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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 중에 감성이 쌓이는 이유는,

한 낮 중에 감성을 소모하기 위함이라.

 

- 본인의 뇌피셜


돌아오는 길

 

또 다시 길고 긴 시간을 차에서 보냈다.

왔을 때 처럼 중간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친절하게도 운전기사가 호스텔 앞에 내려주는 바람에 길을 크게 헤매지는 않았다. 

호스텔에 짐을 풀고, 조그만 관광지도만 가지고 무작정 나갔다.

이르쿠츠크에 있을 시간이 1.5일로 그렇게 길진 않으니까. 

 

 

이르쿠츠크의 흔한 거리.

제정에 반대했던 지식인, 데카브리스트가 활동했던 도시, 확실한 건 블라디보스톡보다는 규모가 있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도시, 그래서 집이 몽땅 타 버려가지고 울먹이며 구걸하는 노숙자를 만났나 보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볼콘스키 가택.

박물관이라도 좀 둘러볼까 했는데, 문이 잠겼댄다. 하긴 저녁 6시 10분 전이면 닫을 시간대이긴 하지.

 

꽤 자주보는 방치된 목조건물.

방치된 목조건물을 꽤 흔히 볼 수 있었다. 

방치된 건물은 방치된 건물대로 매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까.

 

소방탑. 1898년에 지어진 뒤, 소비에트 시절 방치되다가 2012년 복원 완료.
개를 데리고 다니는 ... 남자

 

전봇대에 디테일. 19세기 건축물들과 잘 어울린다.
꽃집. 인도 상태가 엉망이다.
분수.

잠깐 산책하면서 느낀 것은, 건축물에서 "여기는 이르쿠츠크다!"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는 것이다.

25년 동안 한국에 눌러있었던 토종 한국인에게는 정말 새로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톡보다는 전체적으로 건물이 낡은 느낌이 강했다. 스타일도 약간 18세기에 걸맞기도 했다.

건물 색상들이 우선 다채로웠고, 전봇대에 놓여진 꽃바구니처럼 디테일도 있었기에 

벌써 유럽이라도 온 것 같았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이런 도시가 세워졌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지.

 

사진관은 3층에.
사진관 건물 1층에 있는 스탈로바야에서 저녁.

바이칼에서 오는 길에 렌즈 뚜껑을 잃어버렸었다.

조금 둘러보다가 바로 사진관을 찾아가 렌즈 뚜껑을 샀다.

뚜껑을 사고 나니, 뭔가 허기가 져서 스탈로바야로 간 뒤 저녁을 먹었다.

지금 같으면 저렇게 무대뽀로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배 터졌던 걸로 기억난다.

 

밥을 다 먹고 숙소로 복귀했다. 빨래를 좀 돌리려고 했는데 여느 게스트하우스가 그렇듯 유료라서 안하기로 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하다 시피 해서 바이칼에서 처럼 빨래 시설을 공짜로 이용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는데,

여행을 계속 하면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안 찍은 사진 정리도 좀 하고, 다음 날 나갈 준비를 미리 해놓고 일찍 잤다. 

그 다음 날 하루종일 돌아다니기 위해.

 

카잔 예배당, 그 뒤에 가톨릭 교회.

아침 일찍 일어나 게스트하우스를 나가 역에다 짐을 맡긴 뒤 중심지로 나왔다.

 

키로브 공원.
석탄회사 건물.

도시 구경은 키로브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어디로 갈 지 대강 계획하고, 가톨릭 교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석탄회사 건물 반대편에 이르쿠츠크 시청이 있고, 그 뒤로 쭉 가다보면 꺼지지 않는 불꽃, 주현절 성당과 앙가라 강변과 마주하게 된다.

강변에는 모스크바 개선문이 있다고 하고, 거기서 방향을 틀면 이르쿠츠크 중앙 시장이 있다고 한다.

사실, 지도랄 것도 크게 필요하지 않은게, 안내 표지판이나 관광안내선이 잘 되어 있어서 그저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가면 됐었다 그냥.

 

가톨릭 성당.
구원성당 첨탑.
성당 주변에서 인형을 파는 ... 사람은 어디에?
꺼지지 않는 불.
모스크바 개선문
강 건너편.
젬베치는 남자.

앙가라 강 쯤 왔을 때 뭔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아침에 역에 짐 맡기러 갔을 때 

짐 보관소 직원이 잠시 부재중이라 기다리는 동안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여자였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나한테 짐 맡기는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었고

내 국적을 물어보고 뭐 짧진 않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안면이 있었던 거 보니.

 

그래서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어! 역에서 뵈었던 분 아닌가요?"

그러더니 화들짝 놀래더라. "산책중이셨네요!"

그 여자도 잠시 이르쿠츠크 도시를 둘러보는 참이어서

이것도 인연인데 동행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쑤다볼스비옘!"

 

그렇게 또 우연찮은 인연이 만들어졌다. 

이름은 니나, 중국에서 유학생활 마치고 막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귀국한 대학생이었다.

집이 치타(Чита)에 있어, 이르쿠츠크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 되는데, 기차 시간 기다릴 겸 산책중이라고 했다.

저녁 쯤에 가톨릭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 공연 보러 간다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유료였나 그래서 아쉽게 거절했다.

같이 모스크바 개선문까지 좀 걷다가 어디갈까 어디갈까 하다가 가장 관광지스러운 곳인 130지구로 가기로 했다.

 

가는 김에 중앙시장 쪽 어떤 상가에 들어가 밥도 먹었다.

그냥 간단하게 솔랸카랑 빵이랑 이렇게 주문했던 것 같다.

니나는 '부즈'라 불리는 왕만두를 주문했는데,

마치 한국인이 한식을 그리워했듯 고향의 맛이 그리웠다면서 기뻐하곤 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예언을 했다.

"너도 카작에서 1년 공부하고 한국 돌아와서 너네 나라 음식 먹으면 지금 내 말과 행동이 다 이해갈거야!"

1년 동안의 해외생활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김치찌개 먹었을 때 그 느낌이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당시에는 이해하는 척 했지만.

 

동행을 하게 된다면 추억이 남는다는 장점은 있어도, 사진을 많이 못 찍는다는 단점이 있다.

같이 수다 떠느라 사진 찍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핑계아닌 핑계겠지.

 

그래서 130번지구로 가기 전까지 사진을 그렇게 많이 남기진 못했다.

강변에서 130번지구까지는 꽤 거리가 되었다.

햇빛은 미친듯이 내려쬐고, 땀은 미친듯이 흘러댔고, 

그늘이나 햇볓이나 별 차이없는 찝찝함에 익숙한 나에게

니나가 그늘로 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 지 모르겠다. 

"안 더워? 그늘로 다녀! 그늘은 좀 괜찮아."

 

130지구 가는 길.

 

130지구 도착. 표정 뭐냐.
소련식 '탄산 단 물'. 내가 갔을 땐 판매를 안하는 듯 했다.
이런 목조건물 혹은 목조건물을 흉내낸 건물들이 가득하다. 실상은 기념품샵 아니면 카페. 
바얀을 켜는 남자.
130지구.
여자 얼굴 타들어간 거 보고 웃겨서 찍었는데, 오늘 사진을 다시 한 번 봐보니 한국어가 적혀있네?
왜 이렇게 모자를 눌러썼을까... 의문.
어디에나 있다는 아이러브 시리즈. 다만 러시아에는 러시아어로 적혀져 있다.
어떤 대형쇼핑몰 안. 니나의 비싸다는 투덜거림이 사진에서 들려온다.
뭐 이렇습니다 대강.
니나 쁘리비엣!

니나에 의하면 '담비를 물고 있는 바브르'가 이르쿠츠크의 상징이라고 한다.

전설 속의 동물이라는 것만 알고, 나머지 내용은... 왜 기억을 왜 못 해 먹는거니!!!

 

아무튼 130지구로 왔는데, 그 전 날 본 이르쿠츠크와는 달리 새 것의 냄새가 많이 났다.

관광지가 뭐 다 그렇지, 니나가 말했다. "거 봐, 별 거 없지? 비싸기만 비싸."

기념품 좀 구경하려고 상점에 들어갔는데, 수제라 그런건 지는 몰라도 가격이 꽤 셌다.

당연히 그 정도 가격 할 줄 알았는데, 니나 피셜에 의하면 엄청 비싸게 파는 거라고 한다.

130지구까지 가서 건진건 나는 사진 몇 장(별로 찍지도 못했다.), 니나는 코인 하나.

이르쿠츠크에 있을 때 까지라도 기념품은 사치라 생각을 해서, 마그네틱 조차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기념품은 사치라고 생각은 하지만, 마그네틱 정도는 사는 편이다.

가격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고,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니.

 

130 지구를 대강 구경하고 몸 좀 식힐 겸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기하면서 걷다가 마트가 보이길래 구경이나 하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관광지라 가격을 너무 올려친다고 하소연했다.

 

다과 코너에서 원서 교과서로만 접했던 '할바'가 있길래 할바에 대해 잠시 얘기 나누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할바를 하나 샀다. 

제피르도 맛있어 보여서 샀지만... 노보시비르스크 가는 기차에서 달아 디지는 줄 알았다.

 

마트를 나가고 나니 화장품 가게가 보이길래 바디워시가 없다는 걸 깨닿고, 화장품 가게로 들어갔다.

니나의 추천으로 러시아 브랜드... 뭐지 그 석류 향 나는 바디워시 하나 샀다.

브랜드 이름을 까먹을 걸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찍어 놨어야지. ㅠㅠ

한국 여타 바디워시랑 가격이 비슷한데, 러시아의 싼 물가에 익숙해지다 보니, 엄청 비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바디워시까지 사고 나간뒤, 130지구를 벗어나 키로브 광장으로 또 걸어 걸어갔다.

저녁에 있을 파이프오르간 공연을 봐야되기 때문이다. 물론 니나가.. ^^

사실 나도 정말 보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르쿠츠크 도시를 더 감상하고 싶어서 동행은 이 쯤에서 끝냈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미술 박물관. 
오후의 키로브 광장.
주현절 성당

 

주현절 성당 2. 색감이 퍽 마음에 든다.
왼쪽은 강변, 오른쪽은 주현절 성당.
이르쿠츠크 개척자 상.

