이 정보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비행기표, 기차표, 숙소 등을 예약했고 각 도시당 얼마나 체류해 있을 지 정했다.

언어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선 싫든 좋든 말을 해야 시간이 잘 갈 것이기 때문에.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나를 휘감았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진 않을까.

내 힘으로 이루어낸, 나 혼자 개척해 나가는 첫 여행인 만큼 많이 떨리기도 했다.

짐 싸는 데도 요령이 없어 캐리어에 옷이랑 화장품, 뭐 기타 잡다한 것들을 마구 싸잡아넣다보니

짐도 꽤나 무거웠다. (여행 도중 되게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2018.07.07, 권태를 떨쳐내고자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날아갔다.

난생 처음 나홀로 비행기 출국,

두려움과 설렘에 제멋대로 콩닥이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허무함을 떨쳐내버릴 그 무엇을 찾으러 떠났다.

 

한달 반의 여행, 좀더 길게 봐서 약 1년 1개월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러시아(2018.07.07 출국) - 아르메니아 - 조지아 - 한국(휴식, 재정비, 밀린 일 마저 하기)

- 카자흐스탄(교환학생; 2018.09.13 출국) - 우크라이나(2019.01) - 키르기스스탄(2019.05) - 우즈베키스탄 - 러시아(2019) - 발트3국 - 폴란드 - 우크라이나(2019.07) - 러시아 모스크바 - 한국(2019.08.09 입국)

 

 

 

Купила я ботиночки по камушкам ходить,
Нашла себе тропиночку, решила дальше жить,
Пустила змея белого в небесные врата,
И что же я наделала, святая простота?

자갈 길을 걸으려고 장화를 샀어

내 갈 길을 찾았어, 계속 살기로 다짐했지

새하얀 뱀을 내보내 하늘 문으로

무엇을 해댔던 걸까, 고결한 어수룩함


Качается послушная под ветром, под дождинкой
Душа моя воздушная, тяжёлые ботинки.

바람에 흔들리는 보슬비에 흔들리는

공기같은 내 순진한 영혼, 무거운 장화

Дошла до лодки ломаной, что помнит обо мне,
Под нею заколдованы все камушки на дне,
И море всё просило к себе одну меня,
И где меня носило последние три дня?

나를 기억하는 부서진 나룻배에 다달아

그 아래 물 깊숙한 곳 마법에 빠진 돌

바닷속 모든 것들은 내게 물었지

어디서 마지막 3일 동안 떠밀려 있었는지

Качается послушная под ветром, под дождинкой
Душа моя воздушная, тяжелые ботинки.

바람에 흔들리는 보슬비에 흔들리는

공기같은 내 순진한 영혼, 무거운 장화


Нашла себе тропиночку, решила дальше жить,
Иль снять свои ботиночки, иль змея отпустить,
То ласточка, то веточка, то ветер, то река,
То женщина, то девочка со змеем в облаках.

내 갈 길을 찾아냈지, 다짐했어 계속 살던가

장화를 벗던가, 구름 속으로 뱀을 보내주기로

제비와 함께, 나뭇가지와 함께, 바람과 함께,

강과 함께, 여자와 함께, 소녀와 함께

 

Качается послушная под ветром, под дождинкой
Душа моя воздушная, тяжелые ботинки.

바람에 흔들리는 보슬비에 흔들리는

공기같은 내 순진한 영혼, 무거운 장화


계속 남을 죽이며 살아갈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갈지

아님 내가 죽을지 생각하는

 

90년대 끝자락

바르드의 끝자락

언저리에 놓인 절망적인 시.

 

<Старые Песни> 1999 

1. Доброе утро!

2. Король

3. Сиу

4. Холм

5. Ковёр

6. Айболит

7. See the snow come down

8. Поддавки

9. Не бойтесь

10. Чёрный дворик

11. Старый год

12. Антракт

13. И вот мне пятнадцать

14. Осень

15. Восемь мальчиков

16.Ёжик

17. Балерина

18. Клава

19. Белая песня

20. Два Андрея

21. Ворона

22. Ботиночки

23. Идиот

24. Скверик

25. Кузнечик

26. Тюк-тюк

27. Серебряный Фольксваген

28. Моряки

29. Прутики

 

Слышу голос из прекрасного далёка,
Голос утренний в серебряной росе,
Слышу голос, и манящая дорога
Кружит голову, как в детстве карусель.

아름다운 미래에서 들려와요

은빛 아침이슬의 목소리

신비로운 길에서 머리가 핑 돌아요

어릴 적 회전목마처럼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не будь ко мне жестоко,
Не будь ко мне жестоко, жестоко не будь.
От чистого истока в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В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я начинаю путь.

아름다운 미래여, 공포를 주지 마요

부디 제게 무섭게 다가오지 마요 

순수한 출발점에서 아름다운 미래로

아름다운 미래로 발걸음 내딛어요.

 

Слышу голос из прекрасного далёка,
Он зовёт меня в чудесные края,
Слышу голос, голос спрашивает строго -
А сегодня что для завтра сделал я.

아름다운 미래에서 들려와요

멋있는 세계로 오라는 목소리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보는군요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했는지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не будь ко мне жестоко,
Не будь ко мне жестоко, жестоко не будь.
От чистого истока в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В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я начинаю путь.

아름다운 미래여, 공포를 주지 마요

부디 제게 무섭게 다가오지 마요 

순수한 출발점에서 아름다운 미래로

아름다운 미래로 발걸음 내딛어요.

 

Я клянусь, что стану чище и добрее,
И в беде не брошу друга никогда.
Слышу голос, и спешу на зов скорее
По дороге, на которой нет следа.

더욱더 순수하고 착해질 거예요

절대 친구를 슬픔에 안 빠뜨릴 거예요

목소리 따라 걸음을 서둘러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길 따라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не будь ко мне жестоко,
Не будь ко мне жестоко, жестоко не будь.
От чистого истока в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В прекрасное далёко я начинаю путь.

아름다운 미래여, 공포를 주지 마요

부디 제게 무섭게 다가오지 마요 

순수한 출발점에서 아름다운 미래로

아름다운 미래로 발걸음 내딛어요.


어쩌다가 소련판 어린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쓰는 러시아어는 좀 더 알아듣기 쉽겠지...

생각하다가 주걱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여전히 러시아어는 내게 친숙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순전히 교육목적으로 봤다곤 하지만

엄청난 퀄리티와 작품성에 깜짝 놀랬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요즘 시대에 나오는 드라마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1984년 작품이 아니던가, 충분히 감안을 하고 보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매직키드 마수리가 그렇게 핫했었다.

문방구에 가면 마수리 목걸이를 팔았었고,

같은 반 아이들은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를

검지와 엄지로 움켜쥐면서 마법아닌 마법을 부리곤 했었다.

마수리처럼 브릿지 염색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조르다가 면박을 받기도 했고

빗자루가 있으면 양 다리에 빗자루를 끼운 채 날아가는 시늉을 하곤 했다.

(해리포터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씩 크게 되면서 어린이 드라마보단 만화를 더 보곤 했지만

뭐 아무튼 기억속에 굵직하게 남은 유일한 어린이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무슨 내용으로 계속 이어갔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마수리랑 친구맺는 상상을 자주 했던 걸로 보아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 듯 했다. 

 

나와 같은 세대에겐 마수리가 있다면

소련 80년대 세대에겐 바로 이 드라마가 있다.

댓글을 보면 옛날을 추억하는 중년분들의 댓글이 가득하다.

내가 한때 알리사를 짝사랑했냐는 둥, 엽서를 보냈냐는 둥,

미엘로폰이 스마트폰이 되었냐느니...

 

나도 이런 향수를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유튜브에서 매직키드 마수리를 검색해서 봐봤다.

혼자 민망해 몸서리치고 그랬지만... 뭐 그랬다. 그랬는데...

<미래에서 온 손님>에서 풍겨나오는 따뜻함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낮은 화질과 펜던트 목걸이는 향수를 일으키기 충분했지만,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

잔잔한 여운이 없는 내용에서 내 몸이 반응했다.

 

'아직까진 준비가 안됐어!'

 

이렇게 글로 표현은 했는데,

과연 그런 의미로 몸서리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내 몸짓을 내가 해석해내지 못한다니...

마수리를 나보다 더 재밌게 봤고,

내가 느낀 것과는 달리, 어린시절 향수를 느끼며 본 사람들은

사대주의니, 빨갱이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걸 어찌하라는 건가. 

 

왜 <미래에서 온 손님>을 보면서 몸서리 치진 않았을까?

나한테 있지도 않는 소련시절 향수를 흠씬 느끼게 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배우들의 연기력? 알리사의 외모? 

 

나한테 있어본 적이 없는 세계,

너무나도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라서 그런게 아닐까?

과거의 향수가 아닌,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아닐까?