물론 바로 헤어진 건 아니고,

키로브 공원 벤치에서 좀 앉아 헤어지기 전 마지막 수다를 좀 떨고, 

인스타 계정을 맞교환 한 뒤 떠나보냈다.

 

여럿이서 여행을 가면 그 사람들끼리의 추억을 쌓게 된다는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고

홀로 가면 낯선이와 추억을 쌓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런 우연찮은 인연도 운이 좋을 때 생겨난다. 하지만 꼭 동행이 필수라는 건 아니잖아.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 속 관계의 끈에서 잠시동안 벗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이유 하나로 나홀로 여행의 목적을 단정지을 순 없지만,

앞서 언급한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이유이긴 하다.

 

너무 먼 곳에 있어 드물게 만나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그 이유가 되고

너무 먼 곳에 있어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이를 보러 가는 것도 그 이유가 되지만,

나홀로 여행만이 가지는 매력은 바로 '낯선 동행'이다.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다른 이를 만나며 뭉쳐있는 근육을 풀듯 경직된 사고를 풀어헤치는 것,

그것이 동행이 정해진 여행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혼자 감상에 젖는 것도 좋고, 혼자 사색에 빠지는 것도 좋다.

아무런 구애 받지 않고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예상치도 못한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디마 아저씨, 횡단철도에서의 칭기즈, 알혼에서의 한국인 2분과 유람선 메이트, 숙소 관계자분들.

그리고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만난 중국 유학생 '니나'.

 

앞으로 당면하게 될 모든 일에 축복이 가득하길.

중국어 공부에 더욱 더 정진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인스타 아이디가 추가되어 있어서 언제든 연락이야 할 수 있겠지만,

일상 속에 갖힌 나는 썩 사교적이진 못하다.

 

니나 사진에 좋아요나 눌러줘야지.

존나 소심하기는...

 

앙가라 강변.

니나를 떠나보내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즈나멘스키 성당까지 강변을 따라 걷기로 했다.

물 사람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강변이 있으면 걷지 못하고는 배기지 못한다.

 

어딜 가든 자물쇠 걸어놓는 건 똑같다.
저 머만치에 보이는 노란 건물이 모스크바 개선문.

 

녹슨 자물쇠.

 

측면에서 본 모스크바 개선문.

여기서 한 40분 더 걸었던 것 같다.

 

저 먼 곳에 보이는 초록색 지붕이 즈나멘스키 수도원이다. 가까워 보여도 거리가 꽤 된다.
거, 고기는 낚입니꺼?
달마시안 보소. 퇴근 시간대라 그런가 사람이 슬슬 보이는 느낌.
이 도로를 무단횡단 해야된다. 무서워 죽는 줄. 횡단보도도 없고...
독서.

 

수도원 도착.

보통 카잔 성당으로 많이들 가는데, 나는 이 곳을 선택했다.

그냥 순전히 앙가라 강을 걷고 싶었기 때문.

생각한 대로, 조용조용했다.

벤치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가끔 보일 뿐.

사제들만 몇 명 좀 보일 뿐.

내가 왔을 때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슬슬 해가 져 가는 게 느껴진다.
디에세랄 셀피. 몬쉥겼네. 그대로 저 땐 살 많이 빠졌었는데 지금은... 배에서 쓰나미 일어난다.

 

간단히 둘러보고 나오니, 여유를 만끽하는 시민의 모습이 눈에 포착되었다.
막 예배를 마친 듯한 여성들.

심적인 고요함에 흠뻑 취한 뒤, 다시 되돌아 갔다.

9시 경에 기차를 타야 했으니.

 

돌아가는 기간엔 무단횡단 구간을 건너기가 엄청 두려웠다. 횡단 보도좀...ㅠㅠ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저 때 시각 약 7시 반 쯤이었다.

 

도시가 노란 빛으로 물 들기 시작한다. 밤이 다가옴을 알리는 효시.

 

목이 말라 중간에 있는 애들 놀이터 같은 곳에서 산 탄산수. 청량감이 매우 좋았다.

 

자, 짧은 여름을 만끽하시오 여러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거, 고기가 낚이긴 합니까.
보기 좋다.

 

강변의 강태공.
강변에서 바라본 주현절 성당.

그렇게 즈나멘스키 사원까지 왔다갔다 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구보를 뛰는 청소년들, 부부 혹은 연인끼리 산책 나온 사람들, 아이들 데리고 노는 부모들,

낚시하는 아저씨들,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강변을 걷고 있었다.

강은 늘 옳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곳.

 

꺼지지 않는 불
꺼지지 않는 불 2. 공원이 아기자기하게 잘 조성되어 있다.

 

종탑.

이제 기차역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걸어서 가면 시간이 딱 될 것 같았기 때문.

조금 더 여유롭게 둘러보기로 했다.

해는 늦게 질테니.

 

돌아가는 길. 소련식 건물과 18세기 양식이 뒤섞인 이 곳은 이르쿠츠크.
벽돌의 질감을 보아하니 흡사 어떤 공장같다.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는 단 한 번 탔다. 마르쉬루트카로. 역시 소련양식과 19세기 양식의 조화.
이런 공장같이 칙칙한 빈티지도 정말 좋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그렇다.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컬러풀한 작은 분수.

 

다리를 건너기 직전 작은 공원을 발견했다. 잠시 숨 좀 고르고...

 

너도 물 좀 마셔라. 알료나 아주머니, 저 이제 이르쿠츠크 떠나요. 한국까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니 iso를 올릴 때가 왔다. 전차 디자인 심히 맘에 든다.

 

러시아 표 컨디션 내지는 여명808. 다 마셨어? 다 마셔! 숙취해소 모닝 케어. 이 다리만 지나면 기차역. 
자, 거의 도착했다.
이르쿠츠크 역.

약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던 것 같다.

거의 시간에 맞게 도착을 했고, 새로운 인연을 고대하며 기차를 기다린다.

이르쿠츠크, 아니, 자바이칼주는 그렇게 내게 수 많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었다.

또 한 번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하겠지. 다음엔 부모님 모시고 한 번 가고 싶다.

바이칼 호수라면 부모님 취향에 딱일지도.

 

자, 이르쿠츠크야, 잘 있거라. 나는 이제 노보시비르스크로 간다.

노보시비르스크 당일치기 하고 예카테린부르크로 간다.

체력 또 아작나겠군. 아니, 아작났다... 

세제의 한류.

 

다행히 보드카여서 그런가 숙취는 없었다.

푹 자고 낮 10시 쯤 일어난 것 같다. 

알혼섬을 떠나기 직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바이칼 호수에 몸을 담글 계획이었지만,

앞으로 있을 여행 계획을 조금 구체적으로 짜면서 '휴식 중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첫날이랑 둘째날 발 담근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소 팔자가 상 팔자.
마지막 저녁식사. 플롭이랑 빵, 샐러드.

 

낮 동안에는 계속 숙소에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 손녀랑 주방장 딸내미가 벨튀 비스무리한 걸 하길래

조금 놀아주기도 했다.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산책도 했다.

부르한 바위를 또 보긴 했지만 사진을 찍진 않았다. 

- 어제 술에 취해서 같이 이야기 못 나눈 것에 대해 주방장 아저씨한테 사과했다.

늘 그렇듯이 소들이 아무데나 널부러져 있었고,

가끔씩 소똥이 눈에 띠기도 했다.

 

초승달

 

뭐 그렇다. 말 그대로 제대로 휴식을 취한 하루였다.

주인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주방장 아들내미랑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원래 이르쿠츠크 근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셨고,

지금은 은퇴하고 알혼으로 와 민박을 운영하면서 후지르 마을의 교회에서 성가대를 운영한다고 하셨다.

성가대 지휘를 하신다는 건지 반주를 하신다는 건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는 않는다.

따님분도 음악쪽으로 전공을 잡았고, 현재 이르쿠츠크에 있다고 한다.

관광객 중에서 러시아어를 좀 하고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이렇게 많이 소통한 사람은 처음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되게 신기하기도 했고, 의사소통 측면에서 한 시름 놓았다고 하시기도 했다.

몇 일 뒤면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받는다는 말도 하셨고, 러시아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하셨다.

 

조금 비즈니스적인 질문도 좀 했다. 매년 관광객이 많이 오는 편이냐고.

어찌 보면 실례스럽기도 하지만, 관광객&외국인 버프를 이용해 물어봤다.

아무래도 기후도 기후다 보니 여름에 휴양 차 많이 온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여름에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하시긴 했다.

중국인들이 이번에 너무 많이 왔다는 말씀도 하셨고...

특히 목조 건물이다 보니, 겨울엔 너무 추워져서 장사를 안한다고 하셨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나처럼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그 민박을 찾는다고 하셨다.

메인 관광지와 거리가 꽤 있는 편이라 가격이 싼 편인데, 대체로 만족하고 간다고들 하셨다.

관광지와 멀긴 해도, 그 만큼 후지르 마을을 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

그렇다고 엄청 공감을 해주시기도 하셨다.

 

뭐 그 외에도 이야기를 꽤 나누긴 했는데, 역시 나는 기억력이 정말 안 좋긴 하나 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마지막 조식을 먹은 뒤 미샤 아저씨 가족분들과도 작별인사 나누고,

타슈켄트 올 때 연락하라고 아들 분이랑 연락처도 교환했다.

- 그 후로 1년 뒤 우즈벡 갔을 때, 못 만났다고 한다. 갑자기 잠수를 타는 바람에... 사정이 있었겠지.

 

주인 아주머니도 체크아웃 도와주시고, 차량이 올 때 까지 같이 기다리곤 했다.

차가 조금 가까워지자, 내게 선물을 하나 건내 주셨다.

 

감사합니다, 꼭 한 번 더 봬요!

아주 귀여운 네르파였다. 

나도 주인 아주머니께 부채를 선물해 준 뒤 떠났다.

밴에 앉아 한동안 네르파를 쳐다보았다.

 


О.Ольхон.

 

Вижу озеро прозрачное,

Сижу спокойно на пляже,

вписываю красивую летопись в себе,

 

я душею с красною краскою

прощаюсь на закате, до свидания.

горячею росою в туман мутный уезжаю я.

 

воспоминание с инными товарищами.

незабываемые времени с шаманами.

Озеро как море, душа широкой тишины как озеро.

 

알혼섬

 

투명한 호수

호숫가에 조용히 앉아

아름다운 연대기를 내 마음속에.

 

버얼건 노을

가음으로 외치는 안녕.

뜨거운 이슬에 희미해진 마을.

 

추억, 낯선 이와 함께한

잊지 못할 시간, 샤먼의

바다같은 호수, 호수처럼 넓고 고요한 인심.


안녕, 바이칼! 가자, 이르쿠츠크로.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조식을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되게 일찍 나갔다.

선창가의 위치를 알려주셔서 얀덱스 지도에 좌표 깔고 가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불안함이 엄습했다.

또 길을 헤맬까봐...

 

선창가

그렇게 한 시간이나 일찍 선창가에 도착해서 하염없이 여객선을 기다렸다. 

여기서 타는 게 맞나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 저 배 중에 내가 탈 배가 있기나 한 걸까...

심지어 이런 상상도 했다, 유람선은 무슨, 걍 어선에 태워서 어촌 체험시키는 건 아닐까...

 

방금 좀 무리수를 둔 것 같다.

 

벌레벌레벌레

그렇게 좀 기다리다 보니 40분쯤인가 큰 어선이 도착했고, 사람들도 꽤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 줄을 선 뒤, 숙소 주인아주머니의 이름을 댄 뒤(예약을 아주머니 성함으로 하신 듯) 탑승했다.

실내 좌석도 있었고 야외 자석도 있었다. 출발하고 얼마 동안은 실내 좌석에 앉았다가, 사람들이 담요를 가지고 위층 야외 좌석으로 가길래

나도 따라 올라갔다. 그러니 가이드 분께서 뭘 설명하고 있었다.

바이칼 호수에 관한 이야기와 여행 일정, 여행지 설명을 했는데, 뭐 당시에는 대략적인 내용만 이해했다.

즉, 거의 아무런 정보도 없이 떠난 거나 마찬가지다.

 

한국인들 블로그를 보면 배 타고 쭉 갔다가 복귀할 땐 차 타고 복귀한다고 하는데,

난 아마 다른 투어였나 보다.

 

오고이 섬 -> 수르하이토르 누르

뭐 아무튼, 유람선 투어의 의의는 호수에서 뭍을 보는, 이른바 시선의 변화가 아닐까.

유람선을 탄다는 정보만 있는 지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멀어져 가는 섬과 간혹 나오는 바위섬을 보며 오고이로 향했다.

 

갈매기, 갈매기 가문에 그렇게 유명한 작곡가가 나왔다던데... 차이코프스키였던가...

갈매기한테 빵 던져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가만히 배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뭍에서 멀어져 가는 여객선.

 

배에서 본 풍경.
절벽의 향연.
솔로천국 커플천국.

 

흔히 보이는 풍경.
깨알 발. 

배에서 본 느낌은 확실히 민둥산의 느낌이 강했다.

원시적인 느낌이 충만했고, 저기서 유목민들이 유르트 세워 말 타고 돌아다녀도 전혀 이상할 것 없어 보였다.

옛날 원주민들은 그랬겠지 뭐.

 

섬.

호수에 크고 작은 섬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냥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사진만 딱 보여준다면 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뭐 거진 한국인 단체여행객 패션.

중국인도 봤다. 이번 투어에는 한국인들이 없었고, 대신에 중국 자유여행객 2분인가 이렇게 계셨다. 대학생이었다.

별 얘기는 안 했다. 웨어 알 유 프롬? 아임 프롬 코리아! 캔 유 테잌 어 픽쳐 오브 미? 두 유 노 애니띵 어바웃 디스 투어?

이 사람들도 나랑 똑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더라.

 

이야~
오고이섬 선착장.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오고이 섬에 도착해 있었다. 

예전엔 사람이 살았지만 이젠 무인도가 되었다는 말 정도는 알아들었다.

자, 어디 한 번 사람이 떠나간 빈집을 헤집어볼까나.

 

물 맑은 거 보소.
오르막길. 정박해 있는 배가 내가 탄 유람선.
돌탑.
돌탑들.
뭔가 신성한 공간.

그렇게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이런 신전 비스무리하게 생긴 곳에 도달하게 된다.

올라가는 길에 돌탑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전날 하보이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르게 생긴 돌탑이 많았다.

 

시각적인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탈의 축복계단.
관광객보소.
바지 먹었다.

이 건축물을 기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3바퀴를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본래는 집착을 넘어선 깨달음을 목표로 빙빙 돌았겠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이렇다.

 

평범한 돌탑들. 관광객들의 작품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봄.
정상에서 보이는 경관.
돌탑.
돌탑 근접샷.
Made by Gyongskiy.

풀밭을 살펴보면 특이하게 생긴 돌탑이 굉장히 많다.

섬에 길쭉한 돌이 많은 특성상, 3-4개의 돌을 기울여 세운 식의 형태가 많이 보였다.

조심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발에 채일 수도 있으니 조심히 다니곤 했다.

실수로 하나를 쓰러뜨려 하나 다시 세우고, 사사로운 마음에 본인 것도 하나 쌓으며 소원을 빌었다.


'카자흐스탄 교환학생 시절 뜻깊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가족과 친구,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소서.'

'음악가가 되었든, 전공을 살려 무역회사에 취직하든,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바라는 것을 모두 다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내 마음속 평정심을 누릴 수 있는 품성을 주소서'


제단...처럼 보이는 곳. 생각보다 사진이 잘나옴.
나무가 많이 없어 황량한 듯 하면서도 들꽃들이 그 황량함에 기운을 북돋아준다.
이렇게만 보면 흡사 화강암질의 아일랜드(ireland). 둘의 매력은 각기 다른 법.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여행할 당시엔 여친도 없었지만.
하산하는 중.
들꽃
호안선.

하산하여 배가 출항할 때까지 해안선을 잠시 걸었다.

깨끗한 바이칼의 물이 조금씩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출항!

시간이 다 되어 배가 출항했다.

다음 장소로 가는 길에 점심시간이 되어 배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차와 시(щи),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 다소 평범한 식단이었다.

점심시간이라는 걸 늦게 깨달아 줄을 엄청 섰어야 했다.

가족 단위나 연인 단위, 친구 단위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낯선 사람들 옆에서 밥을 먹는 내가 처량해지곤 했다.

... 그럴 리가 처량하다니, 처량하다는 것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나 느끼는 거지.

그냥 낯선 사람과 부대끼며 먹는데 느끼는 어색한 감정을 처량하다고 표현한 것 같다.

 

다음 장소로. 발 발 발.
물길.
실내에서 본 풍경.
육지담 육지!
웡!

다음 목적지는 이르쿠츠크 방면에 있는 곳이었다. 역시 정보가 없는 상태라 내리고 봤다.

그리고 뒷사람을 무작정 뒤 따라갔다. 여기 온 목적이 뭔 지도 모른 채.

섬뜩깜찍한 조각상.

 

 

물 웅덩이.

 

평화로운 자바이칼.

평화롭기만 하다. 여기도 소 팔자가 상 팔자.

 

올라가는 길.

마치 야트막한 산을 등산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내려가는 길에 찍으려고 올라가는 길에는 사진기를 거의 들지 않았다.

 

목적 : 샘물.
샤머니즘.
그대는 대大 샤먼이 만든 샘물터의 손님으로서, 이용하는 데 있어 매너를 준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않을 시, 전지자가 그대에게 노하여 저주를 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질병에 감염시키거나, 심지어 죽일지도 모릅니다. 대충, 깨끗이 사용하고, 보드카 마시거나 소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

여기를 들린 목적은 바로 이 샘물이었다. 어쩐지 페트병을 챙겨가는 사람들이 많다 했다. 

나는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손 좀 적시고 3-4모금 마신 뒤에 바로 하산했다.

이 곳 사람들은 성수로 여기는 듯했다. 주위에 샤머니즘적인 상징체가 꽤 많았다.

물 맛으로 말하자면, 등산을 하고 마셔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청량감이 장난 아니었다.

물에서 정말 깨끗한 맛이 났다. 군더더기 없는 맛이었다.

 

샘터 입출구.
어김없이 탑.

 

야생화.

 

숨은 나비 찾기. 난이도 하.
숨은 나비 찾기. 난이도 하.
숨은 나비 찾기 2. 난이도 중상.
오솔길.

 

 

초췌-

하산할 때서야 비로소 사진기를 들고 이것저것 찍었다. 야생화, 오솔길, 그리고 나비.

솔직히 나비 찍느라 시간을 꽤 허비하긴 했다. 기본 제공 렌즈를 쓰다 보니 근접샷에 한계가 있었다.

흔한 풍경.
막 찍어도 예술.

그렇게 하산을 하다가 유람선에 처음 탔을 때부터 안면이 조금 있었던, 하지만 말을 섞진 않은 남자분이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너 물 마셔봤어? 맛 어떻디?", "네 동행은(중국 분들)? 아, 동행 아니라고? 혼자 온 거야? 안 심심해?" "어디서 왔어? 오~ 한국?"

 

오고이로 가는 길에, 잠시 화장실 갔다가 나오니까, 나를 흠칫 보더니, 손가락으로 "룩!" 하고 뭘 가리키고는 유유히 사라졌던 그분이었다.

이 남자도 여자 친구랑 휴가차 놀러 왔는데, 여친 분이 피부가 새까맣게 탄 걸로 봐서 썬텐을 엄청 한 모양이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도 좀 오가다가 조용히 출발지로 걸어갔다.

 

시간이 꽤나 많이 남아 있어서 선착장 주변의 간이 슈퍼에서 맥주랑 마른 고기를 좀 뜯어먹었다.

 

 

말린 오물... 인 듯 하다. 아니면 말고. 그리고 맥주 한 컵.

내려올 때 같이 동행했던 커블과 합석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일을 하는지, 여행은 왜 온 건지, 러시아는 어디 어디 가봤는지.

통성명도 했다. 남자의 이름은 바실리, 여자 이름은 디아나였다. 

바르나울에서 온 20대 후반의 신혼부부고, 파벨은 바르나울에서 경찰로 일한다고 한다.

경찰 신분증(?)을 나한테 보여주면서 증명하더라. 삼보 할 줄 안다고 그러기도 했고.

어쩐지 등빨이... 장난 아니었음. 약간 올리버샘 느낌 나는 외모였다.