타임머신에 올라타 100년 뒤 세계로 온 콜랴처럼

1984년의 소련시절,

나와 내 주변사람들에게 있어본 적도 없고 있지도 않을 모습들이 그저 신기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미국에 대한 동경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매체에서 흔하디 흔하게 보여주는 미국 모습,

흔하게 보는 미국 뚱뚱보 아저씨들, 맥도날드, KFC

주위 사람들이 흔히 가고 싶어들 하는 미국, 자유의 나라

정치인들이 기계처럼 내뱉는 클리셰와도 같았다.

(물론 음악은 미국꺼 꽤나 들었다.)

 

호기심을 자극시킬 만한 것도 없었고, 새로운 것이랄 것도 없었다,

한국은 늘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니까.

미국인처럼 옷 입고, 미국인처럼 집짓고, 미국인처럼 노래하고,

미제라고 하면 환장하고, 미제를 무조건 추종해야할 것이라 여기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다보니, 경상도에서 창원사람 보듯 별 다른 흥미는 없었다.

 

그래서 특히 중학교 다닐 땐 영어 말고 다른 언어를 이것저것 배웠던 기억이 난다.

불어, 스페인어, 일본어, 체코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등.

그 때 영향으로 읽을 줄 아는 언어는 꽤 된다.

- 그 영향으로 지금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는 걸수도...

소심한 반항으로 영어시간에

영어단어를 불어처럼 읽다가 선생님한테 혼난 적도 꽤 있었고,

책상 위에 외국어 책을 막 쌓아올린 것을 본 선생님들은

너는 진짜 특이한 놈이다 하고,

남해안 바다에 불쑥 나타난 비버 보듯 쳐다보곤 했다.

 

펜팔도 해보고, 세계지리와 언어에 관한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주변국가와 미국만 겨우 알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괜히 속으로 우쭐대기도 했던 것 같다.

 

즉, 나는 빨갱이가 아니라 단지 호기심이 많은 것 뿐이다.

나와는 먼세상의 이야기인듯한 소련, 소련 사람들,

내가 어쩌다 러시아어에 관심을 가져서 소련시절 '모습'에 향수를 느끼게 된건지.

정말 미스테리하긴 하지만, 괜히 소련시절 영화나 소련시절의 무언가를 보면

왠지 모르게 벅차올랐다.

 

그 사람들의 맑스주의, 반자본주의에 벅차올랐다는 게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행동, 당시 사람들이 먹는 것, 당시 사람들이 입는 것,

당시 사람들의 노래, 당시 사람들의 포스터,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

낯섦에서 오는 멋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낯섦에서 오는 멋때문에 오그라든다며 몸서리치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역의 연기력도 괜찮았고,

내용도 26살의 대학생이 보기에도 정말 괜찮았다.

유치함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유치함은

알아듣지 못하는 내 귀 두짝과 '낯섦에서 오는 멋'으로

충분히 가리어지는 듯 했다.

 

그럼 반대로,

마수리를 보며 몸서리치며 왠지 내가 민망해지는 것은

내가 겪어왔던 시대의 모습, 내 가족이 겪어왔던 시대의 모습이기에,

익숙했기 때문일까? -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래에서 온 손님(Гостья из будущего) DVD 표지

<미래에서 온 손님>과

<매직키드 마수리>의 가장 큰 차이는

OST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동물 특유의 직관적인 표현, 유치'짬뽕'한 표현이

공감대를 '어린이'로 한정짓는 것이 아닐까.

<Прекрасное Далеко(아름다운 미래)>는 성인이 보기에도

가사도 멜로디도 너무 아름답다.

서정적이고 순수하면서도, 메세지가 있는 노래, 그야말로 아름다운 노래였다.

 

가사 번역하면서도

왜 내 유년시절을 장식했던 콘텐츠는

이토록 아름다운 문구를 지니지 못했는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낯섦에서 오는 멋'

단지 낯설기에 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ps. 아름다운 가삿말과 멜로디가 굉장히 잘 어우러진 곡이라 생각이 든다. 아련함을 자아내는 멜로디.

 

 

 


Улица, лица, длится, не спится
Засыпаю, не могу остановиться
Зажигаю, наблюдаю за собой там со стороны
Раны, не зажили
Долго кружили
Вдох, снова тени ожили
Были, любили, забыли, оставили там

길게 뻗은 길, 잠이 오지 않아

잠에 들어, 멈출 수가 없지

불 태워, 불에 탄 곳에서 뒤를 돌아 봐

저기, 타오르지 않지

오랫동안 길을 헤매

한숨을 쉬어, 또 다시 어둠이 드리워

그 곳에서 사랑했고, 잊었고, 멈췄지.

 


Я не вернусь, и снова не будет весны
Я поднимусь, я уже не боюсь высоты
Я не хочу, чтобы ты
Я не хочу, чтобы я
Часами, словами-весами грузили себя

돌아오지 않을거야, 봄은 또 오지 않고

올라갈거야, 높이가 두렵지 않아

난 네게 바라건대

난 내게 바라건대

시간과 말의 무게로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길...

 


Ночь наступает на пятки
Звуки играют в прядки
Сладки взятки, прячутся, их не достать
До них не добраться
Можно смеяться, не приземляться
Трудно понять, легко догадаться
Нет, не отнять того
Чтобы было, опять догонять
Время не ждать
Можно сгореть, не успеть, не допеть
Не догнать, не узнать, потеряться
Можно смеяться, не приземляться
Трудно понять, легко догадаться

발 뒤꿈치에 밤이 찾아오고

어딘가에 숨겨진 소리가 울려

달콤한 뇌물, 숨겨져 있어, 찾을 수 없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웃어도 돼, 착지하지 않아도 돼

이해는 어렵지만, 예측은 쉬워

그렇다고 빼앗진 마

다시 뒤쫓으려면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아

열을 쬐어도 돼, 성공하지도 끝까지 노래 하지도

뒤쫓지도, 알아내지 않아도 다 잃어도 괜찮아.

웃어도 돼, 착지하지 않아도 돼

이해는 어렵지만, 예측은 쉬워

 


Я не вернусь, и снова не будет весны
Я поднимусь, я уже не боюсь высоты
Я не хочу, чтобы ты
Я не хочу, чтобы я
Часами, словами-весами грузили себя

돌아오지 않을거야, 봄은 또 오지 않고

올라갈거야, 높이가 두렵지 않아

난 네게 바라건대

난 내게 바라건대

시간과 말의 무게로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길...



На ответы у меня есть вопросы
Папиросы, расспросы
Спроси меня: "Где ты?"
Нигде, я иду в никуда, да
Горят провода, это правда
Сухая вода – бесконечная нота
Спроси меня: "Кто ты?"
Никто, но я здесь навсегда

내려진 답에 질문을 하지

담배를 물고 캐묻곤 해

내게 물어봐 "어디야?"

그 어디에도 없고 어디로도 가지 않아 

전선에 전기가 흘러, 진짜야

메마른 물은 끝없는 음표

내게 물어봐 "누구야?"

그 누구도 아니지만 영원히 여기 있어

 


Я же вернусь, и снова наступит весна
Когда я проснусь, я знаю, тебе не до сна
Я так хочу, чтобы ты
Я так хочу, чтобы я
Дышали одной тишиной и не видели дня
Я так хочу, чтобы ты
Я так хочу, чтобы я
Дышали одной тишиной и не видели дня
Я так хочу, чтобы ты
Я так хочу, чтобы я
Дышали одной тишиной и не видели дня
Я же вернусь, и снова наступит весна
Я же вернусь, и снова наступит весна
Я же вернусь, и снова наступит весна

돌아가지 않을거야, 다시 봄이 올거야

잠에서 깨면, 알게 돼, 넌 아직 자고 있다는 걸

난 네게 바라건대

난 내게 바라건대

조용히 숨을 쉰 채 하루를 보지 않기를...

난 네게 바라건대

난 내게 바라건대

조용히 숨을 쉰 채 하루를 보지 않기를...

난 네게 바라건대

난 내게 바라건대

조용히 숨을 쉰 채 하루를 보지 않기를...

돌아가지 않을거야, 다시 봄이 올거야

돌아가지 않을거야, 다시 봄이 올거야

돌아가지 않을거야, 다시 봄이 올거야

 


가사를 번역하면서 내가 제대로 번역하고 있는지 헷갈릴만큼

운율을 맞추기 위해 단어를 마음대로 껴넣은 부분이 꽤 있었다.

- 아니면 아직 이 가사를 완벽히 번역하기에 러시아어 실력과 한국어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일까?

 

아무튼, 무슨 노래라도 하나 포스팅 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유튜브를 한참 뒤졌다.

이전에 우크라이나 곡을 포스팅 했으니

이번엔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 다른 나라의 곡을 포스팅해볼까 생각했을 때

연관 동영상에 5'nizza의 곡이 있었다.

뭔가 익숙한 듯 낯선 이름이 아련하게 내 이목을 끌었고, 내 손이 가는 대로 재생을 해봤다.

어 뭔가 많이 들어봤는데?