상점 방명록에 한글과 러시아어로 낙서하고, 한글을 쓰는 나를 보고 되게 놀라기도 했던 것 같다.

"아니, 너 그렇게 많은 상형문자를 어떻게 다 외우고 써?", "한글 상형문자 아인디...." "읭?"

대충 이런 식이었다.

그러면서 크라스노야르스크 안 갈 거라고 하니까, 되게 아쉬워하기도 했다.

거기에 이쁜 공원들도 많고, 자연경관도 괜찮다며 추천을 해줬지만,

이쁜 자연경관은 많겠지... 크라스노야르스크주가 러시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연방주인데.

근데 도시 자체가 이쁜 건 다 옛말인 듯했다. 체호프가 크라스노야르스크가 그리 이쁘다 표현을 했지만,

아마 소련 시기에 흐루숍카로 도배를 하면서 전형적인 소련형 도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다음에 한 번 가본다고 하면서 마무리 지었다.

바르나울에 대해 물어보니, 도시는 볼 게 없고, 좀 나가면 엄청난 자연경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도 했다.

바르나울이 알타이 주도니까...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많겠지.

 

어떻게 먹는지 몰라 너무 찔끔찔끔씩 먹으니, 디아나가 야성적으로 시범을 보여줬다. 짭짤하니 맛있었다!
나비와 벌레 나부랭이.

 

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맞은편에 앉은 울란우데 출신 여자들이랑도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유람선 여행 끝물에 동행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많은 관심을 보이곤 하더라.

그렇게 막 수다를 떨다가 배 시간이 되어 배에 탔다.

 

여기도 안녕.
갈매기 바위. 관광객이 주는 빵조각을 기다리고 있다.
뇸.
날아 올라.
쌍갈매기.
빵 날아간다. 갈매기 받아라.

 

나 - 제냐 - 디아나 - 바실리 - 레나

객실 내에서 수다를 이어갔다. 자기네들끼리 울란우데는 어떻다, 바르나울은 저쩧다...

그 와중에 부분 부분만 이해를 하다 보니, 대화에 쉽사리 낄 수가 없었다. 

계속 웃다가 농담 같은 거 이해하면 가끔씩 웃고 그랬었다. 

객실 내에서 이야기 좀 나누다가 선착장에서 먹은 술도 좀 깰 겸 나갔더니

울란우데에서 온 어떤 아저씨께서 또 나한테 엄청 말을 걸어오셨다.

바이칼을 기준으로 저쪽이 이르쿠츠크고 저쪽이 울란우데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울란우데 쪽에서 보는 바이칼도 기가 막히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나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

당시에는 심도 있는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던 지라 기억이 나진 않았다.

되게 인상이 전형적인 살집 있는 한국 아저씨였다.

뭐, 부랴트 족이 한민족이랑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고야 하지만..

 

바위의 질감이 터프하다.

그렇게 유람선 여행이 끝났지만, 하루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배에서부터 "이것도 인연인데 밤에 호숫가에서 보드카나 까자"는 제안이 오가서, 이것도 추억이다 싶어 나도 동참했다.

숙소에 도착해 어느 정도 개인정비를 취하고 저녁을 먹고, 장 보러 같이 나왔다.

보드카랑 음료수랑 컵, 요거트 조금... 끝? 역시, 불곰들, 안주 따위 없었다! 제기랄!

 

불곰국의 흔한 술자리 구성.

그 전 전날 한국인 2명을 만났던 시간대에 보드카 파티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농담이 오가고, 은어도 몇 개 알아가고, 몇몇 썰이 오가지만, 

맙소사, 무슨 말하는지 잘 못 알아먹겠다!

지금 실력이라면 잘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너무 부분적으로만 이해를 해버려서 전체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보드카는 계속 들어가고, 취기는 급속도로 올라가고... 결국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기억나는 것은 내가 "бухать"의 뜻을 물어봐서 엄청 웃은 것, (직역하면 쿵 떨어지다, 은어로 의역하면 술을 진탕 마시다.)

디아나가 뭐라 뭐라 질문했는데 못 알아먹어서 4명이서 한꺼번에 이해시키려 드는 것,

바실리가 뭐라 뭐라 섹드립 날렸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설명하기 난감해했던 상황,

보드카가 다 떨어지니 어느 펍 같은 데 들어가서 흑맥주 마신 것,

마침 TV에서 방영되는 2018 월드컵 프랑스 대 크로아티아 결승전 후반전,

바실리랑 노상방뇨한 것...... 이 정도?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을 거다. 뭐 왜곡됐으면 왜곡된 대로~!

아참 그리고 아침에 눈 떠보니 귀소본능에 소름 돋은 것까지... 이것도 쳐야 되나?

 

어찌 보면 그때

처음으로 러시아 사람들이랑 보드카를 낀 술자리를 가졌고,

따발총처럼 오고 가는 러시아어를 실제 상황 속에서 처음 보았고,

러시아인들 특유의 친화력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바이칼 호수 노을 속 보드카 노상, 

초면인 사람과 중개자 없이 즉석으로 가지는 술자리(내가 아싸니까 한국에서 못 겪어 봤을 수도...) 등

진귀한 경험을 처음 해 본 한편,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 다음날 인스타그램에 러시아어로 이런 게시글을 올렸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니 나도 어지간히 러시아어 못했다. 허헣.)

 


"혼자 안 무서워?"

"그래서 누군가 내 옆을 지나칠 때마다 가방 꼭 붙들어 매고 그래."

혼자 러시아를 싸돌아다니는 게 두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경험한 새로운 순간들과 느낌은 정말 좋았고, 좋고, 또 좋을 것이다. 지금은 아직 모든 게 순조롭고 모든 일들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러시아어를 열심히 배우지 못했던 게 후회되었다.

 


지금 보니 감성에 젖은 데다가 러시아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게 서툰지라 글이 막 적혀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다, 이 사실은 지금도 유효하다. 앞으로의 여행에서, 물론 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대개 순조롭게 흘러갔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참 인복이 없진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니...

인복은 많지만 인복을 내찬다는 게 흠이지만... 주기적인 연락을 귀찮아하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준 4명에게 정말 고마웠다.

말 잘 안 통하는 외국인 그래도 자기 나라 와 줬다고 특별한 걸 경험시켜줬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어를 좀 더 효율적이게 공부를 하지 못했고, 좀 더 대담한 일을 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 꼭 후회를 안 하고는 못 사는 법이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도 수많은 후회 속에서 좌절을 하지 않았던가.

과거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다.

더 많은 경험을 통해 인생의 시야가 넓어진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게 된다면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성장을 하는 데 있어서는 후회라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고, 다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후회를 발판 삼아 내 마음가짐이 바뀌게 되고, 그게 실천이 되면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성장을 하고 싶고, 그러기에 후회를 하고, 그러기에 지난 일을 잊지 않는다.

뒤끝 있다, 나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다고들 혀를 차겠지만,

그만큼 스스로의 실수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내포하기에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는다.

내 종교가 불교인만큼, 집착과 미련에 대해 긍정적이게 생각할 리는 없다.

즉, 내가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다는 것은, 잊지 못해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다는 것이지,

지난 일에 묶여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저찌 되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꼬라지인 것일까.

아가리만 산 거지 뭐.

 

 

 

4편에 계속.

한국의 월경지를 여행했던 것만 같았던 알혼섬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투어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7시 반쯤(이었던 것 같다) 온다 했던 것 같은데

하도 안 와서 똥줄 타던 중 20분 정도 초과된 시간에야 차가 도착했다.

어제 이르쿠츠크 시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승객을 픽업했던 밴처럼 

이 차도 여러 숙소를 돌아다니며 투어객을 하나 둘 태웠다.

 

그렇게 인원을 다 채우고 어딘가에서 좀 오래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투어를 같이 했던 사람들은 러시아 사람 8명(?)과 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아주머니, 이렇게 약 10명이었다.

 

첫번째 구간. 밴 기사가 뭐라 뭐라 설명했지만 이해를 못했다. 2020 지금 내 러시아어 수준이었다면 이해를 했을 수도.
건너편은 울란우데...가 아님.
눈은 왜 감는 거니...

너무 주요 목적지만 달리면 촉박한 느낌이 드니 전망 좋은 곳 잠시 구경시켜준 듯하다.

확실히 호안선이 시원하게 뻗어 있고, 중간중간 삐져나온 절벽들로 인해 경치는 정말 좋았다.

투어 차량이 우리 차뿐만 아니라 다른 차들도 엄청 많아서, 확실히 스토리가 있는 곳임에는 분명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머만치에 보이는 섬이 각각 동물의 명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왼쪽이 사자, 오른쪽이 악어.)

 

반대편

저 건너편에 육지가 보였다. 이르쿠츠크 방향의 육지인데, 마치 동양화에서 원거리에 있는 산봉우리를 묘사한 듯했다.

 

차창 너머 풍경.
차창 너머 풍경 2.

1단계

 

경치 감상을 좀 하다가 다음 장소로 넘어갔다. 이미 차는 흔들흔들 댔지만, 아직까진 견딜만했었다.

앞 좌석에서 보는 경치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측면에는 호수가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면,

정면에는 드넓은 들판이 평화로이 펼쳐져 있었다. 

같이 투어 했던 사람 중에 고프로랑 드론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다. 

앞자리를 정말 원하셨던 것 같은데, 앞자리에는 하필 한국 아주머니... 

아주머니께서 건강상의 이유로 웃돈을 조금 더 주셔서 앞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두 번째 장소쯤 도착했을 때 아주머니께서 드론 주인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을 해달라고 말씀을 하시더라.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아메리칸인 줄, 쿨한 척하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하긴, 측면보다는 정면이 더 스릴 있지.

그 외에도 주행하는 동안 드론 띄울 거라고 차를 몇 번 세우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아주머니께서 "참 드론도 은근히 민폐네"하면서 볼멘소리를 하셨다.

아주머니 말씀도 맞지만, 드론을 띄워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는 분의 마음도 이해가 가긴 한다.

드론 좀 띄운다고 잠시 정차하는 시간이 일정에 큰 영향을 주진 않으니까.

 

포로수용소 철로 흔적.
포로수용소 부근 모래사장.

 

포로수용소 철로 흔적.

요 주변에 슈퍼랑 기념품 샵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게 없었다. 물만 하나 샀다.

철로의 흔적을 멍하니 보면서 사진 찍고 하다 보니... 40분이 안 지나있음... 시간은 정말 넉넉히 줬던 것 같다.

이 부근이 2차 세계대전 중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알혼섬은 포로수용소로 사용하기 적합한 위치에 있다 생각은 든다.

튀어봤자 시베리아니까. 애초에 바다 같은 호수가 사방을 감싸고 있는 판에 도망치는 건 꿈도 못 꾸지.

오랜 기간 동안은 부랴트인의 생활터전, 몇몇 기간 동안엔 포로수용소로, 이제는 중국인이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니,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을 것 같긴 하다.

 

정보를 사전에 제대로 수집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되곤 하는데,

그게 어찌 보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장점이라면 상상력을 자극시키거나, 장소의 역사와는 별개로 생각지도 못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단점이라면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똥 싸다 끊는 느낌이 든다는 것.

 

그래서 적당한 상상력을 자극시키고자 관광지에 관한 지식은 딱 필요할 것 같은 만큼만 수집하는 편이다.

 

오프로드. 하보이(곶) 가는 길.

 

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 워어우워어우워우워워우워

하보이까지는 꽤나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1시간 정도 달린 듯하다. 

바깥 풍경을 보다가 솔직히 좀 피곤해서 잠시 졸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차가 흔들린다 그러더만 잠은 잘 오나 보네? 하고 묻는다면

잠은 오지만 잘 오지 않고, 노오오력을 해서 잠시 잠들 수 있었다고 대답할지어다.

정말 이쁘긴 이쁘지만, 내 컨디션이 먼저인 만큼 체력 보충을 해놓았다.

 

솔직히 좀 힘들긴 했다. 잠에 좀 든다 싶으면 덜컹해버리니.

 

.하보이 가는 길, 독수리오형제 바위 부근.
독수리오형제 바위 부근.
어딘가로 내려가는 길.

곶으로 오니까 갑자기 물이 더 새파래진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 사진 보면서 기억이 왜곡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물 색이 진해지기도 하고,... 뭐 그래 물 색깔이 더 진해졌다.

뭔가 깊은 심연의 무언가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로 치면 심해?

 

제주도 버릇 바이칼까지 간다. 여기서도 수평선을 호로록했다. 그 전에 갔던 제주도 사진 보면 수평선을 호로록하는 사진이 꽤 있다.

그래도 물가라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는데, 바이칼이랑은 이렇게 안 맞는 옷일 줄은 몰랐다.

바이칼은 뭔가 장엄하여 네스호 괴물과 같이 어떤 괴물이나 신성한 존재가 안갯속에서 나타날 것만 같지만,

하와이안 셔츠는 성격이 좀 반대되기 때문.

 

샤머니즘의 흔적.

 

드넓은 바이칼을 가로지르는 배 2척
이젠 절벽만이... 모래사장은 저 멀리
자 이제 하보이로 가볼까?

독수리 삼 형제 바위를 살짝 둘러본 뒤.. 30분이 살짝은 아닌 것 같다만;;

진짜 하보이로 향했다. 거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웬일로 설명판을 찍어놓았네.'미스 하보이'라는 말이 부랴트어로 '송곳니, 영구치'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하보이 곶에 관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어떤 한 부랴트 여자가 남편에게 불만이 생겨 궁전을 지어달라고 신(텡그리)에게 빌었으나, 신은 오히려 "그 어딜 가든 증오와 질투가 가득한 사람이구나. 돌이나 되어라!"하고 그 여자를 돌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이게 바로 송곳니.
한국인 아주머니가 찍어주신 사진... 사진 못찍으심 + 포즈 고자

운전기사가 점심을 만들 동안 곶 부근을 산책하도록 여유롭게 시간을 준다. 

완전히 새파래진 호수를 보면서, 가파르게 깎아 내려진 절벽을 보며 트래킹을 했다.

 

차가 모여있는 바로 저기에서 운전기사들이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아찔한 절벽.

절벽이 너무 가팔라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호수에 자갈 비치는 거 실화인가 싶었다.

한국 편의점에서 한때 바이칼 물을 팔았었는데, 왜 비쌌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샤머니즘+바이칼=진리

바이칼이라는 공간은 샤머니즘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뭐? 무슨 말이냐고?

나무마다 묶인 이런 천들이 알혼섬의 절경과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자라나면서 끈이 꼭 묶여야 하는 양.

 

거의 끝자락에 다달았다.
염원이 담겼거나 저주가 담겼거나...

부랴트인들의 종교는 샤머니즘+티베트 불교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저 부적 천 같은 데 티벳어로 뭐라고 적혀 있었다.

죽은 나무, 그리고 천.
여기도 하나.
여긴 아예 기둥이.

신성시되는 공간이라 그런가 샤머니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다소 밋밋해질 수도 있는 공간에 이렇게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어 더욱더 조화로웠다.

 

야생화, 초점 흐트러진 거 보소...
서리낀 듯 허연 풀.

여기서 피는 초목들도 우리나라의 초목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땅이 다른 만큼 식생도 다른 법.

 

무제.

물이 너무 푸르러 수평선이 안 보일 정도.

 

돌탑도 하나 쌓아보고...
러시아 여자는 사진 찍는 실력이 좀 낫네.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찰 같은 데 가면, 소원을 빌면서 돌탑을 쌓듯, 여기에서도 그런 풍습이 있나 보다.

수많은 돌탑이 보였다.

 

사진 찍어준 러시아 여자. 나도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 편은 아니다.
역광보소.

하보이는 알혼섬 최북단에 위치하는데, 문명과 거리가 있는 곳이라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후지르에 도착하면 보내주기로 했는데, 왓츠앱 번호의 문제인지 뭔지는 몰라도, 결국 못 보냈다.

돌아오는 길 까지 같이 동행했었는데, 상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휴가 내서 여행 왔다고...

그래서 처음엔 영어로 소통했다가, 나중엔 그냥 러시아어로 소통했다. 

흔한 외국인의 레퍼토리 : 어 러시아어 할 줄 아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와~ 러시아어 잘하시네요! 얼마나 배우셨어요?

피부를 보니, 바이칼 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신 것 같다. 아니면 썬텐만 했으려나?

 

여자분이 나보다 더 잘 찍네.
돌아오는 길.

둘 다 길을 몰라 이상한 길로 새서 그런 지는 몰라도, 꽤 산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산길을 뚫고 나오니 이런 절경이.

초점이 다 뒈진 갈매기.

 

오물국 (?!) 그 오물이 아니예요...

다 둘러보고 도착해보니, 다른 일행들은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오니 내 꺼도 이렇게 퍼줬다.

토마토에 고수 뿌린 러시아식 샐러드(따로 이름이 있을 건데...)와 빵이 공용으로 있었고,

각 사람마다 이렇게 국이 한 그릇씩 나갔다. 나중엔 좀 남아서 더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맑은탕 같은 느낌이었다. 얼큰했다. 비린내도 많이 없었고, 정말 해장하기 딱 좋은 그런 맛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더니 허허하고 웃더라.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오물'이란다.

쓰레기 '오물'이 아니라, 바이칼 청정지역에서 사는 고기.

내가 아~ 이게 오물이에요? 이러니까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오물'스'란다. 일단 수긍하는 척했다.

아무리 내가 입수한 정보가 많이 없다지만... 이래 봐도 저 러시아학도예요 아주머니 ㅠㅠ

생선 머리 부분 살만 살짝 발라먹고 버리려고 하니 일행 중 어떤 아저씨가 아니 이 맛있는 걸 왜 버리냐고 놀라시더라.

주위 사람들도 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얘, 너 멀리서 왔다고 일부러 맛있는 부위 줬는데 그걸 버리는 거야?"

 

어두육미라는 말, 한국에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 말에 공감을 못해요. 하하핳;

 

그렇게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다시 어디론가 출발했다.

하트바위

 

다음 목적지는 하트 바위였다. 왜? 심장같이 생겼으니까. 하트같이 생겼으니까.

수용소 설명할 때는 잘 못 알아듣더니, 이번 설명은 아주 잘 이해했다.

내가 못 알아 들었을까봐 어떤 일행 분이 부연 설명해줬는데,

이 바위의 오른쪽으로 가면 딸을 낳고, 왼쪽으로 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나 뭐라나... 아주 잘 이해한 건 개뿔.

 

 

여기도 샤먼의 흔적이...

 

길은 대충 이렇다.

물 색깔 보소... 빠지면 최소 사망이 아닌가 싶다.

 

여기가 남자 쪽인지 여자 쪽인지...
심장에서 심쿵.

이렇게 멋있는 절벽도 볼 수 있다.

 

유방......ㅎㅎ;

측면에서 보니 심장이 유방이 되는 마술이 벌어졌다

낙타 봉우리 같기도 하고, 아, 그래, 낙타 봉우리에 가깝다.

음란마귀가 이래서 무섭다.

 

감탄.
뇸뇸뇸뇸뇸뇸뇸 뇸뇸뇸뇸뇸뇸뇸뇸 뇸뇸뇸뇸뇸뇸뇸 뇸뇸뇸뇸뇸뇸뇸
알고보니 드론 날리는 형님이랑 그 마누라? 여친?.

 

저 밑에 사람이 내려가 있길래 나도 내려가 봤다.

 

풀의 장막.
나비, 개꿀.

아니, 그냥 풀떼기나 찍기로 했다.

아지매, 위험합니die.

절벽 깎여진 모습이 정말 이뻤다.

 

차창풍경.

마지막 장소로 가는 길.

그렇게 투어는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포스팅하다 보니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 나눠서 쓸까 생각했지만... 걍 한 번에 다 쓸란다.

 

우오오오오오오옹ㅇ오. 남녀노소 인기만점.
물솟음사발. 수명을 연장시키고 심신을 완강하게 하고, 혈액순환 활성화, 혈압 안정화, 근육과 관절 안정, 스트레스 해소에 좋음. 정력 강화에 좋다는 말 까지 있으면 한국 단체 관광객들 실신할듯.

다음 목적지에는

수많은 높다란 절벽은 이제 없고, 이런 신비한 놋쇠그릇만 남아있었다.

놋쇠그릇과 기념품샵... 뭐 이렇게.