레게톤의 보컬, 미니멀한 악기구성, 에이 설마 하면서 폰 메모장을 뒤져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5'nizza가 버젓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지난 겨울, 내 생에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키이브에서 오데사까지, 장장 약 500km를 이동하기 위해 총 3번의 자동차를 거쳤다.

키이브-빌라 체르크바, 빌라 체르크바-우만, 우만-오데사...

5'nizza를 알게된 건 우만에서 오데사로 갔을 때였다.

 

우만IC에서 추위속에 오들오들 떨면서 ОДЕСА라고 적힌 피켓을 15분 정도 흔들었던 것 같다.

그 때 봉고차가 하나 탁 서더니, 앳된 얼굴을 지닌 소년이 창문을 열고 '오데사?'하고 묻는 것이다.

"딱! 딱!"하며 목 빠지도록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내게 손짓을 하는 것이다.

뒷칸에 탔더니 다양한 나잇대(였던 걸로 기억한다)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뭔가 불안하긴 했지만, 해가 뉘엿뉘엿 질 참이라 불안해서 일단 타고 봤다.

 

알고보니 오데사로 일하러 가는 인부들이었던 것이다. 내게 손짓한 앳된 남자가 내게

러시아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더니,

할 줄 안다고 하니까 수르직(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짬뽕)으로 내게 몇마디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느냐, 우크라이나에 오래 있었느냐, 어땠느냐, 우만까지 오는 데 힘들지 않았느냐

그러다가 또 자기네들끼리 우크라이나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에 어두워져 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차를 얻어타는 상황인지라 최대한 자지 않으려 애썼으나,

나도 모르게 살짝 잠들어 버렸다.

나한테 말도 안거는데... 무슨 수로 잠을 피할쏘냐 ㅠㅠ

 

잠에 깨보니 무슨 레게음악이 들리는 것이다.

지금 내가 포스팅한 Весна가 그때 울려퍼졌던 것이다.

(아마 그럴거라 생각이 든다, 멜로디가 익숙했으니...)

나름 인상깊어서 가수 이름 폰에다 적어 달라고 하니 5'nizza라고 적어줬었다.

앞에서 인부들끼리 운전석을 돌아가면서 차지하며,

자기네들 나름대로의 열띤 잡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 옆에 있었던 인부도 폰으로 소설보느라 바빠서 딱히 말을 걸 겨를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거진 1시간 이상이 흘렀던 것 같다.

1시간 동안 5'nizza의 여러 곡이 흘러나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른 가수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음악을 듣다보니 오데사에 도착하게 되었고,

역에 내리자 마자 수많은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를 튕겨내곤 했다.

 

노래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몰랐지만,

그루브있는 목소리, 초 미니멀하지만 빈틈 없는 악기 구성(보컬, 어쿠스틱 기타, 비트박스),

CIS권 음악에선 흔하지 않은 스타일의 곡이라 뭔가 인상이 깊었다.

노래의 느낌을 마음속에 남기고, 가수 이름을 폰 메모장에 남기며

단 한번도 유튜브나 애플뮤직에서 찾아듣진 않았다.

그러다가 약 10개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렇게 다시 듣게 되었다.

 

그렇게 우연찮게 들은 5'nizza는 인부 속에 둘러싸인 그 때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 수다떠는 것을 대충 엿들었는데, 원래는 나를 태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앳된 청년이 호기심에 나를 태우작고 했다는 양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한 얘기들이 기억난다.

하긴, 히치하이커를 태우는 운전수들은 대체로

자기네들이 혼자 운전하면 심심하니 태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아무튼,

길게 뻗은 길을 달리며

언제쯤 오데사에 도착할까...

오데사로 얼른 도착하고픈 맘은 큰데

왜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걸까...

당시 초조했고, 어색했고, 피곤하기도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포스팅을 마침.

 

포스팅이 끝나면 노래를 몇개 더 들어볼까 생각중이다.

가사는 여전히 이해가 안되겠지만,

......

내가 언제부터 가사를 들었다고...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노래네...

 

<Пятница> 2003

1. Сюрная

2. Я не той...

3. Я тебя вы...

4. Весна

5. Сон

6. Вода

7. Я с тобой

8. Ты кидал

9. Стрела

10. Ямайка

11. Свобода

12. Big Badda Boom

13. Нева

14. Солдат

15. Ушедшим слишкком рано

16. Пятница

17. Ты на ту

18. Зима

19. Тянуться

20. Солдат (Видео)

* 러시아어를 모르시는 분이나, 운율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사에 색을 입혀 어디서 라임이 이루어지는지 표시했습니다 :)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 б не шукала біти, я б не шукала свій стиль
Я би палила мости, і була би з простих, з точністю, як ти
Я б не копила думки, я би була аби з ким
Я би ладнала замки, і будувала від всіх барикади, з точністю, як ти
Я би ховала себе, і я ховала себе; в'яла, а мала цвісти
Тихо плекала наївні надії, а мала би встати і йти
Мала би бачити ціль, те, що я хочу в кінці
Мала б синицю в руці,
та я рахувала лелечі хвости — з точністю, як ти, ей!