또잉 띠용 하는 악기도 팔았고, 여러 부랴트스러운 것들을 팔았는데 가격이 너무 세서 안 사기로 했다.

 

투어의 마지막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소였다.

나도 스트레스 해소가 눈에 띄어 흔들어보기로 했다.

몸이 릴랙스 되어 있지 않으면 물이 통통 튀지 않는다.

손에 물을 살짝 묻히고 양 손잡이를 부드럽게 비비면 온 몸에 진동이 오면서 물이 발악을 하는 걸 볼 수가 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 저 모자 쓴 아이가 도와준 건 안 비밀.

 

목가적인 풍경에 ... 저건 무슨 동물 가죽이지?

나름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복귀하는 길. 장승.

복귀하는 길.. 길이 너무 안좋아서 엄청 흔들렸다. 

 

저녁 식사. 우즈벡 삼사와 무슨 국인지 까먹음. 올리비에도 나왔고, 빵도 넉넉했다. 200루블인가 했던 걸로 기억. 아닐 수도 있고. 차茶도 무료임.

투어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녁 먼저 먹었다. 하루 종일 오프로드를 달리느라 힘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 남자분 2분이랑 만나지 못하게 되자, 숙소 주방장이랑 이야기를 좀 나눴다.

원래 우즈벡 사람인데, 매년 여름마다 가족들이 전부다 알혼섬으로 와서 이 숙소에서 일한다고 한다.

주방장은 미샤 아저씨, 즉 가장이시고, 아내분도 같이 돕고 있었다.

큰 아들은 여러 소일거리를 맡고 있었고, 나이가 엄청 어린 딸래미는 숙소 주인아주머니의 손녀랑 같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일을 하셨다고 하셨다. 부산 쪽이었나... 내가 그쪽 출신이라고 하니 되게 반가워하셨다.

한국 차 이야기도 꺼내시고, 한국에서 뭐하냐, 우즈벡은 가봤냐 등등 어느 정도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그다음 날 저녁쯤에 차나 한번 같이 마시자고 말씀을 하셨다.

 

물론... 그다음 날 예상치도 못하게 술판이 벌어진 바람에 같이 못 마셨지만 ㅠ.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숙소 주인아주머니를 만났다.

여행 어땠느냐 물어보시고는, 거주지 등록증을 주시면서 내일 있을 유람선 투어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

유람선이 아침 9시에 출발하니 10분 전까지 배 선착장으로 가라고 일러두셨다.

 

투어는 그 전날에 무엇 무엇을 할 거다 결정을 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 내게 물어보셨다.

투어 어떤 거 하실 거냐고. 

어떤 투어가 있는지 말씀해달라고 하니 남부 투어랑 북부 투어, 유람선 투어가 있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북부를 많이 가기도 하고, 거기가 남부보다 볼 것도 많고 재밌을 거다 말씀하셔서 북부 투어는 무조건 넣었다.

그다음 남부 투어와 유람선 투어 중 하나를 고민했는데, 그래, 조금 고민했다.

유람선 투어가... 조금 더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북부 투어랑 남부 투어가 1000루블,

유람선 투어가 1200이었나 1500이었나 그 언저리였을 것이다. 기억이 안 나 ㅠㅠㅠㅠㅠㅠㅠㅠ

솔직히 북부를 보았다면 남부는 큰 감흥은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

유람선 투어를 추천해주시는 주인아주머니 말씀만 믿고 거금을 지불했다.

 

숙소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고 잠시 쉬었다가,

어제 애매하게 본 부르한 바위 노을을 제대로 보기 위해 혼자서라도 갔다.

날씨는 해가 질 때쯤 되니 조금 선선했다. 반팔을 입고 나왔는데 살짝 쌀랑하긴 했었다...

 

컴퓨터에 사진 옮기고 SD카드를 카메라에 도로 끼우지 못한 탓에 폰카로 찍었지만... 폰카도 나쁘진 않잖아 요즘.

 

DSLR로 못찍어 안타까움. 삼각대 까지 가져갔었는데... 
운치 오지고.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부르한, 넌 내꺼다!
마치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찍듯. 실상은 걍 셀카.

 

 

그렇게 또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부르한 바위와 함께.

조용히 혼자서 상상에 잠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던 하루였다.

깜깜한 밤길을 뚫고 숙소로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크바스를 마셔보고 싶어 한 병 사서 복귀했다.

적막이 감도는 부엌에서 크바스를 조금 마시고, 부엌 냉장고에 넣어 놓은 뒤,

내일, 북부 투어보다 조금 더 비싼 유람선 투어를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보정 좀 침침하게 해서 스코틀랜드 어딘가라고 하면 믿을 사람 꽤 있을걸.

3편에서 계속...

알혼섬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

알혼섬에 내리자 이제 포장도로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여긴 더 이상 속세가 아니올시다.

차가 쓸고 간 곳에는 흙먼지가 자욱했고, 길거리에서 소가 멍때리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그렇게 차창을 통해 송전탑이 듬성듬성 세워진 산봉우리를 보며 숙소까지 달려갔다.

3일 동안 샤워도 안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새벽 4시부터 5-6시간 정도 역에서 픽업 차량을 기다리고

장장 8-9시간 정도를 달리느라 힘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언제 또 볼지 모를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어떻게든 꾸역꾸역 잠에 들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픽업 차량이라는 게 숙소 전용이 아니라,

운전기사가 의뢰받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태워서 각 숙소에 내려주는 식인데,

그러다 보니 이 곳 저곳 들리면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태웠었다.

생각보다 한국인들이 꽤 많이 타서... 놀라진 않았다 솔직히.

블라디보스토크는 널린 게 한국인이라 말할 것도 없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도 한국인 여성분 한 분 만났고,

알혼섬까지 가는데도 여성분 몇 명이랑 남자분 2명 탄 걸로 미루어 보아, 

스킨헤드니 인종차별이니 쌍팔년도 시절 루머를 아직도 수용하고 있는 것치곤 많이 오는구나 싶었다.

아마 한러 양국 간 무비자 시행과 여행 유튜버 '여락이네'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콘텐츠의 공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분들과는 대화를 못 나눴지만, 같은 차를 탔던 남자분들이랑은 어느 정도 말을 섞어보았다.

가는 길이 너무 길어서 중간에 휴게소에서 점심 타임을 가지는데, 그때 남자분들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길래

우물쭈물 다가가 같이 먹어도 괜찮겠냐고 조심스레 묻고, 흔쾌히 허락해주시길래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처음엔 중국인 분들과 중국어로 대화하고 그래서 중국인인 줄 알았다느니, 모스크바 가보니 시베리아 도시는 촌이라느니,

여행자 사이에서 오가는 흔한 썰을 풀고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다시 차에 타 무진장 지루한 시간을 목가적인 풍경에 하품을 불어넣으며 때웠다.

이 긴 긴 거리에 1000루블 밖에 받지 않았다는 게 미안한 느낌...이 있었을 리가 없다. (2018년 기준, 사실 오래전이라 정확친 않음.)

 

알혼 섬

 

한 분이 호숫가에서 텐트 치고 야영한다고 해서 저녁쯤 샤먼 바위 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 숙소에서 쉬었다.

나는 우선 체크인을 하고, 짐을 대충 풀어놓고, 지금 잠들면 저녁 약속을 못 지킬까 봐 미리 샤먼 바위를 보기로 했다.

아니, 우선 샤워 먼저 하고... 숙소에 샴푸가 구비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비누만 달랑 있었다.

부랴부랴 슈퍼 찾아서 겨우 가장 싼 샴푸 사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출발했다.

 

부르한 바위(샤먼 바위) 가는 길

어느 정도 길을 좀 헤매긴 했다. 여기가 외진 곳이다 보니 지도 앱이 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지도 앱 탓을 할 게 아니라, 지도 앱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를 탓해야지.

아니, 애초에 정보 없이 간 나를 탓해야지.

어찌 되었든,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알혼섬 부근에는 숙소 값이 좀 비싼 터라(특히 성수기 시즌이라 그런가...) 그나마 가격이 좀 낮은 곳을 선택했다.

니키타 하우스를 인터넷에서 많이 추천해주긴 했지만,

이런 곳까지 와서 사람 바글바글한 곳에 묵긴 싫기도 했고 비싸기도 해서, 부킹닷컴에서 대강대강 찾아서 묵었다.

 

미리 숙소에 대해 말하자면... 강추다. 후지르 마을 외진 곳에 있긴 하지만,

거기서 제공해주는 밥이 너무 맛있었고, 목조 건물이라 그런가 난방이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아 밤에 쌀쌀하긴 했지만

이불 잘 덮고 자면 또 그렇게 막 춥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인아줌마랑 거기 일하는 우즈벡 사람들이 너무너무너무 친절했다.

투어 예약도 다 해주시고, 애로사항 같은 거 있으면 금방금방 해결해주시고, 그 외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좋으신 분이셨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참고로 숙소 사진이 없음... 여행하는 동안 숙소를 안 찍었음... 도움 안 되는 여행기 같으니라고!)

 

부르한 바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은 부르한 바위. 보정을 안 해서 하늘이 쌔하얗지만, 실제로 보면 하늘도 정말 맑고 물도 엄청 깨끗하다.

사실... 보정빨만 믿고 사진을 야매로 찍는 편이라, 보정 탓 좀 해봤다.

 

호수변으로 내려가는 길

이런 길을 따라 내려가면

 

부르한 바위 주변 호수변.

이렇게 모래사장 깔린 곳에서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6시 반에서 7시쯤 되었으니 사람들이 많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 바이칼을 오는 여행객의 부류는 

 

1. 낮에는 해수욕을 즐기고 밤에는 보드카 파티.

2. 투어나 트래킹을 통해 바이칼의 아름다움을 만끽. (나 같은 부류.)

 

이렇게 나뉘어진다고 한다. 관광객과 피서객의 차이라고나 할까, 뭐 그렇다.

한 번 바이칼에 몸 담그고 싶어 떠나기 하루 전에 시도해보자 다짐을 했지만 결국엔 안 했다. 

이유는 다음 편에...

 

그런 건 있었다; 밑으로 내려가면 보통 러시아인이고, 부르한 바위가 잘 보이는 위쪽에는 중국인이 가득했다.

 

부르한 바위 부근 자갈밭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안선

 

부르한 바위로 들어서는 길에 있는 샤머니즘적인 기둥. 예로부터 후지르섬에 살았던 부랴트 족은 부르한 바위를 신성시 여겼다고 한다.

푸르고 푸렀다. 새파랬다. 거제 겨울바다보다 더 새파랬다. 수평선을 쳐다보노라면 정말 바다가 아닌가 싶을 정도.

역시 이름값 하는구나!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가장 수심이 깊은 호수. ^^;

어찌 되었든, 여행 경비 문제상 알혼섬을 갈까 말까 고민했던 게 참 바보같이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대 도심을 제외하고는 가장 긴 시간동안 머물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돈 아깝다고 2박 3일로 끝냈다면 지금쯤 엄청난 미련이 남지 않았을까...

 

탁 트인 호수, 이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호안선, 푸근한 시골, 자유롭게 길가를 서성이는 소...

자기 자신, 즉 자아를 찾는다니 뭐니 여행작가니 인스타 감성변태들이 미사여구를 펼치지만, 솔직히 그건 좀 많이 구라다.

사람마다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 여행을 통해 느끼는 점은 각기 다르지만, 나는 오히려 나를 잃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것과 막다른 것과 부딪치면서, 그 환경 속에서 '나'는 '나'로써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언제 내가 바이칼 호수라는 장대한 서사시의 등장인물이 되어보겠는가.

내가 언제 길거리에서 멍때리는 소를 보고 귀엽다고 웃음짓고, 샤머니즘의 부산물을 보며 경외심을 가지겠는가.

한국으로 귀국하여 다시 '나'로 돌아갔을 땐, 일련의 유체이탈 행위는 안주거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내가 나라는 개념에 묶여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좆같아서?

언젠가 따로 다루어볼 토픽이라 생각한다.

 

부르한(бурхан)보다는 약한 베테르(ветер). 구개음화 몰라서 안하는 거 아닙니다.
숙소 강아지... 아닐 수도 있다. 가물가물하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우즈벡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솔랸카와 빵, 그리고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은 잘 안난다. 

이래서 여행기라는 것은 제 때 제 때 써야되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약속시간이 다가와 다시 부르한 바위로 갔다.

길을 또 헤매는 바람에...일거다 아마도. 약속 시간보다 지체되어 먼저 감상들 하라고 하고, 맥주와 보급용 웨하스를 사들고 갔다.

 

노을.
소 팔자가 상 팔자.

 

거의 다왔다, 노을이 거의 질 무렵에...

 

노을이 끝나갈 즈음 샤먼 바위.

늦은 와중에도 사진 찍는 거 보니 그래도 계속 지각하고 싶나 보네.

어찌 되었든 도착을 했고, 오는 길에 만났던 2분을 만났다.

부르한 바위 부근 호수 모래사장 쪽에 텐트 쳤다고 그 쪽으로 오라고 했는데 

텐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 텐트인 듯 했던 게 있었긴 했는데 사람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나만 못 찾은 게 아니였다. 다른 한 분도 못찾으셔가지고 나랑 똑같이 찾고 계셨던 것이었다.

뭐 어찌어찌해서 위쪽에서 만났긴 했다. 앞으로의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을이 다 져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부르한 바위.
기념촬영. 티스토리는 왜 얼굴가리기용 이모티콘을 제공하지 않는거냐 도대체 왜!
폼잡는 중.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다음 날 각자 스케쥴이 어땠는지. 

한 분은 아마 호수에서 미역 좀 감는다 그러셨고, 한 분은 나처럼 북부투어를 한다고 하셨던 것 같다.

투어하는 동안 동선이 안 겹쳐져 도중에 만나진 못했지만, 아마 재밌게 잘 하셨으리라 믿는다.

뭐 아무튼, 여행얘기 같은거 좀 하다가 해가 완전히 질 때 쯤 텐트쪽으로 내려가 맥주를 꺼냈다.

Night is coming, becuz it is not winter.
파닥파닥파닥몬.
갬성사진.
짠!

평소에 술을 잘 안하긴 하지만, 여행을 하면 그 나라의 술 맛이 궁금해서 종종 마시곤 한다... 아니면 사람한테 맞춰주느라.

어찌 되었든 어두워져가는 바이칼호수를 보면서 마시는 맥주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그렇게 고되고 고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러시아는 여름에 낮이 길어 더욱이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이렇게 한국인끼리 하루를 마무리짓고,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에 만나기로 했지만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결국 서로의 여행을 응원해주고 헤어졌다.

 

무사히 여행 잘 끝내셨길 바랍니다.

한 분은 몽골에서 잊지못할 은하수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길 바라고

한 분은 중앙아시아 여행 무사히 잘 마무리 하셨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사기 안 당하셨길...)

 

 

2편에서 계속 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의 서막을 알렸고,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에 올라타면서 긴긴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차에 타기 전 부터 나에게 관심을 보인 울란우데 출신 '칭기즈'와 그의 동료,

열차 맞은 편에 탄 이름 모를 연금수령자와 사할린 섬 여행하고 고향으로 복귀하는 시크한 아저씨,

가족여행으로 온 듯한 여러 사람들...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았고, 더군다나 러시아어도 막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라

수많은 유튜버가 보여준 낭만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여행이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생각이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은 매 한 가지니까.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소홀히 하는 편이라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 역까지 장장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름 젊은 패기에 (당시 25살이었으니) 표를 예매했을 땐 3일이면 굉장히 짧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3일을 기차 안에서 지내보니 3일이라는 기간은 정말 길었다.

샤워도 하지 못해(샤워를 할 순 있었지만 캐리어를 열기가 귀찮았다.) 머리는 머리대로 떡지고

말이 잘 통하지 않기에 의사소통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잠은 잠대로 잘 수가 없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 역
인(Ин)역
치타(Чита) 역
울란우데(Улан-Уде)역

 

그래도 다른 칸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칭기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캄차카에서 어부일 하다가 고향으로 가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과 막판에 한국 여행객 통역해주면서 친해지면서

마냥 고통스러운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스럽긴 했다.

 

담배 피는 칭기즈 형님

칭기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몽골계 러시아 소수민족인 부랴트인이고,

한국에서 일하다가 배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 타고 울란우데로 가는 사람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무려 횡단 열차를 타기 전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원래 본업은 화가였으나, 아무래도 그림 그려 돈 벌어먹는 게 힘들겠지, 더군다나 모스크바가 아니라 울란우데에서 활동한다면...

러시아에서 돈벌이도 변변치 않아 한국으로 일하러 간 듯했다.

 

생 부랴트인이라 그런지 부랴트 말도 조금 할 줄 알았고,

나름대로 자신의 민족에 자긍심이 있는 사람이라 부랴트어를 할 줄 모르는 울란우데 쪽 아이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러시아어를 조금씩 가르쳐주기도 했고, 푸쉬킨의 예언자라는 시를 써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려주면서 까지 이해를 시켜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뭔가 의미가 확 오지 않아 이해를 못한 내색을 보이자 씁쓸해하기도 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으신 분과 칭기즈

또 한편으로는 맞은편 좌석 남자분께

내가 외국인이니 잘 챙겨달라는 말을 누누이 하셨다. (그러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러면서 그 두 명이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는데,

유추컨대, 왜 굳이 다른 나라 나가서 일을 하느냐는 식으로 핀잔을 준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사할린은 볼 게 많이 없었다면서 오고 가는데 시간만 낭비했다는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거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뚝뚝하면서도 은근히 나를 챙겨주기도 했고,

서로 고향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이름을 까먹었다...) 자신이 사는 오룔(Орёл)이라는 도시를 보여줬고

나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거제 사진을 보여줬다.

현대적인 건물이 번쩍번쩍 빛나는 사진을 보고 흥미를 꽤나 가지셨다.

 

나랑은 직접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같이 있는 자리가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차창 너머 이름 모를 시골 마을

열차 안에 있는 아이들이랑 마피아 놀이를 하기도 했고, 보드 게임하는 걸 구경하기도 했다.(할 줄 몰라서...)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정말 아쉽긴 했지만, 나름대로 재밌었다. 마피아 게임을 원활하게 할 정도의 러시아어 실력을 갖추지 못해

많이 주절대는 사람을 지목하고 얘가 마피아야! 너무 많이 씨부려! 이러면서 몰아세우기도 했다.

마피아 놀이는 한국에서 하는 것과 거의 똑같았다. 마피아, 시민, 경찰, 의사 이렇게 있는 상태로 하니까.

그때 같이 게임을 했던 친구들이 나를 제외하고 6명인가 그랬는데 전부 다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열차에서 다 친해진 느낌?

 

모두 울란우데 쪽에서 다 내리고 나니 어떤 러시아 사람이 나한테 나가오 더니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 쪽에 한국인이 있는데 통역 좀 해달라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웬 한국인 여성분이 러시아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

어쩐지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계셨는데 설마설마하고 말을 안 걸다가 한국인인 걸 제대로 알고서야

마치 코를 풀어내듯 한국어를 풀어냈다. 그분도 이르쿠츠크로 가시는 분인데, 리스트비얀카였나 아무튼 거기로 간다고 하더라.

러시아 전래동화 같은 거 아는 거 있냐, 얼마나 러시아어 배웠느냐, 어디로 가느냐, 이런저런 질문 세례를 받고는 

러시아 카드게임인 두락(Дурак)을 했는데, 나도 통역을 못하자 일단 하면서 배우자면서

나랑 한국인 여성분이랑 아무거나 지레짐작하며 내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패를 들 테니 너네들이 게임을 즐겨라는 식으로 진행이 흘러갔다.

지금 시점에서 이 게임을 하라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데(카자흐스탄에서 보드카 마시면서 배운 지라...)

좀 배워갈 걸 그랬나?

 

바이칼

그렇게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바이칼 호수가 나왔다. 물론 해가 거의 질 무렵이라 잘 보이진 않았다.

이제 이르쿠츠크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 잠도 오고 그러니 잠을 자러 갔다.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승무원이 도착 20분 전에 나를 깨웠다.

이르쿠츠크 도착할 때쯤 깨워달라는 맞은편 아저씨도 깨우고 이르쿠츠크에 내려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했고

한국인 여성분 택시 잡는 거 러시아인이랑 같이 도와주고 그분들과도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정도 되었다.