 

А тепер під дикий біт всіх кидає в піт
Так минає цілий рікна минулеRIP
Десять років як у грі, вже мовчати — гріх
Сотні рук уже вгорі — в небі чути грім
А тепер під дикий біт всіх кидає в піт
Так минає цілий рікна минулеRIP
Десять років як у грі, вже мовчати — гріх
Сотні рук уже вгорі — в небі чути грім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То не рвали б вас баси, як коса бур'ян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То не рвали б вас баси, як коса бур'ян

 

Розкажіть мені, що кому я винна (що?)
Філіжанка я, або може бочка винна (хто я?)
Мій вид — це мій світ, історія моя (ага)
Оберталась би Земля, якби я була не я?

А! Розкажіть мені, що кому я винна (що?)
Філіжанка я, або може бочка винна (я — бочка?)
Мій вид — це мій світ, історія моя (хей, хей, хей)
Оберталась би Земля, якби я була не я?

 

А мене важити, важити — не переважити
Реп витікає мій, ніби зі скважини
Слово за словом і рима за римою
Видимо то моя карма


А мене міряти, міряти — не переміряти
Силу й вагу мою не перевірити
Репу роздати? Тю, елементарно
Трек на повторі мій знову не дарма


Я не тікаю тепер, я не шукаю де двері
Не уникаю всіх ям, я тут вже своя, й ти роби як я
Не перевтілююсь знов, не уникаю розмов
В жилах кипить моїх кров (ага)
А під ногами трясеться земля, ти роби як як (Зе-мля!)
Маю в руці своїй майк. Чуєш — шумить дикий гай?
Чуєш, Альону — качай!
Хочеш родючі і плідні поля, то роби як я
Маєш прийняти себе, і полюбити себе
Маєш так жити тепер, визнай всередині себе маля — ти будеш як я. Ей!

 

Хай тепер під дикий біт всіх кидає в піт
Хай минає сотня літна минулеRIP
Десять років як у грі, вже мовчати — гріх
Сотні рук уже вгорі — в небі чути грім
Хай тепер під дикий біт всіх кидає в піт
Хай минає сотня літ  на минуле  RIP
Десять років як у грі, вже мовчати — гріх
Сотні рук уже вгорі — в небі чути грім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То не рвали б вас баси, як коса бур'ян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То не рвали б вас баси, як коса бур'ян

 

Не питай мене, звідки я і хто я
Холодок в очах, але стигне словозброя
Так цікава всім, ніби я чужа білизна
І скажу "Game Over", коли рак у полі свисне
Не питай мене, звідки я і хто я
Холодок в очах, але стигне слово  зброя
Так цікава всім, ніби я чужа білизна
І скажу "Game Over", коли рак у полі свисне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То не рвали б вас баси, як коса бур'ян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Як би я була не я, якби я не я
То не рвали б вас баси, як коса бур'ян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ей...


알료나 알료나를 알게된 건 아마 카자흐스탄에서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인걸로 알고있다.

러시아어는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카자흐스탄에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해야 되니

내가 음악 듣는 걸 좋아하니, 가사 해석하면서 공부를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닥치고 들었다. 괜찮다 싶은 건 다음에 또 들을 거라 다짐하면서 좋아요도 누르고

별로다 싶은 건 다 듣기 전에 패스해버리고.

 

그러다가 유난히 눈에 띠는 썸네일이 있었다. 

웬 우리가 흔히 아는 슬라브 아주머니가 흑백화면 속에서 뛰는 모습이었다.

Alyona Alyona, 음, 되게 이름을 막 지었네 생각하면서 뭐 한번 들어나 보지 하고 열었다.

 

홀로베 홀로베 드다다드다다 홀로메 홀로메 

음? 러시아어는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제목을 보니 'голови(머리; holovy)'였다.

마침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랜선상으로든 실제로든 몇명 알고 지내서

러시아어와 달리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г를 ㅎ발음으로 낸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 우크라이나 래퍼구나, 들어나 보자, 우크라이나 힙합은 어떤지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넋 놓고 들었다. 마치 평소 친구들하고 말하듯이 플로우가 안정적이었고,

어떻게 기교를 부려서 내 실력을 뽐내봐야지 하는 억지성도 없었다.