아침에 알혼섬에 있는 숙소로 가는 픽업차량이 온다고 하니 폰도 충전하다가 잠시 선잠을 청했다.

아침 9시쯤에 온다고 그랬는데 버스 기사가 엄청 지각해버리는 바람에 거의 10시쯤에 탄 것 같다.

그때까지 뭐했냐면, 아무것도 안 했다. 역 주변을 서성대다가 다시 들어가 앉아 있다가를 한참을 반복했다. 

 

버스가 늦게 도착한 바람에 짜증이 엄청 난 상태였는데 갑자기 어떤 남성분이 내게 다가와 죤기혼크? 하고 소리치는 것이다.

처음엔 응? 하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알아채고선 다! 다! 하고 소리치고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탔다.

몇몇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을 돌면서 사람들을 더 태우고 알혼섬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거의 8-9시간가량 걸렸다. 

 

알혼섬으로 가는 배

알혼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까지 가서야 느꼈다.

중국인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그때 바이칼 호수에 관한 노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나 뭐라나...

같은 버스에 탄 한국분이 설명해 주시더라.

 

3일 8시간 만에 알혼섬에 도착했고, 조금 쉬고 싶었지만 한국 여행자분들과 호수변에서 만나기로 해서 짐 정리하고 바로 나갔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 몇 개만 올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무르 강
어느 시골의 한 목조 오두막

 

전형적인 시골 풍경

 

 

 

2014년에 한러간 상호무비자 협정을 맺은 이후로 한국인들 사이에서 떠오른 러시아 극동의 도시,

한때는 연해주로도 불렸고, 강제이주 전까지만 해도 무수한 독립운동가들과 

무기력한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조선을 벗어나고자 했던 농민들이 이주를 하곤 했었던 도시,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차고 넘치는 도시,

그렇게 첫 해외여행을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에서 시작했다.

 

마침 러시아어를 전공하기도 해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선택했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첫 관문이자 한국인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블라디보스톡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떠올리자니 해풍이 서늘하게 부는 이른 아침의 항만만이 떠오른다.

러시아로 떠나기전 인터넷을 통해, 주윗사람을 통해 신빙성 없는 스테레오타입을 들어왔기에,

행여 누군가 내 물건을 훔쳐가진 않을까, 행여 누군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나를 기분나쁘게 하지는 않을까

크로스백을 부둥켜안다 시피 하며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난다.

더군다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아파트방이라, 외곽에 군데군데 지어진 흐루쇼프카는 

여행초심자이자 러시아초심자인 나를 두렵게 하기엔 충분했었다.

 

그러다가 기차를 기다리면서 낮선이와 대화를 하고

노숙자랑 자그마한 공원에서 노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뒤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어느 정도 소화해낼 수 있었던 러시아어의 덕이 가장 큰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톡 해양공원

블라디보스톡에는 약 3일정도 체류했었고, 극동에 있는 중소도시라 그런지 그렇게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처음 가보거나, 바이칼이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러시아라는 나라를 단순히 경험하기엔 나름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르하트나야(Бархатная) 흑맥주. 맛은 그저 그랬다.

불켜진 흐루쇼프카를 바라보며 러시아 맥주와 슈퍼표 웨하스도 먹을 수 있고 

밀키스 포도맛, 메론맛, 바나나맛. 그리고 흑빵(хлеб)

흑빵과 곁들여 우리나라에서 팔지 않는 과일맛 밀키스도 맛볼 수 있었다.

참고로 주식이 빵이다 보니 저 정도 덩치의 흑빵도 굉장히 싼 값에 먹을 수 있었다.

특히나 모스크바도 상트도 아닌 블라디보스톡이라면... 10루블 이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해양공원 유료화장실 관리인

화장실 지키는 뚱뚱이 아줌마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화장실이 유료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0루블이면 허름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수도권에 비하면 매우 싸다. (모스크바 기준 50~60루블)

 

해양공원에서 바얀(Баян)키는 아저씨.

바얀 연주하는 어르신도 볼 수 있다. 

러시아 어딜가든 바얀을 키면서 구걸하는 아저씨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스탈로바야(Столовая)에서 먹은 점심. 가격은 가물가물하지만 약 100-150정도 나온 듯 하다.

스탈로바야에서 러시아 현지인들이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

스탈로바야라 함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고르되 계산은 각 음식마다 치뤄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고 주로 가정식이 나오기 때문에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나는 킹크랩을 먹지 않았다. 주로 킹크랩이랑 곰새우 먹으러 많이들 가지만

당시 내 여행의 취지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온전히 느끼는 데에 있어서...

킹크랩이랑 곰새우가 그렇게 저렴하고 맛있는데 후회 안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뭐... 조금"

중국계 노숙자

재수 좋으면 노숙자의 춤사위도 볼 수 있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춤 출 줄 안다고 막 추는데, 실컷 다 추게 해놓고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뻘줌해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면 노숙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정말 재밌긴 하지만, 위생상 안전상 그렇게 추천할 것은 못된다.

 

드미트리 아저씨

다행히 사연 많은 드미트리 아저씨가 도와주신 덕에 노숙자들이랑 맘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잘 살고 계시려나. 연락한다 해놓고서 이때까지 연락을 안했는데... 

드미트리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숙자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와서 말을 막 걺.

나랑 드미트리 아저씨한테 맥주 한 병씩 사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나, 

노숙자들이 술에 절어 있기도 하고,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러시아어를 못했기 때문에

많은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에서 왜 노숙자를 БИЧ(Бывший интелигентный человек)이라 칭하는지 알법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했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곤 했다.

그 때 만난 노숙자도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혁명광장에서 소련느낌 물씬 나는 광장을 볼 수도 있고, 정교회 사원도 볼 수 있다.

비록 러시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트램이나 트롤리버스는 구경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스타렉스 사이즈의 미니밴 버스를 탈 수 있고, 

러시아 백화점도 구경할 수 있고, 러시아어를 들을 수도 있고, 서점에서 러시아어로 된 책을 살 수도 있으니

그러한 면에서 간단하게 러시아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광장. 여기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쭉 걷다가 나온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동상. - 닫혀 있던 항구 블라디보스톡이 열렸다. -
니콜라이 개선문.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커서 나름 놀랬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각교(Золотой мост)

 

정작 여행에 유익한 정보를 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미안할 따름이다.

어떤 관광지가 언제 지어지고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알아보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그러한 정보까지 알고 가면 조금 더 재밌는 여행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내가 관광가이드로 일하지 않는 한 디테일한 것 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포스팅을 통해서 제공해줄 수 있는 정보는

대강 이러이러한 장소가 있었네, 이 도시는 이러한 느낌이 들었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네 하는 개인정인 감상 뿐이기에,

정말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들은 다른 포스팅을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정보는 내가 정말 원할 때 직접 자료를 찾아낸 뒤 따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블라디보스톡 굼(ГУМ). 본점은 모스크바 크렘린 부근에 있다.
굼 뒤편에는 플리마켓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페, 디저트류를 주로 팔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크지는 않은 도시고, 관광할 거리가 그렇게 넘쳐나는 곳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톡이 근래 뜬 것도

"유럽 느낌이 나는 가장 가까운 도시", "저렴한 킹크랩", "관광 무비자 체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 및 종착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정말 많았다. 특히 관광지 쪽으로 가면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혼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시각에 모든 것을 맞추지는 말자"는 것이다.

식당에서 쩝쩝대며 음식을 먹는다거나(러시아에서는 굉장히 예의없는 행동임)

돈을 손으로 주고받지 않는 것에서 불쾌감을 느낀다거나

영어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 

특히 첫번째. 식당에서 너무 쩝쩝대서 깜짝 놀랬다.

개인적으로 쩝쩝소리를 굉장히 싫어하지만, 한국에 있을 땐 참았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쩝쩝소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핀잔을 주다간 오히려 인간관계가 확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쩝쩝대는 것을 굉장히 '무례'하게 받아들인다. 한국이 아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다루는 러시아인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 한국인의 쩝쩝소리(Чавканье)에 대해 자주 언급이 될 정도니...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더욱이 웃긴 건 그렇게 쩝쩝대는 것이 '만족의 신호', '먹음직스러움'을 나타낸다고 설명하니... 실드를 칠 걸 실드쳐야지.

자국에서의 사소한 행동이 타국에서는 굉장한 불쾌감을 자아내는 경우가 무의식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도시의 역사, 건축물의 역사, 상징물에 담긴 전설 등에 관한 내용을 알고 가는 것도 좋지만,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는 관습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숙지하고 가는 것이 여행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이 든다.

 

뭐 어찌 되었든, 블라디보스톡은 내게 안겨진 러시아의 첫인상을 품고 있는 도시이다.

나같은 러시아학도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첫인상이 어땠는가 물어보면 쉽게 답이 나오진 않는다.

 

"사람 사는 동네. 생각보단 잘 웃는 사람들."

 

인형탈 알바생
블라디보스톡 아르바트 거리.
제복 입은 할아버지

 

러시아인들이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은

수업시간을 통해서나 랜선으로 사귄 친구들을 통해 많이 들어와 별로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중심가를 돌아다니면서 그닥 위험하지 않았고,

인종차별과 폭언을 통해 상처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어딜가든 미친놈보단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탔을 때, 걱정해주면서 몇 번이고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아주머니,

노숙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준 우연히 마주친 드미트리 아저씨, 무심하게 음식 담아주는 스탈로바야 직원분들 등등...

얼타면서 다른 곳에 싸인하려 하니 손가락으로 밑으로 세게 쿵 내려치며 "즈졔시(Здесь)!"하고 소리친 물품 보관소 아주머니

그 외에도 루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시크하게 동전 세는 것을 도와주는 슈퍼 아주머니,

아이들한테 굉장히 차가운 표정으로 훈육하는 어머님들,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땐 웃음꽃이 피어나는 젊은 사람들,

옛 소비에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제복 입은 할아버지 등등...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초면에 무뚝뚝한건 매한가지니 큰 이질감은 없었다.

다만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서비스 정신(미소가 덜한 서비스), 다른 시스템(유료 화장실, 미니밴 버스, 신호 카운터, 러시아어, 역 입구 보안검색대 등등)에서 신기함을 느끼긴 했지만, 사람 개개인으로 놓고 보았을 땐 역시 사람 사는 데는 그 방식이 다 똑같다고 '벌써부터' 느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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