정말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고, 비트에 자신의 목소리를 정말 잘 녹여낸 것이다.

스크립토닛, 파라오, 미야기, 엘제이, 막스 코르지 이런 류의 음악을 계속 듣다가

알료나 알료나의 곡을 들으니, 와, 뭔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요즘 미국의 메인스트림 영향을 받지 않는 팝이 어딨겠냐마는

러시아도 러시아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슬라브 베이스라 불리는 통통 튀는 베이스, 단조성의 촉촉한 느낌을 자아해 내는 사운드,

곡마다 상세하게 들으면 당연히 차이야 있겠지만, 대체로 느낌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달까.

물론 러시아 가요도 더 깊숙히 들어가보면 개성있는 곡들이 많겠지만, 대체로 러시아노래의 느낌이라면

이질적인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스테레오타입을 완벽하게 깨숴버린 클립을 본 뒤 좋아요를 누르고

다른 곡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어를 배울 여유는 없으니.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 곡을 조사하는 과제를 하고 있는 지금,

갑자기 그 아줌마 래퍼가 생각났다. 그래, 이 사람은 무조건 소개시켜 줘야겠다.

그래서 노래를 더 찾아 듣고 알료나 알료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도 이것 저것 찾았다.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28살의 나이에 첫번째 클립을 냈다고... (아줌마라고 한 건 ... 비바치떼)

인터뷰 영상도 봤는데, 나름 정말 소박하게 사는 듯 해보였다.

천장은 헤져있었고, 어느 평범한 사람의 방처럼 보였던 곳에 앉아 있는 호쾌한 누나,

진짜 털털한 이웃집누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 이웃 중 그런 누나는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Голови를 들어봤다.

또 들었다. 또 들었고 또 들을까 생각하다 또 들었다.

사람의 귀를 끄는 힘이 있다.

 

흔히 스웩이라고 하던가, 부티나게 입는 것, 튀게 입는 것, 돈자랑, 자기 허세

이 누나(뭔가 누나라고 부르고 싶다.)가 아무리 스웩을 부린다고 해도 그 친근한 이미지를 지우긴 힘들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친근한 카리스마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흔한 덩치 큰 누나인데, 랩실력에 흠칫 놀라다가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랩 하는 모습에 다시 친근해진다.

내가 우크라이나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가,

어떻게 보면 이런 면에서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알료나가 알료나가 아니였다면...

힙합이란 걸 들어보면서, 해바라기 밭 한가운데

소련식 아파트가 세워진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까?

 

<Пушка> 2019
3번 트랙 : Якби я була не я

 

 

Коли настане день,
Закінчиться війна,
Там загубив себе,
Побачив аж до дна.

또 다른 하루가 찾아와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자신을 묻은 채

깊숙한 곳을 바라봐

 

[후렴]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Так лагідно і не пускай,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Твоя весна прийде нехай.

안아줘, 안아줘, 나를

그렇게 다정하게 떠나지 말아줘

안아줘, 안아줘, 나를

너와 봄을 함께할 수 있도록.

 

І от моя душа

складає зброю вниз,
Невже таки вона
Так хоче теплих сліз?

그렇게 내 영혼은

무기를 숨겨

정말로 원하는 걸까

따뜻한 눈물을

 

[후렴]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Так лагідно і не пускай,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Твоя весна прийде нехай.

안아줘, 안아줘, 나를

그렇게 다정하게 떠나지 말아줘

안아줘, 안아줘, 나를

너와 봄을 함께할 수 있도록.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І більше так не відпускай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мене, обійми
Твоя весна прийде нехай.

안아줘, 안아줘, 나를

그렇게 다시 두고 가지 말아줘

안아줘, 안아줘, 나를

너와 봄을 함께할 수 있도록

 


첫번째 포스팅은 이 곡이 장식했다. 그게 곧 연인과 헤어졌을 때 많이 들었던 노래라는 둥, 시험에 떨어져 낙심했을 때 들으면서 울었다는 둥, 그런 깊은 사연이 있는 곡은 아니다. 앞으로 포스팅을 하게 되면서 나 자신에게 사연이 있는 곡을 올리기도 할 것 같다. 

 

수업 발표를 위해 우크라이나 대중음악 시장을 분석하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고, 무슨 곡이 유행하고 있고 어떤 아티스트가 유명한지 자료수집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곡이다. 딱히 내가 우크라이나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라, 한국어로 된 자료는 신빙성이 없으니(그러한 걸 다룬 논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어나 러시아어로 된 자료를 수집을 했는데 우크라이나 음악 시장에 관해 세세하게 적어놓은 포스팅도 잘 없었고, 논문은 찾을 여력이 되지 않았다. - 사실 찾는다고 해도 내가 다 정독할 수 있을거란 보장은 없다. - 그래서 조금은 미비하게 끝나지 않았나 싶다. 대신에 여럿 아티스트를 추천하는 데 비중을 많이 싣자고 다짐한 채 많은 가수들을 찾아봤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가수도 엄청 많았고, 우크라이나 자국 내에서 유명한 가수도 많았다. 심지어 음악성도 그 어떤 나라에 꿀리지 않았다. 모 칼럼니스트의 말마따나 "우크라이나 음악은 스웨덴 음악에 비해 꿀릴 것도 없고, 심지어 우크라이나 음악이 더 우세한 면도 있다."는 말이 확 와닿았었다. 음악적인 재능이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이 왜 좀 더 큰 시장으로 가지 못할까, 간다고 한들 러시아를 비롯한 CIS국가에 그칠까. 

 

언어적 문제도 있긴 하지만 사실 음악을 듣는 데 언어가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나는 음악에 있어서 가사보다는 들려오는 것에 치중을 해서 듣는지라 언어적 문제르 굳이 들고 싶지는 않다. 들려오는 것으로 치면 우크라이나 음악들도 굉장히 괜찮은 곡들이 많다. 트렌드에 따라가는 가수들도 많지만(주로 메인스트림이나 러시아 음악시장), 자신만의 색을 확실히 지닌 아티스트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듣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학술적인 이유로, 공감대 형성을 이유로 CIS권 음악들을 많이 듣다보니 그쪽 음악에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진짜 다른 CIS국가들의 노래가 이 한국인 괴짜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가 없는 걸까... 어찌 되었든 나는 그렇게 들었다.

 

Океан Ельзи(Ocean Elzy; 이하 오케안)도 내 일에 충실하다가 찾게된 밴드다. 꽤나 우크라이나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한 밴드고(밴드가 나랑 동갑이다.), 보컬로 활동하는 바카르추크(Святослав Бакарчук; Svyatoslav Bakarchuk)은 심지어 정치적인 활동까지 하는 밴드라고 한다. 노래를 들어보면 대체로 브릿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느낌이 든다. '~같다'라는 인상을 나 자신도 곡을 듣다보면 받기도 하지만,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폄훼하는 느낌이 들어, 아티스트로 대놓고 비교는 하지 않겠다. 아무튼, 대체로 들어보면 그렇다. 동유럽음악, 특히 구 소련을 구성했던 국가들의 노래들이 그러하듯이, 단조성 곡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비 내리는 잿빛도시'를 연상시키는 그런 곡들이 많고, 서정적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어를 잘 몰라 가사의 내용은 깊게 파악하긴 힘든데, 사실 이 밴드가 지닌 서정적인 곡과 가사 덕에 우크라이나인은 물론 러시아인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다고도 한다. 앞으로 여러 곡 올릴거지만(여러 곡 올릴수록 포스팅은 짧아질 거라 생각이 든다.) 정말 이 밴드가 서정적이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만한 곡을 썼는지는 독자 본인이 판단하길 바란다.

 

이 곡만 놓고 보자면, 정말 좋다. 단순히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말이다. 거기에 살을 붙여 말하자면, 민요적인 창법, 연로밴드만이 가진 농후한 깊이(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흔히들 표현하는 것), 서정적인 가사, 미니멀한 편성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사운드에 매료되어 버렸다. 다양한 음악을 얕게 얕게 듣지만, 최근에는 힙합이나 그라임, 일렉트로니카를 주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자극적인 베이스 없이 잔잔하고 구구절절한 노래를 들어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트렌드에 쫓겨 살았나, 배우기 위해 음악을 들었나 생각도 든다. 사실 좋은 음악의 기본 베이스는 '간단함'과 '접근성'인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멀리 가있었나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취업준비로 인해 가뜩이나 할 것도 많고 힘들고 그런데 이 노래를 안아주며 잠시나마 온기를 얻을 수 있었다.

 

<Земля> 2013

1. З нею 

2. Стіна 

3. Бодегіта 

4. Незалежність  

5. Rendez-vous 

6. Стріляй 

7. Обійми 

8. Караван

9. Джульєтта 

10. На небі 

11. Пори року 

12. Коли навколо ні душ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